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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학술회의
등록일
2009-11-19
조회수
7
□ 머리말


  20년 전 오늘,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이후 전개된 독일의 통일과정은 물론, 통일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통일된 독일이 지난 20년 동안 서독주민과 동독주민 간의 마음속의 장벽을 허물어 진정한 내적 통합을 이룩하고자 쏟고 있는 노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 통일 후 내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독일의 사례를 객관적으로 논의하여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 내고자 개최된 이번 학술회의는 장래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 급작스러운 통일이 수반한 어려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사실상 동독주민들이 몸으로 밀어 무너뜨렸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은 서독으로의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독과의 조속한 통일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게 되었고, 이는 동구권의 공산주의체제가 붕괴하면서 탈냉전의 시대로 돌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정치 지형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위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재정적 부담을 져야했습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지금까지 무려 1조2천5백억 유로(약 2000조원 이상) 상당의 자금을 동독지역 경제회생을 위해 쏟아 부었습니다. 그만큼의 큰 경제적인 부담과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선 찬성과 비판의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동독 경제회생정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동독지역은 서독으로부터의 막대한 재정유입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경제난과 기업들의 빈약한 자본 축적, 만성적인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동독지역의 고학력 젊은이들이 서독지역으로 이주해 이러한 문제가 더욱 고질화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폰 도나니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연방정부가 연간 9백억-9백50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지원을 동독지역에 쏟아 부음으로써 서독지역의 경제에도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독일의 유력지인 ‘디 자이트(Die Zeit)’의 대기자이자 전직 발행인인 테오 좀머 한·독포럼 독일 회장은 독일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며,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의외로 큰 혼란과 큰 비용을 불러왔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 독일 통일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통일


  그러나 저는 독일 통일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치룬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갈등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동·서독 마르크화 간 1:1 등가 교환으로 인하여 서독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커졌습니다. 동독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통제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정치, 사회심리적인 충격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독일이 통일을 통해 이룩할 수 있었던 커다란 성과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독일은 통일을 통해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획득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공개적으로 요구할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의 유지를 위해 자국의 군대를 당당하게 전 세계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 독일은 세계 4대강국이며, 유럽의 경제를 지탱하는 중심국가로 부상


  통일된 독일 경제는 전후 최장의 경기침체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당면했던 저성장, 고실업, 재정적자 문제는 점차 개선되고 있습니다. 통독 직후인 1990년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서독지역 대비 약 13-20%에 불과했으나,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꾸준히 개선되어 2008년 서독지역 대비 78%에 달했습니다. 1989년 동독의 1인당 소득은 서독의 1/3에 불과했으나, 2008년 1인당 소득은 서독지역의 66-68%에 달했으며, 임금 또한 서독대비 약 80%에 육박했습니다. 2005년 최고 약 500만 명에 달했던 실업자는 2006년 뚜렷한 회복세로 진입해 실업자 감소, 노동시장 환경 개선 등이 이루어 졌습니다.


  동독지역에 엄청난 재정적 수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는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했으며, 최근 5년간 세계 1위의 수출국가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독일 경제의 호조세는 수출 경쟁력, 건실한 은행시스템, 주택경기 안정, 그리고 지난 몇 년간에 걸친 적극적인 경제개혁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권 기민당의 메르켈 정부는 지난 사민당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 ‘아젠다 2010’을 확대 발전시켜 경제, 사회적 개혁을 적극 추진하였습니다. 독일은 최근의 세계경제위기의 충격을 비교적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 사회문화적 통합에는 아직도 시간이 걸릴 것


  통일 독일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동독과 서독은 사회문화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동서독 간의 정치제도의 차이와 경제적 격차는 상대적으로 많이 해소되었지만, 심리적, 정서적 차이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동독주민들의 삶과 문화, 가치 등이 제대로 평가되거나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도 심리적인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동서독이 완전한 내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일된 지 15년 만에 동독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여성정치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총리가 되어 정부를 이끌게 되고, 동독에서 자란 축구선수 미하엘 발락(Michael Ballack)이 축구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된 것은 중요한 정치, 사회, 문화적 소통의 의미 있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지난 오늘날, 통일의 부담과 갈등 및 후유증을 성공적으로 해소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 강력한 독일을 건설해가고 있습니다.


□ 독일통일의 교훈은 남북통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음


  우리가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전문가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에 독일은 통일을 예측하거나 미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으며,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능력을 과대평가하였고, 동독 경제 재건에 필요한 시간을 과소평가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 당시 동서독 1:1 화폐개혁으로 동독기업이 생존하지 못했고, 국유재산 처리 과정에서 대량해고가 발생하였으며, 엄청난 재정지원액의 상당 부분이 동독지역의 산업발전 등 생산적인 분야보다는 사회 복지 등 소비 부문에 지출되어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밑빠진 독처럼 결국 재정고갈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들은 남북한 통일에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현재 우리는 세계 10대 강국에 근접하는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2만 달러에 가까운 1인당 국민 소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이 추정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GNP는 남한의 8%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남북한 국민총소득(GNI) 격차는 38배이고, 수출액은 384배이며,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통일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력은 정규군의 규모면에서 세계5위 수준이며, 북한의 특수군의 수는 세계 1위 수준입니다. GNP대비 국방비 비율을 보면 남한이 2.8%인데 비하여 북한은 29.8%로 상대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군비 강화에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 지출을 비교해 보면 남한은 15.5%, 북한은 52%를 쓰고 있습니다. 북한은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재래식 무기를 확충하고 있으며, 미사일과 핵개발 등 대량살상 무기(WMD) 보유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북한이 핵무장을 계속하게 되면 남북한 통일은 더욱 요원해지게 됩니다. 동서독기본조약과는 달리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한 실질적인 교류협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 남북기본합의서는 충실히 이행되어야


  독일통일 직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1991)는 남북한 화해 및 불가침, 핵문제를 비롯한 정치군사적 문제, 남북한 교류협력 문제 등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정치군사문제는 물론이고, 남북기본합의서에 포함된 교류협력에 대해서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경제와 투자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이루어지고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개성공단은 어렵고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정권은 동독정권보다 더욱 강력한 최고통치자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북한은 독일통일 이후 사회주의정권 붕괴 도미노 현상을 사상이념적으로 차단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선군혁명로선’을 택하여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주민의 삶과 인권의 실질적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대북지원과 햇볕정책은 서독의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과 달리 북한의 의미 있는 정책과 노선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북한주민의 삶의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합니다.


  남북통일에 독일통일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한은 동서독과 달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으며, 아직도 전쟁 상황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동독을 지탱해주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정권이 동독의 손을 놓아 버린 것과는 달리, 중국은 아직도 북한에 대한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와 EU와 같은 경제공동체가 독일통일의 버팀목이 되었지만, 아시아에는 그와 같은 다자협력체제가 아직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동독과 달리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은 독일통일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황여하에 따라 남북한 통일의 ‘기회의 창문’은 예기치 않게 열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폐쇄적 사회이지만, 일단 외부정보가 유입되어 북한주민들이 자신들의 처한 실상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20년 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동독주민들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던 것처럼, 북한주민들이 자유와 행복과 인권을 위해 스스로 결단하여 통일을 위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점이 독일통일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남북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통일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


  1990년 10월 독일이 통일된 후 몇 년이 지나 헬무트 콜 前총리와 헬무트 슈미트 前총리가 서울의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남북한 통일의 창문이 열리면, ‘그 기회를 잡아라’라고 조언하였습니다. 한편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기회의 창문이 열렸을 때 두 번 생각하라(think twice)’라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헬무트 콜, 헬무트 슈미트 총리 두 분의 말이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잡을 때 이후에 전개될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사회의 폐쇄적 특수성과 개인숭배 및 선군정치 등을 감안할 때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표출되는 북한주민들의 반감이나 적개심은 과거 동독주민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 통일 과정에서 예상되는 사회 각분야에서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전문적인 의견을 종합해서 국민적 합의에 따라서 남북통일을 추진하고 통일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통일 그랜드 디자인(Unification Grand Design)’을 만들어야 합니다.


  2400만 북한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군조직을 개편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청소년 교육, 보건 위생, 국토 개발, 농업 발전, 법제 정비, 환경 보존 등의 다양한 통일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친밀한 계획과 끈질긴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큰 재정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통일은 우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방국 및 관련 국가들과의 국제적 공조를 필요로 합니다.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조치를 국제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최우선 당면 과제이며 통일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괄타결(Grand Bargain)’ 제안은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포기의 대가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방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호 신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진정성이 담긴 제안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 탈북주민을 포용하는 것이 ‘작은 통일’


  마지막으로 자유와 인권과 생존을 위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탈북주민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남북통일이 ‘큰 통일’이라면 탈북주민을 포용하는 것은 ‘작은 통일’입니다. 현재 2만 명에 가까운 국내 탈북주민들을 우리가 제대로 껴안고 어루만지지 않는다면, 큰 통일을 이루 수 없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내에 정착한 탈북주민의 60%가 아직도 “나는 북한사람이다”라는 소외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중 50% 이상이 20-30대의 젊은 층이며, 70% 이상이 여성입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직업훈련을 시키고, 가정을 이루게 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토록 하려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종교단체 등의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박진(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