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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과 탈레반의 정권장악, 그리고 한국의 대응
등록일
2021-09-06
조회수
7
[기획자 註] 현지시각 2021년 8월 30일, 미군은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종전을 선언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마침내 끝이 난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총 2조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군을 포함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정적 손실만을 입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자국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누구인가?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한국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할 것인가? JPI PeaceNet은 동덕여대 교양대학,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의 오은경 교수/소장님의 기고문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1.서론 미국은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철군을 감행했고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히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조차도 미군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 붕괴까지는 적어도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며, 실제로 11 일 만에 붕괴될지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다고 자백했다. 아프간 가니 대통령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다짐한 것도 무색하게 미군이 철군하자 다음 날 바로 돈가방을 싸들고 아랍에미레이트로 도주해버렸고, 무기력한 군부는 탈레반에 백기를 들었다. 미국이 20년을 지켰던 카불은 허무하게도 힘없이 탈레반에 당일 함락되었다.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아프가니스탄 종전을 선언하였다. 당황한 미국은 철군 날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탈레반측은 강경했다. 기일엄수를 양보하지 않았다. 다행히 IS-K의 공항테러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미국은 약속했던 8월 31일을 하루 앞두고 모든 군대의 철수를 완료했다. 2. 미국 역사 상 가장 길었던 아프간 전쟁, 미군 철군 이유는? 미국은 2001년 전 세계를 경악케 했던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의 실추된 위상과 자존심 회복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시작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20년을 끌어오다가 이렇다한 성과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발을 뺐다. 철군 이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출을 시도하는 수많은 아프간인들의 필사적 절규로 인해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고,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현장까지 목격한 국제 사회는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미국 내부에서도 체계적인 대응책 없이 무방비한 상태로 철군을 감행한 바이든 정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철수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부통령 시절부터 추진하고자 했던 철군을 하게 되었으니 “실수”로 시작된 전쟁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럼프,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모두 동일했다. 그렇다면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왜 갑자기 발을 빼야만 했을까.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20년 동안 대략 2조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병력을 소모하고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1년 5월, 9.11 테러의 수괴 오사마 빈라덴 사살했으니 미국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그러자 미국은 탈레반 소탕과 국가 재건 사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으로 뚜렷한 성과 없이 알 수 없는 늪에 빠져들 뿐이었다. 더구나 아프간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했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국제적 평가가 있었음에도 전쟁 돌입 당시 미국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크게 학습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나도록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언어가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고 자백했던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의 발언이 그 상황을 대변해준다. 미국이 비록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하였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우선, 10년 이상 구소련과의 전쟁 경험을 통해 다져진 탈레반 게릴라전의 전술과 전략을 미국이 대응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은 대부분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미굴 같은 동굴들이 산재되어 있어 산악지대 지형지물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낯선 산악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이 보병전투에서 난항을 겪으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난기류와 모래폭풍 등으로 병력 수송이 쉽지 않아 미군은 병력 투입 직후부터 생지옥을 경험하였다. 두 번째는 산악지형 탓에 무전기나 위성전화가 수시로 먹통이 되는 등 아군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항공지원 참사가 이어졌다. 탈레반 저격수가 산속에서 초장거리 저격을 하면 F15E가 엉뚱한 곳을 포격 하는 참사가 반복되었다. 오죽하면 “미군의 최대 적은 미 공군”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미군 사망자가 2천 4백이라고 하는데 전사자의 1/4 정도가 오폭으로 사망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들 피해도 적지 않았는데, 대략적 사망자 숫자만 해도 4만 8천 명 정도라고 한다. 세 번째로 수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간 국민들의 내부 정치 상황도 한 몫 거들었다. 원한 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복수극에 미군이 동원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였다. 거짓된 정보로 자신들이 해코지 하고자 하는 부족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해프닝도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민간이 피해로 인해 미군에 대한 아프간 국민들의 반감이 생기자 탈레반에 가담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더불어, 탈레반의 활약과 첩보 작전 또한 갈수록 치밀해 미군의 피해 또한 극심해져 갔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작전을 주도했던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 1급 작전팀 팀식스(Team 6) 요원들이 탑승하고 있던 헬기가 정확히 빈라덴 사살 99일 만에 피격되어, 탑승하고 있던 전원이 몰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탈레반 내부 통역원 첩자들이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군을 속였던 것이다. 2014년에는 해럴드 그린 미군 소장이 내부 테러로 피살되기까지 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미군 소장이 해외전장에서 피격당해 숨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탈레반 요원이 아프간 군으로 위장 입대하여 발생한 피격사건이었다. 한편, 2008년 중산층 붕괴를 가져왔던 미국의 금융 대란과 경제 위기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비용 지출로 인한 국부 손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군수업체와 로비스트 그룹 그리고 월가의 큰손들만 막대한 천문학적 이득을 챙기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수많은 청춘들은 이들의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3. 탈레반은 누구인가 지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탈레반의 형성과 성장 배후에 미국이 자리한다. 미국은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탈레반과 전쟁을 벌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구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화 되어가자 공산주의 세력이 소멸되는 것이 두려워 군대를 파견하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당시 미국은 구소련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이 지역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이미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직접 개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결국 구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전사”라는 뜻을 가진 무자헤딘( مجاهدين, mujāhidīn)” 무장투쟁 조직에게 막대한 돈과 무기를 지원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미국은 구소련에 대항한다. 무자헤딘은 구소련이 물러가고 나자 탈레반과 반(反)탈레반 세력으로 분할된다. 탈레반은 1994년경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던 이란계 파슈툰족 신학생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파슈툰어로 탈레반은 ‘학생’을 뜻하는 탈립(طالب,talib)의 복수형이다.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라는 이상향을 지향점으로 삼고, 사명감에 똘똘 뭉쳐 부정부패와 비리척결에 나섰던 것이다.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 또한 무자헤딘 출신으로 존경받는 신학자이며 스승 역할을 했던 “물라(mullah)”였다.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오랜 내전과 군벌들의 부정부패에 질려 있던 민중들은 탈레반을 지지했고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1996년부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던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였다. 북부 동맹이 장악했던 북부를 제외하고 영토의 거의 90%를 점령했지만 탈레반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른 세상을 창조해냈고, 국제사회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성인권 탄압과 세계문화유산 바미안 석불 파괴와 같은 폭력적이며 “극단적 신정국가”를 창조해낸 것이다. 당시까지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억압적이고 끔찍한 방식의 이슬람 신정국가 모델이었다. 결국 탈레반은 이후 IS 등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들에게 신정국가 거버넌스의 악용 사례를 제공한 셈이다. 탈레반은 수니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발리 법학파와는 다른 하나피 법학파에 속한다. 수니파는 대체로 융통성 있고, 관대한 법해석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니피 법학파가 와하비즘과 융합되어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또 다른 형태로 이슬람 “기형아”로 출생한 것이 탈레반이다. 결국 2001년 9.11 사태가 발발하자 미국은 주범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보호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라덴은 마침내 아프간 침공 10년이 지난 2011년에야 사살되었지만 탈레반이 파키스탄 국경 밖으로 쫓겨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하였다. 그렇다고 탈레반이 괴멸한 것은 아니었다. 파키스탄 북부 지역은 파슈툰 부족 집단 거주지로 험준한 산악 지역이라서 사실상 국경선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파슈툰 족은 자유롭게 통제 없이 국경을 드나들 수 있었다. 원래 영국이 국경을 획정할 당시 가장 인구가 많은 파슈툰 족의 세력 약화를 위해서 일부러 파슈툰 족이 사는 지역 중간에 국경선을 그었다. 더구나 무기 제조 등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니, 탈레반의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탈레반은 숨을 죽이고 기회를 보며 파키스탄 지원으로 연명해 오다가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관심권에서 멀어지자 세를 불려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하며 부활했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마약 제조로 확보했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된 사명감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탈레반은 그동안 전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더욱 진화하였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간 정부 내부의 리더십 붕괴도 한몫했지만, 탈레반의 조직력도 크게 작용했다. 대외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을 외부적으로 고립시켜 우방 국가의 지원을 차단시키는 전략을 썼고, 내부적으로는 각 지방 관료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비리 혐의 등으로 협박 하며 무력화시켰다. 4. IS-K의 등장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 탈레반의 역학 관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넘어가자 반(反)탈레반 투쟁의 구심점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의 ‘국부’라고 추앙받았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주니어)가 카불 북부 판지시르 계곡에서 반(反)탈레반 세력을 집결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은 아프간과 소련 전쟁에서 반군을 이끈 사령관으로 탈레반에 저항하다 2001년 9.11 테러 이틀 전에 암살당했던 전쟁영웅이다. 이번에는 대를 이어 아들 마수드가 이 계곡을 지키면서 휘하에 9천 여 명의 병력을 모았다.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이어받은 살레 부통령도 여기에 합류하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34개 주(州) 중에서 판지시르, 바글란, 파르와 주(州)는 반(反)탈레반 세력이 집권하고 있다. 판지시르는 카불에서 북동부로 70Km 떨어져 있는 주(州)로 소련에 맞서 아프간 군이 게릴라전을 벌였던 곳이다.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는 천연 요새로 알려져 있다. 전신 “북부동맹”의 맥을 잇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은 반(反)탈레반 세력으로 대부분 타직 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미군이 완전 철군을 감행하자마자 탈레반은 미국이 남겨둔 무기로 무장하고 저항세력 마지막 근거지인 판지시르에 대규모 공세를 벌였으나 완전한 점령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존재가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희망이 될지, 그대로 잊혀지게 될 지는 탈레반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면, 이들의 존재는 묻히게 될 것이다. 반면 국제사회가 살레 부통령과 마수드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지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 또 하나의 세력이 등장했다. 지난 26일 카불 국제공항에 자살폭탄 테러 발생했다. 다수의 인명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아프간인 90여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탈레반과 미군이 약속한 철수기한 5일을 앞두고 아직 천 여 명 미군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발생하여, 미국과 동맹국들의 철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측과 불안을 야기했지만 다행히도 탈레반과 미국의 공조와 협력이 잘 이루어진 탓에 미국은 무사히 기한을 엄수하고 철군을 마쳤다. 카불 자살 폭탄 테러의 주범은 IS-K로 밝혀졌다. IS(IS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IS-K이다. IS-K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상징적 지명으로 “호라산(Khorasan)”을 따서 지었다는 설도 있고, “아부 오마르 호라사니에”를 따왔다는 설도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에서 세를 확장했으며, IS-K는 알카에다,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서방세계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레반과 노선을 달리한다. 서방국가와 자유 민주주의가 공격 목표이며,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IS의 일부이다. 탈레반과는 공격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탈레반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적대관계가 되었다. 탈레반이 이슬람 교리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탈레반 지도부가 온건하다며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들이 IS-K에 대거 합류하기도 했다. IS-K는 3천명까지 조직원이 늘었다가 미군·탈레반과의 충돌로 인해 1-2 천 여 명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집권 세력으로써 정부를 구성하고 국제사회의 지원과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적 관심인 탈레반은 IS-K와는 본격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번 카불 공항 테러는 미국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겨냥한 것이기도 한데, 이 사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손에 들어간 이후 이슬람 급진주의자 및 극단주의자의 라스베가스가 되어 가면서 피의 투쟁이 일어날 조짐도 보이고 있다. IS-K는 알카에다와도 갈등을 빚고 있고, 산부인과 테러, 카불 대학 로켓 공격 등 이미 아프간 민간인에 대한 수차례 테러를 감행한 바 있다. 더구나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 대한 위험 세력이 될 수 있다. 이슬람 온건파이면서 타직 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IS 아프간 지부격인 IS-K 그리고 탈레반 사이에 어떤 역학 관계가 펼쳐질 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5.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아프가니스탄과 사태로 인해 가장 많은 이득을 본 나라는 역시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특히 90년대 중후반 탈레반의 성장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큰 역할을 한 나라이고, 무기와 정보, 인력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파키스탄 북부는 탈레반 활약의 주요 무대이며, 탈레반을 통해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고자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탈레반을 지원해왔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를 알면서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내륙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의 협조가 무엇보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다음으로 탈레반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으로 인해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은 이란과 아프간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란으로 연결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탈레반과 손을 잡는다면 반미 대륙세력 형성이라는 든든하고도 큰 성과를 얻게 된다. 탈레반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중국의 기술적 도움과 경제협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협력 추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미국이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나 위구르 해방에 대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과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ETIM과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다. 중국으로서는 탈레반을 달래고 통제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과 대치 관계에 있는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여 반미 시아파 벨트 세력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있지만 쏟아지는 난민과 수니파 근본주의 탈레반의 등장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떠안았던 아프가니스탄을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등 주변국의 몫으로 떠넘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현실주의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IS-K 때문에라도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이 막바지에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은 탈레반이다. 평화협정에 입각하여 이들은 미군을 안전하게 공항으로 안내하는데 성공했다. 비밀 통로까지 사용하고, 미국인을 위한 콜센터도 운영했다. 결국 미군 천여 명과 아프간 협조인들 2천여 명을 안전하게 집결지로 수송하도록 협조했다. 탈레반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탈레반의 향후 행보가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미군의 철수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7만명 탈레반 숫자로 4천만 아프간인 통치한다는 것이 무리이며, 무장조직이었던 탈레반에게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자신들의 약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아프간 재건을 위해 유화적 제스추어를 쓰는 것도 서방의 경제원조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만일 탈레반이 급진적 행동을 할 경우 미국과 서방의 금융제제나 국제원조 금지 등의 경제적 고립을 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탈레반도 잘 파악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예산은 미국으로부터 동결되어 있고, IMF 또한 아프간으로 가는 경제지원과 개발도상국 저금리 금융지원금 등을 막고 있다. 국제 사회는 진화된 탈레반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탈레반은 이미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수립을 부정하고, 샤리아 율법에 입각한 정부 구성을 선포하였다. 결국 정부 구성에 있어 여성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취업과 학업권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진 여성들을 최루탄과 소총 개머리판을 휘둘러 진압했다. 타직 족으로 구성된 국민저항전선과의 정부 수립 및 연대도 마침내 실패로 돌아가자 판지시르 진압에 나섰다. 중앙 탈레반의 유화적 제스추어는 지방 조직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마크 밀리 합장의장은 현재 상황에서 탈레반이 권력을 통합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내전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6. 한국의 대응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감행하자 국내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남·북한 대치상태에 있는 한국의 안보문제가 대두되었다. 냉혹한 힘의 역학관계 속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 이후 한국의 안보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에서 시작하여 안보는 스스로의 몫이라는 자성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의 여론으로 어수선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다르다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여기서 한 가지,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고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해 발표한 B3W(Build Back Better World)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에 4경 5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 신장 위구르 지원, 티벳 달라이 라마 지원, 그리고 이란과 북한 등 악의 축 체제를 중단하고 북한 끌어들이기를 골자로 한다. 한국 정부는 그간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미국의 B3W 정책을 활용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리드할 수 있다.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통해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중국,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아프가니스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이미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테러의 라스베가스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중앙아시아가 세계인의 안보를 위해 공군 기지 확보 등 필요한 전략적 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 중앙아시아와 북한, 러시아, 중국 등 유라시아 대륙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한국 정부는 아프간 협조자 390명을 난민이 아닌 ‘특별 기여자’로 국내 구출작전에 성공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난민 수용 등 적극적인 기여를 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 운영 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고, 특히 무슬림에 대한 사회통합 정책이나 문화 수용 방안 등 이에 대한 연구나 준비 또한 거의 전무한 상태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난민 문제”나 “무슬림 동화 정책‘ 등 적극적으로 대책과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탈레반과의 교류와 정부 승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수용 제안 또한 매우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유린을 국제사회가 묵인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탈레반을 돕는다면 결국 탈레반의 폭력적 여성 인권 유린에 가담하는 꼴이 되고 만다. 국제사회가 탈레반 길들이기 작업을 통해 정상적인 길로 유도하면서 여성억압을 중단시켜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모른척하면서 테러, 환경문제, 탄소 중립 등을 운운하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기획: 정승철 연구실장 편집: 김소연 보조원

저자소개 오은경 교수는 현 동덕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이자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으로서 대통령 직속기구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한·중앙아 협력포럼,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회, 서울시 외국인주민 및 다문화가족지원 협의회 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터키 국립 하제테페 대학교 문학박사(Ph.D)이자 우즈베키스탄 국립학술원 인문학 국가박사(Doctor of Philology)이며 아제르바이잔 국제 벡토르 학술원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터키문학·이슬람여성·비교문학·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구비문학·정신분석학으로, 이와 관련하여 한국어, 터키어, 우즈베크어, 영어, 러시아어로 백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터키·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로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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