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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개혁의 취약성
등록일
2012-06-19
조회수
7

  2011년 3월 “문민(文民)” 연방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미얀마 자유화의 범위와 속도는 놀랍다. 자유화 정책은 다문화 국가로서 미얀마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고 있다. 정치, 경제, 국정관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은 개혁 아젠다를 설정해왔으며, 개혁의제들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테인 세인 대통령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군부주도 통치하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사회적 결함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군부가 기안하고, 조작된 국민투표에 의해 2008년 5월 압도적으로 승인된 헌법 아래서, 미얀마의 국가는 미얀마의 다원적 문화와 다민족성을 반영하는 보다 다원적인 행정체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50년에 걸친 권위주위적 지배가 끝난 이후그 중 약 절반의 기간 동안 미얀마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서방국가들이 미얀마의 개혁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제한적이었던 제재를 풀었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 하에서 별 성과도 보지 못하면서 20년 동안이나 제재를 통한 정권 교체를 추구해온 미국조차도 엄중했던 제재를 긍정적이고 반갑게 풀면서 미얀마의 자유화를 환영하였다. 일본은 경제개발지원을 재개하고 있으며, 국제 원조 기구들은 복잡한 미얀마 사회의 긴급하고 만연된 필요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으로부터 노련한 미얀마 전문가들, 그리고 또한 미얀마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이들 개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개혁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또 개혁이 지속되기에는 너무 취약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가져왔다. 개혁이 거짓이며 계속적인 권위주위적 통치의 허울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초기의 해외 및 국내 회의론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이러한 문제들은 실재하는 것이다. 개혁이 진짜라는 것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영속성과 잠재적 효과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서 일부 고위 군인들, 그리고 개혁으로 인해 그들의 생계 또는 독점적 권력과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반대가 있어왔다는 일화적 증거가 있다. 이러한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개혁이 뒤집힐 수 있을까?

 

  헌법적으로는 상엄한 군부 통치로 회귀하기 위한 조항들은 존재하고 있다. 이들 조항들은 개혁을 좌절시키고, 미얀마를 군부가 그들의 통치와 권력의 유지를 정당화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병영국가로 후퇴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개혁들이 이미 내부적으로 상당히 낙관주의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만약 이미 실현된 진전을 완전히 봉쇄하여 버린다면 군부에서 볼 때 국가비상사태라고 할 대중적 감정의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외국의 침공이나 전국적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개혁 과정이 전면 중단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 개혁이 도매금으로 산산이 찢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 내의 몇몇 인사를 포함한 일부 분석가들은 개혁이 “불가역적”이라고 한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개혁은 테인 세인 대통령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체적인 과정으로서 개혁은 불가역적일 공산이 크다. 버마의 정치적 문화에서는 권력이 상당히 개인화되어 있어서, 권위가 잘 제도화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어떤 일이 생기거나, 2015년에 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면, 혹은 정치 과정이 상당히 악화된다면, 취약한 개혁들은 지지부진해질 것이다. 테인 세인 대통령이 2014년 ASEAN 정상회의와 2013년 동남아시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임기 내내 그의 정책을 유지한다면 개혁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보다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개혁을 집행하는 국가의 능력과 버마국민들이 명백하게 원해온 성과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속도와 관련된 문제점들이다. 대부분 지도자들의 군사적 배경 및 군대의 우위에 대한 명시적 헌법조항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엄격한 군대명령체제는 민간부문에서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이제 정책상의 변화는, 먼저 입법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유화된 사상과 절차를 누려본 적이 없거나 심지어는 평생 이에 관한 글을 합법적으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통하여 집행되어야만 한다. 정책의 집행과 비교할 때, 정책변화의 천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따라서 정책의 취약성은, 정책의 역전보다는 잘못된 집행이나 예견되지 않은 결과로부터 드러나게 될 공산이 크다. 개혁과정은 또한 균등하지도 않고 문제투성이며 덜 이상적인 방식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개혁의 속도는 어떤 이에게는 지나치게 느리게 여겨지고 어떤 이에게는 반대로 지나치게 빠르다고 여겨져서 불만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 정책, 보건 및 교육과 같은 사회 분야, 보다 참여적인 정치과정, 국가와 국민 간에 더 많은 정치적 공간의 개설, 일부 소수민족 문제들에 관하여 개혁이 시작되었다.

 

  수십 년 동안 미루어진 환율 단일화도 실행되었다. 또 새로운 해외투자법안이 만들어 지고 있다. 은행개혁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으며, 국영기업과 같은 공공부문의 개혁이 검토되고 있다. 주변 지역 국가 중에서 가장 적은 보건예산도 두 배로 증액되었다. 고등교육도 변신되었으며 국가의 통제로부터 좀 더 독립적으로 되었다고 홍보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합법화되었으며, 허가를 받은 시위는 이제 적절하게 되었으며, 검열도 확실히 대폭 감소하였다. 새로 설치된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권침해가 심사된다. 1949년에 시작되어 현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반란도 휴전으로 종결되었다. 버마 역사상 최초로 지방의회가 설립되었으며, 이들이 지역 문제에 대하여 보다 많은 관심과 해결책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들이 포괄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독특하게 버마적인 자유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군부는 헌법을 통제할 것이며, 민간에 의한 군부통제라는 서구적 개념은 절대 반대할 것이다. 군부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공 부문의 일부가 아닌 그들만의 기업집단을 통하여 경제의 많은 부분을 관리할 것이다. 미얀마 사관학교 입구의 판화가 시사하는 것처럼, 미얀마 군부는 아마도 군사기관뿐만 아니라 문민화된 행정부에서도 활동을 할 “미래 엘리트”를 훈련시킬 것이다. 국영기업들을 제외하면 자본이 부족한 민간 부문은, 은행권이 아닌 경로로 자금조달을 하는 사람들- 즉 중국인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미래의 중산층은 근본적으로 중국인과 은퇴한 군 고위급들일 수 있다. 따라서 복합적인 문제들과 위험은 지속될 것이다.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에 대하여 버마 고유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든 과제이다. 민족갈등으로 인해 1948년 독립 이래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났으며, 전 국가원수의 추산에 따르면 백만 명 가량의 인명 손실이 초래되었다. 민족국가의 형성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과정으로, 식민지 이전과 식민지 시기, 그리고 군부독재와 민간정부를 포함한 독립시기에 있어서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미얀마 국가가 당면한 근본적이고 가장 심대한 문제이다. 불행한 미얀마를 위한 보다 밝은 미래는 바로 이 문제의 해결에 달려있다. 지난 반세기동안보다 작년 한 해 동안에 더 많은 긍정적인 일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회구조 속에서 오래도록 뿌리 깊은 태도의 변화를 수반하는, 인종집단 간 권력과 자원의 배분에 있어서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균형에 도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균형은 셰익스피어의 표현처럼 열렬히 기원되는 완성인 것이다.

 

* 이 글의 원본은(원제목: “Myanmar: How Fragile the Reforms?”) PacNet에 게재된 것으로 Pacific Forum CSIS와의 협약 하에 국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現 조지타운대학교 외교대학원 아시아학 석좌교수. 최근의 저서로 Fan Hongwei와 공저한 “근대 중국-미얀마 관계: 상호의존의 딜렘마”(2012)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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