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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중국과 통합되는 아세안 경제와 그 시사점
등록일
2025-04-15
조회수
28

[기획자 註]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세안 또한 미중 패권경쟁의 글로벌 흐름 속에서 회원국들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본고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세안의 대외무역환경을 살펴보고 이에 따른 정책적 함의를 도출함으로써 한-아세안 관계에 시사하는 바를 논의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


아세안은 수출지향적 성장전략을 택해왔다. 외국인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EU, 일본 등이 주요 교역대상국이었으나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국에 대해 빠르게 통합되고 있다. 아세안-중국의 무역구조는 아세안의 무역수지 적자로 나타난다. 아세안과 중국의 불균형적인 통합은 아세안이 조립 제조업에 치중하고 있고, 미중 무역갈등 이후 아세안이 중국에서 중간재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향후 미중갈등이 더 심화된다면 중국의 아세안 진출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아세안은 중간재 산업 육성에 협력할 수 있을것이고, 이를 위해 아세안 대상의 신남방정책을 다시 살리고, 동아시아 전체 협력을 강화 할 필요가 있다.


1.머리말


아세안은 동남아 지역 10개국으로 구성된 개발도상국 연합체이다. 냉전체제가 강고해지던 1968년 창설되어 정치경제 협력을 강화해 왔다. 내정불간섭, 합의와 협의에 의한 의사결정 등 소위 아세안 방식(ASEAN Way)를 지키면서 서서히 협력을 강화해 왔고, 2015년 정치안보공동체,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로 구성된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켰다. 아세안공동체는 EU와 같이 고도의 통합체는 아니지만 6.7억 명의 인구, 세계 4위 권의 교역규모를 가진 무시할 수 없는 협력체이다. 아세안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일치된 목소리로 동아시아 질서 구축과정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내년부터 시작되는 ”아세안공동체 비전 2045년“ 실행을 통해 세계 질서 구축에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아세안 주요국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성장했다. 아세안은 석유, 가스, 석탄, 팜오일, 주석, 목재 등 다양한 천연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거대 하천을 끼고 있는 국가는 비옥한 농지와 몬순 기후로 농업 생산력도 높다. 따라서 이들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1960년부터 수입대체 공업화를 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수입대체 공업화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는 1980년 중반부터 제조업에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강화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수출주도 공업화로 방향을 바꿨다. 그 결과 아세안 선발국들은 1990년대 중반이면 주요한 생산기지로 부상했고, 후발국 중 베트남도 1990년대 들어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빠른 속도로 수출산업화에 성공했다.


아세안에 진출한 조립형 다국적 제조기업은 현지 중간재 산업의 미개발 때문에 모기업 혹은 본국으로부터 부품, 소재, 장비를 수입하여 이를 가공 조립한 후 미국 등 역외시장에 수출하는 형태의 경영활동을 했다. 아세안의 주요 시장은 아세안 자체시장 외에 미국, EU 등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아세안은 중국과 교역을 빠르게 늘렸다. 중국 상품은 아세안에 밀려들고, 철도 등 교통이 중국과 아세안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중국의 자본은 일대일로(BRI) 전략의 일환으로 아세안 인프라 건설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관광객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등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서비스 경기를 결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세안과 중국의 경제적 통합은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역의 통합은 특히 현저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세안의 대외교역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수출보다도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 증가는 아세안 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 글은 아세안과 중국의 무역관계의 구조변화와 그 배경, 그리고 아세안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검토한다.


2. 아세안 중국의 경제협력


(1) 아세안과 중국의 교역 관계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을 가진 대부분 아세안 국가는 전후 신생국으로 출범할 때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했다. 수입대체 공업화는 수입 공산품을 국내에서 생산하자는 것이었고 이는 높은 수입 장벽 구축과 선발된 기업에 기회를 주는 인허가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보호주의와 인허가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국제 경쟁력이 낮은 기업, 독과점적 시장구조, 부패를 낳았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1960-80년대의 경제성과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수출주도형 전략을 선택한 국가보다 낮았고, 1980년대 중반 자원가격 하락으로 이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도 미국의 대일본 압력을 근간으로 하는 1985년의 플라자합의(Plaza Accord)를 계기로 일본 기업이 아세안 투자를 확대하자 아세안은 수입대체 공업화를 포기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정책 전환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아세안 선발국들은 투자와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수출 증가로 아세안의 대외의존도는 급격히 상승했는데,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를 제외한 대부분 아세안 국가의 수출의존도(수출/GDP)는 한국의 그것보다 더 높아질 정도였다. 고도성장에 따른 버블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아세안은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를 역내 통합과 아세안+3 체제 구축이라는 동아시아 질서 개편을 통해 극복했다. 아세안은 2015년 아세안공동체 발족을 대내외에 선언했다. 아세안공동체의 중심인 경제공동체는 아세안 전체를 단일 시장이나 단일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이는 또 새로운 투자를 유도할 것이라고 봤다.


아세안의 교역은 1980-90년대에는, 아세안 역내, 미국,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이 새로운 교역 대상지역으로 중요해졌다. 다음의 [그림 1]에 의하면 아세안공동체가 출범한 2015년 당시 아세안의 교역은 23.6%가 아세안 자체 내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중국과 16%, 미국과 9.3%, 그리고 EU와 8.9% 등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2024년 현재 아세안 자체 교역은 21.4%로 하락했고, 미국과는 11.8%로 증가했고, EU와의 교역은 7.6%로 하락했다.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나 일본과의 교역은 2015년 8.9%에서 2024년 6.2%로 하락했다. 주요 교역대상국 중 중국과 미국만이 그 비중이 증가했는데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특히 많이 증가했다.
 

[그림 1. 아세안의 주요 교역 대상]
 

 


출처: 아세안 사무국 (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 아세안에 5,862억 달러의 상품을 수출했고, 3,965억 달러의 상품을 수입했다. 2020년에 중국의 수출은 3,837억 달러, 수입은 3,004억 달러였으니 4년 동안 수출은 52.8%, 수입은 32.0% 증가했다. 즉 아세안에서는 대중국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이 기간 중국의 대아세안 무역수지 흑자는 833억 달러에서 1,898억달러로 증가했다. 아세안 통계로 보면 대중국 교역은 전체 수출에서 2024년 현재 14.9%이며, 수입에서는 25.4%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입 비중이 2015년에는 각각 12.4%와 19.8%였는데, 수출 비중은 기복을 보이고 있으나 수입 비중은 일관되게 증가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그림 2] 참조). 이처럼 수출입에서 아세안과 중국은 통합도가 심화하고 있는데, 구조적으로는 수입의존도가 수출의존도에 비해서 훨씬 높다. 그 때문에 아세안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급증하면서, 중국과 불균형적인 통합이 심화되고 있다.


[그림 2. 아세안의 대중국 수출입 비중]
 


출처: 아세안 사무국(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아세안과 중국의 교역 관계가 정상화된 1990년대 이후 상황을 돌아보면, 초기에는 중국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아세안으로 유입되었다. 가전제품, 오토바이, 섬유제품 등이 아세안의 주요 수입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아세안 수출 상품은 소재, 부품, 장비 등이 추가되었고, 특히 트럼프 1기의 미중갈등 이후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기간에 중국과 아세안의 교역 상품의 구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반도체, 무선전화기, 석유제품, 디스플레이, 컴퓨터제품 및 부품, 전자제품, 철강, 섬유직물 등이 주요한 교역제품이다.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아세안 대부분에게 수출하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수입한다. 반도체 제품이 워낙 다양하고 공정이 복잡하여, 양측은 상호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하고 있다. 다른 전자제품의 경우 주로 중국은 부품을 수출하고 아세안은 완제품을 수출한다. 다만 무선전화기의 경우 중국이 아세안 각국에 가성비 좋은 중국 상표의 전화기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캄보디아 및 인도네시아 등 상대적으로 섬유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섬유직물을 중국에서 대량 수입하고 있다. 대신 인도네시아는 석탄을 중국에 수출하고 팜오일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중요한 공급지이다.


(2) 아세안-중국 통합의 배경


아세안이 중국에 대해 불평등한 통합이 심화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인데, 아세안의 발전모델 성격에서 유래하는 중간재 산업이 지닌 취약성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아세안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했다. 아세안은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고용과 수출을 창출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 일정 역할을 위탁한 것이다. 따라서 아세안에 진출한 초기의 다국적기업은 가치사슬에서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가장 낮은 조립 제조업에 특화하고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R&D 등 제품의 기획, 개발, 마케팅 등은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국적기업은 완제품 조립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를 중간재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아세안에서 조달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수입하게 되는데 공급국으로서 중국이 점점 중요해진 것이다. 시간 경과에 따라 아세안이 자체 기업을 육성하거나 다국적기업을 장려하여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가치사슬 분야로 경제 활동을 이전하거나 조립에 필요한 부품, 소재 등의 생산을 늘리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고도화는 상당한 기술역량, R&D 능력, 아이디어가 넘치는 기업가가 갖추어 져야 하지만 아세안은 이를 육성하지 못했다. 결국 다국적기업은 계속 조립부문에 치중하게 되고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다국적기업이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그리고 가성비 높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중국이 중간재 공급국이 된 것이다.


둘째, 미중 관계 악화의 결과가 아세안의 대중국 의존도 증가의 외형적 요인이 된다. 트럼프 1기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발생했을 때 중국과 유사한 상품을 수출하는 아세안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면서 중국의 대미수출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아세안의 수출에서 미국 시장의 비중은 트럼프 1기가 시작된 2017년 10.8%에서 2024년 16.0%로 대폭 증가하여 일반적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결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이 미국 무역적자 15대 상위국에 포함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미수출의 증대만큼 아세안 내에서 서플라이 체인이 양과 질로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아세안은 중간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가장 좋은 공급국이 바로 중국이었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무역압력은 중국기업의 대아세안 투자를 늘렸다. 중국에서 직접 미국에 수출하기보다는 우회로를 찾아 아세안에 투자를 늘린 것이다. 아세안 통계를 기준으로 2015년 아세안에 유입된 중국기업의 투자는 66억 달러였고, 코로나로 기복은 있었으나 2023년에는 176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통계를 기준으로도 2018년 136억 달러였던 대아세안 투자는 2023년 251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국의 아세안 투자는 제조업 비중이 40% 이상에 이른다. 중국 제조업체가 활발하게 진출하는 국가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며 전기차, 전자, 섬유 등이 주요한 분야였다.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아세안에 진출한 중국기업이 현지에서 부품, 소재, 장비 등 중간재 산업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구비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결국 모기업이나 중국의 다른 기업으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대미 수출증가가 대중국 수입증가로 나타나는 현저한 사례는 베트남이다. 아세안 최대의 생산기지인 베트남은 미중무역전쟁이 발발한 2018년 총수출 중에서 미국에 19.5%를 수출했으나, 미중무역마찰 기간에 급속히 증가해서 미국 비중은 2022년 29.5%까지 증가했고, 2024년에도 29.6%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대미수출의 급증으로 미국의 대베트남 무역적자는 2018년 395억 달러에서 2024년에는 1,235억 달러가 되었다. 베트남은 미국의 3위의 적자국이 되었는데 트럼프 2기 정부가 베트남에 46%의 고관세율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대미흑자는 그대로 대중국 적자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베트남은 수출상품을 제조하기 위한 부품과 소재의 수입을 증대시켜야 했는데 이 중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왔다. 그 결과 2018년 27.7%였던 대중국 수입 비율은 대미수출의 증가보다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2024년에는 38.0%로 증가했다. 중국의 대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2018년 294억 달러, 2022년 697억 달러 그리고 2024년에는 633억 달러로 증가했다. 물론 이러한 수입의 증가 현상은 단기에 급증한 중국기업의 대베트남 투자기업이 중국에서 중간재를 조달한 것도 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존에 베트남에서 생산활동을 하던 다국적기업이 중간재 조달이 용이한 중국을 이용한 결과이다.


[그림 3. 베트남의 대미수출과 대중 수입 비중 추이]
 

 

출처: 베트남 통계청(https://www.gso.gov.vn/en/homepage/)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3. 아세안 경제에 미치는 영향


아세안과 중국의 통합 심화는 아세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세안  역내통합의 지체이다. 아세안은 1992년 자유무역지대를 창설 이후 점진적 과정을 거쳐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의 출범을 대외에 천명했다. 회원국 사이에 관세는 사라졌으며 자본의 이동도 자유로워졌다. 그렇지만 공동체가 출범한 2015년 역내 수출비율은 24.5%에서 2024년 22.5%로 하락했고, 수입비율도 같은 기간 22.5%에서 20.3%로 하락했다(<그림 4>참조). 과거 아세안 역내 교역에서 싱가포르가 중계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이제 그 역할이 다소 감소했고, 지난 10여 년 이상 아세안 제2의 무역국으로 성장한 베트남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조달한 중간재를 단순 조립한 후 비아세안지역에 수출하기 때문에 아세안 역내 교역 증가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아세안 역내교역을 증대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림 4. 아세안 역내 수출입 비중 추이]
 


출처: 아세안 사무국(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아세안 경제통합의 이완은 아세안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먼저 전략적 차원에서 아세안의 대외 협상력이 축소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세안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중일을 포함한 아세안+3 협력체제가 가동할 때 협력체제 구축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주창하고 이를 실현해 왔다. 아세안은 내년부터 실행할 2045년 청사진에서 동아시아의 중심적 역할에서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의 통합이 지체되면서 아세안 회원국 사이의 단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세안 통합의 기대이익이 크지 않다면 외곽의 회원국으로부터 충성심을 유도하기 어렵다. 실제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는 아직도 최빈국의 생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장규모와 인력 수준으로 볼 때 경쟁력 있는 제조업 육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중국의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바람직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국이 주는 유무형의 편익을 기대하고 중국으로 경도하지 않을 수 없고 아세안 통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싱가포르의 국책연구기관인 ISEAS(ISEAS–Yusof Ishak Institute)는 매년 아세안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아세안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인식조사를 하고 있는데, 2025년 초의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아세안에 대해 가장 우려되는 사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5개의 응답 중 ”아세안이 느리고 비효율적이어서 유동적인 정치 및 경제 발전에 대처할 수 없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무의미해지고 있다“가 35%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고, ”ASEAN이 주요 강대국 경쟁의 장이 되고 있으며 회원국들은 주요 강대국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가 29.8%로 2위의 우려사항이라는 답이 나왔다. 모두 아세안의 응집력 결여와 대외협상력의 저하와 관련된 우려였다.(Seah, S. et al. 2025.p.18)


둘째, 중국과의 통합 심화로 인해 아세안의 지속적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제조업의 고도화가 어려워질 것이다. 조립 생산에 치중하는 아세안은 오랫동안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가성비 높은 소재, 부품, 장비 제품을 아세안에 쏟아내면서 아세안의 중간재 산업 육성은 쉽지 않았다. 아세안에서 취약한 소재, 부품, 장비 산업 분야에서 국내 기업인이 창업한다고 해도 중국제품과 경쟁하기 어려워진다. 베트남의 하노이 인근에는 많은 다국적 전자 조립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중국에서 부품과 소재를 조달하기 쉽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2기에서 더욱 격화된 미중 갈등으로 이제 중국은 제3의 완제품 수출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제 중국의 완제품 기업은 내수부진과 대미수출 부진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아세안에 수출을 확대할 것이고, 아세안은 품질 좋은 저가의 중국 공산품 유입을 목격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에서 다국적기업은 전자,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분야의 제품을 조립하고 있고, 아세안 자체 기업인들은 대개 섬유, 의류, 식품 등에 진출해 있다. 이제 중국제품은 이런 분야에도 저가로 수출을 확대한다면 아세안 현지 기업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제조업 분야의 압박은 아세안 국가들의 교역조건 개선을 어렵게 한다. 아세안이 국제분업 체제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조립제조업에 치중하고 있는 한 수출상품은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또한 중국의 완제품 수입에도 경쟁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아세안의 통화가치가 높아지기 어렵다. 이 점은 왜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고도의 제조업 수출국가로 성장했으면서도 1인당 GDP는 계속 중진국 수준에 머무는 ‘중진국 함정’에 빠진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들은 중진국 함정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 경제가 중국과 통합되는 사실은 아세안 기업인들도 이미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일본무역진흥기구(Japan External Trade Organization, JETRO)가 2022년 아세안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의 목적은 아세안 재계의 일본에 대한 인식조사이지만 질문 중의 하나로, 향후 10년 기간에 아세안의 무역과 투자를 장악할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인데 중국이라고 답한 비율은 69.5%로서 2위인 일본이라고 답한 비율 12.6%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그림 5] 참조).


[그림 5. 향후 10년 동안 아세안의 무역 및 투자를 장악할 국가는?]
 


자료: JETRO, Business Sentiment Survey Report: Perception of ASEAN Businesses Towards Japan 2022. p. 24.


4. 우리가 얻을 시사점


아세안-중국의 교역관계 심화, 그에 따른 중국에 대한 아세안 경제의 불균형적인 통합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아세안의 향후 대응에 대한 아세안과의 협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전체의 변화 과정에서 우리의 대응이다.
 

먼저 아세안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세안은 어떤 전략을 써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쉽지 않겠지만 아세안 제조업을 조립분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소재, 부품 등 중간재 생산으로 이전하고 제품개발을 위한 R&D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과거 아세안은 일본의 시장이었고, 현재는 중국의 시장을 변했다. 우리는 아세안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기업의 존재를 넘어설 수 없었고, 현재도중국기업의 공세를 이겨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기업이 진출하기 이전에 베트남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베트남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이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중간재 산업 개발 노력에서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소재 및 부품 산업에서우리의 대아세안 투자를 확대하고 이들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아세안 각국과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R&D 협력, 인력 양성 등에서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모색했던 바가 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신남방정책을 실시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또한 트럼프 2기에서 아세안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을 겨냥해 높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미국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동일하다. 미국 시장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출지향적 경제구조를 가진 동아시아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고 역내에서 일정한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 아세안, 다소 멀리 있지만 인도까지 경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동아시아 전체의 통합에 대해 다시 한번 노력해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의 인구는 가까운 시간에 7억 명에 이를 것이고, 중국과 인도가 각각 14억의 인구를 갖고 있다. 이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다.아시아 각국이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비교우위에 입각한 분업체제를 구축해 간다면 미국에서 오는 부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3이든 동아시아정상회의체제(East Asia Summit, EAS)이든 다시 한번 동아시아 협력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1) JETRO(2022). Business Sentiment Survey Report: Perception of ASEAN Businesses Towards Japan, https://www.jetro.go.jp/ext_images/en/reports/survey/pdf/202208.pdf.
2) Seah, S. et al.,(2025).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5 Survey Report,“ ISEAS - Yusof Ishak Institute, https://www.iseas.edu.sg/centres/asean-studies-centre/state-of-southeast-asia-survey/the-state-of-southeast-asia-2025-survey-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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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
 

오랫동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고려대학교 퇴직 후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아세안경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다.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 “하나의 동아시아”, “아세안의 시간” 외에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의 대응”, “중국기업 대해부”, “신남방정책 평가와 개선방향” 등의 대표 필자로 활동했다. answeodls 정부 시기 신남방정책위원회의 위원을 지냈으며, “아세안의 시간”으로 2020년 매일경제신문사의 정진기언론문화상 도서부문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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