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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패권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By :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JPI PeaceNet: 20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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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1. 들어가는 글


관세에서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이 기술표준, 지적재산권 등으로 확장되면서 본격적인 패권전쟁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근대 국제정치 역사에서 등장했던 패권국은 예외 없이 쇠락의 길을 갔고 그 자리는 새로운 패권국이 승계했다. 21세기 국제정치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미중관계 역시 이런 역사적 변화의 시기를 겪을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과정은 과연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중국 주변의 상당수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동맹국(한국, 일본, 필리핀, 태국) 혹은 파트너 국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라는 점에서 미중관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동아시아의 평화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미중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분석이 정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적어도 경제력과 군사력 측면에서 미중 간 격차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경제력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국민총생산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2018년 기준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각각 20.5조 달러, 13.6조 달러인데,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각각 현재 수준인 연 2%와 6%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2030년이면 국내총생산 규모가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난 9월 17일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와 재정부, 그리고 세계은행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원배분 등의 개혁이 미진할 경우 중국의 2031~2040년 실질 성장률이 연평균 1.7%로 추락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에 따라 그 시기는 좀 더 늦춰질 수도 있다.1)


한편, 군사력 측면에서는 국방비, 첨단기술, 군사동맹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미국의 우위가 예상된다. 사실 막대한 예산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은 지난 2011년 향후 10년간 국방예산을 4,870억 달러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른바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는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의 국방비는 매년 증가 추세다. 한편,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현대화된 군대 건설을 기반으로 하는 단계별 국방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경제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방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2,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2)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미국보다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미중 간 경제력과 군사력의 간극이 줄어드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이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이론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이 글에서는 세력 변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현실주의 이론인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의 시각에서 미중관계를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미중관계의 흐름을 추적하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2. 미중관계 변화에 대한 이론적 설명: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에서 세력 변화를 바라보는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의 해석은 상반된다. 국제정치를 무정부상태(anarchy)로 간주하는 세력균형론은 주권국가들 간 국력의 상태가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체제안정이 유지된다고 보는 반면, 세력전이론은 국제정치가 위계질서상태(hierarchy)이기 때문에 국력이 한 나라에 집중되지 않고 균형을 이룰 때 오히려 전쟁 발발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특히 도전하는 국가의 체제 불만족도가 높을수록 갈등 가능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세력균형론은 위협에 대응하거나 국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동맹(alliance)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세력전이론은 산업화(industrialization) 등을 통해 국력이 증가하는 것이 권력 변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미중관계의 변화 양상을 바라보는 각 이론적 시각의 해석과 전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세력균형론자들은 미중 간 양극체제의 등장과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관계가 형성되면서 세계정치는 장기적으로 보다 안정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 세력전이론자들은 중국의 힘이 커짐에 따라 기존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해 불만이 쌓이게 되고 그런 중국의 불만족이 커지면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리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대 이론들이 가정하는 바와 달리, 전쟁은 단편적인 원인에 의해서 발발하기보다는 복잡한 원인들이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면에서 세력균형론이나 세력전이론 내부에서도 분석 수준을 세분화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3) 예컨대, 프리츠와 스위니(Fritz and Sweeney 2004)는 강대국들 간에 세력균형은 자신들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생각할 경우에만 등장한다고 보았다.4) 그렇지 않을 경우, 강대국들은 자신보다 더 강력한 쪽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더 강력한 국가에 맞서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고 비용도 들어가는 반면, 편승은 비교적 안전하고 이익을 얻을 기회도 더 많기 때문이다. 즉, 세력균형이론이 국제정치의 모든 상황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반이론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 한해서 작동하는 제한적 혹은 중범위 수준의 이론으로서 적절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레비와 톰슨(Levy and Thompson 2010)은 세력균형론이 지리적 인접성을 갖고 육지전을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계에서는 설득력을 갖지만, 압도적인 해양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정치 차원에서는 세력균형보다 편승이 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5)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항해 강대국들이 중국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거나, 반대로 일정 시기가 지나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패권국이 되면 다시 이에 대항해 미국 등과 기계적으로 동맹관계를 맺으리라는 주장은 일상적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챈(Chan 2008)은 기본적으로 세력전이론의 큰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역사적 사례들을 바탕으로 그것이 갖는 몇 가지 가정들을 유연하게 해석함으로써 미중관계를 설명한다.6) 미중 간 패권전쟁과 관련해 챈(2008)은 크게 세 가지 측면을 지적한다. 첫째, 세력전이론에 따르면 전쟁발발의 원인은 부상하는 강대국이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챈은 오히려 국력이 쇠퇴하는 패권국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과정 속에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다. 부상하는 강대국은 자신을 강하게 해줬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또한 실제로 패권국에 비해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굳이 전쟁을 일으킬 유인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세력전이론은 세력전이의 시기에 두 강대국 간 전쟁은 직접적인 마찰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하지만 챈은 오히려 두 강대국이 연루(entrapment)에 의해 전쟁에 휘감겨 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도 영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것은 독일과의 직접적인 대결 과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소련과의 관계 속에서 연루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챈은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세력전이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중국은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도 미국에 비해 열등한 상황이고, 이런 성향은 지역적 차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중국은 국제체제에서 현상유지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마찰과 이로 인한 갈등 확산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미중 패권 경쟁을 상반되게 해석하는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 내에서도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비관론과 낙관론, 그리고 신중론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을 동아시아 미중관계에 적용하기에 앞서, 실제 미중관계의 최근 양상을 객관적으로 추적해보자.



3. 미중 전략과 동아시아


1) 중국의 전략: 적극적 방어(active defense)

2008년은 미중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어려움을 겪을 때 중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이 과정을 통해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역할과 필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이후 중국은 대외정책의 기본방침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세계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소집된 G20 회의에서 중국은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2009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도 ‘베이식(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국, BASIC)’ 그룹을 만들어 미국에 대항했다. 또한 2010년에는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에서 일본과 충돌했으며, 남중국해 지역에서는 베트남과 필리핀의 석유 탐사를 물리력으로 제지했다.


하지만 중국의 외교정책이 과연 도광양회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공세적인 외교로 전환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중국 내부에서도 2008년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과 중국 학계의 주류 견해는 기존의 외교방침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7) 실제로 올해 7월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중국은 4년 전 강조한 바 있던 ‘적극적 방어(active defense)’ 개념을 재차 사용했다. 비록 ‘적극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방점은 여전히 공격이 아닌 ‘방어’에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 국방백서는 국방비 비율이 크게 감소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 30년간 중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평균 2% 미만으로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지출 대비 17.37%(1979년)에서 5.14%(2017년)로 급감했다는 것이다.8)


다만 중국이 규정한 핵심 이익과 관련해서는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중국 국방백서는 2012년 이후 해당 지역에서 4,600 건 이상의 해상 보안 순찰과 72,000 건의 권리 보호 및 법 집행 선박을 배치해왔음을 강조하면서, 주권과 연결된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명시했다.9) 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범할 경우, 그 방점이 ‘방어’에서 ‘적극적’으로 옮겨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동중국해, 남중국해, 그리고 한국 서해의 주요 해역 등에 대한 미국의 침범 및 도발이 있을 경우, 미중 간 군사적 마찰도 발생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방어’ 기조는 경제 영역에서도 관찰된다. 미중 간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공세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다. 시진핑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 공세를 중국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자유무역의 가치를 훼손하는 다자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함으로써 전면적인 양자대결 구도에서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0) 중국 공산당은 자신의 당-국가 체제(party-state system)의 정당성을 높은 경제성장 속에서 유지하고 있는 만큼 현재 수준의 성장을 유지하면서 국내 일자리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정권 유지의 핵심 조건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미국과 경제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조속하게 종결해 경제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유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24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뉴욕에서 열린 미중 관계 전국위원회 등과의 만찬 기조연설을 통해 “중국은 다자주의를 주장하고 일방주의를 반대하며 국제문제에서 유엔의 핵심적 역할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중은 이미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자 투자 대상국이며 산업, 공급, 가치 사슬이 깊게 연관돼있는 이익 공동체인 만큼, 이렇게 상호 의존이 깊은 두 나라가 서로 관계를 끊고 문을 닫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비이성적,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11)


하지만 안보 영역과 마찬가지로 경제 영역에서도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범할 경우, 중국은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올해 5월 미중간 무역 협상이 합의 직전에 결렬된 핵심 이유는 중국 지방 정부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사이버 안전법 수정, 외국자본 기술 이전 강요 등과 같은 이슈들에서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일반적인 통상 이슈를 넘어서 과도하게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에 개입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협상 결렬 이후 미국의 관세 인상 발표와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관세 선언으로 미중 무역 전쟁이 확전됐다. 이처럼 중국이 생각하는 핵심 이익이 갈등의 축으로 부상할 경우, 미중 간 무역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 미국의 전략: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트럼프 정부가 2017년 1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Review)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미국의 핵심전략이라고 명시했다. 미국의 부흥을 위해 스스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세계에 투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래는 세계주의자의 것이 아니라, 애국주의자의 것(The future does not belong to globalists, the future belongs to patriots)”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 공공재적 가치보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트럼트 정부의 안보전략과 경제전략은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제질서를 홉스적 시각으로 본다. 즉, 국가들은 제로섬(zero-sum)의 경쟁관계에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12) 트럼프 정부가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한 데 이어, 올 6월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view)에서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 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를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기존부터 FTA와 같은 양자협정을 주요 통상정책 수단을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양자주의 자체가 새로운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정부의 양자주의가 기존과 구분되는 지점은 양자주의를 다자주의라는 큰 틀 하에서 작동하는 보완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주의의 틀을 깨는 대체재로 활용하려는 급진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TPP 탈퇴를 비롯해 WTO에 대한 비판, NAFTA 개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안보와 경제, 그리고 경쟁국과 동맹국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최근 일본과의 무역 협상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9월 25일 미국은 일본 농산물 시장을 미국에 추가 개방하는 내용의 1단계 무역협정을 일본과 맺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TPP 탈퇴에 대한 미국 농가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는 현재 2.5%인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지난 6월 G20 회의에서는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불평등을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일본 정부는 미국과 본격적인 무역협상 논의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1차 무역협정에 합의했고, 이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 “미국에 휘둘려 무역협정에 서명”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13)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는 스스로의 내재적 모순에 의해 본래 트럼프 정부가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제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중상주의 기반의 양자주의는 오히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중국 견제 효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으리란 것이다. 특히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동맹국 시민들의 불만이 증가할 경우, 미국의 협상 레버리지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동맹을 비롯한 안보정책을 결정할 경우, 각 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국내 집단의 반발 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14) 실제로 최근 미국 리더십에 대한 세계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는 경향이 관측되고 있다. 예컨대, 갤럽 세계 여론조사(Gallup World Poll)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리더십에 있어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11.2% 포인트가 하락해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보다 순위가 낮아졌다.


<그림 1> 글로벌 리더십 여론조사 (2008-2018)

출처: Global Peace Index. 2019. p. 40.                                                                                                                                             



4. 미중간 분쟁/전쟁 발발 가능성의 요인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이라는 체제 수준의 분석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관계의 역동적 변화 양상을 추적하고 전망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만큼 그 전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각 이론 내에서도 현실에서의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유연한 형태로 해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을 기반으로 미중관계에 대한 몇 가지 예측을 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과 중국 간 군사력 격차와 핵억지 등의 요인을 감안할 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적인 패권전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설령 2030년대에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세계 차원의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국제정치에서는 행위자도 보다 다양해졌고, 기존의 패권국을 중심으로 하는 규범이나 문화 등과 같은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물질적 측면에서 기존의 패권국을 넘어선다는 것은 두 국가 간의 격차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지금부터 2030년대까지 미국과 중국의 정책방향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향후 시나리오도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만약 미중 간 패권갈등이 발생한다면, 그 지점은 미국 우선주의가 중국의 핵심이익과 충돌하는 동아시아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 과정을 복기해보면, 양국은 끊임없이 갈등과 타협을 반복하면서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까지인지를 탐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중상주의적 전략에 기본적으로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방어’적 입장을 취했지만, 그 공격의 깊이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범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무역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 이런 경제적 갈등은 군사영역에서도 충분히 발생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미국과 전면적인 군사적 갈등은 피하겠지만, 중국의 안보적 핵심이익이 밀집되어 있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압박이 더욱 강력해질 경우, 중국은 최근 집중투자하고 있는 ‘반접근 지역거부(Anti-access, Area Denial, A2AD)’ 전력을 기반으로 미국 및 동맹국들과의 군사적 마찰도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 우선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의해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당분간 증가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경제성장을 최우선에 두는 것과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존재한다. 그만큼 향후 가장 강력한 경쟁자(중국)와 동맹국(한국·일본)이 혼재하는 동북아 지역의 안보 불안정성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른바 ‘우크라이나 의혹’을 둘러싸고 최근 미국 국내정치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 미국을 포함한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넷째,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중에 어느 한 국가에 전적으로 편승하기보다는 시기별로, 그리고 사안별로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미국과 가장 강력한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이미 경제 영역에서는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따라서 세력균형론이나 세력전이론에 기반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느 한 편에 설 것임을 예측하는 것은 이론이 현실을 넘어서는, 즉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현실 속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그 균형을 찾고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대응해 나갈 확률이 높다.



5. 나가는 글


다양한 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미중 간 세력관계가 급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한 확신에 찬 몇몇 이론가들이 단정하는 바와 달리, 그 끝이 평화와 연결되어 있는지, 아니면 전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본격적인 세력전이의 상황에서 미중과 주변국가들이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방향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세력균형론과 세력전이론의 다양한 견해들을 종합해보면, 향후 미중간 전면적 패권갈등이 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국이 규정한 핵심이익이 집중되어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금과 같은 미국 우선주의가 지속될 경우, 미중간 국지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국지적 충돌이라고 하더라도, 군사적 마찰은 민족주의와 결합해 언제라도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만큼 본격적인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최근 많은 세계적 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에게 치킨 게임을 멈추고, 평화적 공존(peaceful coexistence)을 도모할 것은 주문하고 있다.15) 어떻게 하면 두 정상이 이런 충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미중 무역전쟁이 패권전쟁으로 확산되지 않기 위한 해법 모색은 양국의 이익과 갈등이 중첩되어 있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시급한 문제인 만큼, 이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1) World Bank Group, Development Research Center of the State Council,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19. Innovative China : New Drivers of Growth. Washington, DC: World Bank. https://openknowledge.worldbank.org/handle/10986/32351 (검색일: 2019.09.26.)
2) 전재성. 2019. “미중 군사안보경쟁: 충돌의 현실화 가능성.” EAI 스페셜 이슈브리핑.
3) 예컨대, 레비와 톰슨(2010)은 전쟁의 원인을 분석수준에 따라 크게 체제 수준, 양국 수준, 국가/사회 수준, 그리고 개인/조직 수준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것을 제안했다. Jack S. Levy, and William R. Thompson. 2010. “Balancing on Land and at Sea.” International Security, 35(1).
4) Paul Fritz and Kevin Sweeney. 2004. “The (de)Limitations of Balance of Power Theory.” International Interactions, 30(4).
5) Levy and Thompson. 2010.
6) Steve Chan. 2007. China, The US and power-transition theory : a critique. New York, NY : Routledge.
7) 조영남. 2013. 『중국의 꿈: 시진핑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 . 서울: 민음사.
8) 전재성. 2019.
9) 전재성. 2019.
10) 이승주. 2019. “미중 무역전쟁의 동학: 외연의 확대와 상호의존의 역습.” EAI 특별기획논평 시리즈.
11) “中왕이, 한국전쟁 언급하며 ‘美 잘못된 대항하면 안 돼’.” 「연합뉴스」 2019.09.25.
12) 이상현. 2018.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 국제정세 및 한반도에 대한 함의.” 「국가전략」 제24권 2호.
13) “‘日, 美에 휘둘려 무역협정에 서명’ 아사히.” 「뉴시스」 2019.09.26.
14) James D. Morrow. 1993. “Arms versus Allies: Tradeoffs in the Search for Security.” International Organization, 47(Spring).
15) 대표적으로 다음의 글들을 참고할 것. Dani Rodrik. 2019. “Peaceful Coexistence 2.0.” Project Syndicate. April 10; Nouriel Roubini. 2019. “The Global Consequences of a Sino-American Cold War.” Project Syndicate. May 20.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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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손정욱(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저자 손정욱,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외교학 박사학위 취득. 국회 비서관/보좌관을 역임. 관심분야는 국제정치경제와 비교정치경제이며, 주요 논문으로 “노동시장 이원화와 반응성의 정치”, “사회협약, 당파성, 불평등의 정치경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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