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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의 발언과 2015 지역질서 건축
등록일
2015-03-16
조회수
8
지난 2월 27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연설로 대한민국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연설 내용 중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교과서, 영해 표기 등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셔먼 차관의 비판이었다. 그녀는 민족주의가 정권 지지도를 높이는 데 동원될 소지를 언급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진보를 위해서는 역사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대신 미래지향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 1차 보도한 국내 언론은 미국이 한일 역사분쟁에서 일본을 편들고 나섰다며 연설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켰다. 덕분에, '값싼 박수(cheap applause)'를 받으려 하는 정치지도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냐, '소위 위안부(so-called comfort women)'라니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것이냐는 등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내 여론이 들끓으면서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미국 국무부가 3월 2일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해명한 바 있고, 3월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분위기는 일변하였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라앉자, 국제관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맥락에서 셔먼 차관의 연설을 해석한 논평이 나왔다. 이들은 셔먼 차관의 연설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놓인 미국의 전략을 읽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주장의 요지는 첫째, 한중관계 밀착에 대한 미국의 견제, 둘째, 워싱턴 정가에 대한 일본의 막대한 로비와 미국의 일본 경사에 대한 우려, 셋째, 앞의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대미 외교 재정비의 필요성으로 모아진다. 셔먼 발언에 대한 여론의 초기 반응을 다분히 민족주의적 의분에서 나온 '열정'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일련의 견해는 힘의 차이에 기초한 타협을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국제정치적 '냉정'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동아시아 지역정치가 냉정 혹은 열정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냉정과 열정의 혼탕이라는 사실이다. 외교안보 현안 타결과 장기적 지역협력 구상에서 한중일 정책결정자 및 국민들 상호간 인식 변수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셔먼 차관은 계속되는 역사분쟁의 원인을 민족주의와 리더십의 문제로 정리하고, 해결의 실마리 또한 여기에서 발견하고 있다. 경색된 한일 및 중일관계의 이면에 아베 총리, 시진핑 주석, 박근혜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고려가 일정하게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셔먼 차관이 읽은 것과 달리, 동아시아 역사 갈등은 정권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 어려운 국민 여론적 민감성을 띠는 사안이다. 이와 관련,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확연한 추세 속에서, 한국 정부의 대일정책은 국내적 설득력과 대외적 설득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전략적 이익을 위해 과거사를 덮자는 셔먼식 냉정으로는 국내 여론의 반발을 살 테고, 여하한의 타협을 거절하는 한국식 열정으로는 일본 사회와 미국 정부를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간 입장 차이를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분리시켜서, 한일청구권협정 조항에 근거하여 중재위원회에 회부하자는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조세영, 2015.2.24. EAI 일본논평) 미국 국무부는 금번 발언 이후, 침략 전쟁의 책임과 위안부 일본군 관여를 인정한 무라야마·고노 담화가 자신들의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 변경을 의미하지 않음도 분명히 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한일청구권협정 5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 정부와 언론은 미국의 지지와 국제 규범을 객관적 근거로 삼아,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후퇴를 경계하고 압박해야 한다. 셔먼 차관의 발언을 더 이상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명하지 못한 포석이다. "나는 당신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겨울은 지긋지긋하다(I don’t know about you, but I’m tired of winter)."라는 셔먼 차관의 발언은 지지부진한 한일관계에 대한 워싱턴의 냉담한 시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의 결단과 지혜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제정치적 겨울의 추위에 가장 시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셔먼 차관이 이처럼 다소 거칠게 말한 까닭은 한중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국의 열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민주당 정부의 대표 협상전략가로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을 역임한 그녀가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를 리도 없다. 그러나 미국이 동아시아를 '우리'가 아닌 ‘당신들’로 인식하는 한,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에게(Asia for Asians)'라는 시진핑 주석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북아 과거사 문제가 여론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이자 현재진행형인 근본 원인은, 이 지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가 불철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럽과 달리, 근린국가가 아닌 미국이라는 역외세력이 일본을 굴복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형을 만들어낸 전후 질서 설계의 주역으로서, 미국은 제3자의 태도를 버리고 역사 분쟁의 당사자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셔먼 차관은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의 함의를 여러 번 언급했다. 또한 동아시아의 조화와 협력이 미국 및 세계 다른 지역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것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긴요하다면, 정책환경으로서 지역 문화에 대한 보다 치밀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사회를 본 평화연구소 부소장 더글러스 팔(Douglas Paal)이 평한 것처럼, 셔먼 차관의 이 날 연설은 동아시아의 현안 전반을 포괄적으로 논한 '야심찬(ambitious)'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국제질서의 '건축(architecture)'과 '설계(design)'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철학이 있는 건축가라면, 그리고 성공적인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장소의 역사와 전통, 그 집에서 살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민트 레스토랑, 본태 박물관 등 제주에서도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는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환경을 인공적 구조물의 미학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아 지역 질서의 새로운 도면에서 이러한 미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現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작으로 “반역의 정치학: 대한제국기 혁명개념 연구”(2012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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