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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미국 유엔외교 양가성(ambivalence)의 원인
등록일
2021-12-16
조회수
9

[기획자 註]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추후 국제협력을 기반으로 세계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유엔(United Nations: UN) 창설에 앞장섰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자신이 창설을 주도한 만큼 (회원국 간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 유엔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왔을까. 그동안 유엔 창설이래 미국이 유엔에 대해 보여온 행보를 돌아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자신이 그 창설에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유엔의 다자협력 체제를 존중하면서도 때로는 이를 무시하고 일방주의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JPI PeaceNet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이신화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이 유엔에 대해 보이는 양가적인 태도의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 or.kr)]
 


 
  1. 서론

1999년 발간된 『UNVANQUISHED: A U.S.-U.N. Saga』 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미국의 반대로 나머지 14개 안보리 이사국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실패한 제6대 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 Ghali)의 자서전이다. 영어 대문자로 적혀있는 책 제목은 미국의 압력에도‘난공불락인(unvanquished) 유엔’이지만, 역으로 ‘완파된 유엔(UN vanquished)’으로도 읽힌다. 이 책은 역사상 재임이 거부된 유일한 유엔 수장으로서 울분을 품고 미국의 횡포를 비난하고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유엔 기능을 확대하여 탈냉전기 글로벌 문제를 특정국의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고 유엔 중심으로 풀겠다며 사사건건 미국과 마찰을 빚었던 그의 고군분투가 초강대국의 입김에 무산된 불행한 전례라 할 수 있다.
 

사실 유사한 상황은 초대 유엔사무총장인 트뤼그베 할브단 리(Trygve Halvdan Lie)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 출신 리가 사무총장으로 선발된 것은 1946년 처음 열린 유엔총회에서 중립국 출신을 선택한 강대국들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연임을 시도하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시 한국을 지지하며 유엔군을 파병한 것을 문제 삼은 상임이사국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결국 총회로 이관된 그의 재임 여부는 미국의 지지로 당시 총 회원국 51개국 중 46개국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소련은 그를 사무총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의 대다수 임무 수행을 친서방적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한편, 리 총장은 유엔 내 반미·용공분자 색출 조사에 맞서다가 미국의 매카시(극단적 반공주의) 광풍에 휘말려 간첩 오명까지 썼다. 결국 그는 임기를 1년 남겨둔 채 강대국 압력에 사임하고 말았다.
 

원칙상 부트로스 갈리 재임 문제도 리 총장의 경우처럼 총회에 넘겨 전체 회원국들의 의사에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의 독무대가 된 국제질서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유일 초강대국에 등을 돌리면서까지 그의 연임을 고집하지 않았고, 결국 미국이 대안으로 내놓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 코피 아난(Kofi Annan)을 선택하였다. 당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었던 한국도 안보리 투표에서는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부트로스 갈리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 문제가 총회에 회부되면 미국 입장을 따를 것이라며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었다.
 

냉전 종식 이후 안보리 내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 늘어나면서 냉전기 미-소 주도의 거부권 정치(vetocracy)가 완화되었다. 또한 내전과 인도적 위기 상황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 평화유지활동(PKO)을 포함한 유엔의‘안보 역할’이 재평가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탈냉전기 유엔도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회원국들 간‘국익 각축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그 적실성(relevance)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부트로스 갈리 총장이 그의 자서전에서 외교가 필요 없었던 로마제국처럼 미국도‘무소불위의 골리앗’이라고 맹렬히 비난한 바와 같이, 유엔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판은 오히려 커졌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은 1945년 전후(戰後) 세계평화와 안전 및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 LIO)를 구축하기 위해 다자주의(multilateralism)적 국제협력외교의 일환으로 자국 땅에 본부를 둔 유엔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를 주창한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교수는 미국을 20세기 다자주의의 가장 위대한 옹호자라고 하였고, 유엔은 미국의 사상과 대의를 전파하는데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모잠비크, 엘살바도르, 코소보, 동티모르 등 여러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도구로서 유엔을 필요로 했고, 유엔은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러한 평화유지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유엔 관계는 지난 75년여 동안 어떤 부침(浮沈) 과정을 겪어왔고, 유엔의 산파이자 지구촌 평화를 위한 핵심 파트너인 미국은 왜 유엔 정책에 있어 양가성(兩價性, ambivalence)을 견지하고 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향후 미국의 유엔외교의 당위성을 논해보는 것은 정책적, 학술적으로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1. 미국 유엔외교의 양가성: 이론적, 경험적 관점

미국과 유엔의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유엔은 그 탄생뿐 아니라 미국의 힘과 자원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2년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 velt)는 추축국에 대항하여 싸울 국가들을 모으며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란 용어를 고안하였고, 기구 결성을 위해 자국 내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비록 그는 1945년 6월 유엔 창설을 위한 첫 회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기 두 달 전 사망하였지만, 후임자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대통령은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라고 강조하며 유엔헌장에 서명하였다.
 

이렇듯 미국은 유엔을 통한 전후 다자주의 국제체제를 구축하였고, 국제사회에는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 협력하면 평화와 경제번영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가 퍼졌다. 실제로도 미국과 유엔 간 협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동·아프리카에서의 다양한 평화유지활동 임무는 유엔이 주도했고 미국이 지원하였다. 한편, 1950년대 한국과 1980년대 중동지역의 경우는 각각 미국이 주도하고 유엔이 지원하였다. 더욱이 미국은 유엔에 가장 큰 재정적 기여자로 유엔 연간 예산의 25% 이상,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예산의 27.89% 이상을 책임지는 최대 분담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엔과 미국의 오랜 관계 속에서 허니문 시기나 황금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유엔과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다자간 협조주의 외교를 지향했음에도 이들 메커니즘에서 행한 미국의 다자적 접근은 다자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유엔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안보리 내에서 미국은 항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유엔 총회가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도 대부분의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었고 실제로 미국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미국이 특정 유엔의 다자 메커니즘이나 규칙에서 벗어나면 이는 바로 유엔 자체의 약화로 이어졌고, 결국 많은 회원국들이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황에 빠졌다. 키쇼 마부바니(Mahbubani) 싱가포르국립대 학장은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기구들과 회원국들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잔뜩 낮은 자세를 취해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국제기구의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가의 힘만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설명한다. 패권국가는 국제체제에 의존하거나 모든 규칙을 준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초강대국은 다른 국가들의 힘에 제어되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비일관적인 외교 행태를 보일 역량과 그에 따른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의제나 역할이 자국의 패권 행사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에 따라 유엔을 활용하거나 무시하는 양면성을 보여온 미국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유엔의 승인 없는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국제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미국은 걸프전쟁, 아프간 전쟁 등에서 안보리를 적극 활용하였다. 1990년 8월 안보리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 660호를 통과시켰고, 미국 주도 연합군은 1991년 1월 쿠웨이트에 주둔한 이라크군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유엔의 안보 역할이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기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특히 2003년 미국은 안보리 승인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당시 코피 아난 총장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결정은 일방적이 아니라 안보리에서 내려져야 한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 도널드 럼스펠드 (Donald Rumsfeld) 미 국방장관의 보좌관이던 랜디 슈네만 (Randy Scheunemann)은 궁극적으로 회원국을 위해 일하는 사무총장이 유엔의 판단을 대신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비판하였다. 유엔 내에서는 아난 총장이 재임 전이었다면 부트로스 갈리 총장의 연임실패 전철을 밟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는 패권국 미국이 유엔을 회원국들 간 이견을 조율하고 중재할 수 있는 권위(authority)를 가진 플랫폼으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유엔의 무기력한 한계만 드러낸 전형적인 예였다.
 

이렇듯 다자주의를 선택적으로 적용시키는 미국의 외교 행태는 보편적 외교 원칙으로서의 다자주의를 자국의 패권을 감추기 위한 위장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패권국은 어떤 결정이 현재의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에 따라 일방주의나 다자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압도적인 힘과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견제하거나 제어할 국가는 사실상 없다. 이러한 냉엄한 현실은 국제관계란 국가를 서로 보호하기 위한 국제기구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적 영역 중 하나이며 권력의 현상 유지와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 존 미어샤이머 (John Mearsheimer) 교수를 비롯한 공격적 현실주의자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가치 확산, 자유주의 이념 옹호, 열린 경제 시스템과 다자무역체제 구축을 통해 평화를 조성하는 것이 미국이 유엔과의 다자주의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유엔과 같은 다자적 기구의 회원이 되어 국제사회에 세계의 평화와 안전의 수호자로서의 자국의 선의를 투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한편, 유엔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고전주의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상태의 유엔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즉 현상 유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자신들의 국가 안보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는 것이란 확신을 주고, 이를 통해 현상타파를 목적으로 한 반대세력 연합이 출현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주장한다. 신현실주의 및 동맹연구의 권위자인 스테픈 월트(Stephen Walt) 교수도 유엔과 국제기구들은 다른 가입국들이 미국을 덜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메커니즘이라고 하였다.
 

미국이 유엔과 다자주의를 옹호하는 것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미국의 국내 정치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 미국 헌법에 명기된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통제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 이 두 기관이 상이한 입장을 가진 경우, 유엔 및 여타 다자간 약속에 대한 국내 승인은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국제조약의 비준은 상원의 최소 2/3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데, 국제연맹 가입 거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 내 권력 분립은 미국의 다자간 협정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무산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은 유엔 회원국들 중 유엔아동권리협약(CRC)에 비준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 협약에서 금지하는 청소년 사형제도 때문인데, 미국은 독립적인 50개 주가 연합한 형태로 각 주의 법이 연방법에 우선한다. 미국의 몇 주가 이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어 비준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빌 클린턴(Bil Clinton) 대통령이 부트로스 갈리 총장의 연임을 반대한 이유도 당시 다수 의석을 차지하던 공화당과 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의 관계에서 기인한 면이 적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14억 불에 달하는 분담금을 체납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익과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엔을 이끌어온 부트로스 갈리에게 맡길 수 없다는 공화당 측의 의견을 거스를 수 없었다.
 

미국은 유엔과 같은 국제체제가 너무 강해지면 국내법적 틀이나 헌법적 전통과 정치제도가 이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주권 옹호론자들은 국내 제도와 법이 국제적 약속과 의무보다 우위에 있으며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국내 기준은 때때로 특정 국제기구나 다자협력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위한 로마 규정에 서명했지만, 해외에 파견된 미군들의 잘못으로 민간인이 죽더라도 미군을 ICC에 세울 수 없다는 입장과 관련하여 ICC 사법관할권에 미국이 포함되어야 하는 데 대해 의회가 양분되어 있어 아직도 비준되지 않은 상태이다. 

 
  1. 미국 유엔외교의 양가성: 외교정책 변천의 관점

다자주의 국제체제 형성을 통해 패권 지위를 유지하려 하면서도 다자기구 및 규칙에 밀접하게 자국이 묶이는 것을 꺼려온 미국은 자국의 외교 안보전략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유엔 회원국으로서 마땅히 짊어질 의무나 제약뿐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다자주의도 수용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미국 유엔외교의 양면성은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를 넘나들며 철저히 자국 위주의 현실적인 정책을 펼친 역대 미국 외교정책의 변천사와 무관하지 않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1796년 퇴임하면서 미국은 영구적 우호 관계나 적대 관계를 지양해야 한다고 하며, 구세계(유럽)와 떨어진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독립성과 중립노선의 외교정책을 지향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고립주의 외교정책은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대통령이 선언한 유럽과 미주 대륙 간 상호 불간섭을 골자로 하는 1823년 먼로독트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유럽에 대해서는 고립주의로 유럽 강국들이 미주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을 배격하여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을 가져왔지만, 역으로 미주 대륙은 미국 중심의 지역질서로 재편되어 패권적 개입주의를 초래하였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에 절대 참전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영국의 해상봉쇄를 타파하려는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과정에서 루시타니아 여객선이 침몰하여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희생이 컸다. 이에 미국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전쟁 3년 차인 1917년 미국은 참전하게 되었다. 이는 동맹관계에 의해서가 아닌 공동의 적을 타도하기 위해 연합국에 가담한 조치였다. 미국은 참전 중 동맹국과 동일한 전술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종전 시에도 독일과 개별 평화협상을 추진하였다. 이후 윌슨은 대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미국이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연맹 설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가입조건인 베르사유 조약 비준 동의 등을 이유로 미국 의회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주창한 국제기구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였다. 베르사유 조약은 연맹 가입국들이 외부 위협 시 상호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미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미국은 대공항 여파와 1차 세계대전의 기억으로 계속하여 고립주의를 선호하였지만, 연합국 측에 물자원조를 제공하였고 태평양에서의 일본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금수조치를 취하였다. 1941년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하였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연합국에 가담하여 참전하였다. 이후 승전국 미국의 외교정책은 크게 변화하여 적극적인 국제문제 개입을 통한 공산주의 제어와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기치로 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외교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1944년 7월 44개 연합국 대표들을 모아 전후 국제통화질서를 규정하는 브레튼우즈 협정을 체결하고 IMF와 세계은행을 설립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뿐 아니라 1949년 서유럽 12개국과 더불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을 창설하였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Eisenhower) 대통령도 1954년 동남아조약기구(SEATO), 1955년 중앙아시아조약기구(CENTO)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렇듯 냉전기 미국 외교정책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 자본주의 체제 수호, 인권보호 등을 원칙으로 하는 다자적 국제질서를 표방함으로써 소련 주도의 공산권에 대한 이념적,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다자주의 기구의 본격화 양상이 두드러졌다.
 

소련의 와해로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의 위상은 크게 변화하였다. 조지 H. W.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대통령은‘새로운 국제질서(New World Order)’를 표방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산을 통해 안정적인 LIO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포함한 지구촌 전역에 확산시키기 위해 관여(engagement)와 확장(enlargement)을 대외정책으로 삼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하고, NATO 확장을 통해 동맹의 규범확산 역할을 강조하였다. 또한 클린턴은‘적극적인 다자주의(assertive multilateralism)’를 표방하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인도적 위기 상황에 있어 유엔평화유지활동과 인도적 개입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 등에서 벌어진 정치인종분쟁에 대한 개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국제적 비난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세계경찰관’ 역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고 다자주의적 협력외교로부터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 외교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테러의 공포라는 새로운 유형의 안보위협에 대응하게 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에 전적으로 의지한 외교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절대적 선악 개념의 잣대로 도덕적 우월주의와 민주적 평화,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는 네오콘들은 미국의 가치가 침해받을 시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과감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소위 ‘신국제주의’를 표방하였다. 테러리즘에 대처하려면 국제사회의 공조협력이 중요한데, 부시는 유엔을 비롯한 다자주의 메커니즘을 통한 평화보다는 미국의 패권적 힘을 통한 LIO의 수호를 강조한 것이다. 네오콘이 주도한 2003년 이라크전은 이후 이라크 내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내전으로 비화되어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를 낳았고, 미국 안팎으로 부시 정부의 힘에 의한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었다. 이에 더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1929년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전 지구적 경제혼란을 초래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되었다.
 

2009년 경제위기 속 집권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복원하기 위해‘힘의 외교’보다는‘외교의 힘’과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다자주의 틀 속에서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오바마 독트린은 군사개입 시 누구와 협력연대를 맺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지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개입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지를 강조하였으며, 다자주의 지향성이나‘뒤에서 이끌어가기(leading from behind)’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는 국제기구 강화와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는 동시에, 중국 부상 억제와 지역 차원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오바마 2기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에 잘 나타나 있다. 일방적 군사개입 대신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한 안보협력을 통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견제하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아시아 무역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대통령은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전략과 TPP 정책을 즉시 철회하였다. 그는 외교를 국가 간 동맹과 같은 전통적 기준이 아닌 이익과 상거래와 동일시 하였고, 이에 따라 대외정책 전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났다. 트럼프는 유엔 분담금을 아까워하고 국제기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다자간 협력체제에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유네스코,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였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등‘분탕질’외교로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크게 훼손시켰다. 거래의 중요성에 집중한 트럼프는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한 채 미국 주도로 만든 유엔, NATO, WTO, 기후협정 등 다자적 제도들을 무시하였고, 그 틈새를 비집고 중국이 다자무대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빌미를 주었다.
 

하지만 중국견제라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은 미국 외에도 여러 국가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였다. 일본 아베 전 총리가 2016년‘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전략을 공표하였고, 호주도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는데 적극적인 행보를 폈으며, 적절한 아시아 전략을 모색중이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는 트럼프 시기의 갑작스러운 결정이라기보다는 전임자 시절부터 축적되어온 전략적 관심이 구체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조지 W 부시 집권기 『21세기 해양전략』이란 보고서에서 미국 해군은 태평양과 대서양이 아닌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고, 오바마 행정부도 호주, 일본, 인도와의 관계를 줄곧 강조했었다.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 등‘트럼프 정책 갈아엎기(ABT)’를 통한 미국의 신뢰와 리더십 회복이 핵심이다.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 유엔인권이사회와 WHO 등에 복귀하면서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주의 회복을 선언하였다. 또한 2021년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트럼프 정부 시절 파리 협약을 탈퇴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까지 하였다.
 

그러나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의 대중 정책을‘긍정적인 유산’이라고 발언한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파괴적인 경쟁자’로 명명한 트럼프식 해석을 인정하고 인태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계승·발전시킬 전략을 추진 중에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트럼프가 슈퍼맨 식으로 중국을 단독으로 제압하려 했다면, 바이든은 동맹·우방국들과 대중(對中) 공동 포위전선을 펴는 스파이더맨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쿼드(QUAD, 미·일·호·인 4개국 군사연합체), 민주주의 연대(D-10) 강화, 반중(反中) 기술동맹인 클린 네트워크 등 무역, 군사, 인권, 기후변화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자적 접근방식으로 중국 옥죄기를 강화하고 있어 중국으로서는“차라리 트럼프가 낫겠다”라는 입장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이든이 내건 다자주의는 국제사회의 규범과 규칙을 강화하여 글로벌 포식자적 행태를 일삼는 중국을 압박·견제하는 수단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은 다자주의라고 외치지만, 그의 다자외교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을 다수 국가와 협력하여 힘으로 제어하겠다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이렇듯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그리고 일방주의와 다자주의를 넘나들며 역대 미국 외교정책결정자들이 표방해온 다자주의 원칙은‘패권을 감추기 위한 좋은 가면’이란 비판을 받는다. 철저히 자국의 이해관계만 고려한 선별적 다자주의나‘상황별로 다른 다자주의’(case-by-case multilateralism)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애매모호한 다자주의 정책들은 미국의 유엔외교에 있어 양가성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1. 결론

진정한 다자주의란 국가가 의사결정에서 국익과 국제사회의 기여에 있어 균형을 모색하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국가 이기주의적 결정의 유혹을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 유엔을 무시하면 미국이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필요할 때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가 다소 쉬워질 것이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고 순수한 다자주의를 따르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 미국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많은 부침(浮沈)이 있었지만, 다자주의와 제도주의가 미국 외교정책에서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유엔에 대한 미국의 양면적 태도는 구조적 결함과 제도적 협상의 불안정한 성격을 반영하지만, 그 관계 역시 그래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 외에도 민주주의와 인권 등 전통적으로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와 규범을 앞세운 외교전략을 견지하기 위해 유엔을 비롯한 다자협력체제뿐 아니라 QUAD나 오커스(AUKUS, 미·영·호 3자 안보 파트너십)와 같은 소다자(minilateral) 협력체를 확대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비자유주의 국가들보다 도덕성, 인권보호, 법치, 다자적 규범 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팍스 아메리카 질서를 수호하려는 소프트파워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만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해갈 경우, 이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은‘선택의 딜레마’에 시달리거나, 미국이 자신들을 다자(소다자) 협력체제에서 배제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내비친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다자주의를 앞세운‘짝짓기’경합으로 치열해지면서, 지구촌은 유엔과 같이 전 세계적 차원의 모든 국가들을 아우르는 다자주의 체제에 더하여, 미국 주도 대중(對中) 견제의 민주주의 국가들로만 구성된 다자주의 연합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미(反美)연대 세력들이 불안정하게 혼재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비민주주의 국가들을 떼어낸 국가군들로만 이루어진 여러 유형의 다자(소다자)협력체들을 형성하는 것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더 부합할 수 있다. 이라크와 같이 민주주의를 수용할 만한 토양을 갖추지 않은 나라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주입하려다 몇 번이나 실패한 사례를 상기할 때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은 자국의 이상과 가치를 국제체제 전반에 확신시키고 국제무대에서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뿐 아니라 문화, 규범, 정당성과 같은 소프트파워 영역에서도 국제적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고 자금을 조달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자간 협조주의를 강조하는 LIO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이 탄생시킨 유엔은 그 적실성에 대한 논란도 많지만, 인류 보편적 규범과 도덕적 권위 및 정당성(legitimacy)을 바탕으로 글로벌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관계 속 미국 중심의 평화적 국제질서로서의‘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 na)’의 당위성을 유지하려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략경쟁 속에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4차 산업혁명 시대 팬데믹과 기후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대응을 위한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엔은 미국이 구상하고 구현하는 가치와 원칙의 터전이고, 미국이 가진 상당한 양의 소프트파워를 구사할 정당하고 효과적인 플랫폼이다. 유엔외교가 여전히 미국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까닭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김인서 연구보조

 

이신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장, 한국유엔체제학회(KACUNS) 회장, 육군발전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미 메릴랜드주립대 국제정치학박사,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CFIA) Post-doc, 콜럼비아대 정치학과/SIPA 초빙강의교수, MIT 국제문제연구소(CIS) 방문교수 등을 역임함. 유엔코피아난 사무총장 르완다 독립조사위 특별자문관, 유엔평화구축기금(PBF) 사무총장자문위원,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자문관, 대한민국공공외교위 민간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Human Security and Cross-Border Cooperation in East Asia (공저, Palgrave McMillan 2019),“Foreign Policy Dilemma in South Korean Democracy”(Routledge 2021), The United Nations, Indo-Pacific Security and the Korean Peninsula (edited, Routledge, forthcoming)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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