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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강대국 정치와 한국의 좌표
등록일
2013-09-23
조회수
7

1. 중국의 부상 지속

  중국의 부상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대외전략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모습을 가급적 삼가면서 경제발전을 통해 축적한 힘을 중장기적 차원에서 정치 및 군사적 영향력 확대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 비해 정치적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은 다소 뒤지는 양상이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은 ‘책임감 있는 대국외교’ ‘평화굴기’ ‘평화발전’ ‘조화세계’ 등 자신의 외교정책 기조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2008-2010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공세적 외교행태로 인한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대 중국 견제가 강화되었다. 이에 대한 자성으로 2011년엔 중국이 비교적 신중한 대외정책 기조로 전환하였다.

  이는 금융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미국이 중동에서 아시아로 전략의 중심축을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ward Asia)’ 전략이란 기치 아래 동맹을 강화하고, 동남아에 대한 구애(求愛)작전에 돌입했으며, 서태평양 지역의 제해권(制海權) 수호를 위해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때 2013년 6월 7-8일 미중정상회담을 통해 나타난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대한 고차원적 대응이다. 각자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건설적 경쟁을 하고 지역 및 범세계적 이슈에 관해 협력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2. 강대국정치의 등장

  그러나 바다에 대한 통제력, 즉 제해권(制海權) 문제는 서태평양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과 이에 대한 ‘도전’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 간에 치열한 각축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어 있는 남중국해의 섬들에 대한 국제법적 지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분쟁 당사자들 간의 중장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이 반세기 이상 누려온 서태평양 바다에 대한 절대적 힘의 우위에 중국이 도전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이상 ‘차분한’ 접근이 힘들 수 있다.

  일본에게 있어서 중국의 부상은 아시아 지역의 리더십 향배와 관련이 있다. 과거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낸 일본은 오랫동안 역내 국가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경제력을 앞세워 동아시아에서 나름대로 리더십 확립에 성공하였으나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 수동적인 모습이 중국의 적극적 행보와 대비되면서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갔다. 국내정치의 유동성 증가 속에 역내 외교력 발휘가 꿈만 같은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해야 할 처지다.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계산은 복잡하다. 유라시아 국가로서 유럽과 중앙아시아 문제에 집중해 왔던 러시아는 ‘아시아의 시대’를 맞아 아시아 외교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의 기득권적 질서에 편승하거나 저항하기 보다는 수정주의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중국이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러시아와 공유하려 할지는 미지수이나, 러시아로서는 중국과 힘을 합쳐 미국의 기득권적 질서를 흔드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는 양자외교 차원보다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나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다자외교 틀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아무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의 관계는 ‘강대국 정치’(great power politics)를 연상시킨다. 현재의 국제질서가 그나마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은 불안정한 다극체제의 성격을 지닌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주둔하며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불안정한 다극체제로 변모할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강대국들은 경쟁 국가들을 제치고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 무질서를 초래할 것이다.

 

3. 한국의 좌표

  과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 간의 역학관계가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강대국 협조체제로 갈 지 불안정한 다극체제로 갈 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해답에 접근하기 위해선 동아시아 강대국 역학구도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여타 강대국의 인식과 전략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한 여타 강대국들의 인식이 불신과 우려에 기초하고 있다면 강대국 협조체제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한 바,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대국들 간의 역학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지역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중 국력격차가 상당히 좁혀져 10년 정도 후엔 미중관계가 상당히 불안해 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국가전략을 짜야 한다. 미중이 경쟁 속에서도 협력의 틀을 유지하는 향후 10년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결정적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기여할 수 있게 운용해 나가야 한다. 한·중 경제협력과 정치군사협력 간에 균형을 도모하고, 통일한국이 중국에게 득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가야 한다. 결국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조화 발전시켜 나가는데 한국외교의 좌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現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前 외교통상부 차관. 미국 텍사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교수, 미주연구부장 등을 지냈으며, 국방부 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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