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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초불확실성 시대 한국의 경제안보전략
등록일
2022-12-27
조회수
7

[기획자 註] 

탈냉전기 이후 미국의 압도적 패권이 부여했던 안정적 세계질서운영은 미중전략경쟁 시대를 맞아 변환 중이다. 정치와 경제문제, 경제와 안보문제를 분리시켜 생각하며 경제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며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던 워싱턴컨센서스는 이제 의심없이 종료되었고 세계는 경제안보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미중전략경쟁의 갈등 속에서 세계질서는 경제책략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고 있는 바, 미중전략경쟁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경제안보의 시대는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의 경제안보전략은 무엇인가. 중앙대학교 이승주 교수의 글을 통해 이 역사적 전환기에 한국의 경제안보전략에 대해 듣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실장(haeyonglim@jpi.or.kr))
 



초불확실성 시대의 경제안보

경제안보의 시대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 경제와 안보의 분리가 지배적 담론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격세지감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경제와 산업 체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노출된 데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경제 이슈를 빠르게 안보화한 결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부상을 미국에 대한 ‘경제적 침공’인 동시에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함으로써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현실이 되었다.[1] 국내에서도 경제안보 연계의 세계적 추세에 대한 진단과 함께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안보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논의의 폭과 깊이가 상당한 만큼 이제 한국의 경제안보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방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시점이다.
 

과잉 안보화의 위험성

논의의 출발점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할 것인지 ‘여부’를 뛰어넘어 경제와 안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촉진하는 저변의 변화는 불확실성의 증대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 자국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유혹은 너무도 크다. 경제의 안보화를 촉진하는 근원적 요인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적 쟁점을 과도하게 안보화하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이다. 과잉 안보화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국내정치적 요인이다. 경쟁국을 견제하고 압박함으로써 경쟁 우위와 안보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의 매력이 크기 때문에 경제안보 전략이 쉽게 국내정치 어젠다가 되어 과잉 안보화의 문제를 초래한다. 그러나 경제안보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추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안보 연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정치적 요인에 의한 안보화는 단기적으로는 과잉 안보화의 문제를,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안보 연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둘째, ‘경제안보 딜레마(economic security dilemma)’의 확산이다. 경제적 강압을 행사할 능력을 갖춘 전통적 강대국들은 ‘공세적’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대다수 국가들은 대외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반응적’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안보 전략이 본질적으로 ‘방어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들어 그 정당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응적 경제안보 전략은 체제적 효과 면에서 공세적 경제안보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국가가 반응적 또는 방어적 동기에서 추진하는 경제안보 전략이 다른 국가의 경제안보 연계를 촉발하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국가 차원뿐 아니라 체제적 차원에서도 과잉 안보화를 초래하게 된다.
 

21세기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

21세기 경제와 안보의 연계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의 귀환이 주목받고 있다.[2] 21세기에 부상한 경제적 통치술은 전통적인 경제적 통치술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경제적 통치술은 주로 국가 간 갈등의 해결 또는 관계 조정을 위해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수출 통제, 수입 제한, 경제 제재 등이 주요 수단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활용하여 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구사한 전략이다.[3]
 

21세기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이 전통적인 경제적 통치술의 단순한 답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은 더 이상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방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견국 또는 약소국들도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 경제적 통치술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전통적인 강대국의 경제적 통치술을 단순 반복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내에서도 한국이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경제안보 전략과 유사한 목표와 방식을 지향하는 데 따른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국의 하드파워, 국제정치적 지위, 세계 경제 네트워크 내 위치, 전략적 도전의 성격 등을 통합하여 담아내되,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기여 등 보편과 특수의 결합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과 같이 대외의존도에게는 우호적이지 않은 대외환경을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은 21세기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또 전략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21세기는 초연결성의 시대이다.[4] 초연결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 간 네트워크의 밀도를 높여 놓았다. 이는 네트워크 내의 위치를 활용하여 상대국을 압박하는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이 대두된 배경이다. 네트워크 내 위치(network position)를 네트워크 권력(network power)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지역 가치 사슬(regional values chains: RVCs) 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확보하고 있는 핵심적 위치를 경제적 통치술에 통합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된다.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과잉 안보화를 넘어 적정 안보화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시점에 과소 안보화가 초래할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과잉 안보화의 폐해도 그에 못지않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잉 안보화가 지속될 경우, 안보화가 너무 광범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성취하려는 목표가 불분명해지며, 국내적으로 안보화를 위한 지대의 추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국가들에서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과정에서 산업정책이 확대・강화되는 가운데, 안보화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경제안보 연계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 역량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과잉 안보화 또는 과소 안보화를 경계하고 적정 안보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적정 안보화를 실현하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다. 적정 안보화를 위해서는 안보화의 목표와 방법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안보화의 범위를 정확하게 표적화(targeting)하고, 제한된 기간으로 한정하며, 사후적으로 안보화의 효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경제안보 전략의 목표: 취약성의 완화와 리스크의 관리
 

적정 안보화라는 기본 조건의 확보를 전제로 한국은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경제안보 전략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초불확실성 시대 경제안보 전략의 최우선순위는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리스크의 관리여야 한다. 초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생존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리스크의 효과적 관리가 중요하다. 리스크의 관리는 이슈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수단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며, 제약 및 기회 요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리스크의 관리는 때로는 그 효과 또는 이익이 상쇄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을 전략적으로 동시에 구사하기도 한다.


경제안보 전략의 수단과 방식: 연계, 결합, 균형
 

경제안보 전략의 성패는 무엇보다 이슈의 ‘연계’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와 안보의 효과적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넥서스(nexus)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5] 넥서스의 매개 없이 이루어지는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경제적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 경제적 통치술이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넥서스에 기반한 실질적 연계 없이 상대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 첨단기술은 경제와 안보의 넥서스로서 각광받고 있다. 경제와 안보의 연계 효과를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계로 인해 국내적으로 발생하는 부담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슈 연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넥서스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이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두 번째 방식은 다양한 목표의 ‘결합’이다. 초불확실성 시대 주요국들이 저마다 경제 주권과 기술 주권을 주창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국의 이익을 우선 추구하려는 동기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 보더라도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경제 주권의 추구는 결과적으로 국가 간 갈등을 격화하고 번영과 평화의 토대를 위협하였다. 한국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 경제 주권 추구의 확산은 파국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해야 경제안보 전략은 경제 또는 기술 주권을 추구하는 가운데 포용성을 함께 담아내는 ‘포용적 경제 주권’이다.
 

포용성과 주권의 동시 추구는 상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러한 우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문건을 발간하면서 포용성을 표방하는 국가들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일단 인도태평양 지역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질서로 흐르는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역내와 역외를 불문하고, 자국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포용성에도 전략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역내 국가들이 표방하는 포용성에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결여되어 있다. 한편, 역외 국가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지역 질서가 수립될 경우, 이 지역의 경제적 활력에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결과, 이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포용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포용성과 주권의 추구 사이에 긴장을 해소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은 한국의 이익과 상대국 이익의 조화 여부에 달려있다. 포용성을 한국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포용성은 한국이 경제 및 기술 주권을 향상시키는 과정에 다른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열어놓는다는 의미여야 한다. 양자 사이의 선순환 관계가 성립될 경우, 한국의 경제 및 기술 주권 추구는 지역 또는 지구적 차원의 포용성을 확대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열린 국익’의 추구가 주권과 포용성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이 경제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세 번째 방식은 ‘균형’이다. 경제안보가 국가 전략의 영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이 경제적 통치술의 실질적 행위자이기 때문에 기업의 이해관계를 경제안보 전략에 통합하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경제안보 전략의 효과성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통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 물론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양자를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반대로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 사이의 괴리가 커질 때, 경제안보 전략의 효과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자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이유가 명확해진다.
 

[1] White House Office of Trade and Manufacturing Policy, How China’s Economic Aggression Threatens the Technologies and Intellectual Property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World (2018).

[2] Vinod K. Aggarwa and Andrew Reddie, “New Economic Statecraft: Industrial Policy in an Era of Strategic Competition,” Issues & Studies 56, 2 (2020).

[3] 국가 간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상대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연결하는 데 대한 고전적 논의로는 Albert Hirschman, National Power and the Structure of Foreign Trad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45) 참조.

[4] Farrell, Henry and Abraham Newman, “Weaponized Interdependence: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 International Security 44, 1, 2019.

[5] 이승주, “경제・안보 넥서스(nexus)와 미중 전략 경쟁의 진화,” 『국제정치논총』 61, 3 (2021).

[6] William J. Norrris, Chinese Economic Statecraft: Commercial Actors, Grand Strategy, and State Control (Cornell University Press: 2016).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서연 인턴


이승주 (중앙대학교)

이승주 교수는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이며, 싱가포르국립대(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자문위원회 위원장이며, 그밖에도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치학회 이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편저서로는 Korea’s Middle Power Diplomacy: Between Power and Network,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경제>, <일대일로의 국제정치>, <미중 경쟁과 디지털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 있다. 이외에 “기술과 국제정치: 기술 패권경쟁시대의 한국의 전략,”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와 미중 전략 경쟁: 복합 지경학의 부상,” “경제・안보 넥서스(nexus)와 미중 전략 경쟁의 진화,” “디지털 무역 질서의 국제정치경제,” “Institutional Balancing and the Politics of Mega FTAs in East Asia,” “불확실성 시대의 국제정치경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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