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2-17
강유덕 (한국외국어대학교 Language and Trade 학부)

[기획자 註]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침공은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지만 그와 달리 러시아는 아직도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에서의 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그 여파는 유럽전역에 미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수요의 상당부분을 러시아로부터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럽국가들이 대(對)러시아 제재를 가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가 유럽으로 보내는 에너지 공급을 제한하자 유럽국가들은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국가들은 지금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리고 유럽국가들이 보이는 행보가 (마찬가지로 에너지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이번 JPI PeaceNet에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유덕 교수의 글을 통해 유럽연합의 탈러시아 에너지 전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획: 정승철 부연구위원(scchung@jpi.or.kr)]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여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의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넓은 동유럽 지역에는 본래 지정학적 긴장 관계가 얽혀있다. 발칸반도는 다양한 민족 간의 갈등과 통합, 해체가 거듭된 공간이며, 흑해 지역은 유럽과 구 러시아의 영향력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진행된 세계화는 국가 간 두터운 의존관계를 만들어냈다. 수면 아래 있는 긴장 관계 속에서도 경제적 교류는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제 유럽-러시아 관계, 더 나아가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긴장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공식적인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외연이 우크라이나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점점 러시아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해 오는 서방 국가들에 대해 특수한 안보 인식을 가진 러시아가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은 NATO와 EU의 동진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우크라이나는 침공당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EU에 가입신청을 했고 불과 4개월 만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받았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70년 이상 유지해온 외교적 중립노선을 포기하고, 5월에 NATO 가입을 신청했다. 현재 대부분의 EU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발트 3국과 중립국 전통의 북유럽 국가들은 서슴지 않고 군사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불과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유럽과 러시아 간의 전면적인 대립은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유럽은 본래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지역이다. 노르웨이, 영국 등이 북해에서 원유를 생산하지만, 유럽 전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EU는 총에너지 수요(Energy mix)의 25% 정도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해 왔다. 한국의 총에너지 수요에서 중동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다. 유럽연합(EU)은 현재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대폭 축소하고, 수년 내에 아예 의존도를 없애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이다.

EU와 러시아: 에너지의 수요공급자 관계

EU의 에너지 의존율을 장기적으로 57~58% 수준이다. 즉 전체 에너지 수요의 40% 이상을 외부로부터 수입한다. 오랜 기간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해 왔는데, 그 비중은 2019년 천연가스가 41%, 석유가 27%, 석탄은 47%에 달한다. 이 중 실질적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에너지원은 천연가스이다. 가스관 등 운송시설을 고려할 때 경로의존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유럽 경제는 러시아의 에너지 없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러한 물량을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수입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로서도 유럽은 대체가 어려운 시장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석유는 49%, 천연가스는 74%에 이른다. 이러한 불가분의 수요-공급자 관계는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경제 관계가 유지되는 배경이 되었다.

EU-러시아 무역이 에너지 수입 위주의 구조를 갖게 된 것은 동서 냉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과 이념적,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미국과 달리 지리적으로 소련 및 그 위성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서유럽은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다. 서유럽의 정부들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에서 소련과 협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1] 마침 등장한 소련의 천연가스는 동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이 되었고, 1960년대 말부터 소련과 서유럽 국가 간에 가스 공급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 협상은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시작된 것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 소련의 천연가스는 노르웨이산 천연가스에 비해 저렴했고, 중동 및 북아프리카산 에너지원보다는 정치적 위험도 적었다. 마침 외화획득이 필요한 소련은 서유럽에 천연가스 수출을 희망했다. 이에 가스 매장지역에 대한 개발과 국내 신규 파이프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가스전을 활용했으나, 이후 서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추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낮은 기술력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산 파이프와 승압 장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냉전 기간 중 소련이 정치‧외교적 목적으로 서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 공급이 차질을 빚은 경우는 소련 내의 기술적 문제가 대부분 원인이었다. 반면에 구소련이 붕괴한 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이 독립하고, 이 지역의 역학적 관계가 변하면서 ‘경유국 리스크’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경제적 상황이 악화된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스 대금 체불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Gazprom)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반면에 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의 상당 부분이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급 조치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공급 차질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로서는 체불 조치에 대한 대응이지만, 에너지 안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 이 조치는 러시아의 정치적 압박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경유국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독일은 아예 러시아-독일 간의 직통 가스관인 노드스트림을 설치했고, 러시아 위험 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구소련 그리고 러시아가 정치‧외교적 목적으로 유럽을 압박하고, 그 결과 대서양 동맹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노드스트림 1 계획에 반대했고, 오바마 행정부도 노드스트림 2 계획에 반대를 표시했다. 폴란드와 발트 3국도 우려를 표시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프로젝트는 독일이 이 국가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전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강력하게 비판했다. EU 탈퇴 후 2년 차에 접어든 영국은 더 적극적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EU는 총 6차례에 걸쳐 대러시아 제재를 발표했다.[3] 주목할 점은 이 제재의 일부로 포함된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이다. 2022년 3월 8일 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 ‘REPowerEU’를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EU는 2022년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중단하고, 늦어도 2030년까지는 천연가스 수입조차 중단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과 수요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는데, 공급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중동, 미국 등으로 수입처를 전환한다. 중기적으로는 풍력, 태양광, 바이오 메탄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린다. 아직 적극적인 계획은 없지만 원자력 발전을 늘릴 수도 있다. 또한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고자 하는데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거나, 고통을 감내하고 화석연료 소비량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전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과 2주 후에 발표된 것이다. 따라서 급조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상당 부분의 계획은 EU가 추진하는 유럽 그린딜의 연장선에 있다. EU의 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 5% 미만이었지만, 2020년에는 22.1%까지 증가했다.[4]

<표 1> EU의 에너지 의존도 완화계획(REPowerEU)

주: bcm은 천연가스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10억 입방미터를 의미함.

출처: European Commission (2022), p. 6; 강유덕, 「새로운 냉전체제 우려 속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 재편 계획」, 『통하는 세상 통상』, 제122호 (2022), p.26.

REPowerEU는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중단하기 위한 로드맵으로, 경제적 효율성(비용)을 배제하고 안보적 요인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정치적 결단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불과 보름 만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서둘러서 준비된 것이다. 이러한 급박함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에 대해 회의적인 기존의 응축된 시각이 표출된 것이다. 반면에 EU가 추진해 온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점도 있다. 첫째, REPowerEU는 2021년 10월에 EU 집행위가 발표한 에너지 가격에 대한 입법안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다. 당시의 입법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활동의 재개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수급 문제, 빈곤층 지원 등 회원국의 국내외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2021년 10월에 발표된 에너지동맹에 대한 6차 보고서는 에너지 가격에 관한 입법안을 언급하고 있다.[5] 둘째, REPowerEU는 유럽 그린딜을 구체화한 탄소 감축 입법안 ‘Fit for 55’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으며, 사실상 탄소 감축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즉 EU는 러시아에 대한 높은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하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기후 대응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REPowerEU는 기존에 제시되었던 에너지 정책과는 큰 차별점이 있다. 기존의 정책은 그 목적이 기후변화 대응(환경), 에너지 효율 증대(비용), 에너지 빈곤 축소(포용) 등 복합적인 목적을 가졌던데 반해, REPowerEU는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 수립된 계획이다.

EU러시아 에너지 관계의 급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제 겨울에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에너지 수급 현황은 어떠한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U는 REPowerEU의 후속 조치로 다양한 에너지 대책을 발표했다. 가령 지난 3월 23일 ‘가스 저장 규정(Gas Storage Regulation)’을 통해 11월 1일까지 각 회원국이 가스 저장 용량의 80%를 채울 것을 정한 바 있다. 또한 가스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EU 에너지 플랫폼(EU Energy Platform)’을 통해 EU 차원의 공동구매를 제안했고, 가스 사용을 15% 감축하는 방안(Save Gas for a Safe Winter)을 발표했다. 전력에 대해서도 사용량을 최소 10% 감소하기 위해 각 회원국이 가격을 조정하도록 제안했고,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관련 기업의 초과 수입을 환수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했다. 러시아산 PNG를 대체하기 위해 LNG 터미널 구축은 가속도가 붙고 있다. EU는 코로나19 팬데믹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경제회복기금 8,069억 유로(한화 1,119조 원) 중 상당 부분을 에너지/기후변화 분야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정했고, 각 회원국은 에너지 가격의 급등에 대처하기 위해 별도로 6,740억 유로(한화 935조 원)를 지원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EU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러시아는 EU 회원국 중 13개국에 대해 가스공급의 중단 또는 축소했다. 5개국(불가리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핀란드)에 대해서는 아예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EU는 2022년 10월 중순까지 에너지 저장용량의 91%를 확보했다. 본래 목표였던 11월 1일까지 80% 달성을 상회한 상태이다.[6]

화석연료별로 살펴보면 2022년 3월부터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은 급감하는 추세를보였다. 에너지 가격의 급등을 고려하여 수량(무게) 단위로 살펴보면 석탄, 석유, 천연가스 모두 수입량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2022년 3~8월까지 기간 중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전년 동기간 대비 각각 29.1%, 11.5%, 36.4%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최근 자료인 2022년 8월에는 석탄과 석유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2.5%와 38.2% 감소했다. 반면에 러시아를 대신해서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했다.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과거 대러시아 수입의 1/3에 못 미쳤지만 가파르게 증가하여 2022년 5월부터는 대러시아 수입량을 상회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와 영국으로부터의 수입도 급증하면서, 거의 대러시아 수입 물량에 육박하고 있고, 조만간 대러시아 수입량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은 2021년 총수입 중 41%에서 2022년 9월에는 9%까지 감소했다. 비중이 작았던 LNG 가스는 이제 32%를 차지해 가스 수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7]

<그림 1> EU의 에너지 수입 현황 추이(단위: 백만 톤)

주: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는 HS 4단위 기준으로 각각 2701, 2710, 2711을 의미함.

출처: Eurostat. https://ec.europa.eu/eurostat/data/database (검색일: 2022. 10. 30)

EU의 대러시아 수출도 급감하고 있다. 러시아에 있어 EU는 1위의 무역 상대국이다. 러시아 총무역은 35.9%가 EU와의 무역인데, 2위인 대중국 무역의 2배 규모이다. EU의 대러시아 수입이 에너지 중심으로 급감했다면, 대러시아 수출은 제조업 분야에서 감소세가 확연하다. 2022년 3~8월(6개월) 기간 중 EU의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도 동기간 대비 48.3% 감소했다. 모든 품목군에서 감소하였지만, 특히 EU의 대러시아 수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기계 및 운수장비(SITC 7)’는 수출이 70.5% 감소했다. 거의 모든 회원국에서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EU의 대러시아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독일의 수출은 감소 폭이 더 크다. 독일의 대러시아 수출은 54.4% 감소하면서 전년 동기간의 절반 이내로 줄었다. 독일의 기계 및 운수장비 수출은 74.5억 유로에서 19.0억 유로로 74.4% 감소했다.

<그림 2> EU와 독일의 대러시아 무역 추이(백만 유로)

주: 품목 구분은 SITC 1단위임.

출처: Eurostat. https://ec.europa.eu/eurostat/data/database (검색일: 2022. 10. 30)

이처럼 EU-러시아 경제 관계의 급변은 양측에 큰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고 있음이 자명하다. 유로지역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9월에는 최초로 두 자리 숫자인 10%를 기록했다. 식량과 에너지에 있어 외부 의존도가 높은 발트 3국에서는 이미 7월부터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어섰고, 폴란드와 체코 등 다른 중동부유럽에서도 물가상승률은 15%를 넘어섰다. 전례 없는 고물가 현상은 과잉 수요가 아닌, 공급충격에 의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협소하다. 주요 전망기관들은 유럽 주요국의 경제성장률을 계속 하향 조정했다. 모든 국가의 상황이 비슷하지만, 독일의 성장률 하락 폭이 가장 크다. 2022년 2분기 독일의 분기별 성장률은 0.0%를 기록했고, 에너지 공급과 물가 여부에 따라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은 아예 –0.1% 성장을 기록했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대규모의 감세를 바탕으로 경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급락과 영국국채 투매 현상 등 경제충격에 직면했다. 결국 취임 6주 만에 사임하면서 영국 최단기 총리라는 불명예를 갖게 되었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더 심각하다. IMF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의 물가상승률은 21.3%에 도달했고, 3.4%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8] 2023년에도 –2.3% 성장을 기록하면서 1990년대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럽산 장비 및 소재 수입의 급감한 점은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산업 전반에 걸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대한 시사점

유럽-러시아 관계의 급변과 EU의 에너지 전환계획은 한국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유럽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서 러시아가 갖는 역할 때문이다. EU의 탈러시아 에너지 계획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에너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유럽-러시아 관계가 급변하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에너지 안보에 관한 관심은 당분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대외무역과 에너지 해외 의존에 있어 독일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다른 EU 회원국에 비해 독일의 경제성장률 하락이 더 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급과 수요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을 통해 적절한 에너지 믹스를 구성하고, 대외적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주요 에너지 수출국과 상호 필요에 의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외환경의 급변에 대비해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긴급 확보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유사 입장국과 에너지 공급 안보를 위한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안보가 부각된 점은 최근 수년간 심화하고 있는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더욱 자극할 소지가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이며, EU도 전략적 자율성을 표방하면서 역내에 산업생태계 조성을 시도 중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공급망의 내재화가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와 같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가 부각될 경우 많은 국가들은 공급망 취약성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로드맵과 정책 의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층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산업통상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유럽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려는 방안으로 기존의 기후변화 대책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환경규제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EU 대외정책의 패턴을 감안할 때 통상정책 등을 통해 제3국이 따르도록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내 경제구조의 저탄소화는 미룰 수 없는 추세이며, 생산과 소비에 모두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 효율성을 증진하게 시키는 방안으로 에너지 소비의 효율화를 높여야 한다. 넷째, 국제 에너지 시장의 혼란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신흥국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공급충격의 장기화 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수입 의존형 개발도상국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대외채무가 증가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 다변화를 위해 신흥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한국 기업으로써는 국가 단위의 거시경제 위험에도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1] 이성규‧최영림, 「냉전시기 소련-서유럽 간 가스교역 추진 배경과 시사점」, 『세계에너지현안 인사이트』 (2015), p. 2.

[2]이성규‧최영림(2015), pp. 23-24.

[3] European Commission, REPowerEU: Joint European Action for More Affordable, Secure and Sustainable Energy, COM(2022) 108 final, March 8, 2022 (2022).

[4] European Commission, State of the Energy Union 2022, COM(2022) 547 final, October 18, 2022 (2022). p. 3.

[5] European Commission, State of the Energy Union 2021. Contributing to the European Green Deal and the Union’s Recovery, COM(2021) 950 final, October 26, 2021 (2021).

[6] European Commission (2022). p. 2.

[7] European Commission (2022). p. 3.

[8]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orld Economic Outlook: Countering the Cost-Living Crisis, October (2022).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서연 인턴

강유덕 (한국외국어대학교 Language and Trade 학부)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유럽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Language and Trade 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22~23년의 기간에는 미국 앤아버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의 유럽학 연구센터(Center for European Studies)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제무역, 개발경제, 유럽연합(EU)의 경제정책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통상정책, 경제통합 및 유럽경제에 관한 비교연구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공사(KOTRA),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자문 활동을 해 왔으며, 현재 국제학술지 Asia-Pacific Journal of EU Studies의 편집인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