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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외교의 과제 By : 허태회(선문대학교 교수/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JPI PeaceNet: 2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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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4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외교의 과제

 

 
 


허태회
선문대학교 교수/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남북관계의 변화양상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독립 이후 한국사회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탄압의 어두운 시기를 거치면서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보기 드문 성공의 역사를 쓰면서 한국은 세계사에서 발전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반쪽인 북한의 낙후된 경제와 군사모험주의로 인하여 남·북은 지난 70년 간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적대적 대치 상태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 동서냉전이 시작하였을 때 냉전의 첨병 역할을 하던 양측은 전면전을 불사하면서 한반도에서 정통성 시비와 투쟁의 시기를 거쳤다. 이후 1960년대에는 직접적인 남북대화 없이 반목과 대립이 심화되는 갈등의 시기를 거쳤으며, 70년대 초반 국제적인 데탕트 조류에 편승하여 잠시나마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였다. 1980년대에 신냉전이 도래하면서 양측은 다시 갈등과 반목의 시기를 겪게 되었지만 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에 떠밀려 본격적인 대화와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같은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냉전 해체를 위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채,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진보정권의 등장으로 1,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문제로 남북관계는 다시 진통을 겪고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분단 70년과 한반도 외교의 과제
 

  남북관계의 변천과정 70년을 기록해 보면서 느낀 소회 중의 하나는 한반도 분단사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우리 한국학자들의 시선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도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분단을 겪은 많은 국가들도 우리보다 더 외압적이고 거친 국제정치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해외 세미나에서 외국학자들이 종종 지적하듯이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된 현실을 우리는 스스로 외부적 요인에 주목하면서 자기합리화식의 해석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싶다.
 

  분단 7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역사이다. 이 긴 과정을 큰 역사적 틀에서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통찰력이 있는 통일비전을 형성하려면 이제 우리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자기성찰적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역사적 맥락에서 함께 뒤돌아보고 남·북 간에 전개되어 온 상호작용을 한반도 외교의 시각에서 기술하면서 남북관계 변천이 주는 성찰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주변 강대국들의 관심대상이었으며 핵심이익이 걸린 지역이었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인들에게 “용의 머리를 내려치는 망치(a hammer ready to strike at the dragon's head)”라는 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a dagger pointed at the heart of Japan)”라고 인식되었다. 주변국의 이런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 한반도에게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표현은 그들에게 한반도가 중요한 전략지역으로 인식된 것이 틀림없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마저 한반도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제어하는 데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이 되자 한국전쟁이라는 대규모 전쟁을 불사하였다. 지금은 러시아로 위축되었지만 공산주의 진영을 이끌던 구소련 또한 자국의 동북지역 안보와 공산세력의 확산을 위해 한반도 북쪽에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한반도의 지전략적인 상황(geo-strategic conditions)에서 한반도를 양분한 한국과 북한이 강대국들의 개입을 극복하면서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통합으로 나가는 것이 그처럼 어려웠을까? 해방 이후 남북관계의 70년 변천과정은 한반도 정치상황과 주변환경에 남과 북이 나름대로 반응하면서 겪었던 갈등의 역사이자, 지난한 적응의 과정이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한반도 안정을 위해 상호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 대북강경책의 효용성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론 대북포용정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 1공화국에서부터 제3, 제5공화국에 이어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강경정책의 배경이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기대한 것만큼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그 후 진보정권 10년 동안 추진된 대북포용정책들은 그 나름대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외교적 경륜과 전략적 사고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했지만 최근의 한반도가 처한 지전략적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들의 탁월한 외교적 감각과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한국이 처한 군사안보적 상황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미묘한 외교문제를 타결해나갈 수 있는 전략적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독의 통일외교 공간을 확장시킨 동방정책의 빌리 브란트 그리고, 저렴한 봉쇄정책(Containment in Cheap)의 구상으로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관계 구축에 성공했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전략가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결정의 타이밍 또한 남북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남과 북 모두 주변환경의 변화에 나름대로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하였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후회한 순간이 많았다. 특히 한반도 주변환경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유리하거나 우호적일 때는 남과 북이 머뭇거림이 없이 속도를 내거나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남과 북이 상호 인정과 수용의 단계를 넘어 제도화하는 데까지 나갔더라면 2000년대의 남북관계는 더 높은 차원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 남과 북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나 북한의 카운터 파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정세의 변화나 상대방 입장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 없이 행동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역시 집권 초기, 새로 강화된 한·미 동맹관계를 이용하여 남북관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으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를 실기하였다.

  남북관계의 발전에 대하여 남과 북의 리더쉽이 구상해낸 정책내용 이상으로 정책의지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역대 한국 정부는 각자 다양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북한의 3대 리더쉽 체제도 남북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책내용이 미흡해서라기보다 타이밍을 놓쳐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남북관계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단순한 남과 북의 양자관계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는 남과 북의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환경과 한미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최근에는 북핵문제까지 가세하여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여하히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여 각국의 발목을 잡고 한반도 긴장 고조 및 동북아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2015년 8월 말,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달한 ‘준전시’의 상태에서 남과 북이 전격적으로 합의를 하고 군사긴장을 완화시켰던 협상 타결의 과정을 보면 그동안 남과 북이 교류하고 협상했던 지난 분단 70여년의 과정이 그다지 헛된 것은 아닌 것 같다. 70여 년의 남북관계 역사는 협상하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협상하면서 서로를 겪게 된 지난한 갈등과 적응의 과정이었다. 당시 남북 고위급회담의 합의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남북관계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고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2016년 새해 벽두에 터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인하여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고,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말에 어렵게 타협된 남북합의를 기초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고 한 현 정부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의 대북제재조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경하기 때문에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해결에 돌파구가 열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사가 웅변하듯이 이러한 사건들이 남·북 간에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며 최고조의 남·북 긴장상황에서 극적인 타결을 시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과 북은 그동안 많은 분쟁과 갈등을 겪었지만 분단 70여 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적응해 왔다. 이번의 상황 역시 어려운 과정을 겪겠지만 지금까지 그러해 왔듯이 남과 북이 나름대로 어렵고 험난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남북관계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도 많고, 건너야 할 강도 많다. 남북분단 70여 년간 서로가 상대방에게 갖고 있었던 불신의 벽이 높고, 갈등의 골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분단 70년의 과정을 자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다. 남과 북 양측이 외부적 요인보다 자율적인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의견으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6.5.4 게재 

* 홈페이지 오류 문의: webmaster@jpi.or.kr
 

 

저자 現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 워싱턴 주립대 정치학 석사, 덴버대학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함.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국가정보원 전문위원을 역임함. 이후 선문대 입학홍보처장과 대외협력처장, 중앙도서관장, 국제평화대학 학장 및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등을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미국 외교정책과 동아시아 정치 및 통일문제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전략정보의 실패와 정보 분석", "정보환경의 변화와 국가정보의 개혁"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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