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담론] 선평화·후통일 원칙의 현재적 의미와 발전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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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사에서 통일의 이유와 관련하여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응답한 비중은 2019년 34.6%에서 2020년 37.3%, 2021년 45.7%로 최근 다소 상승하는 추세이나 2008년 최고치인 57.9%에 비하면 10% 이상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남북한 간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중은 2021년 28.1%로 2019년 32.6%, 2020년의 37.9%에 비해 다소 하락하였으나 2009년의 14.5%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21년 결과에서는 민족적 당위 차원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다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당위로서의 ‘민족’보다 현실로서의 ‘평화’를 통일의 이유로 택한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20년의 경우에는 통일의 이유로 전쟁 위협 제거라는 현실로서의 평화를 선택한 응답(37.9%)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당위적 이유를 선택한 응답(37.3%)보다 매우 근소하지만 높게 나타난 적도 있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인식의 지각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남북한 평화공존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면서 통일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담론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통일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남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남북교류가 확대되면서 ‘사실상의 통일’이나 ‘과정으로서의 통일’ 담론이 전면화 되는 양상이 펼쳐졌다. 이어서 심화된 북한 핵위기로 인해 평화적인 상황관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사실’이나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평화의 일부분이거나 우선순위에서 평화보다는 후순위로 밀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남북한이 공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통일방안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공식 통일방안에 대해 건설적이고 발전적으로 논의하는 남북회담은 2000년대 이후에는 특별히 없었다. 우리 사회 내에서도 통일방안에 대한 공감대나 사회적 합의는 현재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을 미래의 통일과 당면현실인 평화 중에서 우선 평화를 선택하고 상황을 발전시키며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평화공존론이 분단을 고착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은 전통적인 통일국가상과 관념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선평화·후통일 원칙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는 평화번영이라는 담론이 점차 주류를 이루어 가고 있는 듯하지만 공식적으로 통일을 지양하거나 폐기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통일과 평화의 선순환과 발전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논의의 출발점 제시를 목표로 한다.
우리 정부는 1974년 1월 18일 북한에게 ‘남북불가침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하고, 1974년 8월 15일에는 남북 간 평화공존 및 평화통일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도 제안했다. 이 원칙은 첫째, 평화통일을 위해 한반도 평화정착 및 남북 사이의 대화 및 교류가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 둘째, 남북 총선거 실시를 위해 남북의 신뢰조성 및 동질화 촉진이 중요하다는 점, 셋째, 총선거 실시 관련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유엔 감시’ 조건을 ‘공정한 선거관리 및 감시’로 수정 제안했다.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은 그 이전의 ‘선 건설, 후 통일’기조를 ‘선 평화, 후 통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기조는 1970년대 이후 역대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 기본 기조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 지역에 대한 자유총선거론, 남북한 자유총선거론, 국토통일을 목표로 한 실력배양론, 선 건설 후 통일론 등을 기초로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당위적인 차원에서만 통일을 강조하는 방안들을 제기했다. 1970년 들어 미중 데탕트, 중일 수교 등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북한과 분단상황에 대해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통일정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되었다. 요약하자면 197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구체적 대안보다는 통일의 당위론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구도의 ‘대화 없는 대결’의 시대라면, 그 이후는 선 평화, 후 통일을 기조로 본격적으로 남북 당국 대화도 시작하고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대화 있는 대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69년에 발표된 닉슨 독트린과 이어진 미중 데탕트, 중일 수교와 같은 일련의 국제정세 변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현실적 인식을 토대로 통일정책을 펼쳐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70년 8월 15일에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하고, 북한 정권의 실체인정, 대화와 협상,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여건조성을 공식화했다. ‘평화통일구상 선언’ 이후에 남북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남북대화가 열렸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인도적 문제, 비정치적 문제, 정치적 문제의 해결’로 지칭되는 남북문제 해결의 3단계론을 제시했다. 이 3단계론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정부의 통일 접근에 대한 주요관점이자 시각으로 정립되었다. 당시 남북적십자회담과 병행해서 남북 당국은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당국 간 공식 합의서라 볼 수 있는 「7.4 남북공동성명」을 1972년 발표했다. 이 공동성명에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지금도 인용되는 통일의 3대 원칙이 담겨있다. 하지만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한에는 10월 유신헌법이, 북한에는 12월 사회주의헌법이 나타나면서 남북한 공히 일인독재체제가 공고화되고, 북한이 1973년 8월에 우리 정부의 평화통일 의지를 표명한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6·23 선언)」 등을 비판하며 당시 남북간의 대화 기구였던 남북조절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단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이듬해인 1974년 1월의 남북불가침협정 제안, 8월의 선평화·후통일 원칙이 반영된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발표한 것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의 당위적이고 북한에 비해 다소 수세적인 통일방안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현하고 이 바탕 위에서 통일을 주도해나간다는 공세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우리 정부는 북한에게 남북 당국 최고책임자 회담을 개최하자고 촉구하고, 1982년에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이 통일방안은 “통일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해 겨레 전체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는 기본원칙 하에서 통일헌법의 제정에서부터 남북 총선거를 실시해서 통일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는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어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는 우리 헌정사 최초로 헌법 전문에 통일 관련 내용을 명문화하였다. 헌법전문에서 ‘조국의 평화통일 사명’을 규정하고,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 및 추진을 명시했다. 제66조 제3항에서는 대통령의 의무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가했다. 이어서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위해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하고, 1989년 9월 11일에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7·7 선언」은 남북이 함께 번영을 이루는 민족공동체를 구성·발전시키는 것이 통일을 향한 첩경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선언이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이를 기초로 해서 정치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상태를 조성해 간다는 본격적이고도 구체적인 통일방안이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도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명칭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이 통일방안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이며, 점진적·단계적으로 남북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면서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선평화·후통일 원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요체는 민족공동체 건설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1단계로 남북한의 화해 및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 건설의 기초를 다지고, 2단계로 남북연합을 거쳐 3단계에서 최종적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형태의 통일국가를 완성해 간다는 접근방법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계적 통일방안이다. 화해협력 단계는 남북이 상호 적대와 불신을 줄이고 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면서 남북이 각자 현존하는 두 개의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분단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이다. 남북연합 단계는 화해협력 단계의 상호 신뢰 구축을 기초로 해서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고 제도화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통일로 가는 중간과정에서 남북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평화정착 및 민족의 동질화를 촉진해 나가는 동시에 남북한 합의에 근거하여 법적·제도적 장치를 체계화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을 구성한다. 이 기구들에서 통일국가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및 정책은 물론 통일을 위한 중간단계에서 서로 다른 남북 체제와 정부가 함께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간다는 것이다. 1민족 1국가 통일국가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서 남북 자유총선거를 실시하고 여기서 통일국회 및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형태로 완성된다. 통일국가 완성단계에서는 민족통일 및 국가통일이 동시에 달성되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통일국가는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정치적·경제적 자유는 물론 인간 존엄성과 복지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족공동체 국가를 의미한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남북한의 상호 신뢰 구축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통일은 단순히 영토와 제도의 통일만이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가 정체성과 문화, 의식 면에서 공동의 가치관을 가질 때 완성할 수 있다. 이는 일회성의 사건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닌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선 평화·후 통일의 입장을 체계화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이 공식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 북한의 통일방안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조선혁명의 기치 아래 해방 직후인 1945년에는 ‘민주기지론’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났다. 북한 언술에 따르면 미군의 남한 점령으로 인해 한반도의 전국적 범위에서 혁명을 완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 지역 혁명역량을 우선 강화해 나가고, 그 역량을 기초로 해서 전 한반도의 공산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민주기지론’을 내세운 것은 해방 직후 정국 환경이나 남한 지역과의 우위 경쟁에서 우세했던 유리한 조건에 기초하고 있다. 이 시기 북한의 통일방안은 ‘민주기지론’에 기초한 무력통일 방안이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7일에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하고 실제 전쟁을 일으키는 등 무력통일을 시도했다.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민주기지론’ 입장을 유지하면서 평화통일 제안과 남조선혁명이라는 이중목표를 추구했다. 이때 남조선혁명의 수단이자 통일방안으로 제기된 것이 ‘남북연방제’이다. 북한의 연방제안은 김일성이 제안했다. 김일성은 1960년 8월 14일에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을 하면서 연방제안을 구체적으로 처음 제안했다. 김일성은“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이라면서 “만일 그래도 남조선 당국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연방제의 내용은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면서 “…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 조선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연방제를 표방하고 있었으나 남북이 각자의 정치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국가연합에 보다 가까운 내용이었다. 북한은 1970년대 초에 남조선의 혁명세력이 주체가 되어 남조선혁명을 실시해야 한다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채택했다.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체제가 자리잡고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주도하겠다는 이전의 공산화통일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남한 지역에서 혁명세력들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해 간다는 단계적 혁명론을 설정했다. 20세기의 ‘민주기지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지나 북한은 2001년 1월의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 “외세와의 공조를 배격하고 민족공조로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 자체의 힘에 의해 해결해 나가자”고 제의하면서 ‘민족공조’,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 대외적 고립과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체제존속이 최우선 과제가 된 북한이 ‘민족공조론’을 제시하며 한국사회의 대북인식 전환기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조성을 시도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이 민족의 상부상조 전통이라는 대내 선전논리를 펴기도 했다.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에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한다.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사업 총화보고를 하면서 기존의 통일방안과 제안을 정리하여‘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했다. 고려민주연방제로 약칭할 수 있는 통일방안의 특징은 ‘과도적 대책’ 혹은 ‘당분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서 연방국가를 통일의 완성태 형태로 제시했다는 점, 우리나라에 대해 실현불가능한 안보상 무장해제에 가까운 선결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의 구성 원칙은 남과 북이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가진 각각의 지역자치를 구현하는 연방공화국 창립, 남북 동수 대표로 연방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그 상임기구로 연방 상설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가 남과 북 각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고려민주연방제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의 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 모든 정당·사회단체 합법화 및 모든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의 정치활동 보장, 민주인사·애국인사 석방을 제안했다. 그리고 긴장상태 완화 및 전쟁위험 제거를 목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불간섭 등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근본적으로 ‘남조선혁명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남북의 사상과 제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연방제를 하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제안으로 평가된다. ‘고려민주연방제’ 안은 국호나 국가형태, 대외정책의 노선을 일방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며 실제로 연방의 형성을 위한 연방헌법 등 구체적 근거나 절차는 설명이 없는 맹점이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의 연방제안은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구소련 해체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로 말미암아 외교적 고립과 동시에 경제난을 맞아서 북한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김일성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방안의 연방제안을 제기했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남북의 각 지역자치정부가 외교권, 군사권, 내치권을 행사하는 제안을 한 것은 통일보다는 체제 보전에 더 역점을 둔 행보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연방제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안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2002년 5월 30일 노동신문 보도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해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전략 및 통일전선전략 기조를 유지했다. 김정은은 2016년 신년사와 제7차 당대회 연설을 통해서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일 전략 계승을 천명했다. 김정은은 통일문제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 및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연방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의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개정을 통해 남조선 혁명론에 기초한 통일 기조는 삭제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전통적인 혁명론에 입각한 통일보다도 강위력한 국방력을 기초로 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강조하고 있어 힘의 균형을 통한 분단상황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은 모두 통일방안을 주창하고 있지만 현재는 당장의 통일보다는 현실의 평화공존을 택하고 있는 형국이다. 통일을 장기적 모색의 과정이자 결과로 상정하고 우선은 분단상태를 각자 유리한 국면으로 주도하기 위한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실제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한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북한 핵문제의 출현 등으로 인해 구체적인 통일방안의 실시와 추진보다 대북 상황관리와 한반도 리스크 관리에 치중된 대북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당면한 현안 목표로 정하고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다. 화해협력정책은 우리 정부가 먼저 전향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변화의 길로 나오도록 한다는 정책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관계 개선방향 및 실천과제 5개를 담은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후에 남북관계는 분야별 남북회담 추진을 병행해가면서 인적·물적 교류를 증대시켜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증진, 남북한 공동번영, 동북아 공동번영을 주요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10월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는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인도주의·외교 등의 제반 영역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의 공동 사업 추진을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으로 비핵·개방·3000’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 및 ‘비핵·개방·3000’ 구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하여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한의 무력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고 남북관계 재정립 및 실질적인 관계발전을 통해서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및 그 실행계획으로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과 더불어 ‘3대 통로’를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남북 신뢰 형성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구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목표로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상호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여,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고, 정책의 영역을 동북아와 국제 사회로 확장하여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들은 이같이 선평화·후통일 원칙에서 평화정착과 안정적인 상황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2017년 제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으로 핵능력 고도화를 입증한 후 2018년부터 경제력 건설을 위한 우호적인 대외환경 조성을 위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나섰다. 내부적으로 경제·핵 병진노선을 사회주의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으로 변경하고 국방력 건설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력 건설을 위한 외교적 장정에 나섰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 이후 대북 제재 장기화, 자연재해, 코로나19 등의 악조건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규약 개정을 통해 통일 관련 부문에서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고 하면서 “이것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의 반영으로 된다” 고 하여 기존의 조국 통일 3대 원칙(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미제 침략군, 일본군국주의 재침 그리고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지지, 전 조선의 애국적 역량과의 통일전선 강화 등의 ‘남조선 혁명’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사문화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노선을 정리하고 ‘국방력에 기초한 평화와 안정’을 우선시하며 남과 북의 공존 속에서 무력에 입각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당장의 통일보다는 핵무장을 바탕으로 한 공포의 균형 속에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해가겠다는 인식이 반영된 분단관리 정책이 최우선 과제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남북한은 이런 상황 하에서 적어도 일촉즉발의 전면전 공포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에 놓여있는 불확실한 평화상태에 놓여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분단 70여 년 동안 평화가 상당 부분 정착되고 발전되기는 했지만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또한 아닌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때이다. 나. 선평화·후통일 원칙 발전과 새로운 통일국가상(像) 남북한은 분단 70여 년간 각자 통일방안을 발표하고 2021년 현재까지 총667회의 남북회담을 개최하고 258건의 남북합의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긴장과 갈등을 반복하며 통일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2000년대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관계 악화와 같은 변수로 인해 평화는 자주 동결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현재 한반도의 당면과제는 평화를 저해하는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한지, 비핵화가 되면 평화와 통일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지, 그리고 비핵화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에는 북한 비핵화가 중요한 최종목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통일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평화’가 ‘후통일’로 연결되는 전략과 구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선평화’를 위해 현 단계에서는 대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의 촉진자 역할 증대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의 국제적 전파 및 공감대 확산, 대내적으로는 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기반 강화 노력 등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선평화’의 기반 위에서 ‘후통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특히 한반도 통일국가상에 대한 재구성과 평화번영의 미래에 대한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통일국가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단일국가나. 북한의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의 연방국가 중 택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할 수 있다. 2021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4.3%가 통일을 “남북이 하나의 국가로 합쳐지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018년 58.1%, 2019년 60.6%, 2020년 62.9%에 이어 응답자 중 대다수가 통일을 단일국가로의 통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넘어서는 것이 새로운 통일국가상과 평화번영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남한의 연합제 통일방안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개방적으로 점검하여 다양한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의 미래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연합제안 및 북한의 연방제안을 기초로 해서 남북한의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기본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
국제법상 자결권(self-determination rights)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보아도 남북한 주민들이 단일국가 외에도 연합국가나 연방국가를 통일국가의 완성된 형태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남북한 관계를 ‘선평화’의 원칙에서 사실상 이웃국가의 평화지향 관계로, ‘후통일’의 입장에서 한 민족 출신 국가들의 특수관계로 규정해서 장기간 남북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다가 일정한 미래 시점에서 남북한 주민이 결정하여 단일국가, 연합국가, 연방국가 등의 형태로 통일을 선언할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재편과 전환이 필요하며, 북한 핵문제로 인해 남북한 당사자주의로만 해결할 수 없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주의적 측면을 고려하여 통일과정도 남북관계 특수성에만 입각한 것이 아닌 국제관계 보편성에도 기반한 새로운 동북아 질서 창출 과정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선평화·후통일 원칙에 입각한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를 전제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통일방안은 이를 기초로 하되 통일국가형태의 다양성 인정, 북한 비핵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더해서 ‘화해협력→평화체제→통일평화공동체와 동북아협력체’를 지향하는 식으로 새로운 과정과 단계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남북한의 화해협력 단계에서부터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논의에 참여할 동북아 주변국들이 남북-북미 간의 양자안보는 물론이고 과거 6자회담 참가국들을 포함한 지역 내 다자안보도 교차 보장하며 그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구상은 이미 기존의 6자회담이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기에 관련국들의 이해도는 충분하다고 보인다. 다만 현실적 동력을 찾지 못해 공전 중인 것이라 판단된다. 이 동력을 찾기 위해 남북관계에서부터 새로운 통일국가상을 지향하며 유연하고 탄력적인 관계설정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통일과 평화의 상대방인 북한도 흡수와 붕괴로 오해할 수 있는 당장의 통일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 대통령도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것처럼 남북한이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공존과 항구적 평화의 새로운 역사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이다.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기 위해 남북한 중 어느 한쪽이 흡수되거나 희생하는 것이 아닌 공존과 평화를 기본으로 다양한 방식의 통일을 항구적 평화정착의 방편으로 열어두고 접근을 해야 한다. 미국과 캐나다처럼 서로를 닮았지만 또 다른 두 나라처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처럼 한 나라인 듯 두 나라인 듯 살아가는 과정도 평화와 통일의 한 여정으로 보고 새로운 우리만의 모델을 찾아나가야 한다.
남북한은 유엔 동시 가입으로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 개의 나라라는 점을 서로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결코 분단을 영속하기 위한 것도 아님을 동시에 천명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교류와 화해협력, 항구적 평화정착과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원칙을 확인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여전히 불확실한 평화 상태를 지속하고 있지만 수많은 회담과 합의를 하며 관계를 발전시킨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이를 더 발전시켜 시대의 변화에 맞는 통일방안의 개선과 새로운 통일국가상의 마련 등 적극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남북한 관계를 ‘선평화’의 원칙에서 사실상 이웃국가의 평화지향 관계로, ‘후통일’의 입장에서 한 민족 출신국가들의 특수관계로 규정해서 장기간 남북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도록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고 있는 단일국가 통일을 상대방인 북한이 흡수통일로 인식하고 있는 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갈수록 낮게 나오는 상태에서는 지금의 통일방안을 계속 고집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남북한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가면서 미래에 남북한 주민이 단일국가, 연합국가, 연방국가 등의 다양한 형태로 그 당시의 필요에 따라 통일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필요하다. 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재편과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가 북한의 대남전술에 말려 들어갈 수 있다거나, 비핵화의 진전 없이는 절대로 시작될 수 없는 논의라고 반대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연방제 통일방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연방제를 통일의 한 과정이나 형태로 인정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 끝났고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이제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북한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고 해서 체제전복이 될 일도, 남조선혁명이 일어날 일도 없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억지할 수 있는 한미연합방위체계와 첨단 전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며 비대칭 전력인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추가적으로 최신 전술 무기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상태를 심화시켜서 어느 순간 우리도 독자 핵무장에 나서고 20세기 동서 냉전의 핵 대결처럼 상호 확증 파괴 단계에 가서야 군축 논의를 시작하고 다시 평화를 운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 글로벌공급망 재편, 기후위기와 에너지 대전환 등 산적한 문명사적 과제에 힘을 쏟기에도 모자란 판에 20세기 냉전의 유물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경쟁에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묶어둘 필요가 없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 법무부 인권정책자문위원 연세대 통일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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