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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북한: 편의적 협력관계는 끝날 것인가? By :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 와이 모 JPI PeaceNet: 2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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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9



미얀마와 북한: 편의적 협력관계는 끝날 것인가?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제주평화연구원)
와이 모 (The New York Times)





  북한과 미얀마1)의 관계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특히 골치거리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조셉 윤(Joseph Yun) 대사는 7월에 미얀마를 방문하여 미얀마 정부에 평양과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5월과 8월에 방문한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도 평양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에게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군사 협력

  2000년대에 걸쳐, 스커드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미사일 공장뿐만 아니라 미얀마 군부(Tatmadaw) 의 몇몇 군수 공장이 자리 잡고 있는 이라와디(Irrawaddy) 강둑을 따라 미얀마 중심지에서 북한의 군사기술자들을 목격했다는 보고들이 있었다.2) 민흘라(Min Hla) 지역 주민들은, 군부가 그 곳에서 새 공장을 짓는 기간 동안, 가장 최근에는 공장의 완공을 앞둔 2013년말과 2014년초에, 북한 사람들을 보았다고 했다. 북한 사람들의 조심성은 유명해서, 지역 내 주요 상점 주인에 따르면 "북한 사람들은 물건을 사러 일요일에 상점에 올 뿐, 대개는 군 부대 내에서 머물고 시내로 나오지 않았다.3)"

  북한 사람들은 한국전 당시 모든 귀중품을 지하에 보관하는 방법을 터득한 세계 최고의 터널 전문가로서, 미얀마가 네피도(Naypidaw) 지하에 방대한 터널 망을 설계하고 주요 기반시설들을 연결하는 것을 지원해온 것으로 보인다. 4) 네피도는 미얀마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든 수도로서 2006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하 연결성이 도시의 군사적 방어전략에 기여할 것으로 추측된다. 연결된 군사 시설들이 도심에 보다 가까운 민간 빌딩들 주위를 반지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상징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유용한 설계이다.5)

  미얀마 핵심 지역들에서의 대규모 터널공사 협력과 망명자 커뮤니티의 주장들로 인해, 초기 단계의 핵 프로그램에서도 북한이 미얀마를 지원해 왔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한편,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얀마는 불투명한 정책결정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어, 어느 정도의 추측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북한과는 달리 미얀마는 전통적으로 정치적 소문이 외부로 새어 나왔다. 예를 들면, '버마의 민주적 목소리(the Democratic Voice of Burma)' 가 수집한 충분한 정보로 만들어진 2010년의 한 보고서는 다음의 결론을 내렸다:


버마는 이전 자료들이 보고한 대로 핵 프로그램의 많은 단계들을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분자레이저 동위원소 분리 프로젝트, 비전문적 공학 도면과 사진 속 물건들의 조잡한 외관 등이 보여주는 비현실적 시도들은, 버마의 성공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말해준다.6)


  동일한 보고서는, "소문에 들리는 활동은…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7)" 핵 프로그램에 관한 북한과의 공동 작업의 증거는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마치 미얀마가 핵을 탐구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미온적인 것일 뿐이라는 식이다.

변화와 연속성

  2009년에, 미얀마 서열 3위 장군이 쉐 만(Shwe Mann)이 2008년 11월에 북한을 방문하고 미사일 시설들을 둘러 보았다는 정보가 새어 나왔다. 무기 및 레이더 공장과 미사일 발사 부지를 방문하고, 쉐 만과 김격식이 군사적 유대관계를 확대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포함한 많은 구체적인 정보들이 담긴 중대한 누출이었다.8)

  북한은 이 사건 및 방문자들의 조심성 부족으로 인해, 양국 관계에 대한 규칙을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대표단은 방문기간 중에 군수공장과 다른 민감한 장소에서의 사진 촬영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 후로 방문자들은 북한에서 본 것을 기억했다가 그려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9)

  이 와중에, 상급자인 탄 쉐(Than Shwe) 장군이 쉐 만을 내치고 떼인 세인(Thein Sein) 장군을 부분적인 후계자로 선택하였는데, 소문에 따르면, 이는 미얀마와 북한의 관계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쉐 만은 관계가 너무 가깝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떼인 사인은 미국과 세계와의 화해모드로 국가를 이끌었으며, 그의 정당이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의 민주민족동맹(NLD)에 의해 2015년에 완패하자 기품있게 정권을 양도했다.

  이 기간에 걸쳐, 미국의 모든 관료들은 미얀마의 대화상대자들에게 북한- 미얀마 관계의 청산을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미 재무부는 심지어 그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민주민족동맹이 선거에 승리한 다음날 김석철 북한대사를 특별지정 제재대상(SDN)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김석철은 곧바로 미얀마를 떠났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얀마 관료들은 이 관계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2016년 12월 미얀마, 미국, 영국의 비 핵확산 회의 기간 중에, 한 관료는 2000년대의 밀접했던 군사적 관계가 "정략 결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친구가 많지 않다. 그들은 쌀이 필요했고 우리는 무기가 필요했다. 지금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하지만, 두 나라에 대한 일부 관측자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민감한 정보는 양국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대부분의 미얀마 관료, 심지어 군부 관료조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아직도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고 보고, 미국의 특사와 외교관들은 여전히 미얀마에 군사물자 수입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더군다나 수많은 미얀마 사업가와 회사들이 민주적 전환기에도 양국간 자금 및 군사물자 이전을 맡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산의 상당부분을 군부와의 연관으로 마련한 사업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미얀마 군부의 신세를 지고 있다. 예전에 제재를 받은 거물 따이 자(Tay Za)는 특히, 미얀마에서는 어떤 사업가도 국가가 북한이나 다른 누구에게 자금 이전 협조를 요청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따이 자는 군 간부 학교인 국군사관학교(the Defense Service Academy)를 중퇴하고, 이후 티크 목재사업의 엄청난 특권을 통해 부를 쌓았다. 그는 무기상을 찾아 미얀마 군의 현대화를 지원하고, 러시아로부터 미그29기와 공중방어 시스템을 구입하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이 자는 2014년에 정밀 조사를 받았는데, 떼인 사인의 대통령 집권 시기 및 그 이전에 북한 회사에 320만불을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돈을 단지 중국에 있는 한 은행에 이전했으며, 북한과의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10))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말을 더 잘 듣는 다른 무역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 북한과의 무역에 연관되어 있다고 전해진 한 회사는 UMG그룹이다. 회사의 공식홈페이지에 따르면, 회사는 유통, 교육, 식료품, 금융서비스, 오락, 건강, 부동산 & 기반시설 개발, IT & 통신 분야를 취급한다.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사고 팔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회장은 아웅산 수지가 네피도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살았던 집을 소유했다.

  미얀마는 확실히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북한의 민감한 부분을 존중한다. 예를 들어, 2010년에는 김석철 대사와 그의 직원들은 어느 버마 작가가 쓴 김정일 전기를 서점에서 압류하는데 관여했다. 또한 북한 외교관들은 '인터뷰'라는 영화의 복사판을 없애기 위해 지방 경찰과 함께 양곤(Yangon) 시내의 DVD 판매상들을 단속하기도 했다.

  군사적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협력이 지속되고 있는가는 미얀마 군부에 달려 있지만, 이는 여전히 민간 정부의 통제 밖에 존재한다. 네피도와 양곤의 관계는 좋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언젠가는 미얀마 군부가 북한 인민군과의 관계를 청산하도록 파고들 것이라는 걱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예컨대 네피도는 미국의 압력을 받고, 고려광업개발무역회사와 연루되어 있고 재무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인물인 김철남에게 6월에 미얀마를 떠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부 정책 결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워싱턴이 이러한 목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달성했는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양국 군부 사이에 협력이 감소되었다면 얼마나 감소되었는지, 미얀마의 전환과정이 시작되기 전에는 협력이 얼만큼 실질적이었는지, 파악하기 조차 어렵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해제하는데 걸린 긴 과정을 보면, 중대한 제재 압력을 네피도에 다시 적용할 것 같지는 않다. 샨(Shan)과 카친 (Kachin)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라카인(Rakhine) 지역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지속되는 한, 워싱턴은 군사적 협력을 많이 제공할 수 없다. 평양과의 “정략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대체로 미얀마 군부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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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urma” was renamed “Myanmar” in 1989; “Rangoon” was renamed “Yangon.”
2) Bertil Lintner, Myanmar, North Korea in missile nexus, Asia Times Online, March 2, 2011. http://www.atimes.com/atimes/Southeast_Asia/MC02Ae01.html.
3) Author interview in Min Hla, April 2016.
4) Bertil Lintner, Tunnels, Guns and Kimchi: North Korea’s Quest for Dollars – Part I North Korea digs tunnels for Burma’s brutal, secretive regime, YaleGlobal, June 9, 2009. http://yaleglobal.yale.edu/content/NK-quest-for-dollars-part1.
5) Dulyapak Preecharushh, "Myanmar's New Capital City of Naypyidaw" in Engineering Earth: The Impacts of Megaengineering Projects, ed. By Stanley D. Brunn (New York: Springer, 2011), 1029.
6) Ali Fowle and Robert E. Kelley, Nuclear Related Activities in Burma, DVB Report, May, (2010): 33.
7) Ibid. 27.
8) "Burma, North Korea Said To Expand Military Ties", Radio Free Asia, February 2, 2009. http://www.rfa.org/english/news/myanmar/nkorea-07012009231914.html.
9) Author interviews with senior officials in Naypyidaw, 2017.
10) Author interviews with Tay Za, July 2014.

  * 이 글은 필자가 38NORTH에 기고한 "Myanmar-DPRK’s “Marriage of Convenience”–Headed for Divorce?" (2017.8.25) 중 필요부분을 발췌, 수정, 전재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7.9.15 게재
* 홈페이지 오류 문의: webmaster@jpi.or.kr



저자 -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Andray Abrahamian)은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다. 울산대에서 강의를 했고, 북한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과 경제 정책을 교육하는 비영리회사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의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집필 중인 북한과 미얀마를 비교한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 와이 모(Wai Moe)는 뉴욕타임즈의 미얀마 문제 리포터이자, 자유기고가이다. 2012년 타임즈에 합류하기 전에는 이라와디 잡지(the Irrawaddy magazine)에서 일을 했다. 1990년대에 5년간 양심수로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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