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2-09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교)

[기획자 註] 윤석열 정부의 출범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달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 또한 한일관계 회복과 한미일 동맹의 강화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내비쳤다. 한미일 서로의 이익과 외교적 목표, 지역질서에 대한 구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계를 재정비할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제주평화연구원은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의 글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방일의 내용을 비교 분석하고 그 시사점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keryu@jpi.or.kr)]


들어가며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은 도쿄에서 개최되는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쿼드(QUAD)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는데 이를 이용해 갓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다. 한일 양측으로부터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순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 번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일본 언론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고, 한국 언론에는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고 해서 미국에게 있어 일본보다 한국이 더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고 각각 답변했다.

일본에 대한 대항 의식을 종종 드러내면서도 어떻게 보면 한국을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일본을 경시한 문재인 정권을 대신해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 윤석열 정권의 등장으로 제대로 된 정상회담조차 개최되지 못하던 불편한 한일관계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14개월 된 ‘정치신인’이라는 점, ‘여소야대’ 국회라는 점, 대선에서 0.7%라는 근소한 표차로 간신히 이겼다는 점 등에 기인해 윤석열 정권이 ‘약한 정권’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이미 확정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정부와의 ‘약속’을 윤석열 정권이 어떻게 양립하고 존중할지, 쉽지 않은 과제이다. 낙관은 금물이다.

단, 한일관계 분위기만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국 외교가 변함에 따라 외교정책을 둘러싼 한미일의 정책공조와 안보협력의 진전이 한일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방일은 이러한 한국 외교의 변화, 그리고 외교정책에 있어서 한미일, 특히 한일이 가까워졌음을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방일을 우선 비교한 후 방한과 방일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겠다. 이렇게 ‘비교’와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방일이 인도 태평양의 국제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한일의 관점에서 고찰하겠다.

1. 바이든 외교란

우선 논의의 전제로서 바이든 외교의 특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성이 강하기도 하지만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트럼프 외교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두 차례 혹은 세 차례에 걸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역대 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체제를 내놓았다[1]. 다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반면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바이든 행정부는 과연 어떤 외교정책을 선택할지, 그리고 그 속에서 대일 정책, 대한 정책, 대북 정책, 대중 정책을 어떻게 구상하고 펼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우선 트럼프 외교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라는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반면 바이든 외교는 ‘동맹 중시’를 내세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동맹국은 물론 여타 국가에도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 정부의 경우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평가가 의외로 높았다.

우선 일본에서는 적어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한 개인적 신뢰관계를 앞세워 동맹국 중에서도 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에서 시작된 ‘인도 태평양’ 개념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2].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함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관여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높다[3].

이 시기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부 간 한일관계는 한국의 사법부 판단에 대한 대응과 일본의 대한 수출관리의 변경 등을 놓고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로,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재자의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일 양 정부는 각기 다른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와 평가가 높았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 때도 트럼프 행정부의 자의적 행보에 난감해하던 한일 양국 사회에서는 정권교체 대망론(待望論)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창출에 대한 기대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에서 패배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다는 점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가 어느 정도 계승될 것으로 예상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리밸런스(rebalance)’,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내세우며 아시아 중시 자세를 보였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적어도 전반기에는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중국에게 공격적 외교를 허용했다는 비판이 동맹국인 일본 등에서 제기됐었다[4].

당초에는 트럼프 외교와 비교하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바이든 정부는 ‘협력’, ‘경쟁’, ‘대항’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눈 대중 정책을 제시했다[5].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행동에 대해 일정한 이해를 보이며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 나선 미국∙유럽∙일본 등과 선을 긋기도 하여 중국에 대한 대항 자세는 오히려 강화됐다. 게다가 당초 대북 정책은 중국과의‘협력’분야라며 북한에 대한 ‘잘 조율된 실용적인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선택하겠다며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트럼프 행정부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과는 다른 자세를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고 오히려 2022년에 들어서자 그 동안 자제했던 ICBM 발사를 거듭하면서 핵실험 재개 의지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유엔 안보리의 ICBM 발사 규탄 결의안에 찬성했던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반대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중∙러와의 사이에서 대북 정책 차이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이처럼 바이든 외교가 ‘신냉전’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재개, 이를 규탄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입장 등으로 인해 당초 다른 여러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던 대중 정책에서 ‘협력’보다는 ‘경쟁’, ‘대항’이라는 측면이, 그 중에서도 ‘대항’이라는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나아가 군사안보 분야뿐 아니라 기술을 포함한 경제안보 분야로까지 경쟁, 대항의 측면이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체제 가치관, 이데올로기의 차이도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당초에는 설사 미중 대립이 심화되더라도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중국 경제가 갈등 완화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또 ‘혁명 수출’을 지향했던 냉전기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자신들의 체제 이데올로기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념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 경제, 기술, 이데올로기라는 다방면에서 대립이 심각해지고 있다.

2. 방한 성과문재인 대통령 방미와의 차이점

문재인 정부도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2021년 5월 방미 때 한미 공동성명에서 이미 한 발짝 내디뎠다. 중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공동성명에 명기한 것이다[6]. 중국에서 보면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 문제는 ‘국내 문제’라는 방침인 만큼 한미 공동성명에 이 문제가 명기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때 재벌 총수를 대동하여 대미 투자 등을 약속함으로써 미국에서도 환대를 받았다. 이는 직전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방미가 비교적 조용했던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미국에게 있어 한국의 경제력, 기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등불이 꺼져가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관여를 확보하기 위해 대미 투자, 기술협력뿐 아니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대만해협’ 명기까지 단행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발표된 한미 공동성명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국을 언급하지는 않고 ‘대만해협’을 명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공동성명과 같은 셈이다.

그러나 2021년 공동성명과 차이점도 보인다. 무엇보다 첫째, 그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한국도 미국의 요청에 응해 대러시아 제재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둘째, 대북정책에 관한 기술(記述)이 변했다는 점이다. 2021년 공동성명에서는 바이든 행정부를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보였다. “우리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같이 이전의 남북간 그리고 북미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7]이 명기되었다.

반면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한문제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강조되었으며 이에 대응해야 할 한미 안보협력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8]이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본격적인 재가동과 함께 한국이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한 가운데 이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과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을 한국이 중개한다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도식을 폐기하고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가 공동 대응하고 억제하는 데 무게가 실리게 됐다.

셋째, ‘인도 태평양’의 위상이 변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인도 태평양’에 대해 일관되게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는 미일을 중심으로 한 ‘대중포위망’적인 측면을 가질 수밖에 없어,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입장에서는 적극적인 관계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QUAD와 관련해서도 보건위생이나 기후변화 등 비전통적 안보에만 관여한다는 입장으로 거리를 뒀다. 지난번 공동성명에서도 ‘인도 태평양’을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QUAD 가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프레임워크를 수립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에 지지를 표명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환영하였다”[9]와 같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단어가 명시됐다. 그리고 이번 공동성명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이며 한국은 미일 등과 함께 창립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5년 중국 주도로 설립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미일 등이 신중론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이 창립 멤버로 들어간 것을 보면 그 동안 한국 경제에서 대중관계 위상이 크게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이상과 같이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이미 미중 대립이 심화되면서 선택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의 정권 교체를 반영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 그리고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에서 한국 외교가 변화했음을 두 개의 한미 공동성명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3. 방일 성과: 방한과의 차이점

그렇다면 한국 방문 후 방일 때 이뤄진 미일 정상회담, 미일 공동성명은 한미 정상회담 및 한미 공동성명과 같은 것이었는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방일은 거의 공통된 목적을 가진 것인가?

우선 공통된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군사적 위협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 때는 자칫 괴리가 두드러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본적인 일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0].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서고 북한의 비핵화를 경시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통렬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기 때문에 일단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한미일의 안보협력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존 한미공동성명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한편, 구체적인 비핵화의 주체가 북한임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일 공동성명도 마찬가지다.

둘째, 그 동안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다. 대러시아 제재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초기 움직임은 약간 소극적이었고, 또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의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초보정치인이어서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수 없었다’는 실언도 있었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는 대러시아 제재에 국제사회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도 그 입장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한미공동성명과 미일공동성명을 비교하더라도 이 문제에 관한 기술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러시아 제재에 관해 한미일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한미공동성명에도 미일공동성명에도 미국이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한국과 일본에 제공한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나와있다. 그 동안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본격 재가동에 직면하면서 한일 국내에서는 ‘핵공유(nuclear sharing)’논란이 제기됐다. 이는 북한 핵 위협에 노출된 한일에게 미국의 핵 억제력이 신뢰할 만한지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이후 미국의 ‘확장 억제’에 불안을 느끼는 한일을 설득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미국에 있어서의 대일 정책과 대한 정책은 거의 겹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고 미중 대립의 틈새에 끼여 있으면서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 동등한 취급을 받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공동성명과 미일공동성명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일공동성명에서는 중국을 지목해 비난하고 있는 반면 한미공동성명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이 중국의 위협 증대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를 요구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개념을 도입한 반면 한국은 미중 간의 ‘전략적 모호성’에 따라 미중 양자택일을 강요 받는 것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고 했다. 고조되는 미중 대립의 심화, 그리고 보수 정권으로의 정권 교체로 한국 외교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슷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둘째,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한미, 미일 모두 기존 안보에 관한 군사동맹 외에 경제안보에 관한 동맹, 기술에 관한 동맹이 중시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미일에서는 기존 군사동맹의 성격이 강조되는 반면 한미에서는 경제동맹, 기술동맹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이는 군사안보 측면에서 미일동맹은 상당 정도 글로벌 동맹이 된 반면, 한미동맹은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면서도 여전히 한반도 유사시 대응에 한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국의 경제력,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반도체 등 전략물자와 기술에 있어 대중관계가 긴밀해지면서 미국에게 있어 한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한미 공동성명에서도 미일 공동성명에서도 별로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가 한일관계이다. 한미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관해 논의된 것으로 보이나 이것이 공동성명에 명시되지는 않았다. 제3국과의 관계를 공동성명에 명시하는 것에는 신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한일 간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한일의 상대적 비중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한일관계가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변화되는 가운데 설령 관계 개선의 인센티브가 작용한다고 해도 타협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11].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의 대미 외교를 둘러싸고

한편 여러 분야에서 한일 대칭성은 커진다. 이전 진보정권 하에서는 그러한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할 외교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의 측면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보수 정권으로 교체됨에 따라 나아가야 할 외교 선택이 비슷해질 가능성이 커진 만큼 대칭화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번 한미공동성명과 미일공동성명에 공통점이 매우 많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대미 외교에는 기존에도 상당 부분 공통점이 존재했지만, 한일이 대칭 관계가 될수록, 그리고 미국에 있어서 한일의 비중이 동등해질수록 공통점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라는 측면도 더욱 부각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에게 한일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상대로 간주되는가 하는 것이다. 냉전시기에는 미국은 중심(center), 한국은 전초(outpost), 일본은 후배지(hinterland)로서 반공자유주의 진영을 구성하는 한일이 분업체제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선진 민주주의국가화로 인해 한일 간에는 분업관계뿐만 아니라 경쟁관계도 부각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 속에서 어느 나라가 질적으로 더 우수한 사회를 형성할 것인지, 나아가 국제사회에 더 의미 있는 공헌을 할 것인지, 향후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일 양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 수반되는 부작용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둘러싸고 한일이 경쟁함으로써 빚어지는 부작용이다. 본래라면 동맹은 ‘운명공동체’라는 성격을 갖지만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합리적인 계산을 전제로 한다. 미일도 한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을 둘러싼 한일 간 경쟁이 과도해지면 양국이 필요 이상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될 리스크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군 주둔비 분담 문제 등이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방일를 통해 북한 문제에 직면해 있으면서 심화하는 미중 대립 사이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하는 한일 간에는 더욱 공통점이 부각되었고 이에 기인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생활하는 동북아, 인도 태평양에서 어떠한 질서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경쟁적 협력도 기존보다 더 요구 받을 것임을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긴장관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경쟁적인 협력을 이룰 것인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 정식 북미정상회담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지만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2] ‘인도 태평양’이라는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본 외무성이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대응을 염두에 두고 미국을 관여시킬 목적으로 고안하여 미국에 ‘영업’한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에 대해서는 일본 외무성 웹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mofa.go.jp/policy/page25e_000278.html( 최종 열람일 2022년 5월 30일)

[3] JTBC “대담 문재인의 5년 제2회”(2022년 4월26일 방영) https://tv.jtbc.joins.com/replay/pr10011457/pm10064724/ep20161297/view

[4]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에 관한 평가에 대해서는 아래의 문헌을 참조하기 바란다. 쿠보 후미아키(久保文明)·타카하타 아키오(高畑昭男) ·도쿄 재단「현대 아메리카」프로젝트 편저『アジア回帰するアメリカ 外交安全保障政策の検証(아시아로 회귀하는 아메리카 외교 안전 보장 정책의 검증)』NTT 출판, 2013년.

[5] 바이든 외교에 대해서는 아래 문헌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하시 료(佐橋亮)·스즈키 카즈토(鈴木一人) 편『バイデンのアメリカ その世界観と外交(바이든의 아메리카 그 세계관과 외교)』도쿄대학 출판회, 2022년.

[6] 2021년5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 한미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아래의 한국 외교부 웹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mofa.go.kr/www/brd/m_3973/view.do?seq=367942(최종 열람일2022년5월30일)

[7] 2022년5월 바이든 대통령 방미 때 한미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아래의 한국 외교부 웹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mofa.go.kr/eng/brd/m_5674/view.do?seq=320722&page=1(최종열람일2022년5월30일)

[8] 위와 같음.

[9] 위와 같음.

[10] 미일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아래의 일본 외무성 웹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347252.pdf(최종 열람일2022년5월30일)

[11] 비대칭에서 대칭으로라는 한일관계의 변화에 관해서는 다음 문헌을 참조하기 바란다. 기미야 다다시(이원덕 옮김) 『한일관계사: 한일 대립은 언제 끝날 것인가 과연 관계 개선은 가능할까』AK, 2022년.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수연 연구원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교)

기미야 교수는 1960년생이며 도쿄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그는 냉전기뿐만 아니라 탈냉전기를 포함해 한국정치와 외교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발전해 나갔다.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서 재직중이며 그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친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역임했다. 또한 도쿄대학교 현대한국연구소와 한국학연구소 소장도 역임했다.

일본어 저작으로“한일관계사”(오히라마사요시상 특별상 수상) “한국 경제발전과 민주화” “국제정치 속의 한국현대사” “내셔널리즘으로부터 보는 한국 북조선 현대사”가 있으며 한국어 저작으로 “박정희 정부의 선택: 1960년대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과 냉전체제” “한일관계사”등이 있다. 일본어 근간으로 고 김대중대통령의 평전과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정치에 관한 분석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