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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위기와 6자회담
등록일
2011-11-07
조회수
7
  북한 핵 프로그램은 미국과 남한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제네바합의(Geneva Agreed Framework)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북한의 우라늄에 기초한 핵 프로그램을 또 다시 발견하였고 제네바합의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대화를 계속하였고, 북한은 심지어 핵 프로그램 해체에 동의하였다. 오바마 집권 후 워싱턴은 대화를 재개하기 전에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다리며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소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지켜왔다. 여러 차례의 대화와 2005년 핵 프로그램 해체 약속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 핵무기 실험을 감행하며 6자회담의 무효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6자회담은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접근방법이다. 왜 북한은 핵무기를 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북한정부는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전력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보유국이 되려는 평양의 지속적인 노력을 살펴볼 때 이는 결코 사실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정권생존의 보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지지해주는 세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연방으로부터 원자로를 얻어내려 애썼다. 김일성은 전쟁 동안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전진하면서 자신의 국가가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중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북한은 사라졌을 것이다. 전쟁 후 김일성은 정권 안보에 핵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김일성은 미국이 핵으로 중국을 위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에게도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950년대 소련연방은 원자로 제공을 거부했지만, 북한의 계속적인 요구에 결국 1965년 연구용 5MW 원자로를 제공하게 되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은 1980년대 미국 위성사진에 재처리공장 건설 장면이 노출되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사용된 핵연료봉은 플루토늄을 분리하기 위해 재처리된다. 플루토늄은 무기급 물질이다. 하지만 민간 전력용 핵 프로그램에서는 재처리 공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둘째, 1994년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합의에 서명했다. 즉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실천하기로 동의한 것이다. 대신 남한, 일본, EU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Korean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를 조직하여 2개의 1,000MW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약속하였다. 경수로를 건설하는 동안 미국은 북한의 에너지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매년 원유 50만 톤을 제공하기로 약속하였다. 남한은 제네바합의를 이행할 뿐만 아니라 수십억 달러의 경제원조와 투자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북한이 당시 단 하나의 5MW 흑연감속로를 보유하고 50MW와 200MW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1,000MW 경수로 2개를 건설하고 경수로 건설 기간 동안 매년 50만 톤의 원유를 공급하는 것은 북한 전력공급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이상의 과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모든 원조를 받는 동안에도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을 개발하고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미 국무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장관의 평양 방문, 북한 인민군 차수 조명록의 워싱턴 방문 등도 모두 핵무기 개발 음모를 감추기 위한 정치적 술책이었다. 북한이 원조의 전제조건으로서 핵 프로그램 포기에 단 한 번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고자하는 분명한 의지를 확인시켜준다.

  셋째, 농업부문의 구조적 문제(예를 들어 비료 부족과 불충분한 농지)와 함께 반복되는 가뭄과 기근 때문에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지속적인 식량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인프라를 향상시키고 경제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본이 없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경제제재로 북한은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유치하거나 IMF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 권력승계의 정치적 합법성을 정당화하고, 김정일 정권이 선언한 강성대국 원년이자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을 축하하기 위해 경제적 원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가능한 많은 경제 원조를 받으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핵카드를 꺼내는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미국과의 협상도구로서 미사일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이용해왔다. 북한은 이러한 협상도구들을 이용해 경제 원조를 얻어내고 경제제재를 완화시켜 정권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한다.

  6자회담으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과거에도 막을 수 없었고 미래에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정부가 6자회담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정부는 다른 주요 지역 플레이어들이 참여하지 않았던 북미 양자간 합의인 1994년도 제네바합의의 한계성이 재현되지 않도록 다자간 대화를 무엇보다 원하고 있다. 평양이 제네바합의를 어겼을 때 중국과 러시아가 합의 당사자가 아닌데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워싱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협상에 참여한다면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미국이 평양의 위반 행동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처벌을 가하도록 설득하기가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입장에 변화를 보이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해왔다. 과거에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워싱턴은 북한의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는 한계선으로 잡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핵무기 또는 관련 물질의 이전 금지, 특히 테러리스트 단체 혹은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반미국가로의 이전 금지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한계선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6자회담은 북한이 핵무기 물질을 계속 생산하는 것과 핵물질을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현 위스콘신대학 밀워키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 텍사스 A&M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음. 국제 안보와 한국 정치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Journal of Politics,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Political Research Quarterly,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Comparative Politics, and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등과 같은 세계적인 정치학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해왔음. 또한 ‘1980년 이후의 한국(South Korea since 1980,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과 ‘세계 속의 한국의 부상: 권력, 경제개발, 외교(South Korea’s Rise in the World: Power, Economic Development, and Foreign Poli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출간 예정)’를 테렌스 뢰리그(Terence Roehrig)와 공저하였음. 재미한국정치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