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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지역의 평화와 안보
등록일
2014-02-14
조회수
7
아시아가 이미 세계의 핵심지역이 되었으며, 또한 핵심 경제지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중요성의 부상에 비해 정치 및 전략적 영역의 발전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발전이란 각 국가의 주민들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은, 안정적 국민 국가와 효과적인 정부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아시아는 매우 취약하다. 사실, 아시아 지역의 국내 및 국제적 갈등은 대부분 기존의 국민 국가 및 정부의 정당성 여부에 기인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갈등을 매우 민감하고 타협이 불가한 국내 관할사항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대개는 그러한 정치적 사안들을 직접 다루는 것을 꺼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발전은 아시아의 성장을 저해하고, 어쩌면 아시아의 정치지형도에서 극적인 결과와 함께 일부 국가의 와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중요한 사안이다. 1978년 이래 대규모 국제전쟁은 없었지만(1999년 카르길전쟁은 지리적, 군사적 규모뿐만 아니라 목적에 있어서도 제한적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우발적 또는 의도적으로 국제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수많은 국내외 안보문제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남북한, 중국과 대만,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의 국경 상황은 군사적 대치를 특징으로 한다. 아시아는 육지와 해양에서의 미해결 영토 분쟁이 여전히 많다. 아시아 국가들은 군사력의 구축과 현대화에 상당한 예산을 쏟고 있으며, 국가안보라는 명분하에 잠재적 군사공격을 억제하거나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강력한 동맹과 제휴를 추구하고 있다. 광의의 아시아 지역은 핵무기 보유국이 7개국이나 되며, 오늘날 핵 세계의 진원지로 부상하였다. 요컨대, 국가안보는 강대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겐 지속적인 중요 관심사이다. 이와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은 1978년 이래 이 지역을 특징짓는 “장기간 평화”을 유지하려고 한다. ‘장기간 평화’는 지역의 경제적 발전과 정국의 안정을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화와 안보는 이 지역의 주요 목표 및 바람이 되었다. 평화와 안보라는 말은 널리 사용되지만, 두 용어의 핵심개념뿐만 아니라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때 내재하는 긴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최소한의 국제평화는 국가 간 전쟁의 부재를 뜻한다. 문제는 있지만, 전쟁의 부재라고 정의된 평화는 당분간은 아시아에서 중요한 목표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경제 발전의 퇴보 및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와해와 같은 많은 부정적 결과들이 초래될 수 있다. 국가안보는 정치와 영토의 현상 유지를 중시하는 기존 정치적 독립체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 동시에 쓰이기도 하고 종종 호환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평화와 안보는 의미가 같거나 상호 보완적인 것은 아니다. 평화에 대한 요구는 특정 국가의 안보를 침해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예컨대, 영토 및 정치적 통합의 보존이라는 목표는 안보딜레마를 악화시켜 평화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평화의 당위적 요청에 따라 평화적 분쟁 해결 및 군축, 군비철폐를 주장할 수 있지만, 이는 군사력을 구축하거나 동맹 및 제휴, 국제군사훈련을 통한 타국과의 군사 협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억지’를 통한 국가안보의 당위적 요청에 반할 수도 있다. 두 가지 목표 모두 중요하지만, 평화의 구축과 국가안보의 보장을 함께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면 상충적 요구들에 대한 조화가 필요하다. 경쟁적인 요청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국가안보를 평화와 양립할 수 있도록 재정의하는 것이다. 안보를 단순히 기존 정치 및 영토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차라리 각 국의 주민들이 지지하는 비폭력적 변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된 안보의 주요 대상은 인간(또는 정치 공동체)이다. 정치 체제와 영토 보존은 정치 공동체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안보를 고려할 때 인간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현상 유지와 국가 영토 보존이 강조되어 왔으며, 일부 사람들이 국가안보라는 명분하에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왜곡된 우선순위는 “한치의 영토도 타협할 수 없다”는 정치적 발언을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많은 국내외 안보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국가안보는 정치체제 및 영토 보존을 비타협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정치공동체가 지지하는 평화적 변화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되, 불화와 분쟁 해결에 널리 쓰이는 규칙, 기구 및 절차와 같은 제도를 통하여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안보를 위와 같이 재정의하면, 평화의 요구를 안보와 조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구조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이는 가까운 미래에는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접근방법은, 억지전략을 통해 신중하게 평화와 안보에 대한 경쟁적 요구들에 대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억지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가하겠다는 보복 협박으로 군사 침략을 막는 전략이다. 핵 억지는 냉전기간 동안 두 초강대국 간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시킨 주요 전략이었다. 효과적 억지는 대규모 전쟁의 발발을 방지함으로써, 국가안보와 최소한의 평화를 모두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 억지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주겠다는 보복 협박에 의해 평화와 안보를 달성한다는 도덕관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사안이다. 억지라는 명목하의 군비 증축이 기존의 안보딜레마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력적인 선택은 아닐지라도, 억지는 평화와 안보의 상충적 요구를 조화시키는 현실적 접근방법을 제공한다. 그렇더라도 억지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며, 무한한 해결책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불화를 제거하고 분쟁을 해결해야 평화가 가능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기존의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한다. 보다 현명한 후손들이 해결하도록 분쟁을 보류하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정치가다운 판단이지만, 이는 후손에게 짐을 떠넘기는 핑계에 불과하다. 또 다른 핑계는 소위 비전통적 안보에 대한 투자를 하면, 그 성과물이 전통적 안보 문제의 해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 내려면, 정치와 영토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의심에 근거한 불화와 적대감을 이젠 짚고 넘어가는 확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안보의 주요 대상으로 사람을 우선시해야 하며,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비폭력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분쟁이 해결되면 곧바로 승자와 패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나라와 지역 전체가 이로 인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평화와 안정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며, 강력한 전략적 기반을 토대로 아시아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것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의 지도자들과 동아시아 정상회담 및 ASEAN, ASEAN 지역 포럼과 같은 주요 포럼들은 전략적 문제와 사안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를 통하여, 아시아 지역에 평화와 안보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역 평화와 안보 구축을 위한 여러 버팀대들이 이미 시작 단계에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버팀대들을 인정하고, 통합하고 나아가 발전시키는 것이다. ASEAN이 주도하는 대부분의 다자간 지역포럼들은 분쟁 관리와 해결을 위한 규칙 및 절차, 공동의 전략적 틀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확고한 시간설정과 함께 분쟁 해결이 중심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이제 이를 악물어야 한다. 동맹과 제휴는 냉전의 유물이 아니라, 현시대의 국가안보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군의 현대화는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 투명성을 동반해야 하고 효과적 억지와 분쟁 해결을 고려하여 완화되어야 한다. 분쟁 해결과 억지는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향해 나아갈 버팀대가 될 것이다. 아태지역의 학자, 연구기관 그리고 소위 싱크탱크들은 분쟁해결과 효과적인 억지 방안에 관한 학문적 지식의 발달을 위해 상당한 자원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결정자들은 아시아를 보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이 두 가지 목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무티아 알라가파 박사[muthiah.alagappa@isis.org.my]는 말레이시아 ISIS의 ‘툰 후세인 온’ 국제연구 석좌 연구위원 및 워싱턴 DC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비상임 선임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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