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재정위기가 아시아에 주는 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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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 번째로 유럽정상회담을 통한 유럽 재정위기 타결안이 제시되었다.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의 현재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66퍼센트에 달한다. 이를 2020년까지 120퍼센트로 줄이기 위해 차관을 제공한 은행으로부터 그리스 정부의 채무 부담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더불어 문제 국가로 지목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재정파탄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의 구제금융 기금인 재정 안정 기관(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의 재원을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독일 메르켈 총리가 일컫듯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인 현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이 파국으로 치닫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유럽의 결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포괄적 해결책도 재원 증대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통화정책의 단일화에 참여하는 17개국의 재정정책 단일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강화하지 않았다. 비록 유럽 정상이 모여 밤샘 작업을 한 끝에 이룬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저비용의 말 잔치를(words are cheap) 고비용의 해결 방안으로 구현시키려면 앞으로도 수차례에 걸쳐 구수회담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진행형인 유럽의 재정위기가 아시아에게 어떤 함의를 지닐까? 단일화폐의 통용은 필연적으로 각 회원국의 재정 건전성(fiscal soundness)을 요구한다. 그러나 각 회원국 간 재정 건전성의 간극이 크다. 재정적으로 건전한 독일보다 재정 건전성이 결여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및 그리스는 부채상환 능력이 부족하다. 문제는 각 회원국의 부채가 상호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유로존에 참여한다는 점을 악용해 “불량” 국가들은 동등한 이자율로 차관을 확보해 정부지출의 재원을 충원하였기 때문이다. 정부 재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려면 세원을 확보해야하는데 이는 저성장 국가에게 정치적 자살행위에 해당한다. 결국 그리스의 재정파탄은 사회 소요임에도 불구하고 긴축재정을 전제로 한 유럽과 국제 금융구제에 의해서만 간신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동시에 방만한 재정운영을 감독하는 권한을 유럽차원의 초국가기구에게 부여해야한다는 각성도 일었다. 무엇보다 그리스의 재정파탄을 방치하면 자국의 금융기관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을 우려한 독일과 프랑스 등 채권 국가들은 서둘러 해결책을 고안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재정파탄이 가져올 일파만파의 혼란을 차단할 금융구제 방안 대신 미봉책만 제시할 뿐이었다. 더구나 파행적 재정운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권한의 제도화나 재정정책의 단일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전후 유럽은 무력 충돌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지역 질서를 건설할 목적으로 국가 간 협력증대를 통해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유럽통합을 추진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결국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기구로 유럽을 재편성했을 뿐 아니라 국경 없는 쉥겐 지역(Schengen Area)과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유로존(Eurozone)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나아가 상상의 공동체인 유럽을 마침내 27개국의 회원국이 참여하는 실질적 공동체로서 공간적으로 확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러한 쾌거는 범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 아시아 국가에게 고무되는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토를 전제로 한 국민국가에 기반을 두는 주권과 초국가기구로의 일부 권력이양을 수반하는 통합 간 긴장 자체가 해소되지는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근대국가도 국제기구도 아닌 초국가기구로서 유럽연합이 과연 위계질서에 의거하지 않고 국가를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의 권위를 제대로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종식하지는 못했다. 이를 두고 유럽의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긴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오히려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관계에 관한 새로운 발상이 요구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러한 고민도 유럽보다 지역 통합에 저해요인이 많은 아시아 국가에게 교훈으로 다가왔다. 긴장 속의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관계를 설정 또는 재설정하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통합의 제도화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국가주권이 선점한 권위 일부를 신설된 초국가기구에 이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적 권위의 이양이 국가주권의 잠식이나 위축을 의미하기보다 새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국가주권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헌법에 준하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주권과 지역통합은 상쇄하는 영합적(zero-sum)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거나 필요에 따라서 대체하는 정합적(positive-sum) 관계라는 공감대를 제도로서 내재화해야 한다. 진정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의 행보가 바로 이러한 관계 설정 또는 재설정의 제도화 단계에서 제동에 걸리곤 했다. 이 역시 아시아가 지엽적으로 경험한 바이다. 설령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긴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에 논리적 결함이 없더라도 정서적 저항을 이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긴장 관계는 필요에 따라 우호적일 수도 있지만, 경쟁을 전제하므로 대체로 적대적이고 배타적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즉 우호적 긴장 관계는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증대하려는 의지에 의해 재편성된 인위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정당성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는 경우, 응전의 방식으로 배타적 관계로 환원될 소지가 크다. 유럽에서는 재정위기로부터 자국의 경제에 대한 타격을 줄이기에 급급한 각개격파(各個擊破)로 드러난다면, 아시아에서는 근대적 영토 분쟁에 더해 역사 새로 쓰기로 나타난다. 현재 유럽에서는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긴장이 고조되자, 우호적 관계라는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고 익숙한 배타적 관계로 갈아입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한다. 유럽 공동체의 초석을 제공하는데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네덜란드는 공공연히 유로존의 탈퇴를 거론한다. 유럽 지역통합의 수혜자로서 경제적 성장을 달성한 슬로바키아는 유럽차원의 금융구제 방안을 일차적으로 거부했다. 비록 재정위기의 진원지는 아니지만 재정파탄의 벼랑으로 몰린 이탈리아는 국가신용단계가 강등되자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라며 애써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유럽연합에 가입했으면서도 유로존에서 발뺌한 영국은 유로존의 참여 유보(opt-out)가 현명한 처사였음을 거들먹거리며 심지어 유럽연합의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집권당인 보수당이 발안했으나 거부되었다. 유럽헌법 조약의 비준이 난관에 봉착하자 그 대안으로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리스본 조약에 의하면, 유로존 회원국의 통화정책 수립은 유럽연합의 독자 영역이다. 즉 유럽 국가가 아닌 초국가기구인 유럽연합에게만 권한이 부여된다. 그러나 실제로 단일화폐의 통용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금융 감독 권한이 부재한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그림의 떡’이다. 더불어 유럽 차원의 법안은 사실상 공용어(lingua franca)인 영어 이외 2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부담을 내재한다. 이는 단순히 복수 언어 간 균등한 번역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특정 용어의 선택이 지니는 법적 구속력의 간극으로 이어지는 제약을 가리킨다. 게다가 각 회원국의 금융 감독에 관한 법-제도 간 차이점을 상정하면, 유로존 회원국의 통화정책 수립을 실질적으로 유럽연합의 독자 영역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작금의 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 통합의 향방이 결정된다. 게다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지만, 유로존의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재정위기는 또한 유럽의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오랜 분쟁의 역사를 뒤로 하고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려는 유럽의 지역통합을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용단으로 명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단일화폐의 통용을 가능하게 한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유럽 공동체의 내폭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엘리트나 일반 시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이에 가려진 수면 밑의 위기인 사회적 통합 문제도 재정위기에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유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 질문에 기능적으로 유로가 통용화폐인 공간이 좁은 의미에서 유럽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그 공간에서 거주할 권리와 그에 따른 의무를 향유할 구성원은 어떤 자격 조건에 의해 정해지는지에 대한 심의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아직도 유럽의 정체성 논의는 여러 이유로 기능적 측면에 제한된다. 그나마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이상에 들떠 있을 때 단일화폐를 수용했을 뿐 환상이 사라지고 병증이 발견되자마자 치유하기보다 잠재우기에 더 분주한 양상이다. 만약 유럽의 구성원 중 이질적 집단이 재정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하는 경우,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제외와 은닉이 병행되는 모순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아시아는 유럽 공동체의 행보를 목격하며 공동체 구축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 구축 자체는 새로운 정치적 생명체의 탄생을 위한 난산 중의 난산이라는 사실을 유럽이 보여주었고 아시아도 경험했다. 그러나 정작 출범한 공동체에게 스스로 숨을 내쉴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 공동체는 탄생과 동시에 급속한 노화를 거쳐 급기야 미라가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은 지역 차원의 거버넌스(regional governance)를 명문화하는 기본법 또는 헌법체제의 구축, 명분상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경로를 구비한 다층 정치적 권위체(multi-level political authority)의 운용,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고 발생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줄이는 사후 조치와 더불어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위기관리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crisis management) 등을 요구한다. 60년 전 장 모네는 유럽의 지역통합을 설계하면서 “사람 없이 가능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영구적일 수 없다”라고 평했다. 유럽의 국가주권과 지역통합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럽 공동체가 헛돌면, 유럽은 이 난국을 타개할 장 모네가 필요하다고 개탄한다. 유럽에서는 최소한 장 모네가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를 출범시켰다고 아시아는 푸념한다. 그러나 지금 목전에 전개되는 유럽을 바라보면서 아시아의 푸념은 지극히 피상적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상상의 공동체를 시공간적으로 구현하는 노력은 정치적 통합을 전제하지만, 이 공동체가 시공간상에서 구성원을 구속하는 권위체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통합을 필요로 한다. 장 모네의 평에 감히 첨언한다면 “사람 없이 가능한 일은 없고 제도를 통해야 영구적이 되지만, 이도 역시 사람 없이 불가능하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오랜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살얼음판에서 관중과 선수에게 집단 최면을 걸어 빙상경기를 펼친 데 연유한다. 더구나 응급 처치만 구비했을 뿐 위기관리에 대한 체계적 준비는 불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양적 성장을 거듭한 유럽은 위기관리 체제를 재정비할 잠재력을 지닌다. 따라서 의지만 있다면 살얼음판을 완벽한 빙상경기장으로 바꿀 수 있다. 아시아도 2008년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불행하게도 유럽이나 미국보다 앞선 눈부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는 능동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기보다 유럽 또는 미국이 주축이 된 세계질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공동체 구축의 능력 자체보다 의지가 결여된다면, 공동체 구축은 시작도 못할뿐더러 설령 공동체가 출범해도 생명력을 상실한 채 문서상으로만 존재하거나 아니면 아무도 영주할 수 없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업적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러나 능력이 있으면서도 의지가 없어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둔다면 힐난을 면할 수 없다. 아시아에게 쏠리는 기대가 점차 커지는데 아시아는 세계질서의 무대 가장자리에서 조역만 맡을 수 없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조역 담당을 자처하는 아시아의 행태를 전략적 선택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아시아가 진정으로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과제를 숙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아시아에게 유럽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지역통합의 다리 위로 국가주권의 강을 건너야 하는지 보여준다. 아시아에서는 유독 국가주권의 강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다리를 두들겨가며 건너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명감 자체를 먼저 갖춰야 한다. 아시아의 장 모네가 정치적 용단을 이끌어내는 기적을 바라기보다 아시아는 충분히 도강(渡江)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동원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즉, 아시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지적 동원(cognitive mobilization)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유럽의 우왕좌왕은 아시아에게 공동체 내 위기관리 체계를 구비하는 최상의 시기가 바로 출범 이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거센 물살은 다리 밑으로만 지나지 않고 간혹 다리 위를 덮쳐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를 졸업하고 미시건대학교 앤아버 정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함. 국방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네덜란드 레이든(Leiden)대학교 방문교수. 저서로 <통합과 분권의 연방주의 거버넌스>, “Befuddling Executive Power with Executive Unilateralism in the Unitary Executive,” “종교적 정체성, 정치적 정체성, 유럽의 정체성” 등 다수의 논문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