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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한국의 창조외교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 By : 고상두 (연세대학교 교수) JPI PeaceNet: 20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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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8



러시아는 한국의 창조외교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




고상두
연세대학교





  러시아는 항상 강대국 외교를 추구한다. 러시아의 영토는 미국과 중국을 거의 합친 크기이다. 광대한 영토에 자연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세계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석유와 가스의 글로벌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약 4,500개의 핵탄두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러시아 정부와 국민은 러시아가 강대국 외교를 취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국제무대에서 러시아를 무시한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NATO는 동유럽 확대를 거듭하여 러시아 국경까지 밀고 들어갔다. 유럽의 전쟁사를 보면 러시아는 영토와 인구 면에서 가장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늘 서유럽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하였다. 특히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은 러시아인들에게 전쟁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러시아인들은 '강해야 생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체득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싫든 좋든 운명적으로 러시아는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안보인식을 갖게 되었고, 강대국 외교를 통해 국제질서의 형성에 늘 능동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로 유럽지역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러시아가 아태지역에서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각이다. 그리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동진하는 러시아의 강대국 의지와 역량을 외교적으로 활용할 방안은 무엇인가?

  러시아 외교의 최우선 목표는 다극적 국제질서의 형성이다. 러시아는 국제문제의 다자적 해결에 관심이 많고, 특히 자신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외교적 관여를 통해 역할을 증대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과 러시아가 정책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은 다자협력체의 형성이다.

  외교 전략에는 경쟁외교와 창조외교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경쟁외교가 이미 형성된 게임규칙 하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창조외교는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즉 창조외교란 새로운 이익의 창출을 가능케 해주는 규범형성의 외교이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레짐이나 국제기구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창조적 외교에 소홀하였고, 주어진 게임규칙에 충실히 따르며 상대적 이익획득을 위한 외교경쟁에 힘을 쏟았다.

  물론 외교사에 남는 역사적인 국제다자회의는 대부분 강대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하지만 헬싱키프로세스, 교토협약, 반둥회의 등과 같이 중견국도 국제규범을 창출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많은 다자대화 메커니즘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국제레짐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기구로 격상시키는 제도화 수순에 밟는 데는 미흡함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자적 협력환경이 필요한데, 동북아 지역 다자화에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극적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핵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종래의 방식으로 북한 핵을 막는 것이 어렵게 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창의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지역 차원의 다자적 해결방안이다. 최근 북한 핵에 대한 양자적 수준의 대응이 오히려 한중 및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주변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이 역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동북아지역에는 양자적 경쟁관계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주변국들이 서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북핵 해결을 위한 조치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 핵실험을 항상 비판하여 왔으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지지하였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로 한국과의 접경협력이 가능하게 되면, 철도, 가스관, 송전선 연결 등 그동안 양국정상 간의 합의에만 그쳤던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연결망 사업이 줄줄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의 최대 수혜국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핵개발 포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급작스런 붕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북제재의 효과성은 제재의 강도, 지속성 그리고 국제사회의 동참이라는 3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금년 6월에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는 지난 20년 동안 유엔안보리가 통과시킨 모든 종류의 제재안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최근 추가 핵실험 이후 더욱 강화된 제재안이 논의되고 있다. 둘째, 과거 대북제재는 제대로 실행되기도 전에 제재와 함께 대화 및 협상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국내외 목소리에 의해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늘 유야무야되었다. 셋째, 그동안 대북 결의안의 실행은 개별 국가의 자발적 이행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 결과 유엔 전체 회원국 중에서 평균 39개국이 대북제재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왔다.

  그런데 대북제재를 실행하는 데에는 서방국가들도 중요하지만, 북한으로부터 값싼 무기와 광물자원을 수입하고, 대형 우상화 작품을 구매하는 제3세계 국가들이 다수 참여해야 북한의 통치자금줄과 북한 선박의 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3세계 국가와 친밀한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은 유엔 결의안의 이행여부를 강력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동북아 지역협력체의 형성에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국제수준별로 세분화할 경우, 지역수준의 압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는 주변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태도 또한 주변국의 시각과 입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북아의 평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유용성이 커지고 있다. 이 구상은 우리의 오랜 세일즈를 통해 한국외교의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따라서 이제 국제레짐으로 구현될 수 있는 성숙한 시점이 되었다. 다만 최근의 사태발전에 대응하여 그동안 연성안보에 초점을 맞추었던 접근법에서 경성안보로의 의제전환은 필요하다. 그리하여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이행을 점검하는 실천적 지역협력체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방안을 도출하려는 안보대화의 형태에 불과하였다면, 동북아평화협력체는 구속력을 갖춘 지역레짐으로서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유엔안보리에서 합의한 결의안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6자회담 보다 훨씬 신속하고 실천력이 있는 다자협력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반도비핵화 지역레짐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자협력에 가장 관심이 많고, 6자회담의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 의장을 맡고 있는 러시아와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한러 간에 약속한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실질적으로 가동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6.10.1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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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現 연세대학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 한국슬라브학회 회장, 연세-SERI EU CENTRE 소장, 유럽정치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
Tag 러시아, 외교, 전략적 동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