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외교와 공공외교: FIFA 사태를 통해 본 한국의 대응 |
|
|
FIFA 스캔들과 블래터 2015년 6월 2일, 외신은 블래터(Joseph Sepp Blatter) FIFA 회장의 사임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6월 26일, 블래터가 “나는 사임한 바 없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부패 조사에서 시작되어 회장의 사임으로 끝나는 것 같던 FIFA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이번 사태의 종결이 어떠한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기조차 하지만, 국제 스포츠계를 오랫동안 주의 깊게 지켜본 이들에게는 매우 씁쓸한 기시감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IOC와 FIFA로 대변되는 국제 스포츠조직이 이러한 스캔들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근래의 대표적인 예로서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IOC의 스캔들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이번 FIFA 사태의 원인(遠因)이라고도 볼 수 있는 ISL 파산 사태에 관해 영국 언론인 제닝스(Andrew Jennings)는 Foul!: The Secret World of FIFA: Bribes, Vote Rigging and Ticket Scandals 라는 책을 통해 FIFA의 부패와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캔들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IOC와 FIFA의 위상이 약화되거나 감소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이처럼 끊임없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가까이 축구제국의 황제로서 자리하고 있는 블래터의 힘과 FIFA, IOC라는 거대 스포츠조직의 철옹성 같은 모습에 경탄하기까지 한다. 名士(celebrity)에 투자할 것인가, 조직에 투자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작금의 FIFA 사태는 현실의 스포츠 외교와 관련하여 오래도록 논의되어 온 두 상반된 입장에 대해 다시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스포츠 외교의 강화와 영향력 확보를 위해 국제적 명망을 갖춘 어느 한 개인의 역량과 그를 통한 후속 세대 양성에 집중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장악을 위한 다양한 전문가 양성에 집중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보다 먼저 언급되어져야 할 것은 오늘날의 국제스포츠기구는 이미 그 규모나 수준에 있어 국가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현재 IOC나 FIFA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국들의 숫자는 국제연합의 회원국 수보다 많다. 이는 세계화를 통한 스포츠 시장의 확대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관심의 증가, 이와 결합한 상업주의가 가져온 결과이다. 그 규모나 조직을 감안할 때 IOC나 FIFA와 같은 국제 스포츠기구들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 권위를 갖는 ‘국제체제’로 파악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다. 이들은 IOC나 FIFA를 IMF나 WTO와 같은 대표적인 국제체제와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구들은 자체의 조직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활동하며, 이미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작동하고 있다. 국제스포츠기구가 이와 같은 국제체제로서 작동할 수 있는 힘은 막대한 회원국의 숫자와 함께 소수에 권한이 집중된 피라미드식 조직, 그리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에 대한 독점적 권한에서 발생한다.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와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를 희망하는 까닭에 개최국 선정에는 항상 치열한 경쟁이 뒤따르며, 각종 로비가 판을 치기도 한다. 이들 국제스포츠기구들은 개최국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개최국이 선정된 이후에도 대회의 개최에 따르는 중요한 재정적 사항, 예를 들면 TV 방영권이라든지 공식후원업체의 선정 등에 대해서 개최국과는 무관하게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대회의 개최와 관련하여 개최국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란 유명무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들 국제스포츠기구들은 국가와 국경을 초월하는 정치·경제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국제스포츠기구의 강대화를 가져온 세계화와 상업화, 스포츠 경기와 거대자본의 결합은 동시에 이와 같은 국제스포츠기구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스포츠기구 또한 조직의 존속과 팽창을 위해서는 거대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들 기구나 기구를 장악하고 있는 회장들의 권력이란 스포츠 부문에 한정되어 있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우 다양한 기관에 의해 선정되는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목록의 상위에는 그 절대 다수를 언론계와 산업계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스포츠와 외교 스포츠 외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만약 전통적 외교가 국가의 외교정책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라면, 스포츠 외교는 그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들을 위한 수단들 중의 하나”라든지 “국익달성을 위한,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운 대외정책 혹은 스포츠를 통한 대외관계의 처리”라고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들은 스포츠의 외교적 도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스포츠가 외교적 도구로서 동원되어지는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그것은 스포츠 외교가 다른 외교적 방법들과 비교할 때 “위험 부담이 적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스포츠 외교가 외교의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 있어 스포츠의 정치적 상징성과 도구적 유용성은 스포츠가 세계정치의 무대에서 외교적 도구로서 ‘동원’되는 것을 가능케 하였으며, 20세기 이후의 외교사를 되돌아볼 때 스포츠가 경직된 국가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거나 우호의 증진을 위해 매개체로 사용된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 중 가장 성공적 실례들 중의 하나로 자주 인용되는 것은 1970년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중간의 외교적 관계수립을 위해 동원되었던 탁구와 농구의 경우이다. 소위 ‘핑퐁외교’로 불리는 이 역사적 사건은 스포츠가 국가 간 외교적 교착(deadlock)의 상태를 전환시키는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핑퐁외교’의 성공 이후 세계정치의 무대에서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은 일면 매우 부풀려 선전되었고, 국가에 의해 쉽사리 동원될 수 있는 비정치적 도구라는 스포츠의 유용성은 국가를 필두로 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정치적 의도와 결합함으로써 스포츠 외교 성공의 신화를 탄생시켰다. 21세기에 들어 스포츠 외교 성공의 신화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개념의 등장 및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확산과 함께 결합하여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국가의 힘이라는 것이 하드 파워(hard power)만이 아닌 소프트 파워에 의해서도 영향 받으며, 이와 같은 소프트 파워의 증진은 국가이미지 고양, 정체성의 변화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스포츠는 이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주장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박세리와 박찬호, 김연아와 박지성, 박인비와 류현진으로 대표되는 스포츠 셀레브리티(celebrity)들이 대한민국 이미지 고양에 미친 긍정적 역할에 대한 찬사를 반복하는 것은 새삼 진부하기까지 하다.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추구 나이(Joseph S. Nye)는 국가의 소프트 파워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문화, 정치적 가치, 그리고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주는 문화를 보유해야 하고, 국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가치가 호소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대외정책 면에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FIFA 사태는 스포츠 외교, 혹은 스포츠 공공외교는 절대적으로 도덕적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가 추구해할 모습은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추구하는 가치가 호소력 있으며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평창 드림 프로그램은 이러한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한 모델로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한국 스포츠 외교: 방향성의 모색을 위한 제언”(『JPI 정책포럼』, 2011-26)을 통해 태권도와 평창의 드림 프로그램을 예시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언한 바 있다. 이때 한국 스포츠 외교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스포츠 외교 전문 기구 설립,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스포츠 관련 업무의 통합 및 단일화,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있어 지역과 중앙의 균형 추구 및 중앙정부에 의한 조정”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우리의 스포츠 외교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가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조직의 구축 및 확립과 함께 스포츠 외교 인력 양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양질의 하드웨어를 확보했다고 할지라도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양질의 소프트웨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FIFA와 블래터 사태, 그리고 나이의 언급을 감안할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스포츠 외교 인력의 모습은 명확해지며, 필수적인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국제적 명성을 갖고 있을 것, 비리로부터 자유로우며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 국제무대에서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고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것’ 등이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본인의 실수, 국내외적인 정치상황, 혹은 예기치 못한 사건 등으로 그 영향력의 상당 부분을 손실하고 국제 스포츠 외교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영향력과 명성을 갖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인사이다. 현재로서는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 정도가 있으나, 그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IOC 내에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발전과 성숙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조직의 구축, 외교인력 양성이라는 조건들이 충족된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드림 프로그램이라는 매우 탁월한 시작을 보인 한국의 스포츠 공공외교가 그 맹아(萌芽)적 단계를 벗어나 발전의 대로에 들어서길 기대한다.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책임연구원. 2002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 전공분야는 국제정치이고, 연구 관심분야는 국제협력/협상, 스포츠 정치/외교, 공공외교/ODA, 통일/남북관계 등이 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