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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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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담론]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와 평화
등록일
2021-10-19
조회수
15
15년여 전 한 여성 목회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을 이제 꺼내 읽는다. 신학자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가 1987년 쓴 『어머니, 연인, 친구』(번역서명)라는 책이다. 저자는 그 책에서 인류의 절박한 위기에 부응하는 신학의 역할을 제안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맥페이그가 말하는 인류의 절박한 위기란 ‘생태학적 핵(위기) 시대’를 말한다. 그는 이원론에 기초한 위계적이고 배타적인 기존의 신학 패러다임은 이런 위기 극복에 알맞지 않다고 진단하고, 어머니, 연인, 친구라는 하나님 모델을 제시하며 일원론에 기초한 수평적이고 포용적인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35년여 전에 쓰인 책이 지금에도 적절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이 하나의 운명공동체인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의 세계적 유행, 일명 팬데믹(pandemic)으로 인류와 지구촌은 위기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그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점도 위기의식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지구촌 위기의 원인이 이 하나의 전염병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기후위기가 더 큰 원인일 수 있고, 거기에는 성장주의와 소비주의, 나아가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지배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분쟁, 특히 핵전쟁 위험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기후·보건위기가 겹친 오늘날 지구촌이 ‘실존적 위기(existential crisis)’에 직면했다고 말하는 것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식에 인류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평화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1) 분쟁 및 군비 증강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매년 세계 분쟁 및 평화 동향을 SIPRI YEAR란 책으로 묶어낸다. 2020년 상황을 담은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분쟁은 39개국에서 발생했다. 대부분의 분쟁은 내전이고 단지 두 분쟁(인도-파키스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 국가간 국경분쟁이다. 나머지 두 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틴, 터키-쿠르드 간 장기분쟁이다. 전해보다 5개가 늘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20개 분쟁이 일어났다. 그 20개 분쟁 중 18개에서는 2019년보다 사상자가 더 늘었고, 전체적으로는 전년 대비 41% 늘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보다 사상자가 많은 고질적인 분쟁지역이다. 2020년 사상자는 12만 명으로서 2018년에 비해 30% 감소했는데, 아시아대양주와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서 분쟁이 감소한 데 기인한다. 이 보고서는 분쟁을 사망자 수로 분류하는데,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분쟁으로 두 개의 내전(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을 꼽고 있고, 1천 명-9,999명이 사망한 고강도분쟁은 16개 사례를 들고 있다. 또 2020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었지만 난항과 도전에 직면하였다고 보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평화협상은 결국 미군 철수와 탈레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정전이 제안되어 협상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가 중재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은 일단 포성이 멈췄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수단에서 평화 프로세스가 진척을 보이고 있다.

SIPRI YEAR 2021은 코로나19 사태가 국제분쟁에 미친 영향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영향이 단순하지 않다고 보았다. 일부 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곳도 있지만, 폭력의 강도가 유지되거나 증가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제 평화유지활동(PKO)에 코로나19의 영향이 일정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평화유지활동은 전 세계에서 62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적대행위로 인한 사상자는 줄어들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일반 사망자는 늘어났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세계 무기거래 추세를 5년 단위로 분석해왔다. SIPRI YEAR 2021은 2016-20년 세계 무기거래량이 2011-15년과 거의 비슷하고 그 수준은 냉전 해체 이후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그림1) 물론 이 수치는 냉전이 격화하던 1981-85년 거래량보다 35% 낮은 것이다. 무기거래 규모에 코로나19와 경제침체가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20년 최대의 무기 수출국은 미국으로 수출량의 37%를 차지했고, 최대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입 규모의 11%를 차지한다. 한국은 무기 수출국 9위, 수입국 7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핵무기는 2021년 세계에서 9개국이 약 13,080개를 보유하고 있고, 그중 3825개는 실전 배치되었고, 그 중 약 2천 개는 고도의 작전경계 상태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냉전이 해체되던 1991년 1월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핵탄두가 약 23,000기였던 것에 비해 최근 핵무기 보유 규모는 대폭 감소했지만, 핵보유국은 4개국이 늘어났다. 북한을 포함한 늘어난 핵보유국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라는 점에서 핵확산의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림1. 세계 무기거래 추세(1950~2020년)
 


* 출처: SIPRI, SIPRI Yearbook 2021 (Summaries, English version), p. 14.


 

  위 사실들로 볼 때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오늘날 지구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1980년대 전반기와 같은 군사적 긴장, 국가 간 전쟁은 크게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고질적 분쟁 추세, 무기거래, 그리고 핵확산 동향 등을 고려할 때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다수의 고질적 분쟁은 정치, 경제, 역사적인 이유들이 작용하고 있어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만 평화를 다루기 어려움을 암시한다. 또 무기거래 규모의 증대와 핵확산 위험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상적으로 소극적 평화의 문제로 보이는 것도 다른 요소들-민주주의, 발전, 화해, 공존, 다문화 등-이 작용함을 알 수 있는데, 평화를 깊고 넓게 생각한다면 구조적·문화적 평화를 함께 다루어야 함을 암시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세계화와 장기화 추세를 고려할 때 평화를 분쟁집단들 사이의 전쟁 부재의 상태로 한정해온 통념에 한계가 드러난다. 소극적 평화가 그 이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전제이자 출발인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평화를 그렇게만 규정한다면 평화의 궁극적 지향에 소홀하고 전쟁 부재 상태를 만들기 위해 물리력 확충을 정당화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군비경쟁의 안보 딜레마가 그것이다. 평화가 각양의 폭력을 예방·중단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면 평화가 지양하는 폭력의 양상을 유연하고 다양하게 인식할 필요가 크다. 오늘날 겪고 있는 보건·기후위기 등 소위 인간안보(human security) 위협에 맞서는 노력은 평화 개념의 확장을 동반한다. 안토니오 구테레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가 어렵게 달성한 발전과 평화구축의 성과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분쟁을 악화시키고 새로 조장할 위험”을 지적했다. 구테레스 총장은 2020년 8월 한 회의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개념은 필수적으로 적극적 평화에 관하 것으로서, 이는 단순히 전쟁 종식과 다른 개념이다. 달리 말해, 그 개념은 국제사회가 총을 내린 상태를 넘어 대중이 보호받고 대표되는 상황까지 이른 나라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평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한정된 문제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상을 배경 지식으로 삼아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의 삶에 주는 영향을 살펴보자.  


2) 코로나19의 전방위 충격

코로나19 사태가 국제사회에 미친 충격을 인권의 시각에서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된 지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제출한 보고서는 코로나19의 충격이 건강, 생활, 교육 등 대중의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 현재 81백만 명 이상이 코로나19에 확진(1.8백만 명 사망)되었다. 혼란에 빠진 공공보건체계로 인해 여성을 포함한 대중의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큰데 코로나19에 대한 보건체계에 대한 접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정신건강 증진, 예방 및 의료 등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팬데믹이 초래한 정신건강에 대한 대응이 부적절했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접근 부족으로 재정 형편이 부족한 대중의 치료 기회가 축소됨으로써 감염률이 높아졌다.

위 보고서는 또 코로나19와 부대 경제적 위기로 88백만 명에서 1억 15백만 명이 극심한 가난에 처해졌다고 말한다. 또 2020년 4-6월 사이 4억 95백만 개의 정규직업이 없어졌고, 전 세계 노동자의 절반이 직장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19년 약 6억 9천만명의 영양부족 인구에 83백만~1억 32백만 명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낙후한 주거환경과 생활조건으로 감염 위기와 바이러스 확산을 증가시켜 전 세계 약 18억 명의 인구가 집을 잃고 부적절한 주거환경에 처해졌다. 30억여 명이 가정에서 식수 및 비누 이용이 미흡해 기본적인 위생문제를 초래했다. 또 약 10억 명 이상의 비공식 정착지에 있는 대중은 생활환경이 특히 열악하다. 그 결과 그런 대중이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능력은 심각하게 열악하다. 전 세계 인구의 71%의 인구(아동의 2/3 포함)는 사회보장을 적용받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보호받고 있다. 비공식경제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사회보장에 취약하다. 190여 국가에서 대규모 학교 폐쇄로 16억 명의 학생들이 영향을 받았다. 인터넷을 포함한 양질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받는 충격은 인생에 영향을 줄 정도이다. 많은 아동들은 팬데믹이 초래한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려는 국가 대책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뚜렷하다. 이동의 자유에 관한 봉쇄 및 제한 조치로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립시킬 위험이 높아졌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봉쇄조치로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등 관련 기구는 위와 같은 코로나19의 광범위한 충격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가난, 영양, 건강, 교육, 물과 위생시설에의 접근 등 7개 영역에 걸쳐 ① 코로나 없는 상황, ② 최악의 손실, ③ 지속가능발전목표(SGD) 적극 추진 등과 같은 시나리오를 설정해 코로나19의 충격을 비교 분석하였다. 코로나19가 가한 충격에 대해 보고서는 코로나 없는 상황에 비해 2030년 안에 48백만 명이 더 가난해지고, SDG 목표1(가난 퇴치)을 달성할 나라는 3개국을 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또 12백만 명이 더 영양실조에 빠지고, 산모, 신생아, 아동 사망률은 줄어드는 대신 교육, 물과 위생 접근이 위축된다. 2030년 213백만 명이 코로나 없는 시나리오보다 더 가난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의 이런 충격이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문제이다. 위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보고서는 국가 내 집단 간 격차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코로나19의 충격이 고르지 않고, 취약집단에 더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동, 원주민과 소수민족, 성소수자, 죄수, 장애인, 이동 중인 사람, 노령자, 여성 및 소녀 등이다. 예를 들어 팬데믹이 국내 실향민은 물론 이주민, 난민, 피난민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국경 봉쇄로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과 고국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다. 이동 중인 대중은 식수와 위생, 거처 혹은 충분한 영양 등 기본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에 취약하다. 또 여성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기에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이 노출당해 있다. 88%의 개인 돌봄 노동자와 69%의 의료종사자들이 여성이다.

코로나19의 충격이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점은 방역과 백신 접종 기회에서의 격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67개국에서 90%의 인구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는데, 그에 비해 부자 나라에서는 2021년 말까지 세 번에 걸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WHO는 올 연말까지 세계 각국이 전체 인구의 40%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전 세계에서 접종된 코로나 백신 접종의 2%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국제기구와 일부 국가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백신 국가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인간발전지수(HDI)가 중하위로 평가되는 국가들에 미친 영향이 주목을 끈다. 2020년 인간발전지수는 평가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파르고 전례 없는 하락”을 보였다. 인간발전보고국의 2020년 분석에 따르면, 팬데믹이 초래한 학교 폐쇄 혹은 효과적이 않은 거리두기 학습으로 중하위 인간발전국가들에서 보통교육에서 학교수업 중단 비율은 86%(하위국가), 74%(중위국가)로, 이는 고위국가들에서의 20%에 비해 훨씬 높다. 2030년까지 중하위 국가에서 극심한 빈곤에 처한 대중은 626백만 명(코로나 영향 지속시) 또는 753백만 명(최악의 시나리오시)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030년까지 가난에 처한 대중의 86%가 중하위 국가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79%의 대중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것이다. 41백만 명에서 169백만 명은 코로나 영향 지속시와 최악의 시나리오시에 직접 가난에 직면할 것이고, 그 중 20백만~83백만 명은 여성과 소녀들이다. 2030년까지 코로나19 사태로 영양실조에 직면할 인구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는 경우와 비교해 12.8백만 명으로 증가할 수있다.(그림2) 결국 코로나19 사태는 기존의 불평등 추세를 촉진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이 겪는 곤경을 악화시켜왔다. 국가 내 불평등은 물론 코로나19로 국가 간 불평등도 커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예측할 수 없어 그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이 보고는 예측한다.  



그림2. 인간발전지수 중하위 국가의 극빈층 비율
 


* 출처: B. Abodoye et al, “Leaving No One Behind: Impact of COVID-19 o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UNDP and Frederick S. Pardee Center for International Futures (2021) p. 8.


 

  식량 위기와 관련해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농업기구(FAO)는 23개 국가 혹은 상황에서 심각한 식량 불안이 2021년 8-11월 사이에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아프리카와 중동, 서남아시아와 카리브해에 위치한 중저위국들이다. 이들 23개 사례에서 생명과 삶을 구조하기 위한 표적화된 인도주의적 행동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그중 5개 사례는 기아와 사망 예방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됐다.  


  1. 지구촌의 복합 대응

1) 기후·보건위기의 안보리 습격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이 사상 유례가 없고 그 종식이 아직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류는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류는 지혜와 경험을 모아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지구촌의 대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제사회의 분쟁 종식 합의와 평화 인식의 확대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세계적인 대처를 위해 2020년 7월 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 분쟁집단을 향해 분쟁 종식을 촉구하는 결의 2532호를 채택하였다. 안보리의 이 결의는 보건위기가 국제 평화 및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안보와 평화 개념의 확장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어 안보리는 2021년 2월 26일에도 전 세계 모든 분쟁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인도주의에 기여하는 분쟁종식”을 촉구하는 결의 2286호를 통과시켰다. 안보리는 이 결의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원활하게 전개되길 기대하였다. 결의 2286호를 환영하면서 테로스 게브레이수스(Tedros A. Ghebreyesus) 세계보건기구 국장은 백신 생산을 늘리기 위해 관련 지적재산권 포기를 촉구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바이러스의 조기 퇴치를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가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그것(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포기: 필자 주)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위기와 함께 기후위기도 안보리의 의제로 부상하였다. 2019년 1월 25일 안보리는 기후위기가 평화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그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70여개 국가들에서 고위 정치인들과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로즈마리 디카를로(Rosemary DiCarlo) 정치‧평화 담당 유엔 사무차장은 “기후 관련 위기와 평화의 관계는 복잡하고 종종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지형적 요소들과 상호 작용한다”고 말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행 방안에 동의한 지 2개월 후 197개국에서 모인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는 ‘복합 위협’으로 규정되었다. 세계은행은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해수면 상승, 물 부족, 농작물 생산성 저하 등으로 2050년까지 2억 1,600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를 강제당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이다.

이런 위험 징후와 경고를 감지하고 유엔 안보리는 새 천년 들어 기후변화를 국제안보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중 최근의 한 예로 2017년 3월에는 기후 관련 위기를 다뤄 아프리카 차드호 유역에서의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 2349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아킴 스타이너(Achim Steiner) UNDP 행정관, 파블 캐뱃(Pavel Kabat) 세계기상기구(WMO) 수석과학자, 그리고 청년대표로 린제이 겟첼(Lindsay Getschel) 환경안보 연구원이 참석해 기후위기 징후들이 국가 및 국제안보 위협임을 강조하고 그 해결책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비롯한 기후 적응 및 위기 감소에 투자할 것을 내놓았다. 기후·보건위기의 동반 부상으로 지구촌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면서 이들 문제들이 안보리의 테이블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2020년 8월 한 회의에서 안보리의 국제분쟁 종식 촉구 결의를 평가하면서도, 40여 건 이상의 선거 연기를 지적하면서 코로나19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용(inclusion)이 인도주의와 발전 문제 대응, 특히 공동체와 소외집단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신뢰를 다시 만들고 사회적 결속을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테레스 사무총장은 인도주의, 발전, 그리고 평화 행위자들에 걸쳐 지속하는 평화는 통합되고 일관된 접근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의 분쟁 중단 결의로 대부분의 분쟁이 중단된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이 결의를 계속해서 준수하고 분쟁 요인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엔과 지역기구, 그리고 유관 국가들의 중재 및 촉진 역할이 더욱 요청된다. 필요시 분쟁지역에 적절한 방식의 평화유지활동을 전개하고 분쟁 당사자 집단의 협상을 격려하는 방안을 적극 개발할 바이다. 그러나 전쟁 중단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화를 달성하는 평화적 수단이다. 모든 역량을 투입해 코로나19를 퇴치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평온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목적과 수단 양 측면에서 평화의 확장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면 코로나19의 충격이 말하는 깊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2020년 9월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체계와 관련 지역 및 국제 조직과 금융기구들이 협력해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회, 경제, 인도주의, 재정적 충격에 적절하고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A/RES/74/307)를 채택한 바 있다. 이 결의에는 단기적, 구조적 대응과 일국적, 국제적 대응, 그리고 취약계층 보호 등을 다루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앞에서 언급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2021년 1월 보고서이다. 아래는 그 보고서를 통해 국제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현 상황을 조감해볼 수 있다.  


2)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국제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향은 크게 넷이다. 하나는 불평등 및 차별에의 대응이다. 취약계층이 코로나19로 사망 가능성이 더욱 높고 사회경제적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충격을 완화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인데 현재 그렇게 진행되는지는 의문이다. 둘째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대중의 안전하고 포용적이고 효과적인 참여이다.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더 나은 회복은 모든 사람들이 대책활동에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에 효율을 선호하고 비민주적 의사결정을 해온 관행이 이를 제약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인, 인권옹호자, 의료종사자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코로나19 대응에 관건이다. 세 번째 방향은 새로운 사회계약 실행과 경제 전환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정부, 대중, 시민사회, 사적 영역, 국제금융기구 등이 새 사회계약을 맺어 동등한 권리와 기회에 기반해 고용, 지속가능한 발전, 보편적 의료체계, 사회보호를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이와 관련해 최우선 과제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건강체계 발전, 모든 계층이 양질의 교육에 접근하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대응에 전력하는 나머지 이런 구조적 전환은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네번째 방향이 세계적 대응이다. 팬데믹 사태는 상호연관된 오늘날의 세계와 우리 각자의 안전과 안보가 모두의 안전과 안보에 의존하는 정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강하고 더 회복가능한 미래를 향한 길은 새로운 수준의 세계 협력과 국제 연대를 필요로 한다. 각종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는 그것을 추구하는 집단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고 지구촌의 모든 존재와 지구의 공멸을 촉진할 뿐임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코로나19 백신을 세계적 공공재로 다루어 백신 분배를 골고루 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상과 같은 코로나 대응은 여전히 인간의 생존에 초점을 두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선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과연 지구촌의 위기를 이렇게 인식하고 접근하면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여기서 기후위기와 보건위기가 어떻게 발생하고 이제는 통제불가능해 보이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매우 흥미롭지만 우울한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2020~21년 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10개의 재난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유엔대학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이 기온 상승을 전례 없이 높여놓았다. 한 곳의 재난이 다른 곳의 재난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미국 텍사스주의 때아닌 추위, 아마존 숲 5백만 에이커를 파괴한 화재, 그리고 9개의 폭우가 7주 간 연속해서 발생한 베트남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재난은 각각 수천 마일 떨어져 발생했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예를 들어 북극지방의 기후 상승으로 극소용돌이가 파괴돼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가 텍사스주에 찬 공기가 엄습해 전력망이 얼어붙고 210명이 사망했다. 또 다른 우울한 예는 코로나19와 사이클론의 연관성이다. 사이클론 암판이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덮쳤는데, 피해 지역 주민의 50% 이상이 빈민층이었다. 코로나19의 발생과 그에 따른 봉쇄조치로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파괴된 집으로 되돌아갔는데, 곧장 이들은 격리상태에 처해졌다. 주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위생 그리고 사생활을 걱정하며 불안정한 곳에서 폭풍을 견뎌내기로 했는데, 곧이어 코로나19에 직면한 것이다. 주민들 가운데 사이클론으로 100명이 목숨을 잃었고 490만여 명이 집을 잃었고 130억 달러의 피해를 보았다.

이 보고서는 일련의 재난 사건들의 근본 원인도 거론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 불충분한 재난위기 관리, 환경문제의 영향을 저평가해온 정책결정 관행 사이의 상호연관성이다.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은 텍사스주가 경험한 때아닌 추위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반대편의 사이클론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충분한 재난위기 관리도 텍사스주가 경험한 많은 인명 손실과 인프라 피해, 그리고 베트남 중부지역의 홍수로 초래한 많은 손실에 영향을 미쳤다. 아마존의 산림 파괴는 인간의 세계적인 육류 수요와 연관이 있는데, 이는 동물 사육을 위한 콩 재배지의 증가를 동반하였다. 그 결과 아마존의 숲이 더 많이 파괴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목도하고 있는 재난은 상상 이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재난들은 개인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이 연구에 참여한 유엔대학 잭 오코너(Jack O'Connor) 박사가 평가했다.

기후·보건위기가 겹쳐 명확해진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인간과 세계를 운명공동체와 같이 상호의존적으로 묶어내고 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변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특히 생태계와의 관계 전환이 있어야 함을 위와 같은 복합 재난이 말해주고 있다. 인류는 새천년 들어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MDG, SDG)를 설정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없는 상황이라도 세계는 SDG 2020년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19 사태는 세계경제 위축을 초래함으로써 SDG 목표 달성에 상당한 도전을 추가하고 있다.(그림3) 심지어는 SDG를 적극 추진하는 시나리오조차도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완전하고 보편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약속할 수 없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림3. 시나리오별 SDG 목표 달성 가능치(2030)
 


* 출처: Hughes et al., “Pursu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in a World Reshaped by COVID-19,” p. 9.
 

 

  1. 동질이형의 평화
위와 같은 우울한 전망 속에서 세계평화의 길은 실종되어 버리는가? 기존의 평화관은 사라지고 대안적 평화관은 감도 잡기 어려워지는가? 코로나19 극복 이전에 다른 모든 것은 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세계적인 기후·보건위기는 인류의 삶은 물론 소극적 평화에 익숙한 기존의 평화 인식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표현 때문에 오해를 줄 수도 있겠으나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는 경중과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 의존하고 강화하는 관계이다. 소극적 평화 없이 적극적 평화가 가능할까?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 등지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은 물론 식량, 물과 위생, 치료 등 생존의 필수조건들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또 적극적 평화를 무시하는 소극적 평화는 기만적이다. 평화를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괴변에 불과하다.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미얀마 집권세력은 이런 비난에 직면해있다. 이렇게 차이나 보이는 사례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평화들 사이의 불가분성을 무시한 채 평화를 권력의 수단으로 다루는 행태이다.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인류 전체의 대오각성과 공동 대응을 요청한다. 그 전제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전적인 시각(holistic perspective)이다. 인간이 자신과 다른 집단-학연·지연·계층·직급 등으로 구별되는 집단, 다른 민족, 국가, 인종 등-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운 논쟁적인 주제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비롯한 물리적 폭력의 종식을 힘의 억제나 균형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는 사실이 뚜렷해지고 있다.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혐오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해 온 구조적·문화적 폭력의 종식에서만 평화가 온전하게 도래한다. 요컨대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에 의해서만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사회 내 다양한 집단과 가치들 사이의 상호 존중과 협력 외에 묘안이 없다. 그런 움직임은 세계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총체로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지지받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권력과 지배의 시각에서 인정와 공존의 시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전쟁과 그 수많은 원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분쟁이 일시 중단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만약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다시 분쟁이 격화된다면 인류는 마지막 생존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분쟁을 중단한 터에 (핵)무기를 보습으로, 적대에서 공존으로 전환해버리면(!) 좋을 것이다. 이것을 규범이나 용기로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류와 그 터전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필수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럴 경우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일부 개선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선으로 만든 평화라는 점에서 성과이지만, 같은 이유로 이 실존적 위기를 해소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불충분한 평화이다.

이런 불만스러운 전망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이 평화 논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도 지구촌의 위기가 실존적 차원이라는 인식에 공감하지 못하다면, 앞에서 말한 2020~21년 복합 재난이 지구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조라는 평가에 귀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2021년 세계 기상이변은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상승한 기온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과학계가 지구 생존의 분수령이 될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20년 안으로 더 가까워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게 기온이 상승할 때 발생할 기상변화는 인간의 손을 넘어 지구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그림4) 그때는 전쟁할 조건과 의지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전환으로 접근하는 기존 관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생태위기가 주도하는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말이다.  


그림4.
 


* 출처: 『한겨레』, 2021년 8월 9일.
 

그럼 그런 위기의 심연에서 기회의 빛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에 앞서 생존의 빛을 볼 길을 인류는 알고 있는가? 그것은 복합적이고 무서운 재난의 사슬 사이에 있는 건 아닐까? 오코너 박사는 대담하게도 문제가 상호연관되어 있다면 그 해결책도 그럴 것이라고 단서를 잡는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다양한 재난의 영향을 감소시키고, 재난의 빈도와 심각성을 완화시키고,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상기할 바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아닐까? 오코너 박사의 제안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왜곡한 측에서 먼저 행동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인간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통해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삶을 형성하는 출발이다. 성장 및 소비 지상주의, 그것을 영원히 추구하기 위한 경쟁과 지배의 패러다임은 그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에 의해 부정당하는 셈이다. 인류 삶의 터전이 존립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MDG, SDG 같은 거대 프로젝트도 인간와 세계의 관계 전환을 중심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크다.

복합 재난의 극복을 위해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 완화가 출발점이라고 해도 그 방법에 국제사회가 동감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허망한 일이다. 숲 복원과 토양 중성화가 그 주요 방법이다. 일종의 “자연에 기반한 인간발전”의 길이다. 그 방법은 지구적으로는 동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당 국가와 이해당사자 집단이 반대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로 많은 이익을 보았거나 기대하는 집단들(국가 포함)은 권력이 많은 반면, 원주민과 지역사회는 그렇지 않다. 자연친화적인 발전으로 나아가도록 규제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고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지구촌이 이대로는 존립할 수 없고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의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는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의 삶이 위험사회에서 위험세계로 악화되어 버린 상황에 부응하여 삶의 목표와 방식을 전환시켜야 한다. 35년여 전 맥페이그 교수가 직면한 세계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 그녀가 말한 세 가지 하나님 모델은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더 알맞고 더 절실하다. 지구를 어머니로, 지구를 구성하는 인간 외 다른 생명을 연인과 친구로 대하면 어떨까!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평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적극 끌어안고 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평화 인식도 인간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뤄온 관행에서 벗어날 때이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상과 역할이 평화의 주요 관심사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늘날 평화는 그 대상과 관심사가 확대되어 그 유형이 다양해지는 양상인데, 그럼에도 그 자세(이해와 공존)와 접근방법(대화와 협력)에는 변함이 없다. 평화도 존재 조건의 변화에 부응하고 변화할 때 그 존재의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평화는 전쟁 부재를 전제로 조화로운 관계 맺기로 재정의할 수 있다. 한반도는 자체의 평화 프로세스를 전개해나가면서 이상과 같은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극복에 동참해 나가야 할 입장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저자소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외교부 자문위원,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자문위원. 최근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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