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아시아 지역주의(Northeast Asian Regionalism)' 형성과 통일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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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서 지역주의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는 오랫동안 ‘지정학(geopolitics)’적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 분단국이 자리 잡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슈퍼파워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규모 군사 기지를 배치해 두고 있다. 탈냉전 이후 국제질서는 ‘유럽연합(EU)’, ‘남미공동시장(MERCOSUR)’,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유라시아경제공동체(EAEC)’ 등 지역(region)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지역주의(regionalism)’ 경향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세안+3’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도출하는 가시적 성과를 내놓았으나 제도화가 미흡하고 지속적으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지역정상회의이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국, 호주, 인도 등 문화적, 지리적으로 이질적인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지역주의로 발전할지는 의문이다. 동북아의 중심축인 한·중·일 3국 협력은 2011년 사무국을 상설화함으로써 일보 전진하는 듯했으나 국경 문제와 역사 문제로 긴장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가 더딘 주요 이유로는 역내보다는 외부에 대한 의존이 여전히 크고, 지리적으로 분절화 되어있으며, 공동의 가치와 규범이 민족주의와 국가 이익에 가려서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의 조건 그러나 최근 동북아시아는 제도적 차원에서 지역주의의 생성 조짐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협정(RCEP)’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설 움직임,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창설 계획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향후 ‘지역화(regionalization)’를 넘어 ‘지역주의’로 심화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즉, ‘지역화’는 반영되지 않은 지역기구의 과잉창설에 그칠 수도 있다. 2001년 마리오 텔로 교수가 내놓은 한 저작에 따르면, 지역주의는 대체로 ‘지역화’, ‘지역포럼’, ‘국가주도 지역협력’, ‘관세동맹 및 공동무역정책’, ‘경제통합’, 그리고 ‘지역결합’등의 단계로 결집, 공고화된다. 비록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으로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유럽연합은 ‘경제통합’을 넘어 ‘지역결합’의 형태로 진입하고 있는 가장 앞선 지역주의 세력이다. 내적으로는 유럽시민(European Citizen)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외적으로는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인권, 평등, 민주주의, 법치 등을 인류공동의 가치로 전파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지역주의를 정착하게 된 제도적 요인은 거버넌스로서 ‘다자주의’를 그들의 공동의 가치 속에 체화시켰던 점이 컸다. 다자주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지리적, 기능적으로 강력한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이익과 책임에서 ‘상호성의 확산’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또한 강제적이지 않은 일반화된 규범(소위, 행위의 일반원칙)을 받아들이는 ‘조직화의 원리’를 공유한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의 경우,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역내 자기충족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내륙국과 해양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는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행위의 일반원칙’과 ‘상호성의 확산’에 대한 기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통해 증명해내야 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형성의 조건 동북아시아 지역은 초보단계인 ‘지역화’ 수준에는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공적·사적 실체가 사회적·경제적 협력을 무리 없이 구현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관념에 대한 관심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남북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번영 그리고 국제사회에 일정한 참여를 통해 범지구적 이슈에 기여해야 하는 중견국으로서의 책임도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한반도 차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범대륙적 차원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통일전략과 외교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민생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나진-하산 물류 산업과 남북러 협력사업, 남북중 3각 협력 등 국제사회를 포괄하는 공동번영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체- 아세안+3, 한중일 3국협력, EAS, ARF, APEC 등에서 미비한 다자협력체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미개척 분야에서는 새로운 메카니즘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지역주의의 세 번째 단계인 ‘국가주도 지역협력’까지 기대케 한다. 그러나 ‘지역화’가 원숙해지고 ‘지역포럼’이 정착되어 ‘국가주도 지역협력’까지 자연스럽게 심화되지 않는 한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지역주의가 형성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통일외교와 동북아시아 지역주의 그런 면에서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렸던 과거의 ‘6자회담’은 의제가 폐쇄적이고 단순하기는 했지만, 지역의 국가들이 일정 주제에 대해 상호작용하는 ‘시험적 지역포럼’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상호작용이 지속적이지 못하였고 역사적, 문화적 지역화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관행화되지 못한 것은 한계였다. 남북관계를 떠나, 한·중·일 간 공식·비공식적인 다자적 정부 간 교류가 여전히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동북아시아에 지역화를 넘어 지역포럼이 정착되는 데 방해가 된다.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에서 ‘지역주의’ 형성은 한반도의 통일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한다는 물질적, 심리적 공감대를 주변에 확산하고, 이를 통해 범지구적 과제를 능동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미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거대 행위자들이 구상하는 ‘지역주의’ 전략에 한반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토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이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우선되어야 한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전제가 국제사회 공동의 규범이 되어 동북아시아 지역주의의 근간이 될 필요가 있다. 둘째, 실천의 영역에서는 한반도가 선도하는 지역화 사업에 집착하기보다는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익과 가치를 통일정책 속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미·중의 주도 속에 펼쳐지는 동북아의 각종 지역기구의 창설 경쟁 속에서 정부의 통일정책을 동북아 외교정책과 연계할 전략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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