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1-23
김정섭(세종연구소 부소장)

[기획자 註]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핵무기의 개발은 안보 측면에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가져왔고 냉전이 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북핵문제로 인해 한반도는 핵무기 이슈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곳이다. 한미동맹을 축으로 세력균형이 이루어지는 한반도 안보구조에서 미국의 핵무기 정책의 근간이자 지금까지 네 번 발표되었던(1994, 2002, 2010, 2018)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도 지난 9월에 공식적으로 검토절차에 돌입하였다. 이에 JPI PeaceNet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업데이트될 핵태세검토보고서에 대해 논의하고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1. 바이든 행정부의 핵무기 역할 축소론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에 대해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과 경쟁국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그동안 핵무기 역할의 축소를 강조해 왔던 터라, 그 같은 소신이 실제 공식 정책으로 반영될 것인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에 미국은 “새로운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신뢰성 있는 억제력을 유지하되 핵무기에 대한 의존과 과도한 비용을 줄여나가겠다”고 공언해 왔다. 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에서도 이 같은 원칙을 밝혔는데,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여나가는 조치들을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제시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같은 맥락이며 저위력 핵무기 개발 등 핵전력 현대화를 강조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기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첫 예산안에 국방부와 에너지부의 기존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이 그대로 담겨 있는 점이 시사하듯이, 바이든 행정부가 NPR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 얼마나 차별화된 내용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공언하고 그간 NPR 작성 과정마다 논란이 되어 왔던 ‘핵무기의 역할 축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8 NPR에 의하면 핵무기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 대한 핵 공격과 비핵 공격을 억제하는 것. 둘째,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에게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것. 셋째, 억제가 실패했을 경우 이에 대응하여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넷째,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위험을 관리(hedging)하는 것이다. 따라서 핵무기 역할 축소 여부는 위와 같은 네 개의 기능 중 어느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줄여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살펴볼 수 있다.

 

  1. 핵태세검토보고서(NPR) 작성 과정의 주요 쟁점

1) 단일 목적(sole purpose) 논란

첫 번째 역할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어 온 것이 ‘단일 목적(sole purpose)’논란이다. 현재 핵무기의 ‘최고 우선순위(highest priority)’는 잠재적 적대국의 핵 공격을 억제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핵무기의 최고 우선순위임을 밝히면서도 비핵 위협에 대해서도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단일 목적’옹호론자들은 이 점을 비판하며 핵무기의 용도는 핵 위협 대처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거는 실제 미국 대통령이 적대국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용할 수 없는 정책 옵션을 갖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사용 가능성이 의심받는 정책 수단으로는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단일 목적’을 주장하는 그룹은 기회비용 측면도 강조한다. 핵 교전 상황은 갑작스러운 기습 선제 핵 공격이 아니라 재래식 충돌로부터 비화되는 경로로 초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이 잠재적 적대국에 비해 재래식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래식 전력에서 확전 우위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핵 충돌의 가능성을 낮추는 첩경이 될 수 있는데, 향후 10년간 6,340억 달러에 달하는 핵전략 현대화 프로그램이 재래식 전력 투자 측면에서는 값비싼 기회비용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단일 목적’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미국이 비핵 공격에 대해서도 핵 사용 옵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의 선언정책처럼 비핵 위협에 대해 핵무기의 용도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 상대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나 동맹국이 생화학 무기로 공격받았을 경우 미국이 핵 사용 옵션을 박탈당한 채 재래식 무기로만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비핵 공격에 대한 핵 사용 가능성이라는 모호성을 버리고 핵무기의 용도를 핵 공격에 대한 억제와 대응으로만 한정할 경우 잠재적 적대국이 그 빈틈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sole purpose 논란은 재래식 위협을 억제하는 핵무기의 효과를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비확산 및 핵 안정성 측면과 미국의 정책적 옵션 확보 측면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2)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채택 문제

핵무기의 두 번째 기능인 확장억제와 관련된 문제로는 ‘핵 선제 불사용(NFU: No First Use)’ 원칙을 채택할 것인가가 대표적인 쟁점이다. NFU 원칙이란 핵으로 공격 받았을 경우에만 핵을 사용하고 그 전에는 선제적으로 핵 사용을 않겠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것을 말한다. 핵 보유국 중에 중국이 예외나 조건 없이 엄격한 선제 불사용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이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비핵 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NFU는 사실상 sole purpose 이슈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핵무기의 목적과 사용 시기를 비핵 공격 상황까지 확대해서 인정할 것이라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NFU와 sole purpose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핵무기의 sole purpose가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을 억제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적국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가 식별될 때 미국 대통령은 이를 핵무기로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하여 무력화할 수 있는 옵션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즉, sole purpose 이슈가 핵무기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라는 근본 용도에 관한 것이라면, NFU는‘언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운용적 제약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는 NFU 이슈가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행될 것인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현재의 선언정책처럼 핵무기의 선제 사용 여부에 대해 모호성을 남겨 두어야 한다고 믿는 측에서는 바로 동맹국들의 우려를 강조한다. NFU 원칙을 채택함으로써 미국이 핵무기의 사용 조건을 엄격하게 할 경우 그만큼 핵 사용 문턱이 높아지는 것을 뜻하며, 이는 확장억제의 신뢰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은 NPR 작성 과정에서 매번 NFU 채택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대규모 재래식 공격 시나리오를, 유럽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재래식 위협을 우려하며, 이때 미국의 핵 사용 옵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이란 비전을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결국 sole purpose와 NFU 원칙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같은 동맹 변수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NFU 채택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sole purpose 논란과 마찬가지로 비핵 공격에 대해 미국이 먼저 핵을 사용하는 상황은 실제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1945년 이후 75년 이상 핵 사용을 금기시하는 상황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미국이 이 핵 터부(nuclear taboo)를 깨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핵 무장한 국가를 상대로 먼저 핵을 사용할 경우 핵전쟁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이 같은 선언정책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지적이다. NFU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는 신중하지 않은 핵 사용 또는 의도하지 않은 사고의 가능성을 낮추자는 데 있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결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핵무기에 대해 핵 선제 사용 옵션까지 보장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한 결정으로 연결될 소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핵심 각료와 의회 지도자가 참여하는 보다 강화된 핵무기 사용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핵무기와 경고 시스템의 오작동 위험성도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특히 사이버 교란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핵미사일 발사 등의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어 핵무기와 핵 지휘통제 체제, 그리고 경고 시스템에 대한 이중안전 검토(failsafe review)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의 선제 핵 사용 가능성이 촉발하는 적대국의 핵 사용 압박 가능성도 선제 사용 옵션을 버려야 할 이유로 강조되고 있다. 제 2타격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 핵 보유국의 경우 미국에 의해 선제 핵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신의 핵전력이 무력화되기 전에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위 ‘use it or lose it’딜레마로 인해 현장 지휘관에게 핵 사용 권한을 위임하는 압력으로 작용될 경우 우발적 핵 사용(inadvertent nuclear use) 또는 핵무기 탈취와 같은 핵 안전(nuclear safety)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3) 핵무기의 실전 전력(war-fighting capability)화와 전술핵무기의 필요성

핵무기의 세 번째 역할인 억제 실패 시의 대응 문제도 냉전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오래된 쟁점이다. 핵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재앙이고 그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만약 억제가 실패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해 평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말한다. 핵무기의 억제 효과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전략핵무기를 통한 핵전쟁의 예방 자체를 강조한다. 핵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이기 때문에 무익한 핵 군비경쟁을 막고 우발적인 핵 확전(nuclear escalation)을 방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제 2격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의 확보다. 즉, 선제 핵 공격을 받은 이후에도 잔존 핵전력으로 상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핵 보복을 할 수 있는 능력만 보유한다면 핵전쟁 가능성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존성이 뛰어난 SLBM과 같은 전략핵무기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반면 억제 실패 시의 대응 능력을 강조하는 진영에서는 미국이 실전 전력(war-fighting capability)으로서 유연한 핵 사용 옵션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억제는 실패할 수 있으며, 이때 미국 대통령은 다양하고 유연한 정책 옵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수십만, 수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전략핵 보복이라는 단일 수단만 갖고 있을 경우 ‘자살이냐 항복이냐(suicide or surrender)’와 같은 양자택일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적대국이 이를 악용하여 저강도의 핵 공격을 시도하려는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대에게 이 같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확전 사다리의 매 구간에서 미국이 우위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핵 사용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재강조되기 시작한 저위력 핵무기가 이러한 수단이며, B-61-12 전술핵폭탄, 트라이던트 II SLBM용 W76-2,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용 W80-4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억제 실패를 대비해 군사적 대응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일리가 있으나, 핵무기를 실전 전력화하는 데에는 위험성과 부작용이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 0.3kt의 초저위력 핵탄두의 경우 실전 사용의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핵 사용의 문턱을 그만큼 낮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위력 핵무기가 일단 사용되었을 경우 상대 핵 보유국의 반응이다. 과연 핵 교전이 통제된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결국 전략핵무기 사용 단계까지 에스컬레이션(escalation)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핵무기를 실전 전력화하는 것은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유발하는 부작용도 있다. 전략핵 보복을 통한 공포의 균형과 핵 안정성(nuclear stability)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보다 핵 우위(nuclear superiority)에 서려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상대방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이는 핵무기 현대화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4)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위험 관리(hedging)

미국이 얼마만큼의 핵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논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험 관리 측면에서도 이루어진다. 핵 강대국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이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도 노후화된 핵무기를 교체하고 계속해서 핵전력 현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2030년까지 핵무기 보유량을 4배 늘려 1천 기가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 미 국방부의 최근 보고서는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한다. 또한 기술 변화의 방향과 속도도 관리해야 할 일종의 위험(risk)이다. 만약 예측할 수 없는 신기술이 잠재적 적대국의 손에 먼저 들어갈 경우 현재 미국의 우월적 지위는 일거에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핵전력 현대화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상당하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탄 미사일(ICBM)이다. 신규 ICBM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되어야 한다는 주장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통적 핵 3축(nuclear triad)의 하나인 ICBM의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우발적 핵 교전이지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의 기습 핵 선제공격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선제 핵 무력화의 위험이 적다면 ‘경보 즉시 발사 태세(launch on warning)’도 필요 없고, 최고 경계 상태에 있는 ICBM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생존성이 담보된 수중 발사 SLBM이나 오작동의 위험이 적고 작전적 융통성이 큰 공중기반 핵전력이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핵 억제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핵 군축론자들은 NPR에서 전향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러시아 또는 중국과의 핵 군비통제를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핵탄두 총량을 2,500개로 제한한다든지 전략 핵탄두를 1,000개로 한정하는 핵전력의 상한선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핵무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미국의 핵무기가 중국의 10배에 달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반면, ICBM 철폐나 핵 군축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위험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ICBM이 없는 상태에서 적국이 소수의 군 공항, 항만, 핵 격납고를 기습 무력화할 경우 미국 대통령은 SLBM 보복이라는 수단만을 갖게 되는데, 이때 미국과 상대의 핵무기 격차가 극심하여 SLBM 사용조차 주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말한다. 다시 말해 지상, 해상, 공중에 걸쳐 막강한 핵 능력을 보유한 국가와 핵무기 교전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의 피해가 훨씬 극심할 것이므로 항공기와 잠수함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억제 전략은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즉, 당장은 핵무기 현대화나 대규모 ICBM의 필요성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불확실한 미래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핵무기 프로그램 축소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미래의 위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관건인데, 핵 군축론자들은 군비경쟁의 위험과 우발적 핵 교전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반면에 신중론자들은 핵 군축이 초래할 핵 억제력의 훼손에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한반도에의 함의

미국의 NPR에서 한국과 가장 관련이 주제는 깊은 ‘단일 목적(sole purpose)’또는 ‘핵 선제 불사용(NFU)’ 원칙의 채택 여부다. 미국이 핵무기의 용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동맹국에게 확장억제를 제공할 것인지를 선언정책으로 공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미국이 선언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의 목적이 핵 위협 억제와 대응으로 한정되고, 재래식 위협에 대해 핵 사용 옵션을 배제할 경우 이를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의 후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제 핵 사용 옵션이 북한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좀 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미국이 북한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 꼭 핵무기로 대응해야 할 군사적 당위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 미국이 전술핵을 서유럽에 배치했던 것은 재래식 전력 면에서 바르샤바 군이 나토보다 훨씬 우세했기 때문에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억제, 격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즉, 소련의 재래식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핵 선제 사용 옵션의 유용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는 NFU 원칙이 채택된다고 해도 미국을 상대로 북한이 비핵 공격으로 노려볼 만한 갭(gap)은 논리적으로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래식 도발부터 핵전쟁에 이르기까지 확전 사다리의 모든 구간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NFU가 채택되어도 확장억제 공약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핵으로 응징한다는 핵우산 공약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NFU 이슈에 대해 한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논리적 근거보다는 다분히 심리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한반도에서도 우발적 핵 사용 내지 성급한 핵전쟁의 위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한반도에 핵을 투하하는 상황이 과연 한국에게 바람직한가? 그런 상황을 용인할 만한 군사적 합리성과 절박성이 있는가? 물론 선언정책이 그대로 유사시 핵 사용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 선제 사용 옵션이 열려 있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의 성향, 경보 시스템의 오작동, 북한의 핵 사용 압박 등 여러 변수로 인해 합리적이지 않은 핵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핵 선제 사용 옵션 유지의 이점은 이러한 잠재적 부작용과 비교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미국의 선언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확장억제의 약화를 우려한 동맹국의 반대만이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확장억제의 궁극적 목적인 한반도 핵전쟁의 방지를 위해서는 억제력의 극대화 못지않게 의도하지 않은 핵 사용 위험의 감소와 전략적 안정성에 대해서도 균형감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김인서 연구보조

 

김정섭 박사는 세종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핵전략, 전작권 전환, 국방개혁 등 국방 안보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세종연구소 근무 이전에는 국방부 기조실장으로 퇴직하기 전까지 27년간 국방부 및 청와대 안보실에서 안보전략, 국방개혁, 국방예산 및 조직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대표 저서로 <외교상상력: 지나간 백년과 다가올 미래(2016)>, <낙엽이 지기 전에: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2017)>가 있다. 이외에“The Security Dilemma: Nuclear and Missile Crisis on the Korean Peninsula”,“민군 간의 불평등 대화”, “핵전략의 내재적 딜레마와 북핵 대응전략의 선택”등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