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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버마) 선거와 한국의 전략
등록일
2012-04-10
조회수
7

  예상대로 미얀마 보궐선거는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국민민주주의연합(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승리였다. 내각 입각이나 의원직 상실 등으로 공석이 된 총 45개 상하원 및 지방의회 대표자를 선출한 본 보궐선거에는 17개 정당과 무소속 7명을 포함하여 총 157명이 출마했다. NLD는 1명을 제외한 43명의 출마자가 당선되는 그야말로 초유의 압승을 거두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2015년 총선에서 NLD가 당연히 원내 1당이 될 것 같지만 차기 총선까지 4년의 시간동안 민주화가 얼마나 진전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를테면 스스로 병영으로 복귀하는 군부가 얼마나 될지, 민주세력 간의 수평적 연대는 가능할지, 집권 여당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경제발전을 성공리에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외의 가능성도 있다.

 

  본 보궐선거를 두고 아웅산수찌를 중심으로 한 민주인사들의 제도권 입성에 따른 민주주의의 첫 걸음이라는 한결같은 의의가 부여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2010년 총선과 같은 다양한 선거부정을 저지르고도 왜 여당이 맥없이 패배했는지 의문이 생기며, 그중 한 가지 답을 찾았다. 대통령과 선거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인사는 금번 선거를 2010년 총선과 동일하게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를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속성과 환경은 명백히 다르다. 즉 2010년 총선이 군복을 벗은 민간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군부의 기준에 따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였다면, 금번 보궐선거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죄여 온 제재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기 위한, 다시 말해 자유로운 환경에서 NLD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였다. 그러니 2010년 군부의 기준에 따라 아웅산수찌와 NLD 후보가 낙선하고 여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지난 1년간의 개혁은 일순간 물거품이 될 것이 뻔하다.

 

  개혁을 통해 미얀마의 대외 이미지가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對) 미얀마정책 결정은 아웅산수찌의 입장을 따르고 있으므로 정부와 여당은 독자적으로 제재 해제를 추진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정부, 여당, 군부는 강압적 통제방식을 버리고 경제발전을 통한 이른바 ‘실적에 의한 정통성(performance legitimacy)’ 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그들은 의회 주도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44석과 제재 해제의 가능성을 맞교환한 합리적 게임을 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2015년 총선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4년은 아웅산수찌의 절대적인 영향력과 국민적 인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간이자, 근대화를 통해 물질적 혜택과 복지를 국민에게 분배할 가능성을 전시함으로써 과거의 과오를 희석시키기 위한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본 보궐선거에서 경제제재와 관련된 어떠한 공략도 제시하지 않은 NLD는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정부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정책 결정의 열쇠는 아웅산수찌가 쥐고 있다. 그녀는 과거의 제재 고수 입장에서 다소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경제제재와 국민의 경제적 고충 간의 개연성을 부정하는 NLD의 당론을 따른다. 아웅산수찌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도 한 몫을 했겠지만 국민들은 군부가 망친 경제문제의 해결을 위해 NLD를 지지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NLD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민심 이반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게 된다.

 

  NLD의 애매한 입장과 상반되게 미국과 유럽연합은 애초의 약속대로 경제제재를 포함한 제제의 수위를 완화하는 양상이다. 이미 미국은 클린턴 장관의 방문 이후 대리공사급에서 대사급으로 격상키로 한데 이어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기술적으로 미얀마를 지원하는 방안도 허용했다. 유럽연합은 미국보다 한걸음 빨리 미얀마 당국자의 여행금지를 철폐하고, 향후 2년에 걸쳐 1억 5000만 유로(2,265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금번 보궐선거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미얀마 당국자의 여행금지를 해제하고, 미국기업의 금융서비스 제공이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미얀마에 미국국제개발처(USAID) 사무소의 개설은 미국정부의 지속적인 원조를 시사한다. 매년 4월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갱신하는 유럽연합은 제재 근거인 공동입장(Common Position)의 유효성을 신중히 재고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의 결정은 다음 달 의결되는 미국의 입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한국은 군부의 고립과 봉쇄를 통해 정권 퇴진을 추구했던 서방국가들의 노선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미얀마는 1975년 국교를 수립한 이래 곧 40년을 맞이하지만 공통적 관심사가 없었거나 우리의 수동적 시각으로 인해 지금까지 양자관계의 진전은 목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 인도, 일본처럼 미얀마와 불편한 관계를 가진 국가들에 비해 후발성의 이점이 있고, 한류(韓流)는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축적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얀마의 국내외적 구도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과 외교 전략에 부합되는 대(對) 미얀마정책을 수립하고 앞으로 원칙으로서 지속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얀마를 둘러싼 주변국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은 아시아 중견국으로서 미얀마를 두고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을 위한 구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미얀마가 회원국으로 있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블록화를 추구하며 중국위협론에 공동 대응하고 있는 사실을 착안하여 아세안과 협력하는 차원에서 미얀마에 접근해야 하고, 그럴 경우 비동맹중립노선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채택하는 미얀마는 한국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떼잉쎄인 미얀마 대통령이 공공연히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경제발전 경험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올해부터 공적개발원조(ODA)방식으로 지원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의 개발경험을 그대로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맞춤형 형태로 변형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는 반세기에 걸친 군부권위주의, 사회주의로 인한 타성에 젖은 업무처리 관행으로 인해 상명하달과 명령 등 수직적 관계가 지배적인 사회로 동기부여와 자발적 참여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새마을운동 전문가를 포함하여 미얀마전문가들이 현지를 직접 찾아 민관을 동시에 소통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나아가 주민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인센티브제도 도입, 한국으로의 산업시찰, 취업자리 알선 등 다양한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경제발전만큼이나 민주화와 인권개선에 거는 기대도 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세계에는 여전히 비민주국가들이 존재하지만 그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수찌와 같은 민주화를 위해 투신하는 재야인사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는 야당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로 인해 군사정권시절 우리나라나 이웃 동남아 비민주국가들처럼 경제적 개발독재만을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있으며, 두 영역 간에는 공통의 변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상업주의의 표상으로서 한류는 미얀마 국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일차적 외래문화일수도 있지만 한국의 역동적 근대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한류 콘텐츠를 적극 보급함으로써 미얀마 정치발전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언젠가 필자는 1980년 광주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를 현지 지하운동가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첨단화된 도시 속 화려한 배우들만이 즐비한 한국의 현실만을 알았던 이들은 한국도 그들과 같은 아픔을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세계의 민주주의에 무지했다는 사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2010년까지 한국은 미얀마에 550만 달러의 공적개발원조를 지원했다. 이제 미얀마의 가치가 더욱 부상함에 따라 한국의 대(對) 미얀마 원조액은 늘어나겠지만 증액만이 양자관계를 격상하는 결정요소는 아니다. 역사의 주인이자 찬란한 불교문화의 옹호자, 맹목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군부들은 그들의 조국 미얀마가 국제사회에서 거지처럼 보이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한다. 국민들은 당장의 생활고를 타파할 수 있는 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장준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미얀마 군부의 정권유지 전략에 대한 연구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함(2009). 미얀마 정치변동과 국가-사회관계, 동남아 국제관계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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