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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미외교: 최근의 추세와 그 함축성
등록일
2010-10-01
조회수
7
  지난 8월 25일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인 평양 방문을 통해 선교 목적의 무단 입북으로 인해 7개월 여 동안 억류되어 있었던 미국인 아이잘론 곰즈(Aijalon Gomes)를 석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카터가 방북 목적을 철저히 억류 미국인 석방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에 국한하였고, 2009년의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 방북 때와는 달리 김정일 면담 역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미?북 양국은 곰즈를 매개로 또 한 번의 소통을 이루었다.

북한의 ‘인질외교’: 의도된 책략인가 우연한 기회인가?

흥미 있는 것은 카터 방북을 전후한 상황의 맥락이 2009년 클린턴의 평양 방문 당시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미?북 간의 공식적 대화채널은 단절된 상태였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2차 핵실험(2009년), 천안함 사태(2010년) 등 북한의 강경 대외정책으로 인해 경색국면의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재개를 향한 주변국들의 물밑 외교전이 서서히 속도를 더하고 있던 시기에 미국의 전직 최고지도자가 평양을 방문했다. 물론, 미국 측이 여전히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성의 있는 접근이 없는 한 대북 대화의 재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들 모두가 천안함 이후 국면에 대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본격적인 미?북 대화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클린턴 방북은 2009년 하반기의 상대적인 해빙무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북한은 그 직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을 허용했고, 김대중 前 대통령 장례식에 조문사절단을 파견하였다. 남북한 간에는 추석 기간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었다. 카터의 방북을 단순한 개인 자격의 활동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도 과거의 사례가 주는 교훈 때문이다.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대화 재개를 향한 유연한 입장을 지니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한편, 미국 측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로써 미국인 억류 국면을 활용한 것이다. 전반적인 상황간의 결합이 너무 절묘하기에 일부에서는 북한의 ‘인질외교’가 이제는 대미정책의 한 수단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전망하기도 한다.

북한이 대미외교에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미국인들을 억류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시각에 몰입될 경우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는 전형적인 순환론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2009년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두 기자가 국경침범 혐의로 북한군에 체포될 당시에는 북한의 고의성이 의심될 소지가 존재하였다. 반면 곰즈의 경우, 다른 국가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불법 입국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또한, 만일 북한이 미국 국적자들을 외교적인 인질로 활용하려 했다면, 왜 곰즈에 앞서 불법입북 명목으로 체포되었던 로버트 박을 활용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로버트 박은 2달여의 북한 억류 후 중국 추방 형식으로 석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양자 간 직거래 관계를 조기 개설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으며, 억류 국면이 그 돌파구를 여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는 설명은 가능하다. 북한이 최근 강석주, 김계관, 리용호 등 대미 외교의 핵심 3인방을 모두 내각에서 승진시킨 조치 역시 향후의 대미 접근을 향한 포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인질’은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한?미 공조에 대한 부담 없이도 대북 접촉이 가능한 분야임을 유념해야 한다.

미 · 북 관계: 상호 인식과 갈등요인의 변화

북한의 대미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동안 미국과 북한간의 상호 인식과 갈등요인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게 있어 냉전시기의 미국은 ‘한반도 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가능한 배제하고 타도해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북한에게 있어 미국은 정권 및 체제 생존에 있어 점차 주요한 변수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舊소련의 붕괴, 동구권 자유화 등의 국제환경 변화에서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질서와의 관계 형성이 이미 당시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던 북한의 경제적 난국 탈피의 관건이라 인식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4년의 김일성 사망을 전후하여 미국과의 대화를 적극 추구하는 정책을 전개하는 한편, 대미 레버리지의 강화 측면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사할 수 있는 정권/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 정책을 차단하는 한편, 미?북 직거래 관계의 개설을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구상 하에 핵과 탄도미사일을 협상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미 인식변화는 미국의 대북 인식변화와 맞물리면서 미?북 관계의 갈등 및 협력 요인을 동시에 조성하였다. 냉전기간 동안 북한은 동서대립체제 하에서 동북아 축선에 위치하는 소련 및 중국의 대리자(proxy)에 불과하였다. 또한, 탈냉전 초기에는 변방의 ‘악당국가’(rogue states)로서 핵 등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동구권과 소련의 운명(붕괴 혹은 체제전환)을 따를 체제로 규정하였던 듯하다. 반면, 『9.11테러』 이후 북한은 더 이상 저 멀리의 위협 대상이 아닌 현실적 대응의 존재로 부각되었다. 대량살상무기와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동시에 갖춘 집단이나 체제가 강대국 이상으로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시대에서 북한은 이제 미국에게 ‘변환’시키던 협력하던 간에 직접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상대가 된 것이다.

본격화된 미국의 천안함 출구전략과 그 함축성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천안함 사태 이후 외형상으로는 더욱 굳어진 한?미 공조에도 불구하고, 사태처리의 최종목표까지 완전히 한?미가 일치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초반 미국은 “북한 개입을 추정할 근거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점차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4월 중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미간 공조를 강조해 왔다. 미국의 이러한 접근은 한?미 공조와 대북 정책에서의 실리를 동시에 염두에 둔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북한의 연루가 의심되는 것은 북한을 압박하여 기존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협정, 대북제재 완화)을 철회한 가운데에서 『6자회담』 복귀를 유도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이며, 북한의 전통적 후견자인 중국에 대한 카드로도 유리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2008년 12월 『6자회담』 결렬의 주요한 원인이었던 비핵화 ‘검증의정서’ 채택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이 대북 추가제재 조치 등 압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활동과 관련된 것일 뿐 천안함 공격에 대한 단죄의 조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의료보험 및 금융체제 개혁 등 국내에 아직 논쟁적인 이슈들이 산적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외정책에 집중할 역량이 아직은 충분치 않다. 더욱이 이란의 핵개발 의혹, 중동의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는 상황 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는 여전히 중간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의 극단적 행동(3차 핵실험 등)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가운데, 일정한 대화국면을 유지하는 것이 압박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유리할 수가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북한과 주변국의 최근 외교적 움직임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도 향후 『6자회담』의 재개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천안함 사태의 종결조건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현 시점부터 필요하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차두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정책보좌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