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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과 한국의 대응방안: 러시아의 공과 감상법
등록일
2015-05-09
조회수
8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대조국전쟁’으로 회자된다. 나치 독일의 세계 침탈에 맞서 러시아인을 필두로 소연방의 모든 민족들이 힘을 합해 세계 구원에 나섰던 신화와도 같은 역사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소연방은 대조국전쟁에서 희생된 2천 5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을 추모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붉은 군대(Red Army)’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5월 9일을 승전기념일로 지정하고 해마다 대규모의 군사 퍼레이드와 축제를 해왔다.  1991년 말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종식되었다. 소연방을 계승한 러시아 역시 승전기념일을 국가의 최대 축일로 삼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1995년 승전 50주년 기념행사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참석했고 2005년 60주년 기념행사에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해 대대적인 승전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고 대조국전쟁에서 러시아의 희생과 공헌을 기렸다.  그런데 승전 70주년이 되는 금년의 승전 기념행사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국가 정상들 대부분이 불참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크림반도를 환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리독립 세력들을 지원하는데 대한 제재 때문이다. 4월 16일자 로이터(Reuters) 통신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러시아인들이 나치 독일에 맞서 인류를 구원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승전기념일을 축하하고 승리를 쟁취한 세대들을 향해 존경을 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러시아인들은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이 의도적으로 지상군 파병을 늦춰 ‘제2전선’이 뒤늦게 형성되었기에 전쟁 승리의 주역은 당연히 소연방 군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의 승전기념일 행사를 지켜보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감상하면 러시아의 공훈을 배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시선을 전쟁의 발발과정과 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에 주목하면 러시아의 과오도 뚜렷하게 살아 오른다. 우선 스탈린과 히틀러는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 협정’을 맺고 폴란드 분할과 중부유럽에 대한 소연방의 지배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소연방은 같은 해 9월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듬해 6월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합병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부코비나와 벳사라비야를 점령하여 소연방 영토로 편입했다.   이때 소연방은 폴란드군 장교, 경찰, 지식인, 예술가, 성직자 등 지도층 인사 2만 명 이상을 러시아의 스몰렌스크 시 인근 카틴 숲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카틴 숲 대학살의 참극은 2010년 4월 당시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전용기 추락 사고로 이어졌다. 카틴 대학살 70주년 추모식을 거행하기 위해 스몰렌스크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가 착륙 도중 추락해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육군 참모총장,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은행 총재 등 탑승객 87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연방의 만행은 아시아에서도 두드러진다. 소연방은 1941년 4월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고 있던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은 제국주의 침탈전쟁을 남동 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고 같은 해 12월 진주만 공습까지 감행할 수 있었다. 소연방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침략을 묵인하는 대가로 몽골 및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서 확장한 자국의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소연방 극동지역에 거주하던 우리민족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소·일 중립조약은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소연방은 얄타협정을 근거로 한반도 38도선 이북까지 진주하여 남북 분단을 초래했다. 오늘날 유라시아대륙 곳곳에 ‘고려인’의 이름으로 유랑하는 우리민족들, 그리고 3년여 기간에 걸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여전히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남·북한의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소연방이 파놓은 덫에서 우리민족이 아직까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실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우리나라의 진로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산 그리고 북한의 나진항까지 철도를 현대화시켜 연결했다. 그리고 이와 연계하여 가스관 연결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철도를 이용해서 시베리아산 무연탄을 나진항에서 제3국의 배로 실어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범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는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개진되면서 남북정상 간의 조우도 점쳐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를 대표해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특사 자격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행사를 불과 열흘 앞두고 북한의 김정은 역시 참석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만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초의 계획대로 참석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 지도자들이 참여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참석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최근 러시아의 새로운 외교정책 방향은 아시아를 중시하는 ‘신동방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연계될 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부산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와 북극항로에 대한 상업적 항행 추진, 유라시아 역내 에너지 수급 연계망 구축, 역내 국가들의 협력적 창조경제 동력추진,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 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청사진은 푸틴의 신동방 정책 즉,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 및 아태지역 진출전략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금번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하는 윤상현 특사가 역량을 발휘하여 한-러 간 신뢰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남-북-러 연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초석을 다지고 오기를 기대한다.  現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주요경력으로는 우즈베키스탄 국립 동방학대학교 국제관계 및 경제학부 교수와 한국외대 두뇌한국 21(BK21) 지역연구전략개발팀에서 전임 연구원을 역임했음. 연구 분야는 러시아의 영토?국경정책, 외교정책, 지정학임. 주요논문으로는 『러시아 민주변혁의 진로』, 『러시아 대통령제의 발전과정과 전망』 외 다수의 논문과 공동저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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