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0-27
유기은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원)

 

1. 서론

세계 최대 ‘메가 FTA’라 불리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 지난 11월 15일 공식 서명되었다. RCEP은 2012년 협상을 시작해 8년 만에 타결된 것이며,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세안 10개 국가가 최종 서명하였다. 한편,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또 다른 메가 FTA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이후 미국이 TPP에서 탈퇴했으나 바이든의 집권으로 재가입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본 연구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협력 레짐인 메가 FTA의 등장 배경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아시아지역의 두 메가 FTA인 TPP와 RCEP의 내용과 특징, 영향을 분석해본다. 특히 아시아 내 경제협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가 TPP와 RCEP의 고안과 협상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두 체제는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나아가, RCEP에 서명했지만 TPP/CPTPP에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논의한다.

2. 메가 FTA 탄생의 배경과 의의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속도로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특히 무역분야에서의 국가 간 교류가 세계화를 선도하였다. 국가간 무역자유화를 위해 1947년 관세장벽과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이 체결되었고 1994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되며 GATT체제를 이어받았다. GATT는 처음 23개 국가들로 시작하였지만 협상라운드를 반복하며 가입국이 늘어났고 WTO는 162개 회원국을 가진 범세계적 기구가 되었다. GATT/WTO의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국가들은 관세장벽을 낮추고 세계 무역을 활성화시켰지만, 그 규모가 커지며 회원국 간 의견 차이가 심해지게 된다.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 협상은 14년간의 타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5년 성과 없이 끝나게 된다. WTO의 162개 회원국의 요구를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결국 타협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이다.

WTO의 위상이 약화되며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두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이다. 도하 라운드의 실패이전부터도 다자협상의 더딘 진행속도로 인해 국가들은 이러한 양자 FTA 이외에도 소규모 지역 협정들, 분야별 협정들과 같이 국제무역자유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들을 모색했다.1)  1994년에는 47개뿐이었던 양자 FTA가 2015년에 이르러선 무려 262개에 이르렀다.2) 수많은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WTO와 비교할 때 양자 FTA의 협상과정은 매우 효율적이고 신속했으므로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주요 무역대상국과의 양자 FTA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양자 FTA들은 서로 제각각 다른 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된 조항 하에 많은 국가들이 협력하기에는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양자 FTA와 마찬가지로 소규모 지역협정 또한 해당 지역의 특수상황과 경제여건에 한정되는 규칙과 조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세계적인 무역다자협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은 무역 협력의 복잡성을 가중시키고 무역자유화를 위한 공동의 어젠다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3) 분야별 협정은 해당분야의 무역자유화에 유리한 국가들끼리 신속하게 타결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장기적으로는 무역자유화를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4) 예컨대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협정에서는 농업 분야에서 A국이 양보하는 대신 기계 분야에서는 B국이 한 발 물러서는 식으로 전 분야의 무역자유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분야별 협상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들은 자국의 입장에서 유리한 분야에 국한된 무역자유화만을 허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WTO와 양자/소규모/분야별 FTA는 서로 상반된 단점을 가지고 있다. WTO와 같은 범세계적 기구는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당사국들의 요구도 그만큼 다양하여 협상의 비효율이 발생하는 반면, 거미줄처럼 형성된 양자 FTA와 소규모 FTA는 여러 국가들 간의 포괄적 합의를 도출하고 무역자유화라는 다자주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그리하여, 기존 두 레짐의 장단점을 절충한 중간 규모의 무역레짐, TPP와 RCEP와 같은 ‘메가 FTA’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3. TPP/CPTPP와 RCEP의 현재와 미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은 2010년 미국의 주도하에 12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들이 협상을 시작하였다. TPP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정책의 일환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무역권력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미국이 적극적인 참여를 선언하면서 TPP는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2개 국가가 2016년 협정에 서명하였다. 하지만 TPP에 대한 미국의 국내정치적 지지는 약한 편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TPP서명은 강행했지만 끝끝내 임기 내 의회의 비준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그동안 불공정한 무역협정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위협받았다고 비판하면서 TPP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었고, 결국 트럼프 집권 첫날인 2017년 1월 23일 미국은 TPP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의 탈퇴 이후 나머지 11개국만이 남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미국의 탈퇴 이후, 냉각된 분위기였던 CPTPP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트럼프의 자국중심 외교로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정과 CPTPP 등 다자기구에 미국이 다시 가입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5)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일한 바 있고 중국 견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바이든은 인권, 환경, 노동 기준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무역 장벽을 낮추는 포괄적 무역협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의 CPTPP 재가입을 단정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들이 존재한다. 첫째, 바이든 행정부가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정치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TPP에 대한 국내의 의견이 분열되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당인 공화당의 협조를 받아 가까스로 TPP 협상을 추진했지만 정작 그의 당인 민주당은 이에 부정적이었다. 여론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중산층 가운데 상당수는 자유무역으로 경제적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고 있다. 둘째, 바이든은 코로나-19 (COVID-19) 극복과 경제회복 등 시급한 국내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국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무역을 위한 새로운 다자협정에 가입하는 것은 대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자연스레 CPTPP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권 당시 TPP를 설계한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 웬디 커틀러는 “바이든 정부 출범 즉시 CPTPP에 복귀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하며, “바이든은 당분간 국내 문제에 전념할 것이며, 당장 다자 무역 체제 복귀보다는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맞서는 일부터 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6)

한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TPP협상보다 조금 뒤인 2012년 협상을 시작하여 지난달 타결되었다. RCEP은 일본의 주도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아세안+6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로 시작하였으나 인도가 작년 정상회의에서 불참을 선언하면서 15개 회원국이 남았다. RCEP은 TPP에 비해서 무역 자유화 수준이 낮지만, 거대 경제인 중국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RCEP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비교되어 왔기 때문에, 경쟁국인 중국이 RCEP에서 가지는 주도권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TPP 참여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만큼 중국도 이에 대항하는 기구로서 RCEP을 고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RCEP 일본의 주도로 시작되었고 협상과정에서 중국보다는 아세안의 역할이 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RCEP 회원국들은 애초에 아세안이 공고히 해온 지역협력을 아세안+3, 아세안+6로 확장해가자는 의미에서 RCEP을 추진했다고 알려져있다.7) TPP/CPTPP에는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4개국만 참여한 반면, RCEP에는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필리핀까지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참가했다는 점은 RCEP 내에서는 아세안 국가들이 보다 단결된 의견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이 가능했으리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준다.

RCEP의 15개 회원국 간에는 이미 30개가 넘는 양자간 FTA가 발효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 양자 FTA가 체결되지 않은 국가들의 경우에는 RCEP을 통해 양자 FTA를 체결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장 차이로 한-일 FTA가 중단되었고 한-중-일 FTA는 아직 협상 중에 있지만, RCEP으로 한일, 한중일 간 FTA가 체결된 셈이다. 또한 RCEP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양자 FTA에서 누락되거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예를 들어, 2007년 발효되었지만 시장개방의 폭이 제한적이었던 한-아세안 FTA는 이번에 일부 상품시장 개방율을 80%대에서 90%대로 높였다. 자동차·부품, 철강 등 우리나라 핵심 수출품목 뿐만 아니라, 섬유, 기계부품, 의료위생용품 등 유망 품목의 아세안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합의하였고, 우리나라도 열대과일 일부 품목을 추가 개방했다.8) 다만, TPP/CPTPP에 비해 RCEP의 시장개방 정도가 낮은 수준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TPP/CPTPP의 경우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및 정보통신 생산과 서비스에 대한 자유화에서 비롯해 환경, 노동 등의 규범적인 부분까지 총망라한 고도의 협정인 반면에 RCEP은 기존의 양자 FTA를 통합, 보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유화 수준을 높이고 협상범위를 다양한 범위로 확장시키는 것은 RCEP이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 무역 협력체가 되기 위해서 가입국이 앞으로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이다.

4. 한국의 메가FTA 참여

한국은 RCEP에는 가입했지만 TPP/CPTPP에는 가입하지 않았고 협상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은 CPTPP 가입여부에 대해 고민해왔지만, 2018년 한일 무역갈등을 겪으며 (미국의 탈퇴로 사실상 일본이 주도하게 된) CPTPP 가입에 대한 논의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CPTPP 가입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 RCEP 가입을 통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협상의 다자적 통로가 마련되었고, 이를 계기로 CPTPP 가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주지하듯이, RCEP은 CPTPP에 비해 시장개방도가 낮아 다양한 분야에서 무역을 통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CPTPP 가입이 필수적이다. RCEP에 포함되지 않은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등 미주국가들과의 무역활성화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 노동 등 CPTPP가 포함하고 있는 선진화된 국제규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CPTPP 가입 추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CPTPP가 RCEP과 대립하거나 경합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TPP/CPTPP는 미국의 영향력을, RCEP은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기구이며 이 두 경제 대국이 다자기구를 통해 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잘못된 오해이다. 오히려 미국은 TPP 탈퇴 이후 재가입을 주저하고 있으며, RCEP 협상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적었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7개 국가들은 RCEP과 CP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이 CPTPP에 재가입하는 때를 기다려 같이 합류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존재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한국은 미국의 가입과 상관없이 독립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첫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은 현재 CPTPP 가입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미국의 시급한 국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므로 CPTPP 가입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미국이 CPTPP에 재가입할 경우, RCEP과 CPTPP를 통한 미중 경쟁에 대한 국제적, 국내적인 우려가 커질 것이며 그 때 뒤늦게 CPTPP에 가입하는 것은 한국 정부에 더욱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이 CPTPP에 가입하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신속히 가입을 추진하여 우리가 CPTPP를 통한 무역자유화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나아가 향후 RCEP과 CPTPP 체제 하 무역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아시아 지역 두 메가 FTA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1] “Global Trade After the Failure of the Doha Round.” The New York Times, Jan. 1, 2016. https://www.nytimes.com/2016/01/01/opinion/global-trade-after-the-failure-of-the-doha-round.html (접속일: 2020.12.18.)

[2] World Trade Organization, “Regional Trade agreements,”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region_e/region_e.htm (접속일: 2020.12.18.)

[3] Vinod K. Aggarwal, 2016, “Mega-FTAs and the Trade-Security Nexus: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TPP) and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AsiaPacific Issues, No.123, p. 2.

[4] Vinod K. Aggarwal and Ravenhill, J., 2001, “Undermining the WTO: the case against ‘open sectoralism.’” AsiaPacific Issues, No. 50.

[5] Robert Kuttner. “Where Does Joe Biden Really Stand on Trade.” 2020. 10. 7, The American Prospect. https://prospect.org/economy/where-does-joe-biden-really-stand-on-trade/ (접속일: 2020.12.18.)

[6] “한국 CPTPP 참여, 美 복귀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조선일보>, 2020.11.26. (접속일: 2020.12.18.)

[7] Jeffrey D. Wilson, 2015, “Mega-regional Trade Deals in the Asia-Pacific: Choosing Between the TPP and RCEP?”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Vol.45, No.2, p.351.

[8]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879953&call_from=rsslink (접속일: 2020.12.18.)

 

기획: 유기은 박사후 연구원
편집: 장훈필 연구원

저자소개

現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University of Iowa)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국제법과 국제조약, 정책과 조약의 전파, 권위주의 국가의 인권조약 가입과 준수 등이 주요 관심 분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