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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화합의 새로운 아시아를 향하여
등록일
2015-06-05
조회수
7

작아진’ 세계와 문화 · 문명의 충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국제사회의 글로벌화가 심화되면서 정보, 사물, 인적 왕래, 관계가 비약적으로 긴밀해져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어 ‘작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아진 세계’가 20세기나 19세기보다 더 평화롭고 안정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제적인 테러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정치적·종교적 원리주의의 확산은 국제사회 전체에 커다란 불안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간 다툼과 지역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우선 20세기 말에 냉전이 종식된 까닭에 지금까지 ‘동서(東西)’ 양 진영의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억눌렸던 전세계의 다양한 종교, 민족, 사회 등의 가치관이 국제사회에서 눈을 뜨면서 각자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 존재 이유)’를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작아진 ‘세계’ 속에서 이들이 서로 뒤섞이며 충돌과 마찰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문화, 문명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국제사회 전체의 질서,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불안정 요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스스로 믿는 가치관을 큰 목소리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작아진 국제사회’ 속에서 종전보다 더 ‘문명 간의 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해묵은, 그러나 새로운 과제 ‘성장’과 ‘평등’의 딜레마

 둘째, 해묵은 과제인 동시에 새로운 과제로서 ‘성장’과 ‘평등’, 또는 ‘격차(양극화)’의 문제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커다란 도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단위로 하는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경제성장이 필요합니다. 성장전략 없는 ‘평등론’이나 ‘격차 해소’는 ‘그림의 떡’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대책이 결여된 성장전략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각국의 사회와 국제사회의 미래에 불안정 요인이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최근 우리는 ‘성장’의 중요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평등이나 격차의 문제를 간과하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이 경우 ‘격차’에는 3가지의 다른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격차, 개도국 혹은 중진국 내 격차의 확대, 선진국 내 격차의 확대입니다.

 성숙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면서, 또한 다수를 차지해야 할 중산층이 격차의 확대로 인해 피폐해지고, 세력이 약화되는 것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한일 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격차의 문제에 대응하려면 단순히 경제성장 정책뿐만이 아니라 경제분배 정책으로서의 사회보장정책 및 공공사업정책, 세제를 비롯해 다양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절박한 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 환경 등 글로벌한 과제

 마지막으로 세계는 ‘작아지는’ 반면, 개도국 중심의 인구 증가, 에너지 및 식량 부족, 환경 오염 등 인류가 직면한 공통과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표현입니다만, 우리는 새삼 하늘이 주신 유한한 자연과 자원을 얼마나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늘 뒤늦게야 문제를 깨닫는 어리석은 동물일지도 모릅니다만,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는 일단 임계치를 초월해 문제가 악화된 뒤에 다시 되돌이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아시안 폴라(Asian Polar)의 시대 ? 아시아에 의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필요성

 이상으로 제가 말씀드린 3가지 논점은 다소 지나치게 개념적(philosophical)으로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각국이 안고 있는 눈앞의 과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커다란 전략적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논의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현실적인 문제로서 예컨대, 에너지 위기와 환경 파괴 등을 겪었던 1970~80년대 고도성장기, ‘문명 간의 대화’가 제기되었으며 UN을 중심으로 새천년개발목표를 열심히 논의하였던 2000년대의 밀레니엄 시기 전후 등과 비교해 보면 현재 국제사회는 글로벌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응은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역사적 배경으로서 미·소의 냉전 종식 및 미국의 단극체제, BRICs라는 신흥국들의 비약적인 경제발전 등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걸친 국제사회 전체의 지정학적, 구조적 변화가 간접적인 원인을 들고 싶습니다. 즉 20세기와 비교해 볼 때, 21세기 초반인 지금은 단극(unipolar), 양극(bipolar)보다 다극(multipolar)의 위상이 더욱 강력한 세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슈퍼파워 혼자 혹은 몇몇 국가가 세계를 주도해 나가기보다 주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복수의 강대국(major power) 및 여러 중견국(middle power)이 협력하여 이끌어나가는 시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나라에서 그러한 자각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과거처럼 슈퍼파워가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막연히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릇 인간의 사고방식은 과거의 유형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에 주변 상황의 커다란 변화를 인식하고 스스로 짊어져야 할 새로운 역할을 자발적으로 의식하고 자각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특히 21세기 들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시아의 주요 파워인 일본, 한국, 중국, 인도, 호주, ASEAN 등의 국가 및 조직이 협력하는 가운데 글로벌 이슈를 위한 이니셔티브의 발휘가 새로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 맡길 것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이 서로 협력하여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새로운 ‘아시안 폴라(Asian Polar)’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 각국 간에 지역적이고 글로벌한 이슈를 위해 협력하여 대응해 나가는 모멘텀, 이니셔티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신뢰외교 ·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이런 관점에서 우선 역내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간, 개인 간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신뢰외교’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동북아지역 각국이 다양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평화와 협력관계의 확대를 지향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향후 동북아 국가 간에 구체적인 협력이 원활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평가하는 바입니다. 비핵화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를 기대합니다.

한일관계 50년

 끝으로 올해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은 정치, 경제, 안보를 포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 의존관계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양국의 교류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왕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도 폭넓은 분야에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우호관계를 한층 돈독히 함으로써 더 멋진 50년을 열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일본의 경제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국의 차세대들이 밝은 미래관계를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국이 함께 더욱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다 야스오(전 일본 총리), 2015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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