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ENGLISH
- 정기간행물 - JPI PeaceNet
JPI PeaceNet
한국의 아세안 가입을 제안하며 By : 신윤환 (한국동남아학회) JPI PeaceNet: 2017-37
PRINT : SCRAP: : FILE : (다운로드 : 호) (조회 : 3420)

2017. 7. 21



한국의 아세안 가입을 제안하며




신윤환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서강대학교 교수





  과연 한국과 아세안은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의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한국과 아세안은 최근 30년 동안 몇 단계를 거치며 그 관계를 급속히 발전, 심화시켜 왔습니다. 1989년 11월 부문별 대화관계 수립은 한-아세안 관계 제도화의 시발점이 됩니다. 한국의 정치가 민주화됨에 따라 해외투자가 활발해지고, 그 시기 해외투자는 대체로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집중되어 동남아를 향하였습니다. 1997년은 한-아세안 관계에 큰 획을 그은 한 해였습니다. 아세안과 한, 중, 일이 동아시아로 확대된 지역 협력과 통합을 추구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세안+3과 더불어 한국과 아세안 간에 정상들이 직접 소통하는 아세안+1(한국) 프로세스도 시동되어, 양자관계를 가속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은 한-아세안 관계를 제가 2009년 제1차 특별정상회의(Korea-ASEAN Commemorative Summit)에 붙인 슬로건처럼 “실질적 동반자, 영원한 친구 관계(Partnership for Real, Friendship for Good)”로 만드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실질적,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한국과 아세안은 현재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불리는 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아세안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은 경제인, 전문가, 정부 모두가 공히 인식하고 있는 바이지만, 한국 외교와 대외정책은 기존의 프레임과 사고 속에 갇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아세안과는 경제 분야의 협력을 넘어서는 함께 할 일이 없고, 다른 "문명권(civilization)"에 속하는 동남아와는 하나의 "공동체(regional community)"를 건설할 수 없으며, 미국과 유일하게 맺고 있는 군사안보적 성격의 동맹관계(alliance)야말로 한국 생존을 위한 "종결자"라는 믿음이 한국인들을 낡은 안보와 대외정책 프레임이 가둬 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정부는 남북회담, 4강 외교, 6자회담, 미국의 개입, 중국의 대북한 압력까지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남북관계는 호전은 고사하고 핵전쟁의 위험이 가중되면서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체제 구축은 우리 민족이 꼭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 “동북아”(Northeast Asia)라는 작은 연습장 종이 위에다 같은 문제를 수십 년 동안 풀다 보니 정답은 구하지 못하고 종이 여백만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대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아세안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이 시점에서 한-아세안 경제협력 심화를 구조적으로 설명한 "상보성(complementarity)" 개념을 비경제적인 상황에 활용해 보고 싶습니다. 한국과 아세안 간에는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와 정치안보 분야의 협력에도 높은 상호보완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아세안은 강대국으로부터 식민통치를 함께 경험하고, 동서냉전의 실질적 최대피해자로서 동병상련하는 관계이며, 동아시아의 지정학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한 불신의 감정과 위협을 느끼는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압력으로 참여했던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이유 있는 예외로 한다면, 한국과 동남아는 무력 충돌을 벌인 적도 없고,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을 거리도 없습니다.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가 가로막고 있어 영토분쟁도, 직접적인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한국과 동남아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한 번도 심각한 갈등을 겪거나 긴장 관계에 놓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군사안보적 협력의 전망을 밝혀 줍니다.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 군신관계, 후원수혜체계, 형제관계와 같은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선린 관계에 바탕을 둔 "영원한 우정(friendship for good)"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국과 아세안은 정치, 군사안보, 국제관계와 같은 민감한 분야에서 좀 더 긴밀하고 좀 더 제도화된 형태의 협력이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계가 줄 이점은 너무나 많아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1+1=2 또는 10+1=11이라는 산술적 합 이상의 영향력과 교섭력의 증가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상보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새로운 관계의 정립은 아세안보다 한국 쪽에 훨씬 더 큰 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4강 사이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 아세안과 10개국의 회원국을 조력자로 얻게 되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에서 세력균형까지는 도모하지 못할지라도 무시 못 할 한 축으로 떠오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아세안 협력체는 중국, 일본과 더불어 '세발달린 솥(鼎)' 모양의 안정적인 국가체제를 형성하여 동아시아의 지역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 자유, 중립, 비핵화를 지향하는 아세안의 창설 원칙이 한-아세안 관계에도 관철될 수 있다면, 남북분단과 북핵문제는 해결의 단초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한-아세안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제도화하는 데는 실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장애물들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아세안 양측 모두가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지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동남아와 동북아라는 지리적 구분,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동북아중심주의, 반세기동안 확립된 동남아적 정체성 등은 서로에 대한 동질시를 어렵게 할 것입니다. 낡은 프레임에 젖어 있는 한국의 지도자, 정책결정자, 지식인들이 한미동맹, 강대국보장론, 균형자론과 같은 전통적 안보관을 깨고 새로운 미래전략과 생존방식을 수용하는 데는 획기적인 전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설사 한국인들이 아세안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고 아세안 연대에 합의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아세안과 동남아인들을 설득할 것인지가 매우 어려운 과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미국과의 군사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평화와 중립을 추구하는 아세안에게 받아들여지는 데는 힘든 선결조건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연구되어야 할 과제는 한-아세안 간에 새롭게 추진될 협력관계의 수준과 형태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의 수준, 즉 경제협력이 중심이 된 전략적 동반자관계보다 상위 수준의 협력을 목표로 한다면, ‘업그레이드된 또는 특수한 형태의 동반자관계’, 동맹과 버금가는 수준의, 예를 들면 "실행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나 "평화연맹(peace league)"과 같은 ‘특별한 관계’, ‘아세안 가입’ 중에 한 가지가 될 것입니다. 특수한 형태의 동반자관계는 국제정치적 쟁점과 군사안보 영역까지 포함한 말 그대로 포괄적인 영역에서 동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고, 더 높은 수준으로 평화, 자유, 중립, 비핵화의 원칙과 아세안헌장을 수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선린 평화동맹을 독창적으로 고안해 낼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같은 난제들을 일거에 해결하는 데는 ‘아세안 가입’까지 고려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들만이 아세안에 가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되고 낡은 관념입니다. 동남아란 지역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아세안이란 인위적인 조직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회원의 자격을 재규정할 수 있습니다. 아세안 가입을 진지하게 논의해 볼 때가 왔습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31일 진행된 제12회 제주포럼 아세안저널리스트 라운드테이블 기조연설문의 발췌문입니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7.7.19 게재
* 홈페이지 오류 문의: webmaster@jpi.or.kr



저자 現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연구소 소장.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정치학 석사과정을 이수. 예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으며, 1989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재벌형성과 국가-자본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 1990년부터 지금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비교정치론, 동남아정치론, 정치인류학 등을 가르치고 있음. 2001년부터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으로 재임하면서 동아시아연구의 외연을 동남아시아로 확대하는 데 앞장섰으며, 2008년에는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10명의 동남아 전공 학자들과 함께 “열린 체계로서 동남아: 지역연구의 대중적 확산과 세계적 소통”을 대주제로 10년간의 공동연구를 수행 중.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가 발간하는 TRaNS: Trans-Regional and -National Studies of Southeast Asia(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의 공동편집위원장.
Tag 아세안 가입, 한-아세안 경제협력, ASEAN+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