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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론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중재외교’ By : 이동휘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JPI PeaceNet: 20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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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5.



협상론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중재외교’




이동휘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 간의 교환해법을 모색하는 일련의 협상 과정이 탄력을 받게 됨에 따라,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기간 경험했던 고도의 불안정성과 긴장 상태를 상기해 보면, 짧은 기간 내에 매우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반전에는 한국정부의 한반도 평화, 번영 그리고 통일을 추구하는 구상과 노력들이 ‘중재외교’라는 이름으로 발현되어 기여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앞으로 있을 북ㆍ미 정상회담 한 번으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긴 협상 과정이 시작될 것이고, 이 프로세스가 종국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중재외교’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은 명백한 일이다.

  이 글은 향후 한국의 역할을 더욱 제고시켜 나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국의 ‘중재’ 노력에 대해 협상론에 입각하여 세 가지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중재’ 개념의 명확화와 세분화의 필요성이다.

  협상론에서는 양 당사자 사이에서 협상타결을 위해 노력하는 제3의 행위자를 중재자가 아닌 중개자(mediator)로 부르고, 이를 다시 역할수준에 따라 개념적으로 세분화 하고 있다.

  대표적인 구분은 소극적인 역할인 편의 제공자(good office)로부터 시작하여 소통자(communicator), 화해자(harmonizer), 촉진자(facilitator), 조정자(coordinator) 및 중재자(arbitrator)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협상론에서 ‘중재’는 ‘arbitration’, 즉, 협상 당사자 간의 이견 해소를 위하여 가능한 한 중립적인 제3자가 조정안을 직접 고안하여 제시하고, 당사자들은 이를 수용해야 하는 현실적인 의무가 발생하는 최고 수준의 관여 경우를 의미하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현재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중재’외교라는 용어를 우선 ‘중개’외교로 바꾸어 씀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북ㆍ미 간에 작동되고 있는 한국외교에 신중한 고려 없이 중재 개념을 부여할 경우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는 특정한 의미의 중재(arbitration) 개념과 혼동될 가능성이 크고, 자칫 과잉기대를 초래함으로써 오히려 혼란의 소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술한 다양한 수준의 협력적 절충 노력 중 어떤 역할을 의미하는지 정확한 파악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재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한국이 중개자(mediator)로서 전개하는 외교적 노력은 소통자(communicator)로 시작하여 촉진자(facilitator) 또는 조정자(coordinator)로 이행하는 중개외교이다”라는 식으로 조금 더 명백히 개념을 규정하고 기능을 세분화 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전술한 이유로 ‘중재자’로부터 ‘중개자’로 재명명되어야 할 외교적 역할과 관련된 중립성의 문제이다.

  중개자에게 우선 요구되는 덕목으로는 진정성과 함께 공평성이 거론되고 있고 일반적으로 공평성은 중립성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협상론에서의 주요 사례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중개자(mediator)가 반드시 중립적인 입장에서 타협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974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였던 키신저는 이스라엘의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을 대표하여 성공적인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즉, 중개자가 분쟁 당사자들 중 어느 일방과 목적과 인식을 같이한다 하더라도 진정성과 공평성을 유지하는 한 중개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립성이 초래할 수 있는 모호함의 함정을 피해 명확한 입장에 서서 중개노력을 함으로써 협상의 효율성을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를 참조한다면, 한국은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공유하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입장을 취하더라도 중개자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명목상의 중립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다.


  셋째, 목표 간 상충 가능성에 대한 주의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동맹국으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재규정한다면, 한국과 미국 양국 간에 목적의 상이성에서 야기될 수 있는 목표상충(goal conflicts)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신뢰구축, 남ㆍ북 협력에 이어 비핵화가 언급됨으로써, 한국이 비핵화에 부여하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비추어지고 이에 따라 목표상충 현상이 나타날 경우 미국과의 공조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부 존재하고 있다.

  미ㆍ북 협상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인 비핵화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체제보장과 경제보상이 수반되어야 함으로, 남ㆍ북한 간의 신뢰구축이나 협력 증진도 기능적인 연관성 차원에서는 비핵화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개외교를 추진하는 한국으로서는 한ㆍ미 간의 협상목표가 상충될 수 있는 소지를 최소화 해 나가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고려는 향후 전개될 일련의 북ㆍ미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규모와 성격의 변화를 포함하는 한미동맹 관련 사항들이 논의될 경우 한ㆍ미 간의 인식 차이에 기인하는 안보상의 불확실성 증대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얼마 후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역사적인 북ㆍ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지닐 뿐,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는 앞으로의 도정에는 지난한 협상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중개외교는 목적의식을 조금 더 명확히 하고 중개의 개념을 더욱 정치하게 가다듬는 동시에 유용한 협상 전략과 전술을 구비해 나가는데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과정에서 협력적 ‘중개자’의 위치를 넘어서서 주도적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2018.6.4. 게재
* 홈페이지 오류 문의: webmaster@jpi.or.kr



저자 現 한국외교협회 부회장,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국립외교원 교수/연구실장, 한국협상학회 회장 등을 역임.
Tag 중재외교, 중개외교, 한반도 비핵화, 북미정상회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