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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I PeaceNet] 신(新) 블록정치의 문턱에서 : 싱가포르 DIS·NEACD 참가 회고와 동북아 질서
등록일
2025-11-04
조회수
36

[기획자 註]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양대 강국을 중심으로 하는 블록(bloc) 정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양국의 입장을 솔직히 교환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여 긴장을 관리할 수 있는 다자 협의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DIS와 NEACD 등 1.5트랙 회의에서 제기된 내용을 분석하고 동북아시아지역 평화와 안정에 지닌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1. 서론


매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방정보공유회의(Defense Information Sharing, DIS)와 동북아협력대화(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 NEACD)는 초 냉전 해체와 1차 북핵 위기의 충격 속에서 태어난 동북아의 대표적 트랙 1.5 대화의 장이다. 정부 대표와 학자, 전직 고위관료가 한자리에 모여 상대의 의도와 한계, 가능성과 리스크를 가감 없이 토론해 왔다는 점에서, 이 두 회의는 ‘대화를 제도화’하려는 동북아의 오랜 시도라 할 만하다.


올해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대화의 현장 바깥에서 ‘대결의 표식’이 동시에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DIS 첫날인 9월 3일, 베이징에서는 전승 80주년기념 열병식이 있었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이 자리에 서방 정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신형 무기와 무인전력을 대거 공개하며 ‘자립적 국방산업의 위상’을 과시했고, 열병식 행사를 주관한 시 주석은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장면은 동북아가 맞닥뜨린 신(新) 블록정치의 부상을 단번에 시각화했고, DIS·NEACD의 토론 주제와 온도 또한 그 장면을 축으로 빠르게 재정렬되었다. 북한의 비핵화, 중국의 새로운 비전인 세계안보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1), 새로운 블록정치 등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난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집중되었다. 한미일과 북중러간 대립 구도가 동북아에서 지역 협력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DIS와 NEACD는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동북아 국가들의 참석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해법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2. 국방정보공유 세션: 연합억제·전력민첩성·산업동원의 ‘삼중 과제’


국방정보공유회의(DIS)는 동북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군사기술, 작전개념, 산업기반을 함께 논의해온 다자 안보대화체로, NEACD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개최되어 왔다. 그간 회의에서는 미사일 방어체계와 확장억제, 해양안보, 사이버 및 우주 영역 등 신흥 안보 과제가 협의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과 한반도 급변사태 대비 등 시의성 있는 주제들도 다루어졌다. DIS는 특히 정부 대표와 학계, 전직군 관계자가 함께 모여 ‘기술–작전–산업’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논의한다는 점에서 NEACD와 성격을 달리한다. 올해 논의의 핵심 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연합억제 구조의 재확인과 업데이트이다.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역량 진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개입 비용을 높이고 억지의 명료성을 약화시키며, 위기 시 ‘오판’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이에 따라 한‧미‧일 3국은 정보‧조기경보‧요격체계의 통합도를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측 인사들은 이러한 3각 공조 강화가 새로운 블록 정치와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였고, 일부 제3국 참가자들 역시 긴장 고조와 신냉전적 구도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따라서 이 의제는 한편으로는 3국 억지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 협력방안으로 논의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 신뢰 구축과 위기관리 채널을 병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다층적으로 토론되었다.


둘째, 산업동원과 재래식 전력의 귀환이다. 러–우 전쟁의 교훈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정밀유도·무인체계가 전장을 바꾸고 있으되, 포탄·유류·부품·정비가 부족하면 첨단무기 운용도 장기전에서 지속될 수 없다. 한국 방산은 중·저가 영역에서 고가의 미국 무기체계와는 달리 가성비 좋은 무기로 존재감을 키워왔지만, 장기 수요에 대응할 국가 수준의 방산전략, 생산 유연성, 핵심 부품 공급의 자립성, 그리고 인공지능을 결합한 방산(AI+X)을 위한 로드맵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회의에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최근 방산 수출 확대와 ‘소버린 AI’2) 를 접목한 방산 디지털 전환 전략을 소개하며,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생산기지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대응하려는 계획을 공유하였다. 일본 참가자들은 자국이 여전히 미국 의존도가 높아 독자적 대량생산 능력 확보가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방위비 증액과 생산라인 확충을 통해 점진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 측은 자국의 ‘국산화된 방산 생태계’와 고속철·민간산업을 통한 대규모 산업동원 능력을 사례로 제시하며, 장기전에 대비한 생산·보급체계의 자립성을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러시아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토대로 전통적 포병·탄약·재래식 전력이 여전히 핵심적임을 강조하고, 방산기업의 전시체제 전환을 이미 실행하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이처럼 각국은 자국의 경험과 산업능력에 따라 상이한 설명을 제시했으나, 공통적으로 ‘첨단무기와 더불어 재래식 전력·보급 능력의 회복력이 장기전 지속능력을 좌우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하였다.


지난 9월 3일에 개최된 중국 전승 80주년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극초음속·대함·무인전력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주제에 관한 논의를 관통하였다. 이는 중국이 더 이상 외산 의존형이 아니며, 국산화된 방산 생태계를 기반으로 장기 경쟁에 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이에 대해 DIS에 참석한 중국 측 참가자들은 열병식이 단순히 무기를 과시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자립적 방위산업 역량을 입증하는 계기’였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들은 중국이 지난 10여 년간 추진한 무기체계의 국산화와 생산라인의 다변화가 이미 결실을 맺고 있으며, 이는 단지 중국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내·글로벌 차원의 ‘안보 공공재’로 기여할 수 있는 토대라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중국 관계자들은 서방이 제기하는 ‘군사적 위협 신호’라는 해석에 대해, 이는 중국의 방산 발전을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시각이라 반박하며, 오히려 자국이 평시부터 재난구호, 해양안보, 비전통 영역까지 포괄하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올해 DIS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직면한 이중 과제, 즉 (1) 미국 주도 연합억제의 명료성 확보, (2) 산업동원의 체계화라는 구조적 도전에 집중하였다.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질적 군사력 도약으로 인해 기존 억지의 신뢰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단순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동맹 통합, 회복력, 산업 동원 능력이 국가안보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회의는 군사기술과 작전개념, 산업기반을 동시에 논의함으로써, 동북아의 안보 과제가 전장의 전술적 문제를 넘어 경제·산업·정치적 총체성을 띄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3. 동북아협력대화: ‘비핵화/군비통제’와 ‘블록정치/다자협력’의 긴장


동북아협력대화(NEACD)는 1993년 UCSD의 수전 셔크(Susan Shirk) 교수 주도로 시작된 동북아지역의 대표적 트랙 1.5 대화로, 외교·안보 고위 인사와 학자, 전직 관료들이 비공식적·자유롭게 정책 의도와 제약을 솔직히 드러내는 자리다. NEACD는 그동안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미·중 전략경쟁,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안보 역할, 해양안보 및 비전통 안보 과제 등 시의성 있는 주제를 폭넓게 다뤄왔다. 특히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시기에는 사실상 유일한 다자 대화의 장으로 기능하며, 상호 인식을 공유하고 긴장 완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해 왔다. 올해 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북핵 접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지만, 다른 일부는 현실적으로 ‘동결–군비통제–위험 저감’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최근 발효된 러–북 상호방위 조약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조약은 ‘무력공격 시 상호원조’를 명시함으로써 양국 간 군사·외교·경제 협력을 제도화하였고, 이는 한반도의 새로운 불안정 요인을 낳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후원으로 안전보장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 전략적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기존 억지력이 약화되어 ‘도발 가능성이 더 커지고 위기 관리가 어려워짐’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는 결과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반된 효과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균형과 위기가 동시에 강화되는 역설’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둘째,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줄다리기다. 2023년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이후 한‧미‧일 협력이 강화와 답보를 반복하나 이 틀에 있어서는 유지되고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반면, 북‧중‧러는 상징성과 편익을 공유하되 실제 공동작전·통합기획의 제도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열병식에서 세 정상이 나란히 자리한 장면은 강력한 상징적 파급력을 보여주었으며, 정치적 연대가 군사·경제 협력으로 얼마나 신속히 전환될 지가 향후 1~2년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지적되었다. 동시에, 일부 참가자들은 이러한 블록화가 동북아 전체를 신냉전 구도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ASEAN 중심의 다자 틀이나 UN·ARF 같은 포괄적 다자 협력 기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블록정치가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도 역내 국가들은 다자적 대화와 신뢰구축 메커니즘을 통해 ‘완충지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어, 이 두 흐름이 끊임없이 긴장 관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이다. 중국측 참가자들은 비전통 안보와 주권·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며 ‘안보 공공재의 제공자’ 이미지를 설명했지만, 서방과 한국·일본의 일부 참가자들은 실행력·투명성의 공백과 권위주의 정권의 통제 및 검열 강화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이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백이 있는 안보에 공공재로서 제공될 수 있는 가능성도 같이 봐야 한다는 한 참가자의 의견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경제안보의 다층화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술공급망, 중요광물, 사이버·데이터 거버넌스가 △동맹(한·미, 미·일, 미·한·일) △소다자주의(미·일·호주, 미·일·동남아 일부국가) △지역 FTA(RCEP, CPTPP)라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다루어졌다. 미국 측 참가자들은 반도체·AI·배터리 분야에서 동맹국 간 공급망을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핵심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CPTPP와 자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연계하면서 ‘동맹 강화와 지역 협력 병행’을 주장했고, 중요광물 확보를 위해 호주·동남아와의 소다자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이중트랙이 점점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과의 첨단기술 협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RCEP·CPTPP 같은 다자 경제협정을 통해 선택지를 넓히려는 입장을 공유했다.

한편, 중국 측은 세계안보구상(GSI)과 연계해 경제협력 또한 ‘공공재’의 성격을 강조하며, 미국식 디커플링 대신 상호의존 심화를 통한 안정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참가자들은 자국에 대해 제재가 부과되는 상황에서 중국 및 ‘글로벌 사우스’와의 경제 연계를 강화하고, 에너지·자원 수출을 통해 대체 시장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소개했다. 종합하면, 동맹국들은 기술·자원 협력의 내실화를 강조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 중심의 경제안보 프레임에 대항하여 대체적 연계망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경제안보는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이 교차하는 주요 전장이자 선택지가 점점 협소해지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이번 NEACD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비핵화와 군비통제 사이의 현실적 간극, 그리고 블록정치와 다자협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북중러 연대의 상징성이 부각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 바이든 행정부 시기까지 한미일 협력이 제도적으로 공고해지면서 신(新) 블록 정치의 전조가 명확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제안, 그리고 경제안보의 복잡한 다층 구조는 동북아가 여전히 협력의 공간을 모색할 여지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NEACD는 갈등과 경쟁의 구조 속에서도 대화와 다자협력이 불가결한 도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4. 이재명 정부에 대한 제언: ‘Pacemaker–Peacemaker’의 이론적 실질화


싱가포르에서 열린 DIS와 NEACD의 논의는 한국 외교안보 전략이 직면한 구조적 도전을 이론적으로 재해석할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신(新) 블록정치의 부상과 비핵화·군비통제의 간극,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긴장, 경제안보의 다층화는 단순한 현상 진단을 넘어, 한국 정부가 ‘Pacemaker–Peacemaker’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제도적·전략적으로 구체화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제정치이론적 함의와 정책적 연계성을 갖춘 전략적 선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실용외교의 실질적 실천을 위한 다음과 같은 5가지 정책 제언을 제시해본다.
 

1) 억지의 명료성과 동맹의 다차원적 재정의: 억지이론과 복합안보의 적용


전통적 억지(deterrence) 이론은 상대방의 의도와 비용-편익 계산을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이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중국의 A2/AD 능력은 억지의 명료성을 약화시키며 오판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핵억지–재래식 억지–동맹 억지의 삼중 구조를 복합안보적 관점에서 재구축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군사적 억지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산업·데이터·우주 등 신흥 영역으로 확장되는 ‘총체적 억지’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종합안보동맹으로의 진화를 의미하며, 억지 이론의 현대적 적용이라 할 수 있다.


2) 산업동원과 소버린 AI: 전쟁지속성 이론과 혁신적 국가안보 전략


러–우 전쟁은 첨단무기만으로는 전쟁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탄약·연료·부품·정비 같은 산업동원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진리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한국은 ‘가격대 성능’ 전략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방위산업 전략과 핵심 부품 자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소버린 AI 구상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군사혁신(RMA)과 국가혁신체제(NIS)를 결합하는 실험장이 될 수 있다.


‘AI+X’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같은 신기술은 인공지능을 기존 산업 영역(X)과 결합해 새로운 효율성과 예측 능력을 창출하는 접근을 의미한다. ‘AI+X’는 인공지능을 생산·정비·물류 등 다양한 군수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기술 통합 모델이며, ‘디지털 트윈’은 실제 전력·장비·공정을 가상 공간에 복제하여 모의실험과 운영 최적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방위산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면, 한국은 기술혁신과 안보역량을 동시에 강화하는 한국형 기술–안보 복합 전략을 창출 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전쟁의 지속 능력, 즉 산업과 작전의 연속성을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3) 중국과의 위험관리: 복합상호의존 이론의 전략적 활용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과 군사력 증강은 분명히 주변국에 구조적 불안 요인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제한적 협력의 여지를 내포한다. GSI는 미국 주도의 기존 안보체계에 대한 대안 담론으로 출발했으나, 그 안에는 비전통 안보 영역—기후변화, 감염병 대응, 해양안전, 사이버 거버넌스—등에서 실질 협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군사·정치 영역의 대립과는 분리된 ‘비갈등성 협력공간(non-conflictual cooperation space)’으로 제한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GSI를 전면 수용하기보다, 그 중 비전통 안보와 공공재적 요소만을 선별적으로 연계하여 실익 중심의 협력 구조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단순한 편승이 아니라 ‘경쟁적 상호의존(competitive interdependence)’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해양, 기후, 보건, 데이터 관리 같은 영역에서 실무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공급망·사이버 안보에서는 가드레일을 설정하여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Keohane과 Nye가 제시한 복합상호의존 이론의 핵심,3) 즉 ‘갈등 속 협력(possibility of cooperation under competition)’이라는 모델을 동북아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도 국익을 극대화하고, 안보와 경제의 상호 의존 구조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균형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4) 북핵 협상 설계: 점진적 군비통제와 모듈형 협상의 결합


NEACD에서 드러난 것처럼 완전한 비핵화와 단계적 군비통제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난제다. 한국은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동결–사찰–검증’ 단계의 모듈형 접근을 주도해야 한다. 이는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단계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군비통제의 점진적 접근)과, 하나의 큰 합의 대신 작은 합의들을 연결시켜 전체 협상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협상의 모듈형 설계)을 결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비핵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핵활동 ‘동결–사찰–검증’ 같은 세부 단계를 별도의 모듈로 나누어 합의하고 실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군비를 통제해 나가자는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에 기초할 경우 한국은 미국·일본과 공조하면서 중국·러시아의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부 인센티브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5. 맺음말: 대화와 대결의 교차, 그리고 한국의 과제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DIS와 NEACD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직면한 구조적 도전과 그 해법을 동시에 드러내는 자리였다. DIS에서는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A2/AD 능력 진전으로 인해 연합억지의 명료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러–우 전쟁이 보여준 교훈을 토대로, 산업동원력과 재래식 전력의 회복력이 첨단무기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각국은 자국의 방위산업 현황과 대응 태세를 공유하며, 첨단기술·AI와 전통적 전력의 결합이 장기전 지속능력을 좌우한다는 인식을 함께하였다.


NEACD에서는 비핵화와 군비통제 사이의 접근 간극,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긴장, 중국의 GSI와 그 함의, 경제안보의 다층화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한·미·일 공조의 제도화와 북·중·러의 상징적 연대가 대비되었고, 이는 동북아가 신(新) 블록정치의 전조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ASEAN 중심의 다자 틀, UN 및 ARF와 같은 협력 메커니즘, 경제분야의 소다자 협력과 FTA들은 여전히 협력의 공간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한국, 특히 이재명 정부가 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페이스메이커-피스메이커(Pacemaker–Peacemaker)’라는 프레임이 단순한 수사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연합억지의 명료성을 회복하고 동맹을 기술·산업·데이터까지 포괄하는 종합안보 동맹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둘째, 방산 전략을 장기적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켜 소버린 AI를 접목한 산업 민첩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중 경쟁 속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경쟁적 상호 의존’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넷째, 북핵 협상에서는 동결–사찰–검증의 모듈형 설계를 통해 다자적 이익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DIS와 NEACD가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것은, 대화의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며,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베이징의 열병식 장면이 신(新) 블록정치의 상징이었다면, 싱가포르의 토론은 여전히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제도적 노력의 표현이었다. 한국의 과제는 이 두 현실을 동시에 직시하며, 정교한 설계와 일관된 실행을 통해 페이스메이커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설계도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순서다.
 


1) GSI(Global Security Initiative)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2년 보아오 포럼(Boao Forum for Asia)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공통·종합·협력·지속 가능 안보”(common, comprehensive, cooperative, sustainable security) 원칙을 내세운다. 이 구상은 국가주권 및 영토 보전 존중, 유엔헌장 준수, 대화·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전통 및 비전통 안보 위협 모두를 포괄하는 안보 프레임 등 여섯 가지 약속(commitments)을 중심 축으로 삼고 있다. 다만 중국 내 공식 문서는 GSI의 작동 메커니즘과 실행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외부 분석가들은 이를 “정책적 구상 또는 외교적 수사(rhetoric)”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이후 2023년 2월 GSI 개념문서(Concept Paper)를 발표하여, 협력 우선 분야와 협력 플랫폼·메커니즘을 20개 항목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와같은 구상은 중국 스스로가 ‘안보 공공재 제공자(security public good)’ 역할을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적 이미지 구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 소버린 AI (Sovereign AI)는 국가가 인공지능 기술과 데이터 생태계를 자국 중심으로 통제하고 운영하겠다는 전략적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AI 정책의 핵심 축으로, 해외 의존성을 줄이고 자국어·문화·안보에 적합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정부는 2025년부터 5년간 약 5300억 원을 투자해 국내 AI 기반 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Hanwha Systems 등 방산 업체들도 국방 영역의 소버린 AI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3) Robert O. Keohane & Joseph S. Nye, Jr., Power and Interdependence: World Politics in Transition (Boston & Toronto: Little, Brown & Co.,1977)에서 제창한 복합상호의존(Complex Interdependence) 이론은 전통적 현실주의가 가정하는 ‘군사력 중심의 위계적 국제관계’ 모형을 비판하며,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채로운 채널을 통해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배학영 (국방대학교 교수 / 안보문제연구소 군사전략연구센터장)
 

배학영 교수는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이자 안보문제연구소 군사전략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학사), 국방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미래전(Future Warfare), 해양전략(Maritime Strategy), 인공지능(AI) 기반 전쟁과 군사혁신, 국방데이터 및 방위산업 전략, 핵전략과 억지이론 등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빅데이터·우주 영역이 결합된 지능화 전장(Intelligent Battlespace) 및 한국형 방위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전략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배학영 교수는 국방대학교에서 「미래전」, 「해양전략」, 「군사연구방법론」 등을 강의하며, 고위정책과정 및 장성급 교육과정에서도 안보관련 강의를 하고있다. 또한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해군본부, 국방부, 외교부 등과 공동으로 국방혁신, AI·MRO 체계, 인도·태평양전략 관련 정책 연구를 수행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우주전장시대 해양 우주력』(박영사,2022), 『핵무기와 핵전략』(박영사, 2025), 『21세기 해양안보와 국제관계』(북코리아, 2017) 등이 있으며, SSCI급 저널인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및 『국방연구』, 『한국방위산업학회지』,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지』 등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국제적으로는 UCSD(IGCC)가 주관하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 국방정보공유회의(DIS), 하와이 East-West Center, Asia-Pacific Center for Security Studies, NATO Defense College,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등 다양한 국제 안보포럼과 학술회의에서 발표자로 초청받았다.


현재 배학영 교수는 인공지능 기반 미래전의 국가전략적 함의, 해양안보와 우주력의 융합, 그리고 한·미·일 협력과 북·중·러 블록화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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