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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총선과 한국의 對 미얀마 전략
등록일
2015-11-20
조회수
8

  지난 11월 8일, 미얀마에서는 1990년 이래 25년 만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총선이 실시됐다. 2010년 총선과 달리 이번 선거에는 광활한 부정선거도 없었고, 야당의 참여로 인해 총선 자체의 정통성이 확보되었다. 또한 80% 이상의 투표율은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적 열의를 대변한다.

필자는 10월 초 미얀마를 방문하여 출마자들의 유세를 직접 관람했고, 출마자도 면접했으며 민심의 향배도 관찰했다. 개표가 완전히 끝난 상황은 아니지만 필자가 조사한 것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로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국민민주주의연합(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승리했다. 까친주 일부 의석(상원 1석, 하원 2석, 지방의회 8석)을 제외하고 NLD가 총 의석의 76.7%를 차지한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집권 여당의 테우(U Htay Oo) 공동 대표는 선거 다음 날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 군총사령관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는 애초의 약속을 확언했다. 한편, 아웅산수찌는 11월 10일, 대통령, 하원의장, 군총사령관 등 3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정국 현안과 관련한 회동을 제의했고, 18일 하원의장과 평화적인 정권 이양에 합의했다. 1990년 총선에 승리했을 때 NLD 당원이 뉘른베르그 재판이나 군부 통치의 종식 등을 주장하며 군부를 자극했던 것과 달리 아웅산수찌의 다소 유화적인 행동은 그녀의 정치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로서 군부나 여당이 총선 결과를 무효화 할 그 어떤 명분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NLD의 승리 배경은 50년 이상 지속된 군부정권에 대한 증폭된 피로감의 해소와 반사효과, 아웅산수찌의 대중적 인기로 설명될 수 있다. NLD는 이번 총선에서 “변화의 시간이 왔다.”라는 구호를 통해 국민의 가슴 속 응어리를 단번에 해소했다. 이에 반해 여당 연방단결발전당(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은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를 선거 구호로 정하여 현 정부의 업적을 계승하고자 했다. 사실 국민들은 현 정부의 개혁개방을 높게 평가하지만, 준민간정권보다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갈망해 왔다. 선거는 끝났으나 미얀마의 과제는 산재해 있다. 첫째, 아웅산수찌의 리더십과 NLD의 수권 능력을 실험할 본격적인 시험대가 펼쳐질 것이다. 이번 선거는 아웅산수찌 혼자서 일궈낸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에 대한 국민적 신망은 높은 편이다. 국민들은 “어메 쑤”(Ame Su), 즉 “어머니 수찌”라고 부른다. 국민들은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가 집권하게 되면 지금까지 군부정권과 달리,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해 줄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발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웅산수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NLD는 정치와 행정 경험이 전무하고 이번 총선에서는 변변한 공략집도 내 놓지 못했다. 우리가 행해야 할 모든 것이 변화라는 NLD의 입장과 나(아웅산수찌)와 우리 당(NLD)만을 보고 투표해 달라는 아웅산수찌의 연설은 NLD 내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대목이다. 또한 차기 정부에서 권력 갈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바로 NLD 내부에서 시작될 수 있다. 헌법 제 59조 f조항에 따라 아웅산수찌는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의석 획득 수를 감안할 때 군부의 협조 없이는 대선 전 100일 이내 헌법 개정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아웅산수찌는 “대통령 위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언급해 왔는데, 과연 ‘명목상’ 대통령이 아웅산수찌의 의중을 그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NLD 내 대통령 후보는 당 중앙위원회 15인 내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도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당 내 후속세대는 없으며, 국정 전반을 운영할 각 분야의 전문가도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위의 존재”는 군부정권만의 ‘막후권력’이라는 정치문화를 아웅산수찌가 도입하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준민간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전환하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로의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민간권위주의가 등장할 것인가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NLD의 역량과 관련하여 미얀마가 당면한 급선무 과제인 국민화해와 국가통합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래 아직까지 국민국가를 완성하지 못했다. 현 정부는 2011년부터 무장 반군단체와 대화를 원칙으로 하는 정전협상을 벌였고 지난 10월, 17개 단체 가운데 8개 단체와 전국적인 정전협정을 완료했다. 총선 이후 협상 중에 있는 무장단체들은 NLD에게 축하 전문을 발송하는 등 우호적 관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향후 NLD가 주축이 되는 정전협상에서 이들 단체들은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정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정적인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NLD는 국민화해와 국가통합을 국정의 최대 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방법은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군부는 반군 문제를 빌미로 국방과 치안에서 배타적인 자율권과 정전협상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국민화해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군부의 정치개입 명분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도 나타났듯이 NLD는 버마족(Burman) 중심의 정당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소수종족으로 구성된 자치주(State)에서 NLD는 의석수의 절반도 획득하지 못한 반면, 버마족 중심의 행정주(Region)에서는 모든 의석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특히 로힝자족(Rohingya) 문제가 쟁점화되는 여카잉주(Rakhine)에서는 지역 정당의 기세에 크게 눌렸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NLD에게는 종교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소수종족 문제를 단독으로 해결할 역량이 없어 보이며, 이를 위한 전략도 부재하다. 셋째, 군부와의 협력 방법과 그 폭이다. 총선 이후부터 내년 3월 말로 예정된 차기 정부 출범까지의 시기는 정치적 과도기, 또는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리에 도태되어 과거사 청산, 급진적인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군부의 경제활동 봉쇄 등 군부를 자극하는 정책이 나올 경우 군부의 반발이 예상되며, 최악의 경우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아웅산수찌는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군부와 협력하는 방안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962년부터 군부가 집권한 이유로 군부의 대체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차기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군부의 협조와 참여를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출 건이다.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1명 후보와 군부 출신 1명 등 총 3명을 선출하여 최종적으로 상하원 합동선거인단이 선출한다. 현 정부의 사례를 볼 때 2015년 1월 말 국회 개회와 함께 대통령 선출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며, 2월 내로 대통령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후보는 국회의원으로 국한되지만 군부 출신 후보를 제외하고 각 의회에서 원외 인사를 추대할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하원에서는 NLD 출신 의원(당원)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으나, 상원은 통상 소수종족을 후보로 선출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NLD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론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향후 정치질서가 어떻게 전개되든 미얀마는 분명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베트남 변호사 응웬 반 다이(Nguyen Van Dai)를 비롯하여 베트남 내 민주화운동가들은 미얀마 총선이 베트남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국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중국도 미얀마와의 우호적 관계를 과시하는 데 주력하고, 미국도 미얀마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미얀마 총선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에 한국도 미얀마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한다. 먼저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원조 확대로 동남아에게 ‘중국기회론’을 제공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고 있다. 소위 말라카 딜레마, 남사군도를 둔 강대국의 갈등 등은 이해 당사자가 소속된 아세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진주목걸이 전략 등은 미얀마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 중국의 대 동남아 정책에 있어서 미얀마가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미국 또한 미얀마 내 마약 퇴치, 소수종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미얀마를 둔 양국의 경쟁과 갈등은 새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미얀마는 전통적인 외교전략인 중립노선을 유지하면서 현 정부의 헤징(hedging)전략을 계승할 것 같다. 당분간 미얀마 내 반중정서를 감안하여 중국과 등거리 외교를 고수할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정책의 우선 국가는 중국이며 이러한 명제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대 미얀마 제재를 완전히 해제할 가능성은 낮고, 재무부에 등재된 '블랙리스트(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List: SDN)' 명단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수찌는 친미주의자가 아니라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국에 종속됐던 외교의 추를 균형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미얀마는 북한과 함께 지구 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였고, 지난 5년간 역사에 남을 변화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여 미얀마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미얀마의 변화가 집권층의 개혁 의지, 장외세력의 출현, 외부의 지속적인 회유와 압력, 지정학적 측면 등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북한과 미얀마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북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위로부터의 변화’이고, 이런 점에서 미얀마의 개혁 노선이 북한을 위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 개방에서부터 시작된 미얀마의 변화가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것처럼 북한도 변화의 서막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고립시키기보다 외부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지도층의 변화를 자극해야 할 것이다. 점진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단계적 접근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現 한국외대 벵골만연구센터 연구교수. 한국외대에서 미얀마 군부의 정권유지 전략을 연구하여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함. 미얀마 정치변동과 국가-사회관계, 동남아 국제관계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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