발간호: 2020-23

덩샤오핑의 긴고아(緊箍兒)1): 일국양제와 홍콩문제

신원우 (한양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연구위원)

1.들어가며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이하 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홍콩 상황은 결국 ‘’홍콩보안법’’2) 시행으로 수렴되었다. 2020년 5월 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의된 ‘’홍콩보안법’’은 결국 2020년 7월 1일부로 시행되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2019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진행되었던 홍콩의 거리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자리엔 ‘코로나바이러스’의 그림자가 ‘흑색의 홍콩기’3)와 함께 드리워져 있다.

지난 두 달간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세계사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이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협정을 정지시켰으며, 미국은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폐지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 압박 전략을 구사하는 등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공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홍콩 정부는 9월 6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원 선거를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방지 차원에서 1년간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홍콩의 상황은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독특한 통치시스템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절묘한 해법으로 탄생하였고, 그에 의해 홍콩에 이식되었다. 여기에서 약속하고 있는 50년간 ‘고도의 자치권 보장’의 절반이 지나고 있는 지금, 홍콩의 일국양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은 왜 50년을 기다리지 않는가? 중국은 왜 범죄인 인도 법안과 ‘홍콩보안법’에 집착하는가? 또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의 추동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와 같은 좀 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요인들이 중국과 홍콩 관계에 지속해서 영향을 주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홍콩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뿐 만이 아니라 그 이전 즉, 19세기 홍콩이 조그마한 이주자들의 땅이었던 시절부터 중국과 홍콩 관계는 불안(不安), 불완전(不完全), 그리고 불평등(不平等)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홍콩의 ‘삼불(三不) 요인’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불안(不安): 중국의 정치엘리트들의 불안과 홍콩 시민들의 불안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정치엘리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위협의식의 형성은 두 가지 구조적 문제로 시작된다. 하나는 지배 집단의 주류로부터 소외된 대중과의 갈등, 다른 하나는 지배 집단 내 정치엘리트들과의 갈등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서 유래한 정치엘리트들의 불안(두려움)은 중국 공산당 정치엘리트들의 방어적인 위협의식을 나타나게 한다.3)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 10년에 한 번씩 다음 세대로 평화로운 권력승계를 실시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왔다. 10년의 집권 중 전반기 5년을 집권 1기 이후 5년을 2기라 할 때. 중국은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강력한 권력 공고화 작업이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5)

시진핑 체제 1기가 시작된 2013년 다음 해인 2014년에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우산 운동)가 발생하였고, 2016년에는 대만에서 반중국 성격이 강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권이 등장하였다. 2017년 1월에는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여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 시진핑 2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중국이 직면한 대내외 상황은 중국 지도부의 불안을 자극하였다. 이는 시진핑 2기의 권력 공고화 과정이 덩샤오핑 이후 중국에 정착된 집단지도의 권력 공고화 과정 중 가장 강력하게 추진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중국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공식 지도 사상으로 선포하고, 일국양제에 대한 일관된 관점과 대만과의 통일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2017년을 기점으로 대내외 환경에(특히 홍콩과 대만 그리고 미국) 대하여 훨씬 공세적인 태도를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결국 2019년 일국양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을 계기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규모 군중시위로 터져 나오게 되었다.

홍콩 시민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불안이 서려 있다.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2003년 퉁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 시절에 이미 홍콩 입법원을 통해 제정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2009년에는 ‘반분열국가법’을 홍콩조항에 삽입하려 하였고, 2012년에는 ‘친 중국적 내용을 강조하는 애국 교육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려고 시도하였다. 홍콩 행정장관 선출에 대한 중국의 개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2019년에는 송환법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홍콩 시민들과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 대한 고압적 태도와 탄압은 홍콩 시민들과 중국의 신뢰 관계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특히 2015년 발생한 ‘퉁뤄완서점’(銅鑼灣書店) 관계자들이 실종된 사건은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홍콩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 요인은 중국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어 있던 홍콩 시민들과 그간의 대규모 군중시위를 통해 배태된 신흥 민주화 운동 세력이 반응하여 2019년 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되었다. 요컨대 201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상황은 홍콩 시민들의 불안과 중국 정치엘리트 집단의 불안이 충돌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중국은 홍콩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인식하여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홍콩보안법’을 발효하였다.

3. 불완전(不完全) : 불완전한 주권과 정체성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공화(共和)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후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과 1949년까지 계속된 국공내전을 겪으며 현재까지 영토와 국민 그리고 정부의 영향력 측면에서 중국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완전한 형태의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지 못하였다. 분단국가에서 분단 상황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한쪽이 승리할 때까지 대립이 계속되는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제정치게임의 문제가 아닌 국가 생존과 직결된 주권 게임의 문제가 된다.6) 중국의 경우 대만과의 통일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일국양제는 중국의 대만과의 통일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일관된 정책 기조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중국은 불완전한 상태의 주권을 가진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국양제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일국(一國)을 양제(兩制)에 우선’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중국의 일국(一國) 중심의 일국양제와 홍콩 시민들의 양제(兩制) 중심의 일국양제의 인식은 홍콩과 베이징의 거리만큼 차이가 크다. 대만과의 통일은 중국이 완전한 형태의 주권국가로 나아가는 필수조건이고, 홍콩에 적용되고 있는 일국양제 통치시스템은 결국 대만과의 통일을 염두에 둔 일종의 리트머스지이며, 따라서 정치적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이 대내외적인 정치 ⋅ 경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홍콩문제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음으로 홍콩 시민들이 갖고 있는 불완전한 정체성이 있다. 홍콩 시민들의 정체성 변화의 시기를 거칠게 나눠보면 세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이주민들의 시기이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홍콩을 말한다. 19세기의 홍콩은 조그만 규모의 항구 겸 어촌이었으며, 영국이 식민통치를 목적으로 홍콩을 개발한 이후 중국 대륙에서 인구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홍콩 거주민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홍콩이 아닌 홍콩으로 이주해 오기 전에 살았던 중국대륙에 두었다. 두 번째 시기는 중국과의 단절의 시기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부터 냉전체제, 70년대 홍콩의 발전 그리고 1997년 영국으로부터의 반환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에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본인들의 정체성을 홍콩에서 찾기 시작했다. 세 번째 시기는 1997년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97년 이전 세대와 97년 이후 세대 그리고 중국 본토에서 유입된 새로운 이주민들의 정체성이 혼재된 시기이다.

현재 홍콩 시민들의 정체성은 홍콩인, 중국인,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 홍콩인이자 중국인 등이 혼재되어있으며, 사회이슈에 따라 그 비율이 급격히 바뀌곤 한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은 홍콩 사회가 사회적 이슈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갖게 한다. 비록 대규모 군중시위가 일어나더라도 그에 동조하지 않은 ‘다수의 침묵하는 집단’ 역시 홍콩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97년 이후 발생한 역대 대규모 홍콩 시위들이 비록 일시적인 성과를 거두더라도 결국 실패로 수렴되는 현상은 홍콩인들의 정체성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4. 불평등(不平等) : 정치적 ⋅ 경제적 불평등7)

언론과 방송에 공개된 홍콩 시위대와 중국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일국양제 원칙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양측이 같은 주장으로 충돌하는 이유는 홍콩과 중국이 ‘’홍콩기본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홍콩과 중앙정부의 권리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기본법'(12, 26, 27조 등) 에서는 홍콩의 “높은 수준의 자치권”, “투표권”, “표현 ⋅ 언론 ⋅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헌법은 모든 법률의 해석 권한을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두고 있다. 이것은 ‘홍콩기본법’의 해석 역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권한으로 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중국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은 홍콩 종심법원이 가진 국가 최고권력기구(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입법행위에 대한 이의제기 권한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입법행위 역시 홍콩 법원의 관할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홍콩기본법’ 해석에 관한 권한을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속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해석을 이용한 사례가 올해 7월 1일부로 발효된 ‘’홍콩보안법’’이다. ‘’홍콩보안법’’은 ‘’홍콩기본법’ 23조’ 아래 삽입되었으며, 크게 처벌과 집행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있다. 즉 외세와의 결탁, 국가 분열, 정권 전복 및 테러 행위에 대하여 처벌하고 이를 위한 집행기구로 홍콩에 국가안보처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홍콩보안법’ 제정은 2003년에 중국이 홍콩 입법회를 통해 시도하다 그해 7월 대규모 군중시위가 시작되자 무산되었다. 따라서 중국은 이번에는 앞서 말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하여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홍콩과 국제사회에서는 홍콩의 일국양제에서 양제(兩制)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고 일국(一國)만 남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홍콩의 선거제도 역시 불평등하다. 홍콩시민들은 실질적으로 홍콩행정장관을 직접 선출할 수 없으며, 70석으로 구성된 입법부 역시 40석에 대해서만 투표를 할 수다. 이러한 기형적 선거제도는 홍콩 시민들이 친 민주주의 성향의 정당들에 더 많은 표를 안겨주어도 결국 친중 성향의 정당이 홍콩의회 과반을 차지하게 한다.

홍콩의 불평등 요인 중 또 하나의 축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들 수 있다. 중국 정부의 동부. 동남 해안 도시들에 대한 개발 정책들을 검토하면 2007년을 기점으로 이곳에 위치한 선전(深圳)과 같은 도시들의 경제 규모가 홍콩을 추월하거나 따라잡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홍콩이 누려온 중국 내의 특별한 지위가 상실되기 시작했다. 홍콩이 중국 내에서 차지하는 GDP 비율은 1997년 약 24%에서 2019년 3%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홍콩의 지위 변화는 더는 중국이 홍콩에 특혜를 부여할 이유가 사라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8) 즉 중국의 대홍콩 정책은 홍콩의 중국 내 경제적 지위가 하락함에 따라 일국양제 정책의 중심이 양제(兩制) 중심에서 일국(一國) 중심으로 변화하게 했다. 그리고 특혜가 사라지고 급격한 중국화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홍콩 시민들의 기득권이 침해당하고, 본토 자본이 홍콩의 자본을 잠식해 들어감에 따라 홍콩의 부동산 가격 폭등, 경기침체,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홍콩 시민들의 중국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쌓이게 하였으며 현재 홍콩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5. 덩샤오핑의 긴고아(緊箍兒)는 작동할 것인가?

‘홍콩보안법’의 시행으로 일국양제의 실험은 실패하였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실패의 조건이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무게의 중심이 일국(一國)으로 기운 것만으로도 실패라 주장하고, 다른 이는 일국양제에서 일국만이 남게 될 경우라야 비로소 실패라 할 수 있다 주장한다. 중국은 홍콩에 이식된 일국양제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운영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일국양제는 결국 대만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만과의 통일은 불완전한 상태의 주권 국가에서 완전한 상태의 주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앞서 살펴본 홍콩과 중국이 가진 세 가지 요인들을 볼 때, 홍콩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일국양제가 홍콩 반환 직후 약 10여 년간 홍콩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용됐다는 사실 또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국양제는 그 자체로 모순적인 제도이다. 그런데도 일국양제가 홍콩에서 적용됐다는 것은 일국양제의 성공과 실패가 제도의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문제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현재 홍콩의 일국양제 문제는 제도의 실패가 아닌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다.9)

홍콩의 상황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다 코로나전염병 상황이 진정 국면이 되는 시기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환점의 시기가 오더라도 현재 중국의 일국(一國) 중심의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되돌리기 위한 방법 역시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홍콩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예를 들어 경제적 보상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발휘하느냐에 따라 홍콩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일국양제의 태생적 배경을 볼 때 우리는 아시아의 슬픈 근현대사를 마주하게 된다. 제국주의 시대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강들이 얼마나 될까? 일국양제는 덩샤오핑이 후대 중국에 남긴 일종의 긴고아다. 중국이 일국(一國)을 강조할수록 중국은 괴롭다. 현재의 홍콩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일국양제의 성공은 결국 중국의 인내심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덩샤오핑의 긴고아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6. 나가며

한잔, 두잔, 석잔, 넉잔, 다섯잔.

나는 취했다. 머릿속에는 고체의 웃음뿐이다.

희망은 비눗방울이다. 찰나의 춤을 추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문득 손가락 하나에 터져 버린다.

홍콩인의 행복은 모두 종이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사랑을 진실하다고 여기고 싶어한다.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지.

사람들이 지옥이라고 부른 곳에 어찌 이리도 웃음소리가 넘치는지.

홍콩을 대표하는 작가 류이창(劉以鬯: 1918-2018)의 대표작 『술꾼(酒徒:1963)』에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현재 홍콩 시민들이 느끼고 있을 좌절감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1960년대 홍콩인들이 느꼈던 좌절과 허무가 2020년 현재의 홍콩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일국양제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논의와 전망을 뒤로하고 분명한 것은 홍콩시민들의 마음속에 2019년 홍콩시위부터 2020년 ‘홍콩보안법’ 시행을 거치면서 깊은 상처가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홍콩의 시민들은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정 사이의 고뇌를 뒤로한 체 깊은 침묵에 빠져있다. 중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이러한 홍콩 시민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1] 중국 명나라의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손오공(孫悟空)의 머리에 뿌리박힌 테이다.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 손오공(孫悟空)을 제어하기 위한 물건으로 주문을 외우면 긴고아(緊箍兒)가 줄어들면서 머리를 강하에 조여 엄청난 고통을 준다. 여기서 긴고아는 덩샤오핑이 만든 일국양제를 상징하고 손오공은 중국을 상징한다. 중국의 일국양제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국이 고통스럽더라도 일국(一國)과 양제(兩制)가 공존하는 안전장치로 인해 결국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홍콩국가보안법’, ‘홍콩국안법’, ‘홍콩국가안전법’. ‘’홍콩보안법’’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이 법안의 실제 명칭은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 (全國人民代表大會關於建立健全香港特別行政區維護國家安全的法律制度和執行機制的決定, National People’s Congress Decision on Hong Kong National Security Legislation) 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국내언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홍콩보안법’‘으로 통일한다.

[3] ‘흑색 홍콩기’는 홍콩시위대가 주로 사용하며, 일국양제를 기반으로 한 홍콩의 민주적 가치가 죽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4] 손인주. 2020. “두려움의 정치: 시진핑 권력 강화의 심리적 동인.” 『한국정치학회보』 제54권 제1호, 139.

[5] 조영남. 2019. 『중국의 엘리트 정치』 (서울: 민음사): 28-30.

[6] 전재성. 2020. 『동북아 국제정치이론』 (파주: 한울) : 15-22.

[7] 이 장은 필자가 『아시아연구』 제23권 제1호에 발표한(2020.2) 논문 “2019년 홍콩 시위의 특징과 일국양제 위기론에 관한 고찰”의 일부 내용을 요약 및 인용한 것임.

[8] 여기서 말하는 홍콩의 특별한 지위는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지위가 아닌 GDP 비율과 같은 중국에서 차지하고 있던 홍콩의 경제적 위상을 말한다.

[9] 신원우. 2020. 발표한(2020.2) 논문 “2019년 홍콩 시위의 특징과 일국양제 위기론에 관한 고찰.” 『아시아연구』 제23권 제1호. 26.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장훈필 연구원

저자소개

한양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양대학교에서 국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연구 관심분야는 양안관계, 남북한관계, 협상이론이다. 학술논문으로는 “Comparative Study on the Distinctive Strategies and Factors of China’s Negotiation with Taiwan and South Korea’s Negotiation with North Korea”, “2019년 홍콩 시위의 특징과 일국양제 위기론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