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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새 지도부 선출과 의미
등록일
2014-09-02
조회수
7

  유럽연합 새 지도부가 완성되었다. 지난 5월 22~25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후 유럽  정상들은 향후 유럽연합을 이끌 지도부 TOP 4(유럽의회 의장, 집행위원장, 상임의장, 외교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긴 협상을 벌였다. 이미 선출된 유럽의회 의장과 집행위원장에 이어,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유럽정상회담에서 상임의장과 외교대표가 결정되었다. 짧게는 2.5년, 길게는 5년 후까지 유럽연합을 이끌 지도부의 윤곽이 그려진 것이다.

 
정파별, 국가별 배분과 성향: 조화와 안배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09년 11월 리스본 조약 발효 후, 처음으로 조약에 근거해서 집행위원장을 선출했다는 점이었다. 유럽연합의 거버넌스가 ‘민주주의 결핍’에 빠져있다는 지적에 따라, 리스본 조약은 집행위원장 선출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고려할 것을 명시하였다(TEU 7조 17항). 그리고 비록 조약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비중을 가진 나머지 TOP3 자리도 여러가지 정치적 안배가 필요하였다. 올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 정파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파인 온건보수 계열의 ‘유럽인민 정파(EPP)’와 사회주의 계열의 ‘사회민주 정파(S&D)’가 무난히 1,2위를 유지함으로써 집행위원장과 의회 의장도 양 정파가 하나씩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2009년의 지도부 선출에서는 리스본조약이 발효되기 전 이미 선출된 기존의 집행위원장과 의회 의장은 제외하고 새롭게 요청된 상임의장과 외교대표 두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만 집중되었다. 관심의 폭도 정파별, 국가별 배분보다는 인물의 중량감으로 모아졌다. 이후 5년 남짓 제도적 기반이 어느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TOP4의 자리가 동시에 바뀌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 선출에서는 인물보다는 정파별, 국가별, 성별, 지역별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도부 구성의 고려 사항은 좌/우 균형, 여성과 동유럽 배려였다. 이런 구도 속에서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중도우파, 남성, 서유럽), 마틴 슐츠 의회 의장(중도좌파, 남성, 서유럽)이 먼저 그림의 한쪽을 채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두 자리도 정파별로 역시 좌·우가 균형을 이룬 가운데 여성과 동유럽 배려가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더 나아가 현재 캐서린 애쉬턴 외교대표가 여성이므로, 차기 상임의장 후보로는 여성인 덴마크의 헬레 토닝-슈미트(중도좌파) 총리가, 외교대표로는 남성인 폴란드의 라덱 시코르스키(중도우파) 외교 장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널드 투스크(폴란드) 상임의장, 페데리카 모게리니(이탈리아) 외교대표로 배열이 맞춰졌다.

 

모게리니 외교대표: 신데렐라 또는 억척스런 그녀

  지난 7월 임시 정상 회담에서만 해도 토닝-슈미트 상임의장, 시코르스키 외교대표 체제가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선출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투스크-모게리니 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투스크 총리가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역설적으로 모게리니가 외교대표 후보로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기 EU외교 대표로 내정된 모게리니 현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올 2월에 입각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정치 신인이었다. 외교대표 지명에 앞서 그녀에 대한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7월 유럽정상 회담에서 그녀의 이름이 거명되기는 했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두 가지 이미지 때문이었다.

  첫째, 그녀가 지나치게 친 러시아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긴장관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9일 열린 러시아-이탈리아 외무장관 회담은 하나의 예이다. 여기서 모게리니 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럽의 러시아에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며, “그것도 효과가 분명할 때만 사용되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제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욱이 7월부터 이탈리아가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외무장관의 태도는 유럽연합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모게리니의 친 러시아적 태도는 동유럽 회원국들로부터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그리바우스카이트 대통령은 30일 유럽정상회담에서 모게리니 후보 선출 때 기권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이탈리아 회담의 주된 목적이 러시아-이탈리아 간 가스파이프라인의 건설에 관한 것이었고, 이탈리아의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국면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모게리니의 대러시아 태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녀가 너무 젊고 경력도 일천하다는 점이다. 그녀가 상대해야 할 주요국 외교대표들은 올드 보이들이다(존 케리 71세, 왕이 61세, 세르게이 라브로브 64세, 기시다 후미오 57세).  정치 경력도 짧아 유럽 28개국을 대변할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늙은 유럽의 요즘 추세다. 플로렌스 시장으로 일하다 중앙무대를 거치지 않은 채 일약 총리에 오른 마테오 렌지 현 이탈리아 총리는 겨우 39세이다. 에스토니아의 타비 로이바스 총리는 그보다 어린 35살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은 겨우 28세다(게다가 그는 잘 생기기까지 하였다). 그에 비하면 모게리니는 우려할 정도로 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게리니는 모국어 외에 영어,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스페인어도 할 줄 알기 때문에 영어 밖에 할 줄 모르던 애쉬턴에 비해 열린 귀를 가지고 있다. 친 러시아적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녀는 이슬람 종교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엄청나게 활동적이다. 지난 2월에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된 이후 크로아티아, 요르단, 이집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칠레, 콜롬비아, 몰도바 등을 방문하였고, 7~8월에만 스트라스부르그, 브뤼셀, 파리, 키에프 등을 방문하였다. 모게리니가 외교대표로 내정된 데에는 현재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이 이탈리아였다는 점과 이탈리아 정부가 전폭 지원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7월 이후 모게리니가 외교대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자, 마테오 렌지 이탈리아 총리는 모스크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였다. 8월 29일 정상회담 시작 전날, 파리에서 열린 중도좌파 유럽지도자회합에서는 마침내 외교대표로 모게리니를 밀 것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투스크 상임의장: 보이지 않는 독일의 손

  중도 좌파이자 서유럽 출신 여성인 모게리니가 외교대표로 부상하자 상임의장은 자연스레, 우파이자 동유럽 출신으로 굳어졌다. 이에 근접한 후보로는 안드루스 안십 전 에스토니아 총리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우파이지만 유럽 정치 지형의 주요 정파인 유럽인민정파(EPP)가 아닌 자유와민주연대(ALDE)에 속한 정치인이었다. 따라서 유럽인민정파 내의 동유럽지도자가 급히 물색되었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 도널드 투스크 현 폴란드 총리가 부상하게 되었다.
  원래 투스크 총리는 유럽연합으로 진출보다는 국내 정치를 계속 할 뜻을 내비쳤다. 경제위기와 재정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는 프랑스도 유로존 국가가 아닌 폴란드가 상임의장 자리를 맡는 데 부담을 느꼈다. 또한 그가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었다. 상임의장 내정 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외국어 능력에 대한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취임하는 12월 1일 이전까지 영어 실력을 더욱 갈고 닦겠다(polish my English).”라고 받아넘겼지만, 여전히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스크 총리가 선출된 데에는 표면적으로는 그가 친유럽통합주의자이자, 시장주의자라는 이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복합적인 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외교 면에서 대 러시아 정책의 강경파로 꼽힌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높은 톤으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모게리니 외교 대표를 견제하며 조화를 이루기에 좋은 조합이다. 유럽연합 탈퇴 압박을 넣고 있는 영국의 카메론 총리조차 투스크 총리의 인선에 대하여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표현하였다. ‘EU옵저버저’ 지(紙)는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여, “투스크의 상임의장 선출은 유럽이 러시아에 보내는 신호이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유럽연합의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현란하게 놀린 것이 독일이었다는 점이다. 유럽정치에 별 뜻이 없던 투스크 총리를 강력히 밀어준 것은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 내정자를 후원한 데 이어, 투스크 상임의장까지 TOP 4 중 두 자리가 메르켈 총리의 영향력에 의해 지명되었다. 정파는 다르지만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독일인인 것을 감안하면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영향력은 보다 확대된 셈이다. 독일과 쌍두마차로 유럽연합을 이끌던 프랑스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과도한 정부 재정 적자로 유럽연합의 견제를 받고 있는 프랑스는 ‘유로존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지만, 비유로권 국가인 투스크의 내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집행위원회의 경제담당 집행위원으로 자국의 인사를 추천할 것을 타진하였지만, 유럽연합이 규정하고 있는 재정적자 한계를 넘어선 프랑스에게 경제 관련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독일의 경고만 받았을 뿐이다.

 
과제와 의미: 경제, 동쪽의 위기, 영국 그리고 신세대
  유럽연합의 새 지도부가 당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도적으로 리스본조약의 본격적인 적용이다. 조약은 2009년부터 발효되었지만 주요 규정들이 올해 11월부터 적용되기 때문에(예컨대 집행위원 수는 전체 회원국 수의 2/3를 넘지 못한다) 유럽위원회의 집행위원도 회원국 안배에 따라 선임해야 한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 내정자는 “여성 집행위원 10명을 무조건 할당하겠다”고 공헌하였는데, 회원국들이 정파별, 성별, 안배를 국내 정치 사정에 따라 과연 얼마나 따라줄지는 의문이다.
  둘째, 현안을 타개할 프로그램 마련이다. 헤르만 반 롬푸이 현 상임의장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신임 지도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유럽의 저성장 경제, 둘째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안보위기, 셋째 유럽연합 내에서 영국의 입지 확인 등이다. 유럽의 저성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의 재정 정책 조율 기조와 맞물려 향후 끝없는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유로존 정상회담의 개최여부도 중요한 이슈다. 또한 향후 유럽의 안보 환경은 동쪽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역 국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이번 지도부 인선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유럽연합 내에서 그들의 공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애쉬톤이라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감으로서 영국의 물리적 입지는 더욱 약화되었다. TOP 4 중에 영국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할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페데리카 모게리니의 등장이다. 그녀는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EU차원에서 유럽 학생들이 역외 국가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 세대의 첫 주자로 꼽힌다. ‘주권국가’ 개념보다 ‘유럽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세대가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규범세력(Normative Power), 민간세력(Civilian Power)에 익숙한 세대가 엮어내는 정치적 선택은 무엇일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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