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로베르타 월스테터(Roberta Wohlstetter)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미국 정책 실패의 원인을 첩보의 부재와 정보의 혼란에 있었다고 보았다(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 2004년,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의 리차트 베츠(Richard K. Betts)는, 9.11테러 발생과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존재 입증 실패의 원인을 첩보의 미비에서 찾았다(Foreign Affairs May/June).
첩보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심화된다. 먼저, 탈냉전 이후 대중은 첩보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냉전의 종결은 확실히 첩보 활동의 양을 줄였다.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정보는 첩보 활동을 통해 수집된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쪽이나 탈취하는 쪽 모두 비밀스럽다. 그러나 이제 정보는 첩보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화와 공개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첩보는 오히려 스노든(Snowden) 사태에서 보듯, 내 정보를 대중에게 폭로되지 않게 지키는 것에 더 집중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이제 첩보를 통해 확보해야 할 정보는 훨씬 제한적이고 애매해졌다. 둘째, 정치화(politicization)는 첩보 내용의 분석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첩보 내용은 대부분 불분명하다. 따라서 정치적 신념에 편향되어 분석될 여지가 많다. 첩보의 정치화가 민주주의 파괴와 인권 침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목격된 바 있다. 정치화된 첩보는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총리는 유럽 차원의 ‘첩보국’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지난 1월 7일, 이슬람주의자 두 명이 프랑스 주간지 ‘사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에 난입하여 12명의 직원을 살해하는 테러가 발생한 후에 나온 반응이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Federica Mogherini) EU 외교대표도 테러리즘 방지 차원에서 터키, 북아프리카, 아시아 등과 첩보 교류가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하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각국에 파견된 EU 대표부에 ‘안보담당역(security attache)’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이른바 첩보 정치의 부활이다. 이런 요구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가 첩보의 부재에 일정 부분 원인이 있다는 비난에서 비롯된다. 사건을 일으킨 범인 중 한명인 사이드 쿠아시(Said Kouachi)가 이미 몇 년 전에 예멘을 방문하여 알카에다 소속대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당국이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테러리스트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정보 공유와 강력한 첩보활동이 요청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첩보의 정치화? 첩보 정치의 부활?
유럽연합은 2004년 마드리드 테러, 2005년 런던 테러 등을 계기로 테러 방지 활동의 하나로 첩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EU 공동상황센터(SITCEN)’를 설치한 것을 모태로 2009년 이후부터는 유럽대외관계청(EEAS)에 ‘EU첩보분석센터(EU IntCen)’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정보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IntCen은 자체적인 정보 획득 메카니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로지 소극적인 정보 분석에만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2013년, 비비안 레딩(Viviane Reding) 사법담당집행위원은 2020년까지 해외 첩보 역량을 강화한 첩보국을 둘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