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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와 북한 엘리트: 최근의 탈북을 계기로 By : 한병진(계명대학교 교수) JPI PeaceNet: 2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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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4

 

                                           

공포정치와 북한 엘리트:
최근의 탈북을 계기로

 

 
 


한병진
계명대학교


 


  현재 공포정치의 광풍이 북한을 몰아치고 있다. 김정은의 폭정에 엘리트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노련한 장성택은 어린 김정은에게 왜 그렇게 허망하게 숙청을 당했을까? 도대체 김정은의 권력은 왜  절대적인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주기적·공개적 숙청의 효과
 
  지금까지 주요 연구 및 많은 이들은 숙청은 전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소위 합리적 행위자 모델의 논자들은 차례차례 엘리트를 제거할 경우 엘리트의 집단반발을 가져오기 때문에 독재자의 입장에서 위험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비롯하여 김일성, 스탈린의 숙청을 살펴보면 전격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한 명씩 제거하고 있다. 그리고 숙청은 은밀하지 않고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에서 핵심은 바로 공개성에 있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이라는 잔인한 공개적 의례는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에게 분명히 인식시킨다. 폭력적 권력행사의 공개성은 권력의 소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독재자의 권력정도를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절대적 개인독재에 대한 엘리트의 여론이 공고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주기적 숙청, 공개재판, 공개처형은 엘리트의 반발이 아니라 권력질서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따라서 주기적 숙청의 정치적 결과는 엘리트의 은밀한 모의와 불만토로가 아니라 공개적인 지지와 충성경쟁이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정치적 효과와 함께 심리적 효과 역시 독재자에게 우호적일 공산이 크다. 공개재판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로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를 꼽을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식의 출발점은 인식의 마지막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거짓말과 오리발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개인우상화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이는 분명히 외부적 압력에 기인한 것임을 알지만 관찰자는 관찰대상자의 정치적 태도를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숙청대상자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경우 고문에 의한 자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공포정치의 역효과
 
    공포정치가 엘리트의 두려움을 공고히 하겠지만, 이들의 충성심을 훼손할 가능성도 역시 높아 보인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충성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심리학적으로 추측해 보자.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한 번 공동체관계가 파괴되고 물질적인 이해가 지배적인 상태가 된 이후에는 개인이 다시 공동체적인 신념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한 번 어그러진 연인관계가 좀처럼 복원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공동체적 사회관계는 즉각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아니라 상호신뢰에 기초한 인내와 손해를 전제한다. 강등과 복권의 반복으로 두려움은 강화될 수 있지만, 충성심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충성심의 침식이 당장 김정은 정권을 흔들 수 있다는 기대는 맞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이가 진심으로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충성파가 줄어들지라도 북한 정권은 현재 정치질서에서 한 발짝도 이탈하기 어렵다. 김정은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행위적 의지에 대한 엘리트 사이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조금도 할 수 없는 북한 엘리트가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권력이 독재자의 존엄과 절대성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의 수렴에 달려있다는 점은 공포정치의 또 다른 특징인 사소한 잘못에 대한 처벌의 무자비성을 이해하게 해준다. 다리를 꼬거나 수령의 교시가 있는 동안 졸고있는 행위는 수령의 존엄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 이유는 공개성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불손한 공개적 행위는 다른 관찰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적 실수에서 비롯된 사소한 불손 행위가 광범위하게 용인될 경우, 이는 수령의 존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라는 다수의 기대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위협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졸음이라는 인간적인 실수마저도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이는 마약범죄를 억지하기 위해 단순 운반에도 무거운 처벌을 부가하는 사법당국의 조치와 유사하다.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
 
  김정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엘리트가 주체적으로 공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 다수의 행동의지에 대한 다수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엘리트의 최선의 선택은 묵종이다. 그리고 다수의 묵종은 관찰자의 기대를 더욱 강화한다. 새로운 기대와 확신이 생기는 대신 김정은 개인독재는 공고해 진다. 따라서 김정은의 개인독재권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는 계속해서 정치적 자율성이 전무한 가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많은 독재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엘리트와 마찬가지로 북한 엘리트 역시 지극히 피동적이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서는 엘리트의 회의적 태도를 가정하고 있다. 현실주의적 사고에 따라 독재자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이에 대해 미리 대비하려는 엘리트의 적극적인 태도는 현재 북한 엘리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의 독재정치에서 드러난 엘리트의 모습은 언젠가 사냥당할 운명이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는 가축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들은 유죄추정의 원칙 대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듯하다. 사회적 현실은 많은 경우 애매모호하다.  야구 등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개인독재정권에서 엘리트는 독재자의 불확실한 의도를 유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독재정권의 엘리트는 애매모호한 사회적 현실에서 독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를 쉽게 찾고 그 가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탈북이 아직까지 다수의 연쇄반응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공포정치에 직면한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는 대안의 부재이다. 충성과 반대 대신 탈출의 대안이 존재한다면 엘리트는 공포정치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북한이 가진 것은 국가 밖에 없다. 북한 엘리트들은 국가 조직의 일부를 떼어 내어 도망갈 수 없으며, 국가에 머무를 때만 자신의 특권과 지위가 발생한다. 소련 공산당 엘리트처럼 천연자원 등 국부를 훔쳐 도망 갈 수도, 중국 엘리트처럼 시장에서 부를 축적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공포정치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령과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의견으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6.4.14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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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現 계명대학교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 전공 부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후, 2004년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에서 옐친과 푸틴시기 러시아의 개혁정치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최근 정치경제학,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등에 의거하여 독재정치이론과 북한 정치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임.
Tag 공포정치,북한엘리트, 탈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