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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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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담론] FTA 논의를 통한 아·태 지역 평화 구축과 한국의 역할
등록일
2021-09-29
조회수
11

I. 서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중심의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상 질서를 선호했던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은 1997-98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은 양자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지역경제협력체 형성 논의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는 서구 유럽과 북미 지역의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과 같이 다자적 논의의 형태가 아닌, 중첩적인 양자 FTA를 중심으로 지역경제협력 논의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지역경제협력 논의는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와 같은 부작용로 인해 더 높은 그리고 더 넓은 형태의 지역경제협력체 논의의 초석으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냉전의 요소가 잔존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역내 국가들이 FTA를 경제적 최적(economic optimality)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동시에, 더욱 광범위한 수준에서 외교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성장한 경제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해 역내 다양한 FTA 논의를 이끌고 있다. 중-한, 중-호주 FTA와 같은 역내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한·중·일 FTA(China-Japan-Korea FTA: CJK FTA), 동아시아 FTA(East Asia FTA: EA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nership: RCEP) 등의 다자적 FTA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러한 논의들은, 최근 가장 큰 규모의 RCEP이 타결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자국 중심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한 중국의 움직임은 역외 국가로서 아·태 지역에서 오랜 기간 리더십을 유지해온 미국의 역할을 축소시켜 결국 경제·정치적으로 배제될 수 있다는 미국의 불안요인으로 작동하였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며 아·태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통상 질서를 이끌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 및 봉쇄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논의를 발전시켜, 미국 주도의 TPP vs. 중국 주도의 RCEP으로 가시화된 미·중 FTA 경쟁 구도가 아·태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TPP와 같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다자협력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TPP 탈퇴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중국의 불공정한 거래에 의해 야기되었다 주장하며 중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 부과와 함께 미·중 무역 분쟁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중 무역 분쟁은 통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환율 분쟁을 넘어 기술 영역까지 확대되며 결국 가치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들이 제기되었다. 정리하자면, 중국과 미국은 경제-안보 연계(economic-security nexus)를 기반으로 자국 중심의 정치·경제적 영향권의 구축을 위해 아·태 지역에서 경제적 패권 경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강대국 간 경쟁은 세계 경제 질서를 위협하며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 무역 의존국인 한국은 FTA를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교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에게 미·중 FTA 경쟁은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미·중 경쟁 사이 균형적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위험회피 즉 헤징(hedging) 전략을 기반으로 양국 모두와 양자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양국이 주도해온 메가 FTA 논의에도 적극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동맹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중국 때리기(China-bashing)’ 전략 등은 한국에게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안겨주며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및 헤징 전략의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야기한 국내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대외 통상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 아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태 지역을 넘어 국제 사회의 정치·경제적 안정과 평화는 미·중 경쟁의 부침(浮沈)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중 FTA 경쟁 하, 대표적 중견국인 한국은 국익 및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떠한 FTA 대응 전략을 전개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아래에서는 먼저 미·중 FTA 전개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FTA 경쟁의 전개 양상


동아시아는 그 오랜 열망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지역주의 논의가 발전된 지역이다. 그러나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은 지역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역외 국가들과의 양자적 FTA(e.g., 한-칠레 FTA, 일-멕시코 FTA 등) 체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외·양자 FTA는 동아시아 역내 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안보 연계를 기반으로 역내 국가들과의 다자적 FTA 논의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아세안과의 FTA를 시작으로 중국은 싱가포르, 한국 등의 역내 국가와의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CJK FTA, EA FTA, RCEP 등 다양한 역내 다자 FTA 논의를 주도해왔다.


<그림1> 아·태지역 경제협의체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통합 논의는 역외국가인 미국에 있어 그동안 지역에서 유지해온 리더십의 쇠퇴 혹은 상실이라는 위협요인으로 다가왔다. 당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아·태지역의 주요 외교 전략으로 내세우며 중국이 제외된 TPP 가입을 일본, 호주,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주요 동맹국에게 제안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봉쇄하고 아·태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통상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2015년 10월 타결된 이후 국내 비준을 기다리던 TPP는 2017년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전환을 맞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TPP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같은 해 1월 TPP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이 떠난 자리를 일본과 호주가 이끌며 TPP는 현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2018년 발효되었다.


트럼프의 TPP 탈퇴 및 2018년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미·중 무역 분쟁 등 미·중 간 양자적 형태를 중심으로 전개된 미·중 경제적 패권 경쟁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기존 정권의 소위 ‘중국 때리기’로 대표되는 공세적 대중 정책은 지속될 것이나,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기반으로 동맹 및 비동맹의 구분이 없는 공세적 접근보다는 다자적·배타적 성격의 동맹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 압박 정책이 예상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 되던 지난 2020년 11월 15일 RCEP은 9년간의 오랜 논의에 종지부를 찍으며 인도를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타결되었다. 본래 RCEP는 201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세안의 주도에 의해 제안되었으나, 실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중국은 지난 3월 국내 비준 절차도 마무리 지으며 현재 발효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RCEP은 현재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의 4개국이 비준 절차를 마친 상태로, 앞으로 남은 아세안 4개국과 비아세안 1개국이 비준을 통과하면 RCEP은 발효될 예정이다.


<그림2> RCEP vs. CPTPP
 


TPP 체결 당시 부통령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CPTPP로의 복귀할 것인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팬데믹 위기 상황 관리와 같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국내정치적 문제들에 밀려 아·태지역에서의 구체적인 통상 정책 수립 계획은 정책의 후순위에 놓여 있다. 또한 2022 중간 선거를 고려하여 다자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유무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RCEP의 타결은 2021년 1월 정부 출범 이후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는 국내 문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웬디 커틀러(Wendy Cutler)의 언급대로 경고음(Wake-up call)을 울리고 있다(Cutler 2020). 미국의 TPP 탈퇴로 인한 아·태 통상 질서 리더십의 빈자리를 중국이 RCEP 체결을 통해 메우고, 교역 및 투자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목소리들이 미국 내부 및 세계 각지에서 제기되고 있다(Haass 2017; Heydarian 2017).<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RCEP은 발효 시 전 세계 GDP와 인구의 측면에서 30%를 차지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제블록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RCEP이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지역 통합적 의미에서도 RCEP은 한·중·일 삼국이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효과를 지닌다. 물론 RCEP을 중심으로 아·태 지역의 통상 질서를 주도하기에는 낮은 수준의 시장 자유화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CPTPP와 달리 RCEP은 노동 및 환경 표준 등을 다루지 않고 있으며 서비스 및 투자에 대한 제한도 크다.


그러나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바이든의 정치적 선언을 기반으로 고려했을 때, 그리고 중국 주도의 RCEP이 체결된 상황을 감안했을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아·태 지역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한 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CPTPP로의 복귀, 한국 등의 우방 국가를 포함한 G7의 확대 버전, 혹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한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의 유사 버전, 혹은 미국-멕시코-캐나다(U.S.-Mexico-Canada: USMCA) 자유무역협정을 기반으로 인도를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버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제협력 논의체들의 공통점은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목적으로 인권, 환경, 노동 문제 등에 있어 높은 기준을 요하여 중국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힘든 경제통합 논의의 형태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아·태 지역에서의 미·중 경제 패권 경쟁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하에서도 지속될 것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양자적 형태에서 동맹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다자적 경제 통합 논의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과거 상품과 서비스 중심의 통상 질서 형성을 위한 경쟁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미·중 경제 패권 전쟁은 디지털 경제 전환과 더불어 자국 중심의 국제 디지털 통상 질서 개편을 위한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영역과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는 미·중 FTA 경쟁이 세계 경제 질서 및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아래, 대표적인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어떠한 전략적 대응으로 아·태 지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III.
·FTA 경쟁 하 아·태 지역 평화 구축을 위한 한국의 역할


G2로 대표되는 세계 양대 경제의 FTA 경쟁 아래, 한국과 같은 중견국 및 약소국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의 오랜 동맹국으로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중요한 국가인 미국과, 1992년 수교 이후 꾸준히 증가한 무역량으로 경제적 중요성과 동시에 북 핵 위기 이후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있는 중국 간 경쟁은 한국에게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부여해왔다.


일반적으로 중견국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중간적인 능력과 의지를 기반으로 특정 외교 정책을 전개하는데, 강대국간 긴장이 고조되는 경우 주로 위험회피전략 즉 헤징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강대국간 패권 경쟁이 유발하는 역동 아래, 중견국은 강성(hard), 연성(soft), 이중(double) 등 다양한 헤징 전략을 전개하는데, 경쟁을 벌이는 양국 모두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양국 모두에게 그 중견국이 중요 행위자가 될 정도의 충분한 능력을 보유한 경우. 그 중견국은 이중헤징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중 FTA 경쟁 하, 한국은 양국 모두와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양국이 주도하는 다자적 FTA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미·중 FTA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거나 축소시키기 위한 이중 헤징 전략을 전개해왔다. 다시 말해, 한국은 한미 FTA 체결 후, 중국의 제안 아래 한중 FTA 역시 체결하였으며, 중국 주도의 EA FTA 및 RCEP 논의에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미국 주도의 TPP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2004년 부시-노무현 정부 아래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한·미 관계의 복원을 위해 한미 FTA 체결 논의를 시작하였다. 8차례의 공식 협상 이후, 2007년 4월 한미 FTA는 최종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타결 직후, 한·미 양국 내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e.g., 한국의 농산업, 미국의 자동차 산업 등)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광우병 문제 등 특정 이슈들은 국내적으로 정치화되면서 비준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 FTA 역사 상 가장 오랜 기간인 4년간의 국내 비준 과정을 거쳐 2012년 마침내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


한미 FTA 논의가 시작된 직후, 중국은 한미 FTA를 통한 역내 예상되는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에게 한중 FTA 체결을 제안하였다. 이에 한국은 현재 집중하고 있는 한미 FTA 체결을 마무리 지은 후, 한중 FTA를 추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 후 한미 FTA가 체결된 약 5개월 후인 2007년 9월 한중 FTA 체결을 위한 민간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14차례의 공식 협상을 거쳐 마침내 2015년 정식 체결 후, 10개월이란 짧은 국내 비준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2월 한중 FTA 역시 발효되었다.


이러한 미·중 양국 모두와의 양자적 FTA 체결과 동시에, 한국은 미·중이 주도하는 다자적 FTA 논의에 전략적으로 참여해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주로 중국이 주도해온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전을 위한 CJK FTA, EA FTA, 및 RCEP 논의에 적극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특히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역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은 아세안+3(e.g., 한·중·일) 형태의 지역경제협력체의 형성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동아시아비전그룹(East Asia Vision Group: EAVG) 및 동아시아연구그룹(East  Asia  Study  Group: EASG) 창설 제안 등,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문제는 2010년 미국이 TPP 참여를 결정하고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참여를 제안했을 때, 한국이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며 발생하였다. 당시 한국은 한중 FTA 협상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일본과는 달리 미국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포괄적경제파트너십(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in East Asia: CEPEA)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 질서를 견제하고자 했던 상황 아래, 미국의 TPP 참여 제안은 반가운 소식이었으며 2013년 TPP 참여를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2014년 한중 FTA 타결 직후, 한국은 TPP 참여를 위해 양자 예비협상을 시작하는 등 TPP 참여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TPP에 대한 관심 표명을 환영하는 바이나, 새 참가국의 합류는 TPP 협상이 결론이 난 이후에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히며 한국의 참여를 제한하였다(USTR 2019). 결국 2015년 10월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일본을 포함한 12개국 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국내 산업 보호 문제(e.g., 미국의 자동차 산업 vs. 일본의 농업)의 극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TPP 타결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와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세번째 화살(third arrow)’로 대표되는 다양한 국내 및 국제 정치적 이익에 대한 합의점을 찾으며 성사되었다.


TPP 타결로 미·중 FTA 경쟁의 승기는 미국 측으로 기우는 듯하였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TPP 탈퇴와 2020년 RCEP의 타결은 다시 세계 통상 질서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RCEP의 서명 후, 현재 국내 비준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은 외교적 시험대에 다시 놓였다. 한국의 FTA 정책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은 과거에 비해 더욱 어려운 조건들로 가득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 경기 침제와 더불어, 2019년 미니딜(mini deal) 이후 휴전 국면으로 접어든 미·중 무역 분쟁 및 기술 전쟁의 재발 가능성,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하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로 인한 한·미·일 vs. 북·중·러 등의 신냉전 체제의 형성 가능성 등 미·중 경쟁의 평화적 해결보다 미·중 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다수의 요인이 산재해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한국이 견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는 헤징 전략을 전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위협 요인과 동시에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 먼저 과거 첨예하게 대립했던 ‘TPP vs. RCEP’의 대결구도가 어느 정도 희석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CPTPP와 RCEP에 모두 가입한 나라만 해도 <그림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7개국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바로 일본의 동시 가입이다. 게다가 일본은 예상과 달리,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지난 4월 RCEP의 국내 비준 절차를 빠르게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CPTPP로의 복귀를 확답하지 않은 현재 선제적으로 CPTPP에 가입을 준비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아·태지역의 통상 질서 주도 논의로 복귀하는 방법에는 CPTPP로의 복귀, G7의 확대 버전, 혹은 EPN의 유사 버전 등 다양한 형태와 방법들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 아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어떤 형태이든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등의 기존의 오래된 동맹국들과의 경제적 연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TPP 가입 제안을 망설이다 가입 시기를 놓쳤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제적으로 CPTPP에 가입함으로써 향후의 미·중 간 선택의 문제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부분적으로 낮출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CPTPP의 가입은 RCEP에 비해 이미 발효된 상태이기에 빠르고, 한미 FTA와 유사한 수준의 시장 개방도를 요구하기에 일본 시장 접근 측면에서 기대되는 반사 이익이 RCEP에 비해 크고, 이미 가입국 다수와 양자 FTA를 체결하고 있기에 한국이 CPTPP 가입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Schott 2021). 그러나 일각에서는 1998년 시작된 한일 양자 FTA 논의가 2005년 이후 중단된 이유 등을 바탕으로 한국이 CPTPP에 참여할 경우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 NTBs)이 높은 일본과의 시장개방효과는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동시에, CPTPP가 한국이 체결한 FTA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화 범위와 규범을 요구하기에 국영기업, 환경, 지적재산권 등 신통상규범에 대한 더욱 세부적인 검토를 위해 아직은 충분한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CPTPP 그리고 RCEP과 같은 메가 통상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은 미·중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최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이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상 질서 아래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 노동 등의 통상 규범을 준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이다.


미·중 FTA 경쟁 아래에서의 위협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요인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주요 동반국으로서 양국이 주도하는 경제 협력체 논의에 협력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이 추진하고 있는 메가 FTA에 대한 한국의 참여가 반미 그리고 반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통상 목표 및 방향성을 기준으로 내린 결정임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행정부 하, 그 강도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미·중 FTA 경쟁 아래 한국은 자국의 이익 추구를 넘어 대표적 중견국으로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아·태 지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중견국 외교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인데 한국은 미·중을 비롯하여 아세안, 인도, 뉴질랜드, 호주 등 아·태 지역의 주요 경제 및 역외의 EU 등 세계 주요 경제권들과의 FTA를 체결하여 FTA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경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견국 외교 수행을 위한 의지 측면에서도 한국은 EAVG, EASG 창설 및 믹타(Mexico, Indonesia, South Korea, Turkey, Australia: MIKTA), P4G(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등의 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아·태 지역 및 글로벌 수준의 평화·발전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한국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FTA 허브(hub) 혹은 FTA 린치핀(linchpin)으로서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울인 노력들이 한국의 차기 정부 아래 어떠한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IV. 결론

전 세계의 기대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아래 일정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국내 경기 부양책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경제적 자국우선주의와 국가안보를 연결시켰던 트럼프 행정부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설계했던 반덤핑상계관세 등의 각종 보호무역조치도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Anderson 2021).


바이든 행정부의 보호무역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와 달리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핵심인 중국 제재에 다자주의적 접근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중국 압박 형태가 국제규범 혹은 국제기구를 통해서가 아닌, 주로 미국 국내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했을 때,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은 중국이 포함된 WTO 중심이 아니라, 경제 및 통상을 넘어 인권, 환경 등의 문제까지 포함된 전방위 분야에서의 동맹 강화를 통한 다자적 접근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더욱 강도 높은 선택의 문제와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대표되는 경제 보복 조치와 같은 상황에 또 다시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 및 통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안보 영역에서의 쿼드(Quad), 그리고 기술 영역에서의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등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승될 확률이 높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문제들로 가시화될 확률이 높다.


2021년 임기를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큰 틀에서 유지하기에 앞서 과연 트럼프 행정부의 그것이 2020년 대선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국제질서의 설계자이자 수호자임을 자청했던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미국의 패권 유지 및 국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숙고를 선행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 보건위기에 효율적 글로벌 공공재를 제시하지 못함과 동시에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미중 경쟁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이제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아닌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을 맞이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 패권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단순히 ‘통상 질서’라는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닌 더욱 많은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안정적 통상 질서’의 형성 및 제공이라는 점을 미·중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미·중 경쟁이 가져오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 아래 한국은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존 미·중·일·러의 4강 중심의 외교정책을 넘어 아세안 및 인도 등의 신남방국가 및 중앙아시아 국가 등 신북방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한국 경제 및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능력을 기반으로 그에 걸맞은 자국 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중견국 외교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 경우 한국이 숙원해온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여 아·태 지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주도하는 진정한 교량국가(bridging state)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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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최영미 | 現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석사 졸업 후,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음. 국제정치경제를 전공으로 하여 통상정책에 대한 계량분석을 주로 연구하고 있음. 주요 연구로는 “Constituency, Ideology, and Economic Interests in U.S. Congressional Voting: The Case of the U.S.–Korea Free Trade Agreement,” Political Research Quarterly 68(2); “Political economy of free trade agreements in China, Japan, and South Korea: sectoral politics of the FTA wave, 1998–2016” Japanese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1(3)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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