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관계의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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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동북아 정세가 구조적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역내 국가들은 각 국의 행보를 서로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류 역사상 많은 비극을 불러온 세 가지 조류, 즉 민족주의(nationalism), 영토회복주의(irredentism), 군사주의(militarism)가 동북아에서 결합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지역 공동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동중국해의 파고는 매우 높아지고 있다. 중일 간의 영토분쟁, 각 국의 방공 식별구역 설정과 운영방식의 상충으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2007년 6월 한중일 외교장관들은 처음으로 제주도의 국제컨벤션센터에 모여 3국 관계와 동북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 해상안전, 항공연결, 문화셔틀, 언론교류 등 비교적 덜 민감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매우 협력적인 논의를 가졌다. 그 후 한중일 협력사무국 개설, 3국 정상회담의 정례화로 발전된 것은 3국 관계에 있어 의미 있는 한 획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동북아의 협력 기류는 6년 전 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이 고착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자적 협력과 함께 한중관계를 포함한 양자적 관계들이 조화롭게 발전돼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동북아 공동의 미래 질서를 구축하는 핵심 축의 하나가 될 것이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실질적 관계 발전에 맞추어 성격 규정도 진화해 왔다. 우호협력, 협력동반, 전면적 협력, 전면적 협력 동반, 전략적 협력 동반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금년 6월 박근혜 대통령 방중 시 양측은 이제 이런 성격 규정에 맞게 내실화시키자는 데에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양국이 각종 공동위원회 설치와 협력 약정체결에 합의함으로써 관계 내실화를 위한 장치와 제도를 정비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하겠다. 양국은 이미 공동의 전략적 이익에 대한 포괄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동북아의 평화, 안정, 번영이다. 양국은 이러한 추상적 목표를 위한 실천과제로 대륙과 해양 세력 간 대립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극복, 한반도에서 남북 화해협력 조성, 북한 핵문제 해결, 주변과 조화되는 한반도 통일 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실천 방법론을 같이 논의할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각 과제별로 많은 모순적 요소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바이든 부통령의 일중한 3국 방문 시 나타난 바와 같이 정치인과 외교관들의 상황관리와 무마를 위한 수사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상충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와 “한미 21세기 포괄적 전략 동맹”을 조화시키는 문제다. 2008년 4월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 한미 전략 동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한미 양국은 중국을 건설적으로도 파괴적으로도 관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중관계와 한미관계 가 민감하게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범지역적 문제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한국의 참여가 지역의 평화와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추진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한미일을 삼각 안보협력 체제로 묶으려는 움직임과 한중 전략적 협력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TPP와 RCEP, 그리고 한중 FTA,한중일 FTA를 함께 타협시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한국은 주한 미군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는데 대해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와 운용방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에 대해 한중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치의 공유면적은 어느 정도인지 하는 것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 문제들일 것이다. 둘째, 동북아 안보의 최대 장애요인 중 하나이고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북한 핵 문제에 대해 한중이 전략적 협력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과 종국적 해결은 한중 양국에게 엄청난 국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지역의 긴장완화를 통해 양국은 각자의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역내 경제협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 핵 위협을 구실로 하여 군비경쟁을 도모하는 세력들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선 비핵화조치나 믿을만한 의지를 보여라” 고 요구하고, 북한은 그렇게 하기 위해 “미국이 먼저 제재해제나 완화 조치를 취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란 핵문제의 초기 합의처럼 북한에 대해 제재완화를 시켜주고 바로 북한이 비핵화 초기조치를 취하도록 중국이 보증 역할을 하는 길을 한중이 공동으로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한중이 사용하는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가 어떻게 다른지, 단순히 중국이 북한을 배려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과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있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중 양국은 6자회담에서 남북과 미중이 합의할 수 있는 북한 비핵화 방식과 한반도에서의 공존방식을 도출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했다. 그러한 협력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드는 큰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합의의 이행과정에서는 그런 동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가 여전히 동의하고 있는 이 공동성명의 실천을 위해서는 한중이 말보다는 행동에 기초한 진정한 의미의 전략적 협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환경 조성을 위해 한중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함께 굴러가야 할 두 개의 바퀴 중 하나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대북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하지만, 대북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신중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중 양국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대외적 환경을 조성하도록 과감한 정치적경제적 투자를 함께 도모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남북이 평화협력적으로 공존하는 가운데 미국과 북한이 수교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휴전 체제가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문제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병행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 경로에 대해 한중 간에 높은 차원의 조율이 이루어 질 때, 비로소 양국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은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그리고 공유할 때 가능할 것이다. 중국의 국가발전에 필요한 대외 환경의 안정이나,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인적물적 교류를 포함한 일상의 양국 관계 증진, 그리고 최근 일고 있는 북한 내부정세 혼란과 앞으로의 불안조짐에 대한 효과적 대처 등 양국 공동의 이슈들 모두가 그 비전을 바탕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한중 양국은 세계 어느 양자 관계 못지않게 지리, 역사, 문화, 안보,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 만큼 많은 현재적 문제와 잠재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해상 경계, 어업, 역사, 무역, 투자 등에서 갈등의 노출은 한중이 제도적 장치와 지혜로운 운용을 통해 해결하고 관리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동시에, 양국은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깊고 넓은 인문적 유대에도 불구하고 근 1세기에 걸친 관계 단절로 인해 이질화된 요소가 많이 생성되었음도 인식해야 한다. 양국은 서로 확연히 다른 정치 제도를 갖고 있다. 서양 문화에 익숙해진 한국의 세대와 독자적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중국의 세대 간 의식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음도 직시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중 양국이 안고 있는 어려운 과제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국 정부의 입체적 국가 전략이 요구되지만, 양국의 학계, 경제계, 문화계, 언론 등의 역할도 긴요할 것이다.
現 경남대 석좌교수. 외교부 북미국장, 주 폴란드 대사, 외교부 차관보(6자회담 수석대표),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장관급), 제34대 외교부 장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 등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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