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I PeaceNet] 한일 관계의 대칭성과 상호 협력 방안 |
|
|
[기획자 註]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로 간주하는 사안은 미지급 임금 등 문제에 국한된다고 밝혔다. 비인도적인 인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를 포함한 손해배상 청구는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미해결 과제이기 때문에,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손해 배상하라고 한국 대법원은 판결했다. 일본 기업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가 해당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조치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이라고 명시한 합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피고 기업에도 그 판결을 따르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에 따라 사법 판단을 존중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와의 합의도 존중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 타개책을 모색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아무런 가시적인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1) 2022년 3월에 치른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얼어붙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한일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 움직임을 보였다. 한일 양국 정부가 그동안 ‘손에 박힌 가시 같은’ 갈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전향적으로 노력하고, 직면한 공통의 문제에 대해 협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본고에서는 우선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고 타협이 쉽지 않은 이유와 그것이 타협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에 대한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관해 분석하고자 한다. 2. 한·일 관계의 구조 변환: 비대칭성에서 대칭성으로2) 우선 이 문제에 관하여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한 타개책이 쉽게 제시되기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서 한일 간의 구조적 변용과 그에 대한 정치적 지침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일 관계는 1998년 10월에 채택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정점으로 이후 긴장이 고조되고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는 양국의 비대칭적 관계가 대칭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그 이전의 상호보완적 관계가 상호경쟁적 관계가 된 데에서 기인한다. 한일 정치지도자, 정부 그리고 국민이 이 같은 구조 변환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우선 대칭적 관계로의 한일 관계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것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이 힘에서 대등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를 포함하여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힘의 수평화, 즉 국력, 영향력, 존재감 등에서 대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 한 나라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이 한국의 7배 정도 수준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 중에는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다는 통계도 있다.3) 인구 면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2배 이상이기 때문에 GDP는 일본이 높지만,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3위인 일본의 뒤를 이어 한국도 세계 10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 외 군사비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거의 같은 수준이다.4) 1990년 이후 한국 언론이 줄곧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경계하는 논조로 일관해 온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게다가 ‘한류’라는 한국 브랜드의 문화적 영향력 측면에서는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것 같다. 또한 경제 관계에 관해서도 1980년대까지는 ‘일본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라는 식으로 한국과 일본은 수직적 분업 관계였지만, 현재는 분명히 수평적 분업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수평화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의식을 자극하여 마찰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둘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선진민주주의, 한국=개발독재라는 상호 이질적인 체제였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는 한일 모두 선진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체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지속적 경제발전, 1987년 정치적 민주화, 그리고 북방외교와 냉전의 종식에 따른 외교관계의 비약적 확대 등이 그 요인이었다. 한국은 국내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했고, 대외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로 한국은 냉전 시기 남·북 체제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체제, 가치관을 공유했다고 해서 반드시 상호이해가 깊어져 관계 개선으로 나아간다고 만은 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선진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를 공유한다고 해도 그 메커니즘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진행되는 반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소유와 경영이 일체화된 재벌 경영으로 오너에 의한 과단성 있는 결정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대조적이다. 또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해도 1990년대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자민당의 일당 우위 체제가 상당히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일본에선 가까운 장래에 여·야당 정부교체 가능성을 전망하기 어렵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보수·진보의 양당 정당 체제에서 수차례 정부교체를 이뤘다. 나아가 ‘촛불혁명’에 기인한 박근혜 정부의 퇴진처럼, 한국 국민들은 기존 정치 체제를 변혁하기도 했다.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안정’하다고 비칠 수도 있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민주주의는 ‘정체’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셋째, 1980년대까지 정치와 경제, 정부와 재계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던 한일 관계에서 그 이후에는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를 포함하고 나아가 사회·문화 영역을 아우르는 상당히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일 관계는 매우 풍요로운 관계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풍요로운 관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역시 역사 문제만이 ‘과대 대표’되어 크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한일 관계에서 역사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 문제는 풍요로운 한일 관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넷째, 예전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러가던 관심, 정보, 가치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였던 상황이었으나 그 양쪽의 흐름이 균형 잡힌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과거 자신들을 침략하고 지배한 ‘혐오스러운 나라’였지만 그래도 친근한 선진국으로서 미국 다음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따라서 확실히 편향된 관심의 방식이긴 했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정보와 가치의 양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은 확실히 ‘반공산주의의 방파제’로서 중요했지만, 한국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과거 한국의 정보와 문화적 가치 등이 일본으로 들어가는 양은 적었다. 그러나 점차 일본에서 한국 자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정보와 가치가 일본에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한국이 민주화되고 세계화됨에 따라 한국의 관점에서는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다만 일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나 정보는 여전히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상 네 가지 측면에서 한일 관계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대칭적 관계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비대칭적 관계에서 한일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냉전체제 하에서 일본은 한국이 ‘반공산주의의 방파제’로서 안보상 중요한 존재이며, 주로 경제협력을 통해 한국의 경제 발전과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일본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치열한 남·북 체제 경쟁 속에서 북한에 대한 열세를 만회하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원조와 더불어 일본의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일방적인 경제협력은 한반도의 냉전에 일본이 연루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경제협력에 의존하면 일본에 대한 종속이 깊어지게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비대칭성이 이러한 한일 양국 내에서의 비판을 억누르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보완적 관계는 각국의 목적이 성공적으로 달성되면서 일단은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체제 우위는 흔들리기 어려워졌다. 일본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분명하고 심각해질 때까지 당분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안보도 공고하다. 그 결과 대칭적 관계에서 상호 경쟁의식이 종래보다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물론 일본의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국의 반일 감정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문제는 양국이 대칭적 관계로 접어들면서 보다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감 역시 대두되었다. 예를 들어 양국 간의 상호 경쟁의식은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 더 우위의 지위를 차지할지 경쟁할 때 나타나며,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서로 절차탁마한다고도 할 수 있다. 스포츠 및 학문 등의 영역에서 더욱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상호 경쟁의식은 ‘상대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라는 의식으로 이어지고, 한일 간의 쟁점에 대해서도 상대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자신이 양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양국 간 첨예한 쟁점이 된 것은 역사 문제였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 한국 사법부가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 등 정부 간 타협이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 등과 같은 ‘새로운 규범’을 적용했고, 문제가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었다. 한국 정부에 대해 일본과의 협상 재개를 요구하거나, 일본 정부나 기업에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한국의 사법 판단이 한일 간의 과거 합의를 뒤집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과거 합의와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한국 여론 사이에서 그 균형을 어떻게 찾을지 매우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5) 하지만 상호 경쟁적인 관계가 자동으로 비타협적인 대립 관계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재 양국의 20, 30대 젊은 세대들은 대칭적 한일 관계 구조에 익숙하다. 문제는 비대칭적 한일 관계에 익숙한 기성 세대들이 ‘대칭적 관계 속에서의 경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면 한일 관계의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여 한일의 쟁점은 해결될까? 이에 대한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도 나이가 들면서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공유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한·일의 외교: 그 괴리와 접근 2010년대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된 배경으로는 앞서 언급한 대칭적 관계에 따른 상호경쟁의식의 격화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 악화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한일 외교의 괴리가 뚜렷해지고 상호 협력의 필요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일 외교의 괴리라는 측면뿐 아니라 한국의 보수정부와 진보정부와의 괴리라는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로 교체되면서 한일 외교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좁혀지고 그것이 관계 개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선 일본의 아베 정부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사이에서 한일 외교의 괴리는 다음과 같았다.
2018년에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연이어 개최하며 일단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협상은 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를 겪은 후 2022년 북한은 핵 법제를 제정하고 핵 독트린에 기반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상당히 멀어졌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를 불투명하게 한 채 남·북 관계 개선에만 조급해하고 있어 일본의 안보에 위험하다’라며 비판적이었다. 또한 문 정부에 비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 안이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미 트럼프 행정부에 촉구했다. 하노이에서의 북·미 협상 실패는 아베 정부에게는 일단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스가 요시히데 정부,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그러한 기본 노선을 계승하여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항하기 위해 우선은 요격 능력을 향상시키며, 그와 동시에 미국의 확장 핵 억지력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북한이 전술핵의 개발과 요격이 어려운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데 대항하기 위해 반격 능력 정비에도 힘써왔다. 이는 2022년 12월 채택한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세 가지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계획)로 결실을 보았다. 이처럼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억지보다 관여에 중점을 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관여보다도 억지에 중점을 두는 일본 정부의 정책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적인 정책을 배경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경쟁을 벌여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에는 문 정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지만, 2019년에 들어서자 아베 정부의 손을 들어준 양상이 되었다.7) 둘째, 미·중 대립을 둘러싼 대응에 관한 괴리이다.8) 문 정부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새롭게 등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북한 문제에 관한 중국에 대한 기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에 대한 접근과 밀월은 박근혜 정부 전반기에 매우 두드러졌다. 빈번하게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은 한국과 중국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군사적인 도발을 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박근혜 정부는 2016년에 들어 중국이 기대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중국이 반대했던 사드(THAAD) 미사일 배치를 결정했다. 이에 중국이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한중 관계가 악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 정부는 중국에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는 가운데 미중 양자택일에 내몰리는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인도·태평양(Indo-Pacific)’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였다. 후술하겠지만 문 정부의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시작된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이 결과적으로 미중 갈등을 자극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이에 가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아베 정부는 기존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인도·태평양’(전략, 구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에서 점점 대국화하고 영향력이 강해지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보다 적극적인 관여를 확보함과 동시에 호주와 인도같이 상대적으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외교는 당초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제 미국이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고, 나아가 중국을 경제, 안보, 기술, 이데올로기 상의 대항자로 설정함으로써 오히려 일본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적극적인 관여 자세를 보이게 됐다. 이처럼 일본의 외교는 한국의 외교에 비해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에서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4. 한국의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한일의 상대적 접근 2022년 3월 한국 대통령 선거는 보수 정당의 윤석열 후보와 진보 정당의 이재명 후보 사이에서 국론이 둘로 나뉜 일대일 승부였다. 그리고 불과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윤 후보가 승리했다. 솔직히 말해 외교가 선거의 주요 쟁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외교는 문 대통령의 외교와는 상당히 다르고, 대북 정책과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일본 외교에 가까워졌다. (1) 대북정책9)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원칙 없이 북한에 양보했다’라는 의미에서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우선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북한에도 양보를 요구하는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관여보다 억지에 중점을 둔 대북정책을 목표로 하고 한·미 동맹을 정상화하고 강화하며, 미국의 확장 억지력의 신뢰성 제고와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 간 핵 공유를 의미하는 ‘나토(NATO)식 핵 공유’도 지향한다. 이 배경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기정사실로 알려진 상황에서 국민의 약 70%가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여론에 대한 배려가 있다. 한편 ‘담대한 구상'과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라는 구상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노력을 전제조건으로 한 관여 정책도 내세웠다. 핵 법제를 제정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김정은 정부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 이러한 정책은 ‘억지할 뿐만 아니라 관여도 한다’라는 자세를 보여주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의 골격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대북정책을 두고 일본과 차이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와 달랐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해 일본과 공통된 부분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일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다. 아울러 한일은 안보 협력에 미국을 관여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는다. 미국의 확장 억지력의 신뢰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이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유이다. (2)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 일본 ‘주도’의 ‘인도·태평양’과는 일선을 그은 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을 둘러싸고 미국, 일본과의 공유를 지향하고자 하였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의 합의가 발표된 것은 상징적이었다. 게다가 다음 달인 12월에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 발표되었다.10)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사이에 두고 ‘인도·태평양’ 개념을 공유했다는 의미는 향후 한일의 대중 전략, 대중 외교를 고려한다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는 유보적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윤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아세안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 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과의 공통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세안의 자세와 미국과 일본의 자세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아세안은 미중 대립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미·중 대립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의 지원과 배려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일본의 구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한편으로는 미·일과의 공통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세안과의 공통성도 강조함으로써 미·중 대립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둘째, 11월에 열린 ASEAN, G20, APEC 등 일련의 국제회의에서 한·미·일 3국의 정상 회담만 아니라 미·일, 한일 그리고 한·미 간의 정상회담도 개최되었고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중국을 지목하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의 지속적인 시도’를 위협으로 인식했다.11) 그러나 앞서 언급한 한·미·일 공동성명에서는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인 활동을 통한 것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해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부합하여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 법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 ‘대만에 대한 기본적 입장에 변경이 없음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안전 및 번영에 필수적인 요소인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으로 분명히 중국을 염두에 두고 위협을 강조했지만, 그 위협의 주체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명기한 것은 아니었다.12) 또한 한일과 한·미의 공동성명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위협을 염두에 둔 문구는 없었다.1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미·일과 공통된 위협으로 중국을 명시하는 데에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고 볼 수 있다. 5. 한·일 외교의 재검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일 관계는 과거에 보였던 의견 차이가 줄어든 반면, 협력의 가능성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의 원동력이다. 이러한 점은 일단 양국 모두에게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대북정책이든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이든 그러한 위협에 직면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꼭 필요하다. 그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위협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협력만 한다고 해서 공고화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위협 제거를 위한 협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억지에 중점을 두고 한일이 협력할 필요가 있지만 이와 더불어 관여를 위해서도 한일의 협력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북한의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방치하는 것은 한일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역시 억지와 관여를 결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와 같이 관여로 편향된 성향만으로는 불충분하지만 억지만으로도 부족하다. 한국과 일본이 분담해서 협력해 나가며 억지와 관여의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대북정책을 더 우선시하도록 한일이 협력해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대러 그리고 대이란 정책 등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면서도, 대북 정책은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는 미국에 비해 높다. 더욱이 북한은 항상 미국을 의식하면서 그들의 군사·외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최우선 과제로 대북정책을 다루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중 대립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현상 변경을 위한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관여가 필요하며, 그것을 한국과 일본이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일이 ‘인도·태평양’을 공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미·중 대립이 한국과 일본의 이익을 저해하고 한국과 일본의 비용을 필요 이상으로 증가시키는 것도 막아야 한다. 한일은 그러한 미중 관계 속에서 상당한 정도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미중 대립은 어느 정도 당연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것이 한국과 일본에 치명적인 손해나 비용 부담을 주지 않도록 미국과 중국에 촉구하는 것에 관해서도 한국과 일본은 협력할 여지가 있다. 그것을 한일이 단독으로 추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어중간한 자세를 견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중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해 주길 바란다. 반면에 일본은 미중 대립에 ‘편승’하는 위험과 미·중 대립이 완화할 때의 이점을 인식한 다음 그런 관점에서 한국과의 외교 협력을 더욱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점은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여기에는 이러한 한일 외교 협력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여 국제적인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그만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한일 협력의 축적이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명 20세기 전반 한일 관계사는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이뤄진 부정의한 역사였다. 그럼에도 20세기 후반 한일 양국은 협력의 성과를 축적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의 한일 경제협력, 1970년대 미국의 대북정책이 동요하는 가운데 한일의 마찰이 내재한 협력 그리고 1980년대 냉전의 종식을 앞두고 이루어진 한국의 북방 외교와 일본의 지원 등 긍정적 역사를 한일 양국의 정치 지도자, 정부 그리고 국민은 다시 한번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1) 대다수의 일본 언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문 정부를 ‘반미·반일·친중·친북의 좌파 진보정부’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비판적으로 보았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많은 한국 언론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우경화한 역사 수정주의자’로 비판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https://data.un.org/ 4) 한일의 군사비 비교에 관해서는 SIPRI(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를 참조. https://milex.sipri.org/sipri 5)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인식의 괴리에 관해서는, 기미야 다다시 「현대 한일 관계에서의 화해와 정의」, 아사노 도요미 편『화해학총서1=원리·방법 화해학의 시도-기억·감정·가치』 아카시쇼텐, 2021, pp. 286-314 6)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국정백서편찬위원회 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문재인정부 국정백서 16』 2022년, 를 참조. 7) John R. Bolton, 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 Simon & Schuster, 2022. 8) 미·중 대립을 둘러싼 한일의 괴리에 관해서는, 기미야 다다시, 「중국을 둘러싸는 한일관계: 한국, 한반도에서 본 일본의 대중인식, 정책」, 남기정 엮음 『아베시대의 일본의 정치와 외교』 박문사, pp.157-195, 2022년, 를 참조. 9)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통일부가 발표한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 구현』(2022년)을 참조. 10) 대한민국정부,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2022년. 11) 미·일 공동 성명에 관해서는 https://www.mofa.go.jp/mofaj/na/na1/us/page1_001403.html 12) “Phnom Penh Statement on Trilateral Partnership for the Indo-Pacific,”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420434.pdf 13)「브리핑 한미 정상회담 결과」「브리핑 한일 정상회담 결과」2022.11.14.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briefing/LvHRCLv8.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briefing/N8rJmPvn.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수연 연구원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기미야 교수는 1960년생이며 도쿄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그는 냉전기뿐만 아니라 탈냉전기를 포함해 한국정치와 외교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발전해 나갔다.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서 재직중이며 그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친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역임했다. 또한 도쿄대학교 현대한국연구소와 한국학연구소 소장도 역임했다. 일본어 저작으로“한일관계사”(오히라마사요시상 특별상 수상) “한국 경제발전과 민주화” “국제정치 속의 한국현대사” “내셔널리즘으로부터 보는 한국 북조선 현대사”가 있으며 한국어 저작으로 “박정희 정부의 선택: 1960년대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과 냉전체제” “한일관계사”등이 있다. 일본어 근간으로 고 김대중대통령의 평전과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정치에 관한 분석서를 준비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