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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이후 남북 교류협력 찾기: 협력안보와 평화공영으로 By : 양길현(제주대학교 교수) JPI PeaceNet: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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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14.



평창 이후 남북 교류협력 찾기:
협력안보와 평화공영으로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평창이 뜨겁다. 추위도 아랑곳없다. 사실상의 권력 2인자로 알려져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주요 인사가 평창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도 왔고 펜스 미국 부통령도 왔지만, 관심은 온통 북한 인사들에 집중되었다.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화답했다. 남북한 정상회담은 시간문제로 되었다. 이른바 ’코피전략‘으로 제한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일정 부분 잠재워졌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전면전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력시위와 전쟁위협으로 한반도는 세계에서 평화롭지 않은 대표적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70여 년 세월 동안 한반도의 남과 북이 전쟁위협과 안보문제로 시달리게 된 데에는, 단일국가를 염원하는 민족통일론도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가능하면 통일을 운운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통일부도 이름을 화해협력부로 하든가 평화부로 바꾸는 건 어떤지 하는 제언을 해 본다. 왜냐하면 ‘1민족 1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욕망 그리고 별 현실적이지도 않은 환상이 남과 북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 모두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거나 굴복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때때마다 단일민족국가로의 통일 가능성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율배반이, 바로 분단된 한반도 국민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남과 북이 각자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은 주한미군에 기대고 있고, 북은 핵개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상에서 혹 사라질 수 있는 대표적 나라가 바로 남과 북인 한, 각자의 절대안보 추구는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안보가 아니라 협력안보(cooperative security)로의 전환이 요청된다.

  절대안보 추구는 결국 ‘안보딜레마’로 귀착될 수밖에 없음은 널리 알려진 공식이다. 그래서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한, 남과 북 모두 안보딜레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남과 북이 과잉 군사비로 인해 낭비와 비효율을 겪게 되는 것도 필연이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절대안보를 유지해 나가고 있노라면, 언젠가 운이 좋거나 아니면 북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겨 통일대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보-통일정책이었다.

  정권의 안보를 국가의 안보와 동일시하는 김정은 정권은, 핵개발을 더 진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미 북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핵보유국을 명시할 정도로 핵개발을 고수해 오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단기 목표가 아니라 장기 목표로 바꾸는 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북 핵 동결로 시작하여 비핵화로 가자는, 이른바 ‘북 핵 출구론’이 더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인 것 같아 보인다.

  북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미 북 핵으로 인해 어떤 형태의 전쟁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으로 한반도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북이 핵을 보유하는 한, 세계 최강의 미국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무력에 의한 남북한 통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 핵에 대한 윤리적-정치적-군사적 비판과는 별도로,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달성하는 건 이미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마당에, 막연한 통일대박론에 들떠서는 안 될 것이다. 남과 북은 군사적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긴장관계를 갖고 갈 것이 아니라 분단된 국가들로서 사이좋게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게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남과 북이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하지 말고 서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교류협력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현 문재인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이라고 본다. 김여정 특사를 거치면서 평창이 바로 남북한 교류협력에서 또 한 번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2018년 현 시점에서 통일국가를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통일을 운운하기 보다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절대평화가 요청된다. 북한보다 전쟁으로 잃을 것이 많은 남한은 더욱 절대평화를 염원해야 한다. 물론 절대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반통일이 되기 쉽다. 외형적으로는 분단고착화이자 현상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분단된 두 개의 국가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상황을 두고, 이를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통일지향보다는 평화로운 분단체제 하에서 남과 북 두 개의 국가 간에 교류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것이 더 유용하고 바람직해 보인다.

  평창 이후 남과 북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평화공영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남과 북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을 통해 이미 남과 북은 지난 10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이 1990년에 이미 두 개의 국가로 유엔에 동시 가입되어 있는 마당에, 굳이 하나의 통일국가 만능론을 고집하고 추구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에 사실상 존립하는 남과 북 두 개의 국가가 수교를 함으로써 평화공영의 길로 나아가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남과 북이 대사를 주고받는 수교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상호존중과 인정의 절차이자 방식이다. 평창에 김영남과 김여정이 오는 건 허용하면서, 북한 대사가 서울에 와 지내는 건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10년이 지난만큼 강산이 크게 변했다. 북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서 보듯이,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적 방식의 대북접근으로는 더 이상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남의 국민들이 변한 만큼이나 북의 국민들도 장마당의 삶을 영위하면서 과거와는 달리 내적으로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이제는 국가의 시대가 가고 국민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남과 북이 자국의 국민들을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 방식과 절대안보 논리에 가두어두려 한다면 결국 국가와 국민 간의 엇박자가 필연적이다. 지난날은 국가의 시대라서 국민들이 절대안보를 강요하는 국가의 논리를 따랐다. 남과 북 모두 일제의 조선합병과 한국전쟁의 경험을 잊을 수 없는 만큼이나 국가에 의존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따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절대안보가 아니라 협력안보가 대안으로 떠올라 있으며, 통일 만능론보다 평화공영이 더 절실하면서도 합당한 요청이 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그것은 폐허 속의 승리일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혹은 얼마 만큼의 통일대박이기에, 왜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서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지, 그런 의구심을 제기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국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이다.

  단일국가 우선 논리는 이미 유럽연합의 실험을 거치면서 크게 허물어졌다. 절대주권이 아니라 주권공유가 새 시대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도 국가연합 가능성도 찾아보아야지, 하나의 단일국가화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국민이 원하면 두 개의 국가로 존립해야 하는 게, 21세기 방식이라고 볼 것이다. 통일은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겨두고,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사이좋게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 오히려 7천만 한겨레의 국민적 요구라고 볼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과거와 같은 적대적 공존에서 벗어나, 우선은 사이좋게 지내는 평화로운 분단체제로 전환한 연후에, 미래의 어느 때가서 남과 북 다음 세대들이 새로운 인식과 이해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남북관계의 창의적 지평을 열어가는 게 더 합당해 보이는 그런 시대가 21세기이다.

  평창 이후 남과 북은 20세기적 승자독식 논리와 경쟁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남한은 이미 국력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음을, 남과 북은 서로 인정해야 한다. 평창에서 보듯, 남북한 간에 신뢰 쌓기에 매진해야 함은 기본이다. 앞으로 평창에 이어 제주에서든 개성에서든 백두산에서든 남과 북이 자주 만나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당연히 남과 북 정상들의 만남도 정례화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서 통일을 한다고 서로 으르렁대던 시대를 마감하기로 다짐하자. 서로 군비증강에 몰두할수록 군수산업체만 이득을 본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밝히자. 절대안보 추구에 들어가는 돈을 남북 교류협력에 쓰면, 그만큼 한반도의 평화가 증진되고, 남과 북 7천만 국민들이 더 살기 좋은 한반도가 될 것임을 적극 재확인하자. 분단론자라고 비판받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남과 북 7천만 국민들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통일이 21세기 남과 북의 공동 과제임을 천명하자. 평화공영의 한반도를 향해 교류하고 협력해 나가자고 공동 발표하자.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8.2.1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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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現,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박사 취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소장과 민주평통 자문위원,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제주지역통일교육센터 소장 등을 역임. 북한 및 통일 관련 연구업적으로, "재중 북한이탈주민을 둘러싼 쟁점과 한국의 정책방향," <국가전략>(제19권 1호, 2013년 봄), “오바마-이명박 정부의 북핵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반주변의 시각,”『국제정치논총』(제52집 2호, 2012), “다시 보는 연합제-낮은 단계의 연방제,” 『북한연구학회보』(제11권 2호, 2007) 등 다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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