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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다자무역체제를 무력화하려 하나? By : 윤성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JPI PeaceNet: 2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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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다자무역체제를 무력화하려 하나?

 

윤성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2019년 12월 WTO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구인 분쟁해결기구(DSB)가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다름 아닌 WTO 회원국 간 발생한 무역분쟁을 조정해 줄 상소기구 위원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더 이상 상소기구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WTO 분쟁해결기구의 상소기구 위원의 총원은 7명으로 현재 4명이 임가가 만료되어 공석이 되었고, 올해 12월 10일이 되면 남아있는 3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WTO 상소절차는 상소기구 위원 3인이 구성되어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상소기구의 운영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상소기구 위원을 임명하지 않는 것인가?

 

이는 WTO 체제 설립 당시 분쟁해결기구 설립을 기획하고 이를 지금까지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의 선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WTO 체제는 총의제(consensus system)라는 독특한 의사결정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회원국이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총의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근거하여 미국이 계속적으로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반대하면 더 이상 상소기구 위원을 충원할 수 없다.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다자무역체제 유지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던 분쟁해결기구를 의도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미국은 2017년 16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부활시켜 중국 및 한국을 포함하여 다른 회원국의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와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301조에 근거하여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로 관세를 부과했다. 엄연히 국제무역질서를 규율하는 WTO 체제가 존재하고 있고, 회원국 간 무역분쟁 해결을 위해 분쟁해결기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러한 절차와 규정에 근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중국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부가 조치는 결국 오늘날의 미중 무역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WTO 체제를 무시하는 미국의 도발은 지금까지 쌓아온 국제무역규범으로서 WTO 체제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한때 주도적으로 다자무역체제를 이끌었던 미국이 스스로 이를 탈선했던 사례는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래에도 간간히 계속되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 경제체제의 부상이 국제무역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면서, 현행의 무역질서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욱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은 현행 국제무역질서인 WTO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국제무역질서 개편의 필요가 더욱 명확해 졌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면위에 떠오른 WTO 체제의 한계

 

WTO 체제 개혁에 대한 필요성 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로 WTO 체제가 출범한 이래 2003년 12월 칸쿤 각료회의 결렬과 2006년 도하개발어젠다(Doha Development Agenda) 협상이 일시 중단되면서 WTO 체제에 대한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했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WTO 체제 개혁은 미국이나 EU 등 국가의 주요 관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적되어왔던 WTO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총의제, 일괄타결 등 정책결정 방식의 문제, 2) 분쟁해결제도의 한계, 3) 서비스무역규범의 한계, 4) 개도국 우대의 한계, 그리고 5) 새로운 통상환경변화에 대한 미흡한 대응 등이 포함된다. 최근 미국, EU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시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이는 앞서도 언급한 ‘중국 변수’ 때문이라 판단된다. 

 

WTO의 전신인 GATT 체제는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회원으로 참여하여 만든 다자무역체제이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WTO 체제의 출범에 따라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채택하는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WTO 체제에 합류하게 됐다. 더욱이 중국은 2001년 WTO 가입이 승인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미국은 중국이 WTO 체제에 합류하면서 시장경제체제로 경제체제를 전환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기대를 저버리고 유래가 없었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중국특유의 경제체제를 확립했다. 이에 더해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으며,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시장경제체제를 전제로 만들어진 WTO 규범으로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통상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특히 중국경제의 중심에 국영기업(SOEs)과 국영은행이 있고 이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구조에서 발생하고 있는 보조금 규제, 시장경제국지위 부여 등의 문제를 현행 WTO 규범으로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을 위협하는 중국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 하는 체제를 과연 지속시킬 필요가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WTO 개혁의 늪

 

이런 의미에서 다시금 점화되고 있는 이번 WTO 개혁 시도는 WTO 체제가 유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 한다는 차원에서 그 논의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WTO 개혁논의는 2018년 EU가 ‘WTO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WTO 개혁안을 제출하면서 촉발됐다. EU는 1) 규범 제정, 2) 투명성, 3) 분쟁해결 등 크게 3분야로 나눠 각각의 개혁방안을 제안했다. 

 

미국도 2018년 3을 2018 통상정책 아젠다에 ‘다자무역체제개혁’을 포함시키면서, 2017년 다자무역규범을 무시하고 국내법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기조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8년 11월에는 EU, 일본,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와 공동으로 투명성 제고 및 통보 강화에 관한 WTO 개혁방안을 제안했다. 공동제안의 내용은 WTO 모든 협정문과 관련하여 통보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공동제안에는 미통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제도를 포함하고 있는 데 그 수위가 낮지 않다. 분담금을 높이거나, WTO 개별 기구의 의장의 취임기회를 박탈하며, 회원국 자격을 정지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이 투명성 문제에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행 WTO 규범이 국영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효과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부 조치에 대한 통보를 보다 강화하여 중국정부의 불공정 조치를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 WTO 개혁 시도는 지금까지 WTO 체제 개혁에 대해 별다른 의견이 없었던 중국이 적극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중국 상무부(商务部)는 2018년 11월 23일 《세계무역기구 개혁에 대한 중국의 입장 문건(中国关于世贸组织改革的立场文件)》을 발표하고 WTO 개혁에 대한 기본원칙을 밝힌바 있다. 이어 2019년 5월 13일  《중국 세계무역기구 개혁에 관한 건의문건(中国关于世界组织改革的建议文件)》을 WTO에 정식으로 제출하면서 WTO 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개방과 비차별이라는 다자무역체제의 핵심가치를 지지하면서 개도국의 개발이익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개도국 특별대우(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 원칙을 유지시켜 줘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WTO 회원국이 ‘국가안전보장’을 근거로 취하는 일방적 조치에 대한 다자주의 감시감독 체제를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긴급한 상황에서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구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보장을 제안했다. 또한 미국 정부가 겨냥하고 있는 중국의 국영기업에 대해서는 각 회원국의 발전 모델을 존중하는 포용성 있는 다자무역체제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개발도상국의 특별대우나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부분은 미국과의 의견차가 확연하다. EU가  분쟁해결, 개도국 특별대우 등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안을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지금 상황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개혁에 대한 절충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중 무역분쟁 협상에서 미국은 중국의 경제구조 자체의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중 간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또한 미국이 WTO 체제에 대해 불만이 생기게 하는 근본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중국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 선전하는 현행 경제 및 산업 체제를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중 간 관세전쟁에서 시작된 무역분쟁은 다자무역체제 개편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WTO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무역질서 만들어 질까?

 

각 회원국의 WTO 체제 개혁에 대한 제안이 합의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미국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WTO 체제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힘을 쓰지 못 할 것이라 판단한 미국은 일찌감치 새로운 다자무역체제를 구상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관세철폐와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추진된 경제협력체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WTO를 대체 또는 보완할 수 있는 아시아태평양 통상규범을 만들고자 야심차게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의 탈퇴로 TPP 의 핵심 추진 동력을 잃으면서 국제무역질서에서 그 파급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키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여 미국의 TPP에 대응했다. 하지만 미국이 TPP탈퇴를 선언하고, 미중 무역분쟁 국면으로 들어서자 RCEP 협상도 지지부진 해 졌다. 2019년 9월 29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RCEP 협상의 연내 타결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지역 분위기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새로운 다자무역체제의 탄생은 쉽지 않다. 새로운 체제가 출범한다 해도 지금의 WTO 체제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계속 힘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제어할 수 있는 국제규범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미국의 국내 정치 사정이 더 시급해 이도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다자무역체제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다자무역체제의 개편은 한국의 경제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회원국의 WTO 개혁 제안에 한국의 국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또한 WTO 체제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는 경우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지금까지 체결한 양자무역협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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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동균(제주평화연구원​ 박사 후 연구위원)​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저자 윤성혜, 現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중국정법대학에서 국제법 박사학위 취득. 주요 연구분야로 한중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지원, 한중 비관세장벽, 기후변화대응정책 등이 있음. 대표 논문으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상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 규정 이행에 관한 법적 쟁점 – 식품무역에 관한 규제를 중심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상 경제협력 이행에 있어 국제법적 쟁점과 함의 –WTO 보조금협정을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한중 FTA와 지방경제협력 연구』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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