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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이후 한러관계의 전개와 핵심과제
등록일
2010-08-25
조회수
7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다. 주변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인도네시아 등 6개국 국제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원인규명에 주력했다. 조사단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4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한 것임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외교활동과 함께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건 전모를 직접 설명하고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대표단은 6월 1일부터 약 1주일 간 별도조사 후 귀환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대북 제재안 상정을 추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기대했다. 안보리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북한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우선 한러 수교 전부터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면서 대러 진출의 의지를 불태우며 애증을 쌓아왔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수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전략적 우의를 다져왔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러시아를 비난만 할 것인가. 국가 간 관계가 흔히 그렇듯이 갈등이 있으면 화해도 있는 법이다. 요체는 갈등의 원인을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첫째로, 수교 후 20년간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흔히 간과해온 매우 초보단계의 고려사항이 있다. 러시아인들의 신중한 기질과 여유 있는 국민성이다. 구소련 말기에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에서도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국민들이다. 어쩌면 지정학적 특수성과 수난의 역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습관인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인들은 조급하고 역동적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회부하는 로드맵을 설정해 놓고 러시아로부터 신속한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적으로 그러한 기대는 과욕이었다.
  둘째로, 천안함 사태를 조율하는 절차상의 문제와 외교적 테크닉이다. 국제합동조사단에 러시아와 중국을 누락시킬 수밖에 없었다면, 그 불가피성을 사전에 납득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직접 설명해 주는 배려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청와대 발표를 근거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즉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에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뉘앙스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5월 25일자 크렘린 홈페이지에는 ‘разговор состоялся по инициативе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통화가 한국 측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라고 실려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가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이에 응해 온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천안함 사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현안에 뒤늦게나마 초대받아 관여할 수 있는 실익을 얻었다. 조사결과를 빨리 통보해 달라는 우리 측의 조급성은 오히려 ‘천안함 사건 주범=북한’을 입증하는 본질을 퇴색시키고 북한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러시아 측에게 구실을 주었다고나 할까. 유감스럽게도 신중하지 못한 외교적 접근방식으로 인해 내용마저 그르치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대(對)테러 문제는 러시아의 아픔 및 자존심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소련 붕괴이후 현재까지 수차례에 걸쳐 체첸 반군의 테러에 시달려 왔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대규모 지하철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21세기는 테러와의 전쟁’임을 예고하며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호소했다. 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는 2002년부터 전 세계 정보기관을 초청하여 대규모 대(對)테러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희생도 큰 만큼 노하우도 적지 않다. 노하우가 많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북한 테러에 의한 천안함 침몰’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신중함과 부담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금번 천안함 사태는 한러 수교 20년의 현주소와 양국관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나친 대미 동맹을 고집함으로써 20년간 맺어온 또 다른 주변 우방국들과의 관계에 흠집을 남겼다. 다니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 및 1990년 한러 수교,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냉전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반도에는 신 냉전의 도래를 스스로 자초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강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비추어 힘의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에 대한민국호는 천안함의 운명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구한말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와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악화된 한러 관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임시방편의 임기응변식 대처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본적 치유가 요망된다.
 



  첫째로,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수교 후 20년이 지났지만 러시아 관련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동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만 해도 냉전당시 대만의 존재가 중국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요인이 되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도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는 수교 전까지 전문가다운 전문가도 별무했고 수교 후에도 소련 붕괴에 따른 러시아 무시 경향이 전문 인력 배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한국어를 이해하는 고려인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외교는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 고위관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부구조가 허약한 상태에서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 리 만무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에 러시아 전문가가 몇 명이나 포진되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국가 차원에서도 러시아 전문가에 대한 배려 및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에만 맡겨 두기에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위태롭다.
  둘째로, 내재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우리 입장에서만 더이상 러시아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구한말 당시의 아관파천처럼 좌충우돌의 역사적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분단의 비극이 주변강국에 의해 강요당했듯이 한반도의 운명은 빈번히 외부의 입김에 좌우되어 왔다. 바로 한반도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레드콤플렉스의 구태로 인해 러시아 카드를 사장시키거나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안보리 회부를 앞두고 행여 우리 정부가 러시아의 조연을 기대했다면 안일한 판단이었다. 러시아는 지난세기말의 과도기적 혼란을 극복하고 21세기 진입과 함께 강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꾸준히 회복해 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러시아 당국은 천안함 사태관련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 지도부에 통하지 않을 것이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셋째로, 이젠 출구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국제법상 영원한 미제로 남을 수도 있는 천안함 사태로 인해 한러 관계가 더 이상 악화 내지 답보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1964년 8월 북베트남 통킹만에서 침몰했던 미국 해군함정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베트콩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베트남전쟁의 구실이 되었고 수년간 지속된 소모전은 결국 미국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 8월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사건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갓 출범한 푸틴 정권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나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러시아 측의 조사결과가 우리 정부의 입장과 상반된다고 해서 언제까지 갑론을박할 수 없다. 지난 4월 2일 볼쇼이극장에서 개최된 수교 20주년 개막식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축제분위기를 연출할 수 없었다. 그 후 7개월간 지속된 각종 수교기념 행사도  양국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수교 20주년 폐막행사와 <한러 대화> 포럼이 오는 11월초 G-20정상회의 직전에 마지막 행사로 예정되어 있다. 특히 양국 정상의 참석 하에 출범할 <한러 대화> 포럼은 양국 간 신뢰 회복 및 관계 발전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출구전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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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