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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의 틈새를 파고 드는 중국의 다자주의적 대안 평화 방정식(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통일뉴스]
날짜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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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7년 만에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 순안공항의 활주로를 밟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걸음은 유난히 요란했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1면을 장식한 그의 기고문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사회주의 길을 걷는 동행자", "마르크스주의 집권당으로서의 운명공동체" 같은 거창한 선언들이 활자가 되어 지면을 가득 채웠다. 체결된 지 무려 65년이 지난 1961년 『조·중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의 해묵은 가치까지 들추어내며, 두 나라의 전통적 친선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성벽임을 온 세상에 과시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번지르르한 외교적 수사학의 꺼풀을 한 겹만 벗겨내면 전혀 다른 민낯이 드러난다. 그 밑바닥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현실주의적 안보 타산과, 서로를 결코 믿지 못하는 다층적인 전략적 불신이 아주 깊게 닻을 내리고 있다. 겉으로는 동맹의 부활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주판알을 튕기기 바쁜 기묘한 동거다.

이번 평양행은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연이어 대면한 직후 감행한 2026년의 첫 해외 순방이다. 타이밍부터가 절묘한 다중 포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구도를 바라보며, 중국은 동북아 정세의 주도권을 통째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휩싸였을 것이다. 자국의 통제권 밖에서 판이 짜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막아보겠다는 수세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셈이다.

이번 기고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단초는 중국의 대안적 평화정책이다. 단어 하나가 사라진 맥락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시 주석은 지난 2019년 방북 당시 기고문에서는 '조선반도'라는 단어를 무려 6차례나 명시하며 대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중재자임을 자임했었다. 그런데 2026년의 기고문에서는 '조선반도'든 '한반도'든 명칭 자체가 아예 실종됐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국가주권과 안전 수호', 그리고 중국이 밀어붙이는 다자주의적 대안 질서인 '4가지 전지구발기(GDI, GSI, GCI, GGI)' 체제로의 북한 포섭이다.

중국이 북한을 더 이상 독자적인 한반도 문제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미·일 세력의 인도-태평양 포위망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동원하는 글로벌 차원의 '도구적 파트너'로 북한을 간주한다는 뉘앙스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노동신문에 게재된 기고문은 1961년 체결된 <조·중우호조약>의 군사자동개입 조항을 재확인하며 양국의 ‘운명공동체’적 군사동맹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시 주석은 군대 간 소통과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를 강조하며, 과거 북·중이 합의한 바 있는 안보·국방 중심의 양국 관계 발전 설계도를 이번 방문을 통해 구체화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특히 북한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길을 지지한다고 언급한 대목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전략적으로 용인할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시 주석이 의도하는 핵심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반한 대만 통일 과정에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있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자기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길"을 가라며 짐짓 고개를 끄덕여주는 속내는 결국 두 가지다. 공산당 체제의 안보,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주변 환경의 안정. 이 명백한 목적 함수를 충족하기 위해 베이징이 설정한 마지노선이 바로 이른바 ‘3불(不) 원칙’이다. 겉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히 자국의 전략적 손익을 계산한 고도의 지정학적 포석이 깔려 있다.

첫째는 ‘불용(不容)’, 즉 한반도 비핵화다.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는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는 시나리오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도발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 여론을 자극하고, 무엇보다 미군의 첨단 전략 자산이 중국의 턱밑인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전진 배치되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다. 베이징 입장에서 북핵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끌어들이는 위험한 자석과 다름없다.

둘째는 ‘불란(不亂)’,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다. 이는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붕괴나 급변 사태로 인해 국경 지역이 통제 불능의 혼란에 빠지는 상황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수백만 명의 난민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 동북 3성으로 유입될 것이며, 이는 중국 내부의 심각한 사회적·경제적 혼란으로 직결된다. 게다가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의 북한이 사라지고 미군을 등 뒤에 업은 통일 한국과 국경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은 베이징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안보 악몽이다.

셋째는 ‘불전(不戰)’, 즉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중국은 한반도 내에서의 그 어떤 무력 충돌이나 전쟁도 단호히 반대한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면전이 발발하는 순간,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이 쌓아 올린 경제 발전의 토대는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전쟁의 불길은 중국 경제의 심장부인 연안 지역을 직접 겨누게 되며, 외국의 투자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결국 베이징에 있어 전쟁 방지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다.

시진핑 주석이 기고문에서 "유엔 중심의 국제체계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질서 공동 수호"를 굳이 언급한 대목은 아주 정밀하게 설계된 양면 전술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기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북한 역시 이번 만남이 아쉬울 게 없다. 중국으로부터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받아 숨통을 틔우고, 국제적 고립감을 덜어내며, 동시에 ‘러시아 카드’를 쥐고 중국을 역으로 흔들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가장 혐오하는 것 역시 중국의 ‘통제’다. 조·중 조약을 앞세워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겠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과의 사이에서 묘한 신경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의 전형이다.

시 주석이 평양에 오기 직전인 6월 6일, 북한은 딸 주애까지 동반해 신형 구축함 '강건호'의 항해 시험을 참관하고 고농축우라늄 생산 시설을 보란 듯이 공개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인받으려는 압박 시위였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준수라는 보편적 규범을 툭 던졌다. 7차 핵실험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고강도 도발을 감행해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히지 말라는, 그리고 미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더 끌어들이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말라는 세련된 경고장이다.

지경학적 협력이라는 이상 역시 냉혹한 물리적·제도적 장벽 앞에서는 무력해 보인다. 중국이 기대하는 '두만강 하류를 통한 중국의 동해 진출' 같은 경제 영토 확장 구상은 현실의 하드웨어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3자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하긴 했다. 하지만 두만강 하구에 버티고 있는 조·러 친선 철도교량은 상판 높이가 너무 낮아 중국의 중대형 화물 선박이 통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중국은 교량 상판을 높이고 강바닥을 준설하는 고강도 개조 사업을 제안하며 자국 예산과 인력을 전면 투입하겠다는 의사까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군사 최전선인 국경 지대에 중국의 대규모 건설 부대가 진입하는 상황을 북한과 러시아가 반길 리 없다. 주권 침해와 안보적 우려 때문에 극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중이다. 게다가 촘촘한 유엔 대북 제재망과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법적 리스크는 중국의 국유 물류 대기업들이 나선경제특구 같은 곳에 본격적인 대규모 합작 투자를 감행하는 길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경제적 합의라는 것은 관광이나 비공식 생필품 원조 같은 저위험 우회 통로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제 한국 외교는 명분론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실리적인 현실주의 노선에 입각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정교한 외교 방정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세 가지 핵심 전략적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중국의 안보적 취약성을 겨냥한 비대칭적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미 동맹의 공고화와 확장억제의 실질적 가동이라는 기존의 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한국의 독자적 핵추진 잠수함 건조 능력 확보나 첨단 군사 전력 강화 카드를 공식적인 전략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베이징을 향해 북핵 묵인이 결국 한국의 통제 불가능한 군사적 고도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임을 명확한 비용 청구서 형태로 제시해야만 중국의 실질적인 태도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국제적 규범을 역이용하는 정교한 규범적 공세를 병행해야 한다. 시진핑 지도부가 국제무대에서 핵심 브랜드로 내세우는 '유엔 헌장 중심의 다자주의'와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의 수사를 논리적 무기로 삼는 전략이다. 중국이 대북 안보·경제적 지원을 단행할 때마다 그것이 자신들이 공언한 글로벌 거버넌스 리더로서의 책임과 어떻게 정면으로 모순되는지 국제사회에 집요하게 공론화해야 한다. 방조에 따르는 평판 저하와 외교적 비용을 임계점까지 누적시키는 압박 체계가 작동해야 중국도 행동의 변화를 고려하게 된다.

셋째, 북·러 밀착 구도에서 파생된 중국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파고드는 틈새 외교의 복원이다. 현재 베이징은 북·러의 밀착이 초래할 동북아 내 진영 대립의 격화와 자국의 전략적 소외감을 경계하고 있다. 이 지점을 포착하여 한·중 고위급 안보 대화와 외교장관 채널을 긴급히 재가동해야 한다. 북핵 노선과 북·러 밀착이 초래하는 한반도의 불안정이 중국의 핵심 국가 이익인 '안정적인 현대화 여건 조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점을 데이터와 전략적 논리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

동북아의 유동적인 세력 균형 속에서 평화는 결코 도덕적 선언이나 외교적 말의 성찬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오직 철저히 계산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지전략적 공간을 실리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냉철한 현실 감각만이 국익을 수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