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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족주의, 과연 실재하는가?
등록일
2012-09-25
조회수
7

  조어도를 둘러싸고, 중국어선 선장이 일본 해안경비대에 체포되어 터진 분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다. 중국에서는 국제적 사건들이 예컨대 일본의 교과서 편찬이나 중국대사관의 폭격, 또는 프랑스에서의 친티벳 시위나 축구경기를 둘러싼 논란은 빠르게 항의시위로 이어지며, 이들은 곧 ‘민족주의적’으로 규정된다.

 

  국제 언론은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면서 감히 중국을 공격한 자들에게 불매와 복수를 다짐하는 격노한 시민들에 대하여 꼬박꼬박 보도한다. (2010년 9월 19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는 국기문신을 하고 가슴을 드러낸 호전적인 남자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들은 전 세계에 ‘중국인민의 감정’이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약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위자들은 사라지고, 이슬람 탁발수도승의 승무(whirling dervish)처럼 솟구치던 격노함을 초래했던 원인은 가벼운 미풍으로 바뀐다. 중국 ‘민족주의자’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친티벳 시위 이후에 프랑스 제품과 상점은 불매되지 않았으며, 일제 자동차와 전자 제품은 여전히 선망되며, 미국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불만 때문에 미국 대학에 대한 지원이 줄지는 않았다. 이 시대 중국의 모습을 보면, 경제적 사욕이 당대의 모든 ‘이념’을 이긴다는 데에 도박사가 돈을 걸면 절대로 잃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이유는, 중국 내의 정서와 이념을?그것이 민족주의이건 마르크스주의이건?어떻게 경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큰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개혁기에는 ‘민족주의’가 중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 마르크시즘-레닌주의-모택동사상을 대체했다는 관념이 널리 수용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지금이 바로 이에 관해 생각해볼 특히 적절한 때라고 할 것이다.

 

 

 

 

 

무엇을 증거로 보아야 하는가?

 

  정부가 “애국 교육”을 촉진시켜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치 않게 1989년 정당성 위기 이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달리 말하면 부패와 교육제도, 만연한 물질주의에 대하여 매우 냉소적인 사람들이 애국 교육을 통해서 그들의 불신을 유보하고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현란한 길거리 시위를 벌이고 구호를 외치고, 웹에 감점을 분출하거나 해외 웹사이트를 해킹하던 그 모든 ‘민족주의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중국인구의 극히 일부이며, 따라서 중국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의 ‘티 파티’ 운동이 극적인 것을 보여주는 데는 특출하지만, ‘미국인들’이 정부에 대한 ‘티 파티’ 운동의 정서를 공유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중국이건 다른 나라이건 애국주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척도로서 장기적 행태와 노력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중국인들이 경제적 민족주의자인가? 만약 ‘X’국가?미국, 일본, 프랑스 중 선택하라?에 대한 불매 요구 및 분노의 성명을 척도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을 요하는 불매운동의 지속을 척도로 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제” 상품을 선호하며 중국의 근로자들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 점은 과거나 현재의 군사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전쟁동안 중국정부는 전쟁에 대한 지원을 동원하기 위하여 ‘항미원조’라는 선전 캠페인을 벌였다. 관영 언론은 당연히 항미원조 지지시위, 군대를 위해 총알을 구입할 돈을 기부하는 시민 등과 같이, ‘고양된 민족주의’의 증거를 제시했다. 서방의 많은 분석가들이 중국인들이 전쟁을 지원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따라서 전쟁이 높은 대가와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였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학생, 공무원, 언론처럼 쉽게 동원 가능한 인구로부터 다른 집단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신문이나 보도영상과는 달리 기록보관소의 자료들을 보면, 상하이의 많은 일반 시민들은 한국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의 목표를 혼동했으며 미국의 높은 생활수준에 감탄하였다. 또한 이들 자료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안 할 때 따를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에 돈을 기부했으며, 농민들은 종종 강제징집 되었고 모병장교들은 거짓말로 병사를 모집했다. 지주들과 기타 “계급의 적”들이 중국공산당을 위한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졌다. 병사들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의 고용주나 동료 시민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정부의 선전에 가장 노출이 많이 되었던 도시에 거주하는 고용주나 동료시민 들조차도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홀대하였다.

 

  똑같은 슬픈 이야기가 1979년 베트남과의 짧은 전쟁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베트남에 대한 언론의 야단법석과 격노의 표출이 있었지만, 기록보관소의 문서들을 보면 참전용사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때 애국자적 신분의 혜택을 받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군인의 부인들도 역시 그들의 신분을 쉽게 활용할 수 없었다. 도시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전국을 활보했던 문화혁명 시기에, 상하이 대법원의 조사를 보면 진짜 병사의 부인들이 강간을 당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탈영한 병사들에 관한 사건이 수십 건 있다. 사실 중국 정치에 있어서 기록보관소 자료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념은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서구의 분석가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개념이다. 민족주의는 서구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잘 ‘부합’하며, 다양한 시위를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족주의 및 마르크시즘, 심지어는 일본에 대한 분노도 그것이 수백만의 농민들을 움직여서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지원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상의 증거는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문화혁명의 유혈을 막지 못했으며, 전시나 평화의 시기에 나라에 봉사한 사람들을 더 잘 대접하는 데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당분간, 그리고 더 많은 기록물이 공개될 때까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작금의 ‘민족주의자’ 또는 ‘애국적 해커’들이 정부에 의해 고용되었는지, 혹은 당의 지휘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당분간 장기적 관점을 택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민족주의적 언설과 온라인 채팅이 유의미하고 장기적인 행동을 초래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진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 행위에 기반을 둔 증거가 기자들에게 들려준 연설과 논평에 기반을 둔 증거와 맞아 떨어지는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입증을 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 이 글의 원본 (“China’s Nationalism?”)은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East Asia Forum과 제주평화연구원의 협약 하에 국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합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미국 펜실베니아 주 디킨슨 대학 아시아 법과 사회 전공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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