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1-24
최은미(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기획자 註] 오늘날 동북아 국가들 간의 지역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지정학적 문제, 북핵문제, 역사와 영토문제 등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는 보다 높은 수준의 지역협력으로 나아가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국가들은 꾸준히 지역협력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지역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상생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북아 국가들 간의 지역협력 강화를 위해 한국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JPI PeaceNet은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의 기고문을 통해 동북아 지역협력의 미래와 한국의 역할, 비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1.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동북아 지역협력 동북아 지역협력의 필요성

동북아시아는 역사적, 경험적으로 지역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이다. 역내 협력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수많은 논의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못하였고, 특히,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체제는 부재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들이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역내 국가들 간 상이한 정체성,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 및 접근방식의 차이, 역사 및 영토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최근 국제정세가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주장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북아 국가들 간 협력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곧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국제질서 논의의 주된 흐름이 인도-태평양 지역, 미중경쟁 등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역내 질서 구축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 논의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는 것만큼 역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협력을 통해 갈등을 방지하고, 역내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동북아 지역은 북한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역사 및 영토 갈등 등으로 인한 양자갈등이 다자간 협력을 저해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갈등을 해소하고,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협력의 공간을 확대하여 역내 국가들이 공존·공영·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 기후변화, 미세먼지, 보건 등 국경을 초월하는 비전통안보, 인류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안보 분야의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하지만 협력의 경험이 많지 않은 역내 국가들은 공동의 위기상황에서도 불신과 반목, 각자도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라 위기 극복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내 공통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의 습관을 만들고, 협력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 그렇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동북아 지역협력 동북아 지역협력의 이상과 현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의 질서를 확립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종식되며 갈등과 대립의 국제질서에서 통합과 화합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남에 따라 제안된 노태우 정부의 「동북아평화협의회」, 이후 김영삼 정부의 「동북아안보대화」, 김대중 정부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6개국 선언」, 노무현 정부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이명박 정부의 「신아시아구상」,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이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와 동북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 구상을 시행하고 있다([표1] 참조). 이와 같은 지역협력 구상을 통해 한국 정부는 역내 갈등을 해소하고, 초국경적 문제를 해결하며, 우리 외교의 외연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북아지역은 협력체제가 구축되지 않았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환경과 북핵문제, 서로 다른 정체성, 역사와 영토문제 등 협력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지역협력 혹은 다자협력에 대한 낮은 정책적 우선순위와 무관심이 협력을 증진시키기 어려운 요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듯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한미·한중·한일 등‘양자’관계는‘다자’관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또한, 역내 국가들이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대립 사안이 ‘협력’ 사안보다 더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관심 속에 지역협력에 대한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도 높게 자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협력과 다자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곧 한반도 혹은 동북아 지역이 직면한 주요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처럼 주변국들과의 관계 강화 속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속에 동북아 협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정권에 따라 북한문제를 다루는 접근방식의 차이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지역협력은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간 신뢰와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정책 시행의 가시적인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결국 지역협력은 하지 않을 수 없고,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시급성이 높아 당장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부정적 영향 혹은 파급효과가 크지는 않은 사안으로 여겨지게 된다. 다시 말해, 역내 위기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본질적 혹은 필수적 수단이 아닌, 추가적 혹은 보조적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국가의 한정된 외교역량과 자산을 쏟기에는 지역협력 정책이 양자 및 갈등을 다루는 정책보다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는 이유이다.

 

  1.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해야 하는 동북아 지역협력 동북아지역협력의 미래와 한국의 비전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동북아 지역협력은 여러 제약요인으로 인해 원활한 추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가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결,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질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작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역내 다양한 현안 해결에 급급하여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전략, 그리고 한국의 지역구상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협력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지역협력 추진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역협력은 우리 외교의 지역구상, 외교전략과도 맞닿는 것으로 당장 직면한 현안 해결보다 보다 높은 단계의 논의이다. 당장의 가시적인 정책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국가전략의 일환으로서 지속적인 논의의 심화와 담론 형성이 필요한 사안인 것이다. 이는 경제·문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여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도 이어진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성을 갖고 시행해 나갈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을 시도하고, 기존까지 소홀히 했던 동북아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과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권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추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행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표1]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탈냉전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동북아지역의 지역구상 비전을 내 놓았지만, 대부분의 구상들이 구상에 그쳤고, 정권교체기마다 그조차 변화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매 정부마다 새로운 이름을 내세웠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전 정부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책의 방향성마저 흔들린다는 데에 있다. 정권 교체에 따른 명칭 변경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한국외교가 역내 지역질서 형성을 위해 지향하는 방향성과 외교의 정체성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외교의 방향성, 한국이 바라는 동북아 질서 구현을 위한 보다 진지한 고민 하에 정책추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행전략을 구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이 과정에서 “북한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정책추진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차별성을 갖는 방법이라 여겨진다. 북핵문제가 역내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이며,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역내 다양한 지역협력 사안을 반드시 북핵문제와 연계시키거나 궁극적 혹은 필연적으로 북핵문제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목표를 가질 필요는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했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이 전통안보 분야의 협력으로 확산되는 스필오버 효과는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권 변화에 따른 정책의 변화가 큰 사안이 북한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문제와의 연계는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북한문제는 이미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부처 및 부서 등이 있어 업무가 중첩되거나, 유사한 정책들이 이미 많아 시행되고 있어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역내 다양한 사안에 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북한 이슈로 인해 다른 사안이 영향을 받는 현상이 발생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비전통안보협력이 전통안보협력만큼 중요하고, 전통안보협력만큼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하에 부단히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연속성을 확보하고, 시행착오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협력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까지 한국은 역내 지역협력을 위한 촉진자, 균형자 등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협력을 위한 의제 선정과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역할은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까지 역내 공통의 문제를 협력의 장에 제시한‘과제공유국’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를 중심으로 공통의 의제를 발굴하여 주변국과 함께 논의하는‘과제선도국’으로 발돋움하여 협력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주도하고, 의제별 소다자협력 등의 형식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공동의 의제를 개발하고, 이 과정에서 역내 지역협력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발신하며, 기후변화 등 주요 의제에 대한 협력 논의를 주도하며, 주변국의 지지와 동의, 공감과 호응, 그리고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와 영향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경쟁 속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질서 혹 한국의 외교입지 선정, QUAD, AUKUS, Five Eyes 등 새롭게 부상한 협력체제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 속에서‘동북아 지역협력’이라는 전통적 의제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역내 평화와 안정이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사항이자, 한국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역내 다양한 갈등 현안 속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지만, 역내 어떠한 협력체계를 만들고, 어떠한 지역질서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김인서 연구보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시간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외대 강의교수, 현대일본학회 및 한국국제정치학회 편집이사, 한국유엔체제학회 홍보간사, 세계일보 오피니언 정기필진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로는 『외교의 부활』(2021, 공저), 『Issues and Perspectives in The Korean Peace Process』 (2021, 공저), 『스가(菅義偉) 내각 출범을 통해 본 일본의 정치변동과 향후전망』 (2020), 『국가정체성과 한중일관계』 (2020, 공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왜 사라졌을까? 동북아 다자협력을 위한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도전과 한계” (2020), “한일 갈등관리메커니즘의 역사적 전개와 구조적 변용” (2020)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