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0-24

    

러시아푸틴 체제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반도1)

이선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1. 문제제기

주지하다시피, 2020년 7월 2일 러시아는, 2024년으로 예정된 현 대통령직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푸틴(Vladimir Putin)이 연이어 6년씩 두 차례, 총 12년간 대통령직을 또다시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파격적인 헌법개정을 단행하였다. 본 개헌안은 국민투표 결과 대략 68%의 투표율과 무려 78%에 육박하는 높은 찬성률을 보이며 통과됐고, 푸틴은 이로써 ‘선거에서 패하지만 않는다면’ 2036년까지 크렘린(Kremlin)의 주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물론 필자를 포함해 일각에선 푸틴이 결국에는 종신집권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해왔지만, 그간 러시아 국내외적으로 ‘푸틴 이후’에 관한 논의들 역시 상당했음을 감안할 때, 이번 개헌이 매우 진부한 이야기의 싱거운 결말처럼 읽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권좌를 지킬 가능성을 약간이나마 지니고 있는 통치자가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개헌이, 10여 년 넘게 이어진 전지구적 저유가 기조 및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촉발된 서방측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 탓에 이미 경기침체가 만성화된 데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의 여파까지 겹친 초유의 악재 속에서 추진됐음을 고려할 때, 그 결과가 다소 의외인 측면도 없진 않다. 실제 나발니(Alexey Navalny)를 필두로 한 러시아의 야권 진영은 개헌의 내용상 비민주성은 물론 절차상의 불공정성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해왔고, 이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만만치 않은 상황 속에서, 나발니에 대한 정권측의 독살시도 의혹까지 불거지며 최근 사태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소위 러시아의 ‘푸틴 체제’ 하에서 푸틴 대통령은 왜 현재 시점에 사실상의 종신집권을 추진하게 되었는가? 나아가, 향후 ‘푸틴 체제’와 러시아 정치는 과연 어떠한 진화 경로를 보여주게 될 것인가?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해 가지는 전략적 함의는 과연 무엇인가?

  1. 푸틴 체제 현재

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틴은 2018년 3월 18일 치러진 대선에서 무려 76.7%에 달하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을 보이며 자신의 4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였다. 물론 해당 대승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내전’을 위시한 러시아와 서방 간의 연이은 대립구도 등 국제정치적 요인의 기여는 결코 작지 않았다.2) 특히, 미국과의 만성적 관계악화에 따른 러시아 내 반미 정서의 심화 및 이에 따른 대중 수준에서의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 담론의 극대화가 다시금 유권자들로 하여금 ‘수호자’ 푸틴을 선택하게끔 강하게 유인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3년여 만에 플러스 성장세(1.5%)로 돌아선 경제 역시, 대중의 입장에선, 부족하나마 최악의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서방측 경제제재에 대한 적응의 성공으로 인지됐을 수 있다. 즉, 대선 전후의 러시아 경제 여건 또한 푸틴에게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대도시의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유사권위주의적 성격의 ‘푸틴 체제’에 대한 불만족도가 여전히 낮지 않고, 이들의 재민주화에 대한 열망 역시 근본적으로 소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2018년에 시도됐던 연금개혁을 향한 대중들의 전국적인 불만 및 시위에서 상대적으로 뚜렷이 드러났듯, 현재의 ‘푸틴 체제’가 정치사회 및 시민사회를 압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2010년을 전후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반정부 시위나 2011년 하원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United Russia)이 보여준 비교적 저조했던 성적 등 ‘푸틴 체제’의 과거 위기 징후들은 언제든 재발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더욱이, 비록 러시아의 경제가 최근 서방측 경제제재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국제 천연자원 가격 또한 다소간의 상승 조짐을 보임에 따라 일부 호조건들을 만났다곤 하나, 유가 등이 2000년대의 수준을 훨씬 밑도는 상황 속에서 뚜렷한 성장동력을 발굴·개발해나가고 있다고 보기도 힘든 실정이다. 즉 중장기적 경제 여건은 현재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대중들의 정권에 대한 지지세가 하락할 개연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이에 따라, 푸틴은 자신의 집권 4기 시작과 함께 다시금 러시아의 정치 및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야심찬 9대 주요 국정과제 및 13대 우선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통해 2024년까지 러시아를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재탄생시키고, 인구의 자연적 성장세를 유지하며, 생산성의 비약적 증대와 기술혁신을 공히 독려할 것 역시 천명했다. 이는 과학기술의 혁명적 혁신 및 사회경제적 발전을 자신의 4기 행정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3)

하지만, 상기 정치적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집권 4기 통치방식에는 실상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선, 정치적 측면에서, 푸틴은 국가 차원의 요직인선에 있어 유의한 변화를 꾀할 의지가 별반 강하지 않으며, 따라서 실로비키(siloviki) 등 기존의 주요 엘리트분파들 간에 배분돼있는 권력구도 역시 어떤 방향으로든 흔들 계획이 거의 없어 보인다. 예컨대, 푸틴의 집권 4기 요직인선 내역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기존 인사들이 주요 각료직 및 대통령실 요직에 그대로 유임되거나 기껏해야 서로 자리를 바꿔 임명된 경우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2020년 초에 ‘푸틴 체제’의 오랜 총리였던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가 사임하고 새로이 미슈스틴(Mikhail Mishustin)이 총리에 임명되는 등 일부 최고위층의 인적 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방·외교·내무·경제 분야 수장들 대부분이 유임되고 주로 사회부문의 장관들만을 중심으로 교체되는 양상을 보여, 이에 관해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긴 힘든 상황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푸틴 체제’가 이른바 국가자본주의의 기조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푸틴이 상기 엘리트분파들 간 권력구도를 재편할 의향이 없다면, 이들에게 공급해오던 경제적 지대 역시 계속 이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배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따른 부정부패 역시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 러시아에서 국가는 여전히 전체 GDP의 70% 정도를 생산하고 있고, 대선 직전으로 비교적 최근인 2018년 2월에도 국영은행인 VTB뱅크를 통해 국내 최대 소매업체의 지분을 대량 인수함으로써 최대주주의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되었다.4) 더욱이, 러시아 최대의 국영 석유업체인 로스네프트(Rosneft)의 경우, 비록 공직에선 물러났지만 현재도 실로비키 그룹 내 유력한 한 분파의 실질적 리더로 암약 중이라 평가받는 세친(Igor Sechin) 이사회 의장이 여전히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틴식 국가자본주의의 성격은 오히려 최근 들어 이전보다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도 가능케 하고 있다.

  1. 러시아의 2020 개헌

‘푸틴 체제’의 정치경제적 특성들이 상기한 바처럼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푸틴 자신을 포함해 정권을 구성해온 엘리트층의 이해관계들이 해당 체제 내부적으로 강하게 고착화돼있음을 뚜렷이 방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금번 개헌이 왜 푸틴의 종신집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까지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포함해, ‘푸틴 체제’의 현재를 이해하고, 나아가 그 미래를 가늠해보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사실 이번 개헌 이전부터 ‘푸틴 체제’의 미래와 관련해선, 꾸준히 몇 가지 유력한 시나리오들이 제기돼왔다. 이를테면, 특정 후계자로의 권력양도, 중국식 일당독재 또는 멕시코식 패권정당, 그리고 중앙아시아식 종신집권 모델 등으로의 진화가능성을 담은 시나리오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특정 후계자로의 권력양도 모델은 여전히 그 채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푸틴이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고, 현재의 임기를 끝으로 2024년 대선부터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푸틴이 자신의 후계구도를 매우 정교하게 설계한다하더라도 아무 공직도 맡지 않은 채 2024년에 실제로 퇴임한다면, 그는 해당 후계자를 포함해 여전히 체제 내 권력의 일부분을 분점하고 있을지 모를 실로비키와 같은 엘리트분파 등 그 누구로부터도 완벽하게 정치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5) 더욱이, 본 시나리오는 푸틴 이외의 또 다른 핵심 행위자인 현재의 주요 엘리트분파들의 이해에도 크게 부합되지 않는다. 만약 푸틴이 특정 후계자에게로의 권력양도를 기어이 선택한다면, 엘리트들로선 자신이 속한 분파가 후계자로 꼭 선정되어야 하는 불확실성에 직면해야만 하며, 후계자의 결정 이후로도 해당 후계자, 푸틴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정치세력까지 뒤엉킨 매우 불확실한 권력투쟁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게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판단컨대, ‘푸틴 체제’ 내부적으로 특정 후계자로의 권력양도가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한편, 중국의 공산당이나 과거 멕시코의 제도혁명당(PRI)과 같은 강력한 일당이 주도하는 집단지도체제 또한, 비록 지금은 개헌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희박해졌지만, 한때는 ‘푸틴 체제’의 유력한 향후 모델 가운데 하나로 고려됐을 개연성이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당내 엘리트분파들 간 합의에 의한 정부구성이나 순조로운 정권교체 등 통치리더십의 구축 및 승계의 메커니즘이 개인독재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6) 따라서 푸틴의 입장에선, 물론 본인의 권력 중 일부를 스스로 포기해야한다는 전제가 요구되긴 하나, 향후 안정적인 체제의 유지 및 자신의 영구적인 정치적 안전 보장을 위해 본 시나리오를 추진해볼 유인을 일부 가졌을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다른 주요 행위자인 엘리트분파들 역시 계속 정권 내 유력한 지배연합의 일원으로 남을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이들에게도 상당히 유리한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북한의 노동당이나 이라크의 바트당(Baath Party) 사례들에서 보듯 일당체제가 개인독재화하는 경우는 이론적·경험적으로 그 개연성이 꽤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성사되기 힘든 측면 또한 분명 존재한다. 즉, 특정 최고지도자가 권력투쟁을 거쳐 패권정당을 장악해나갈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잘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러시아의 현 통합러시아당은 특정 대통령의 통치기반으로 탄생한 이후 사실상 그의 권력과 지배를 떠받치는 정치적 도구로서의 성격을 매우 강하게 지녀왔던 바, 여전히 중국의 공산당은 물론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이 과거 지녔던 주체성과 인민에 대한 영도력에도 훨씬 못 미치는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7) 결국 러시아에서 이러한 일당 혹은 패권정당 모델로의 진화 시나리오는 현실화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그런 만큼 향후로도 채택될 가능성이 별반 높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앙아시아식 종신집권 모델로의 진화 시나리오는, 분명 푸틴과 엘리트층 두 주요 행위자들의 이해가 가장 잘 일치되는 선택지일 수 있다. 푸틴의 경우, 이미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머무르며 유사권위주의적 통치와 국가주도형 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어떤 정치시스템으로의 진화 경로 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완벽히 보장받긴 어려워졌다. 즉, 푸틴으로선 자신의 종신집권이 정치적 생존을 넘어 생사의 문제에 해당할 수밖에 없게끔 돼버린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권좌를 더 지켜갈 여지가 있는 최고지도자 스스로가 이를 포기한 경험적 전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다른 한편, 현재의 주요 엘리트분파들로서도, 자신의 분파적 이해를 대변해줄 누군가가 후계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불확실성이 높은 권력투쟁을 동반하게 될 푸틴의 퇴장보다는, 차라리 그가 계속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남아 엘리트층의 이해관계를 조정·중재하는 역할을 맡아주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최근의 푸틴 입장에서 볼 때, 종신집권 프로젝트의 가동을 위한 골든타임이 결코 충분하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현재는 서방과의 대치국면 속에서 푸틴에 대한 대중의 지지세가 다시금 꽤 공고해져 있는 상태이나, 경제 상황이 유의한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강력한 새 변수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과연 그가 언제까지 대중적 지지기반을 현재 수준에서나마 유지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봤을 때, 푸틴의 종신집권을 사실상 허용하는 내용의 금번 개헌은 상술한 주요 행위자들의 현상유지를 향한 선호의 합치 및 정치적 타이밍이 함께 고려된 결과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푸틴은 아마 이 개정된 헌법에 의거해, 종신집권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간다는 차원에서, 2024년 대선에도 자신이 직접 출마하려는 계획을 이미 기정사실화해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재 푸틴은 기존의 자신을 중심으로 한 ‘푸틴 체제’의 유지 및 강화 쪽으로 향후 러시아의 정국운영 방향을 사실상 확정했다고 볼 수 있다.

  1. 푸틴 체제 향후 진화 전망 한반도

푸틴이 비록 개헌까지 오는 데는 성공을 거뒀다지만, 그가 향후 종신집권이란 장기적 목표까지 실제 달성해낸다는 건 기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차기 대선까진 아직도 4년이란 꽤 긴 시간이 남아 있고, 이후로도 그가 6년씩 두 번의 임기를 무사히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 결코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듯, 푸틴으로선, 현재와 같이 미국 및 서방과의 갈등국면 조성 및 이에 의해 축적된 자신의 ‘수호자’ 이미지를 일단은 자신과 ‘푸틴 체제’를 떠받치는 정당성의 자원으로 계속 삼을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우파 포퓰리즘 전략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서방측의 경제제재 해제가능성을 축소시키고 러시아 경제의 호전 기회를 제약함으로써, 푸틴의 선택지상에 일종의 딜레마를 불어넣게 될 공산이 크다. 한편으로, 푸틴은 경제발전을 통한 지지율의 제고라는 중장기적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채, 서방과의 군사안보적 대립구도 및 이의 국내정치적 활용을 통한 인기의 유지라는 중단기적 성과에 계속 의존하게 될 소지가 크다. 그리고 어쩌면 오로지 이 부분에만 의존해 무리하게 자신의 종신집권 계획을 밀어붙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 뚜렷한 경제성장의 추세가 대중들에게 체감되지 못함으로써, 푸틴은 오래지 않아 극단적으로 심화된 대중들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푸틴은 집권 4기 출범과 함께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의 선전 및 이에 기반한 경제발전 비전에 대해 계속 강한 의지를 표명해왔다.8) 그리고 이는 상기 위험성에 대한 정권 차원의 위기의식으로부터 비롯된 바 클 것이다. 그럼에도,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층의 지대추구를 제어하고 최첨단 분야들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데 있어, ‘푸틴 체제’가 여전히 어떤 유의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나 2010년대 중반 이후론 대외적·국제정치경제적 환경요인들 또한, 최첨단 지식산업 분야는 물론 구산업부문들에서도 역시, 러시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고양해나가기 힘들게끔 매우 강한 제약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9) 즉, 앞서 언급했듯, 러시아의 중장기적 경제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세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최근 러시아의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대중의 ‘푸틴 체제’에 대한 불만이 예상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이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게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에 유난히 조급증을 보이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렇듯 긴박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 탓이 클 것이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식 종신집권 모델은 역설적으로 중앙아시아와는 상이한 수준의 반체제 야권 세력의 존재로 인해, 러시아에선 그 실현가능성이 담보되기도 애초에 쉽지가 않다. 즉 현재는 다소 미약한 제도적 야권 세력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푸틴 체제’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거세질 시, 시민사회와의 결합을 통해, 이를 흡수하고 확대해나갈 정도의 맹아는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최근 불거진 젊은 야권 지도자 나발니를 향한 정권측의 살해기도 관련 의혹 역시 대중의 반푸틴 전선 확장에 또 다른 강력한 도화선이 될 소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푸틴이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의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까진 비교적 순조로운 행보를 걸어왔으나, 실제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것은, 러시아의 중장기적 경제 전망이 밝지 않고 이에 따라 대중의 지지세 또한 중장기적으로 하락해갈 공산이 크단 점에서, 무척 험난한 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어쩌면, ‘푸틴 체제’의 긴 미래는 펼쳐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한편, 이번 개헌으로 인해 ‘푸틴 체제’가 적어도 한동안은 현재의 형태로 존속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 관련 지역이슈들에 있어서도, 당분간 러시아의 기존 입장들에 큰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러시아는 자국의 극동·시베리아지역 경제발전에 반드시 요구되는 동북아 안보환경의 안정 및 부분적으론 이로부터 도출되는 역내 유관국들의 경협지원 확보를 절실히 원한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와 관련해, 그간 러시아가 북핵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도 북한과의 협력을 계속 유지·강화하도록 유인해온 동시에, 한국과도 외교적·경제적 측면들에서 공히 협력의 모멘텀을 유지하게끔 유도해왔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한국의 입장에선 점차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미중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현 안보 및 무역환경 속에서, 양자 간 선택이 시시각각 강제될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선 그간 북핵에 대한 지렛대 및 최대 무역상대국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온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된바, 오히려 러시아가 이를 보완해줄 새로운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동북아지역보다는 유럽 접경 및 중동에서 미국과 더 전면적으로 갈등해왔고 따라서 이 지역에선 미국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덜 첨예한 탓에, 한국측이 경협을 제공하고 북핵에 대한 지렛대의 역할을 독려하기가 중국에 비해 비교적 더 용이해지는 측면이 분명 있다.10) 그렇다면, 한미일과 북중러 간 동북아판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한국 입장에선 상기한 바처럼 러시아 카드가 더욱 긴요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물론 ‘푸틴 체제’의 중장기적 변화 및 정권교체 가능성에도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겠지만, 당분간 안보 및 경제 영역에서 공히 러시아와의 우호협력 관계를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 본 글의 내용은, 이선우 (2019). “‘푸틴 체제’의 현재와 러시아 정치시스템의 향후 진화 전망,” 『아태연구』 26(2)를 대폭 축약, 수정 및 보완한 것임을 밝힘.

[2] 장세호 (2018).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평가: 푸틴의 압승 원인을 중심으로,” 『슬라브연구』 34(3), pp. 10-15.

[3] Kathrin Hille (2018). “Vladimir Putin Sets Out Ambitious Economic Goals for Fourth Term,” The Financial Times (May 8).

[4] David Szakonyi (2018). “What Another Six Years of Putin Spells for Russia’s Economy,” Geopoliticus (March 12).

[5] The Straits Times (2018). “Russia President Vladimir Putin to Begin Fourth Term, But What Happens in 2024?” (May 7).

[6] Beatriz Magaloni. (2006). Voting for Autocracy: Hegemonic Party Survival and Its Demise in Mexico.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7] Sean Roberts (2012). “United Russia and the Dominant-Party Framework: Understanding the Russian Party of Power in Comparative Perspective,” East European Politics 28(3).

[8] Президент России (2019). “Послание Президента Федеральному Собрание” (февраль 20).

[9] 이선우 (2020). “‘자원의 저주’와 동아시아형 신(新)발전국가의 구축가능성: 러시아 ‘푸틴 체제’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24(1).

[10] Sun-Woo Lee and Hyungjin Cho (2018). “A Subtle Difference between Russia and China’s Stances toward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Strategic Implications for South Korea,”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Area Studies 25(1).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장훈필 연구원

저자소개

2014년 영국 글라스고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7년부터 전북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들은, 비교정치체제, 비교정부제도, 러시아정치, 북한정치 등이다. 최근의 연구 업적으로는, “‘제왕’과 ‘레임덕’: 두 얼굴의 대통령을 읽는 하나의 이론적 시각” <동향과 전망> (2019), “A Subtle Difference between Russia and China’s Stances toward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Strategic Implications for South Korea”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Area Studies 공저> (2018), “민주주의 공고화에 있어 ‘법의 지배’의 우선성: 탈공산 러시아 사례” <한국정치학회보> (2017)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