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우크라이나 비핵화: 한반도에의 교훈
등록일
2009-07-22
조회수
7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핵무기

 

  1991년 후반기 소련의 해체 이후에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핵 보유국가가 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나토가 SS-19로 명명한 130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우크라이나에서 설계 및 생산된 최신예 SS-24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다른 미사일 46기 및 46대의 전략폭격기 등 총 222기의 전략 핵무기 운송수단이 존재했고, 176곳에 전략미사일 저장고가 있었다. 아울러 수천 기의 전략 및 전술 핵탄두, 전술핵탄두 운송수단 및 관련 지휘 본부, 저장고, 지원 및 정비 시설들이 우크라이나에 산재해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교훈

  비핵국가가 되기 위한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국가 지위를 위한 토대를 갖추면서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비핵화를 위해 우크라이나 대중의 인식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했던 1991년 말부터 1994년 초까지의 기간은 환상을 깨트리고 비핵화 문제의 복잡다기한 성격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우크라이나의 전술 핵무기는 1992년 5월에 우크라이나 영토 밖으로 이전되었고, 1994년 말까지 모든 핵무기가 제거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다음의 상황들이 우크라이나 의회의 결정과 대중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첫째, 국제사회는 향후에 비핵국가의 지위를 획득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의도를 우크라이나의 일방적인 과제로 간주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 단계에서의 모든 결정이 실제로 단지 우크라이나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국제사회와 모든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려는 키에프의 다양한 시도는 약속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의 핵무기 해체 과정에 대한 핵국가들의 반응을 목도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모든 지원 약속은 해체 후 공허한 성명이 되었다. 셋째, 핵국가들은 우월한 지위에 기초하여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초강대국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그런 태도는 확실히 양극 대립 및 압제와 협박이 아니라, 핵무기 없이 안보를 보장받으려는 국가의 이익도 고려한 핵군축의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었다. 넷째,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해체과정에 의해 야기된 실제적이고 매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척하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핵군축과 우크라이나 문제

  그러한 문제는 실재했으며, 우크라이나가 과장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첫째,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는 핵무기는 파괴력을 기준으로 전 세계 핵보유 국가 중 3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전에 적절한 양자 협의 없이 우크라이나에게 비핵국가로서 NPT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미국과 러시아의 시도는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둘째, 우크라이나 핵무기 해체과정과 관련된 다른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고 핵무기의 제거와 NPT와 START의 모든 조건의 이행은 그 당시에 우크라이나가 감당하기 힘든 상당한 재정적 자원을 필요로 했다. 셋째,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와 미국은 NPT에 의해 이미 명시된 보장들만을 이행하려 했지만, 대부분의 비핵국가들이 이 보장들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 네 번째 문제는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는 핵탄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결코 전략 무기를 독자적으로 유지한 적이 없고, 모든 필요한 작업은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여 러시아 기술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후 러시아는 처음에는 예정된 통상적인 핵탄두의 유지보수를 중단했고, 그 다음 공포를 조장하는 안전 문제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의 그러한 협박 전략의 목적은 분명했다. 첫째, 서방세계의 대중과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핵무기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만들고, 둘째, 우크라이나가 수용하기 힘든 조건으로 NPT와 START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1993년 11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미 언급된 모든 조건들을 고려하여 우크라이나 의회는 국가이익을 근거로 NPT 가입을 거부하였다. START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생태학적 이유에 근거한 유보조항을 덧붙여 비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상호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의 모색을 중단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정치인, 외교관, 군부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으로 협상 대상국들을 우크라이나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참여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결국 1994년과 1995년 사이에 집중된 노력의 결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다.

북한 핵 문제

  최근 북한의 행보는 한국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낸다.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비확산의 원칙을 엄수한 우크라이나는 북한이 시도하는 일련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고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로 간주한다. 관련 당사국들은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동시에 동북아의 안정과 한반도의 상황을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위기로 촉발된 긴장상황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핵무기의 획득과 배치를 중단하고 되돌리는 북한의 정치적 결단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북한지도부의 예측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시도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위험하다. 따라서 오로지 설득과 정치 경제적 압력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협과 국제사회의 일관적인 공동 노력에 의해서만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평양이 비핵화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면 우크라이나와 다른 핵국가들의 기술적, 경제적, 재정적 경험과 해결책이 북한에도 용이하게 접목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1. 우크라이나는 국익을 고려하는 기초위에 자국 내에 배치되어있던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는 건설적이며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내린 반면, 평양은 핵무기 획득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위한 조치를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2.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결정은 시작단계부터 신중과 정직을 염두에 둔 정책적 선택이었던 반면, 북한 지도부의 정책과 입장은 신중성과 예측가능성에 있어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3.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국내의 저항을 극복해야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보장받기 위해 다수의 국가들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비핵화에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성을 설득해야만 했다. 우크라이나는 핵군축을 위해 선택된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4. 우크라이나 사례의 경우 핵국가들을 상대로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협상을 주도한 것은 우크라이나였음에 반해 6자회담의 경우는 이와 반대라고 할 수 있다.

5. 협상 초기 단계에서는 당사자들 간에 신뢰의 결여와 의심이 존재했지만, 점차 상호 신뢰와 확신이 조성되었고 이는 협상 당사자들의 공동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반면에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불신이 증가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보다 이를 폐기할 때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임을 북한이 깨닫고, 핵 폐기를 위해 북한 지도부가 정직하게 결정을 내릴 때에만 북한 핵문제의 해결의 전망이 생길 것이다. 한편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핵무기를 폐기한 모든 국가들, 즉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이들과 비핵화 프로그램의 협상과 이행과정에 참여한 국가들, 즉 미국, 러시아, 그리고 핵무기 획득 계획을 철회한 국가인 스웨덴, 일본, 한국 등의 경험과 정책결정과정, 실제 이행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 있다. 또한 이행과정에서 긍정적인 제재의 사례였던 로데지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의 경우와 부정적 제재의 사례였던 이라크, 이란, 쿠바 및 북한의 경우 등 서로 다른 과정의 경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여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제재와 유인책의 적절한 결합을 이해할 필요성 있다.

  핵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보편적이고 공통적으로 적용가능한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각각의 상황, 지역,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접근법과 해법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단일 보조를 취해야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_____

* 2009년 6월 30일의 JPI 정책포럼 발췌문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볼로디미르 벨라쇼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