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하토야마의 유산과 한·중·일 협력: 일본의 시각
등록일
2011-05-24
조회수
7
지역갈등과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공동체

한편 갈등구조에 있는 국가 안보의 이해관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갈등 때문에, 우리는 상당 수의 정치적 난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정도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지역 통합의 기로에 있는 문제들이 보다 상위의 통합을 향해 나아갈 때에만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제안합니다.

2009년 8월 유키오 하토야마 수상은 일본을 위한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시론을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설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용된 바와 같이 이 계획은 동아시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하토야마와 민주당은 선거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하토야마는 수상에 임명되었다. 그의 동아시아 공동체 계획은 일본의 공식정책으로 채택되었고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한국과 중국은 이를 무시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과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최초로 가진 3국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하토야마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토야마는 이후로도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한국과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시민사회는 동아시아 공동체 제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공동체 제안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는가? 이 글은 하토야마의 실패를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갈등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미국이 배제된 불명확한 제안

하토야마가 실패한 첫 번째 이유는 계획의 불명확함이다. 하토야마와 일본 정부는 공동체의 회원국에 대해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지 못했고 추구하는 목표가 어떤 종류의 공동체를 -경제, 재정, 사회, 정치, 또는 전략 공동체 등- 상정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했다. 경제 대국이 제시한 애매한 제안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혼란에 직면하였다.

둘째 이유는 이 계획은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는 일본의 새로운 외교정책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자국을 가장 중요한 아태지역 국가로 자임하고 미국이 배제되는 어떤 형태의 아시아 공동체의 창설에도 반대해왔다. 하지만 하토야마는 공식적으로 “우리는 지금 단계에서 미국을 동아시아 공동체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여부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공표하고 그의 동아시아 공동체 계획에 미국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시아 상황에 대한 오해

하지만 하토야마의 실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동아시아 상황에 대한 오해이다. 예를 들면, 그는 앞에서 인용한 동일한 시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력과 역내의 독립적 상호관계는 심화 및 확대과정에 있었다. 지역경제블럭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구조는 이미 형성되어있다.

여기서 하토야마는 동아시아 공동체 계획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하여 우선 동아시아 경제력과 독립적 상호관계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과 동아시아는 향후 공동체 발전을 위한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조건과 관련하여 동아시아 상황은 복잡하다. 동아시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역내 국가 사이의 상호의존이 확대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히 이 지역의 교역량은 여전히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동아시아 국가와 다른 국가 사이의 교역도 역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동아시아 국가의 전체 교역에 대하여 동아시아 역내 교역의 비율은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역내 교역의 비율의 감소는 세계화의 전형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추세는 EU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논점에 있어서도 하토야마의 오해는 동아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같이 견고하고 종합적인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현재 동아시아에는 EPA, FTA, 그리고 BIT가 존재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재화와 통화의 움직임이 과거 10년 전에 비해서 훨씬 원활해졌다. 사증면제 프로그램의 증가에 따라서 특정 국가 사이에 인력의 이동도 훨씬 용이해지고 있다. 달리 말해서 동아시아의 발전과 역내 교류는 다자협정이 아니라 양자 협정에 기초한 구조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향후 협력의 필요성

요약하자면 하토야마의 최대 실수는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불리는 체제를 만들어낼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하토야마는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유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개발하지 못했다. 그의 계획의 불명확성은 다른 국가의 우려를 자아냈고 하토야마의 계획으로부터 이들 국가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하토야마의 계획은 오늘날 동아시아 분쟁에 대해서 어떤 시사점을 가지는가?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세계화가 보편적인 오늘날 국제분쟁을 해결하기위한 노력의 근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한국-중국 관계가 알려주는 바와 같이 국제화가 진전되면서 영토 및 역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상호 경제 및 사회적 교류를 지속하는 것이 쉽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해칠 만큼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이들 국가들은 심각한 문제로 우려하지 않을 협력의 동반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몇 십년전에 주변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모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하는지 이해를 구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토야마의 실패는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Kan KIMURA is Professor of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Studies at Kobe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