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발간호
- 2021-02
동아시아 국가 간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해소되지 않는 역내 정치·안보적 경쟁구조의 기묘한 공존은 흔히 ‘동아시아 패러독스’ 라 불린다. 사실, 이 용어만큼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특징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상하는 용어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Goldstein and Mansfiled 2012). 문제는 최근 동아시아 질서는 협력의 축이 약화하는 반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중·일 3국의 역내 교역 비중은 1990년 12.3%에서 2011년 21.3%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최근 다시 둔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외무역 증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조치 및 한국의 대중 헤징전략,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심화와 경제블록화 현상 등 정치적 갈등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최근 동아시아 역내관계는 정치·안보적 갈등이 경제·사회적 협력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혹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안보적 갈등이 전면전의 양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기 안정성(crisis stability)’ 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한다 (Choi 2016). 동북아 삼국의 군사력은 일국의 기습공격에 대해 충분한 보복을 단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균등한 상황이며, 이러한 긴장 상황에 대한 인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위기가 격화되지 않는 억제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조론적 설명으로는 역외국가인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에 주둔군과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중국의 공세적 군사전략과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이중의 억제(dual containment)’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있다. 즉, 미국은 ‘바퀴축과 바퀴살 (hub-and-spoke)’과 같이 한·일 양국의 공동의 동맹국으로서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고, 한일 양국 간에 비공식적 ‘준동맹(quasi-alliance)’과 유사한 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갈등의 격화를 관리한다는 해석이다 (Ikenberry 2004).
문제의 소재는 이러한 군사적 상호억제에 기반한 안정성은 항구적인 것이 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위기 안정성’ 이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용어가 표상하듯 군사적 상호억제에 의한 균형은 사실 여러 ‘촉발요인(triggering event)’에 의해 깨지기 쉬운 불안한 것이다. 배타적 동맹체제에 의해 나름 세력균형에 의한 불안정한 평화기를 유지하던 유럽에서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촉발요인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로 번진 과정은 이러한 불안정성을 잘 보여 준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양한 분쟁의 촉발요인이 존재한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 갈등,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영토분쟁은 대표적 갈등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로 인해 구조적 안정성이 위협받는 현 정세에서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 등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항행의 자유의 작전(FONOPS: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구조적 변동과 연계된 위험성 있는 촉발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반길주 2021). 학술적·이론적 관심도가 그리 높지는 않으나, 잠재적 분쟁 격화의 속도면에서 예의 주시해야 하는 갈등요인으로는 ‘방공식별구역(ADIZ: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의 경쟁적 선언과 침범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군용항공기의 항속 속도에 기인하는 분쟁 격화의 긴박성, 각국 안보에 대한 민감성, 미중경쟁과의 연관성, 한국 관여 정도의 직접성 등 요소를 고려하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이슈이다.
방공식별구역의 정의와 쟁점, 그리고 관련 분쟁
방공식별구역은 “영공방위 및 항공기 식별을 목적으로 통상 영공 외곽 지역에 일방적으로 설정된 공중구역”을 의미한다.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외국 국적의 항공기는 관계 당국에 사전에 비행계획서의 제출이 요구되며, 비행 중 쌍방교신 유지의 의무를 지닌다. 방공식별구역은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작전구역(AO: Areas of Operations), 비행금지구역(NFL: No-fly Zone)등의 개념과 구분되는데, 우선 비행정보구역은 항공기구(ICAO)에서 분할ㆍ설정한 공역으로, 비행 중에 있는 항공기에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항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항공기 사고의 발생 시 수색 및 구조업무를 책임지고 제공할 목적으로 구획된 영역을 의미한다. 즉, 설정 주체가 국제기구인 ICAO라는 점, 그 목적이 단순 항공교통의 안전 담보라는 점에서 방공식별구역과 구별된다. 작전구역은 평시 아군의 해상 및 공중 전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합참의장이 설정한 구역을 의미하며, 방공식별구역과 달리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으며, 적용 대상도 자국군 구성원 및 전력에 국한된다. 비행금지구역은 안보적 목적으로 항공기의 비행을 불허하는 지역으로 공중에서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성격을 지니며, 침범 시 격추될 수 있다 (김한택 2015, 72-75).
방공식별구역의 역사적 연원은 냉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국이 점증하는 소련의 위협, 특히 고속 전폭기로부터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자국 영공의 바깥에 5개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이 그 시초이다. 현재 미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은 대서양, 태평양, 하와이, 괌 등 여러 지역을 포괄하며, 남 캘리포니아 지역에 설정된 방공식별구역의 경우 연안에서 400해리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뻗어 있다. 미국의 관행을 좇아 상당수 국가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는데, 한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약 28개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가능 혹은 금지하는 명확한 국제법 규정은 없으며, 이를 선포한 여러 국가들의 관행 및 운용 세칙 역시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들은 통과 통행(in transit) 중인 항공기를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는 반면, 이를 적용 대상에 제외하는 국가들도 있다. 다만, '국제민간항공조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일명 시카고협약)' 제12조에 규정된 영공 및 공해상에서 설정되는 규칙에 대한 일반규정을 방공식별구역 설치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동 조항은 “각 체약국은 그 영역의 상공을 비행 또는 동 영역 내에서 작동하는 모든 항공기와 그 소재의 여하를 불문하고 그 국적표지를 게시하는 모든 항공기가 당해지에 시행되고 있는 항공기의 비행 또는 작동에 관한 법규와 규칙에 따르는 것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약속한다. 각 체약국은 이에 관한 자국의 규칙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본 협약에 의하여 수시 설정되는 규칙에 일치하게 하는 것을 약속한다. 공해의 상공에서 시행되는 법규는 본 협약에 의하여 설정된 것으로 한다. 각 체약국은 적용되는 규칙에 위반한 모든 자의 소추를 보증하는 것을 약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방공식별구역은 본질상 영토주권이 미치는 영공과 구별되며, 여러 국가가 안보 및 항행의 안전을 위해 일방적으로 선언한 임의의 영역에 불과하다. 만일 각 국가의 방공식별구역에 중첩이 없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리·의무에 대한 다툼이 없으며, 각기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을 상호 존중하는 관행이 생성된다면 국제 항공질서의 안정적 운용에 기여 할 수 있는 하나의 관습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 가정에 불과하며, 여러 국가의 경쟁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및 이에 대한 상이한 해석으로 인해 국가 간 안보불안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방공식별구역과 관련된 가장 오랜 법적 쟁점 중 하나는 통상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 혹은 공해 상공에 설정되는 방공식별구역 내에서 타국 군용기의 정찰 활동이 허용되는가의 여부이다. 이미 냉전기 미·소 간에 이와 관련된 상당한 안보적 긴장이 있었는데, 1960년 7월, 바렌츠해(Barents Sea) 공해지역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RB-47H기가 소련의 미그-19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이 대표적 예이다. 이 사건 약 두 달 전에 발생한 U-2 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피격되어 미국 측이 별다른 법적 대응 논리를 마련하지 못한 반면, RB-47H기 격추 사건에서 미국은 소련 영해에서 30해리 이상 떨어진 공해의 상공에서 작전이 수행된 점과 설령 정찰활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연안국이 이를 격추할 권리는 없음을 지적하고 소련의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공해상의 자유항행 원칙을 더욱 강조한 영국의 경우 직접적 당사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 공해상에서 정찰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군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국가가 향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Dutton 2009, 702).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s of Sea)의 채택에 따라 관련 분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어 갔다. 동 협약에서 공해의 범위는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지역으로 보다 좁게 설정된 반면, 기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연안국의 일정한 경제적 권리를 제외한 공해 자유의 원칙은 그대로 고수되었기 때문이다. 동 협약 제56조는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연안국의 권리 및 관할권 및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a) 해저의 상부수역, 해저 및 그 하층토의 생물이나 무생물등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및 관리를 목적으로하는 주권적 권리와 해수ㆍ해류 및 해풍을 이용한 에너지생산과 같은 이 수역의
경제적 개발과 탐사를 위한 그 밖의 활동에 관한 주권적 권리, (b) 이 협약의 관련규정에 규정된 (i)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의 설치와 사용, (ii) 해양과학조사, (iii) 해양환경의 보호와 보전에 관한 관할권, (c) 이 협약에 규정된 그 밖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 협약상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에 있어서, 연안국은 다른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고려하고, 이 협약의 규정에 따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한택 2015). 동 협약은 동시에 타국 EEZ상에서 항행의 자유를 행사하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원칙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해양의 평화적 이용에 관하여 이 협약에 따른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에 있어서 당사국은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해가 되거나 또는 국제연합헌장에 구현된 국제법의 원칙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방식에 의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를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는 제301조가 그것이다.
유엔해양법상 연안국에 인정된 ‘배타적’ 경제권리는 해당 지역에 대한 안정적 접근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며, 기존 공해 지역에서 향유되는 항행의 자유와 관련된 일체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해양국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1986년 3월에 발생한 미국과 리비아 사이의 교전은 이러한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양국 간 갈등의 연원은 리비아가 일방적으로 시드라만(Gulf of Sidra)을 절대적 주권이 미치는 영해 및 영공을 선포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을 위시한 여러 서방국가들은 당시 리비아가 설정한 영해·영공 범위가 과도한 것이라고 규탄하였으며, 리비아가 1981년 미 해군 소속 전투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하였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이 체결된 82년경부터 시드라만이 리비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할 수는 있으며, 따라서 리비아가 자원과 관련된 법의 제정 및 집행을 할 수는 있으나, 다른 국가는 그 상공에서 일체의 자유를 향유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미국은 이러한 법적 해석을 강제하기 위하여 1986년 3월 전함 및 세 척의 항모를 시드라만에 투입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에, 리비아가 미 전투기에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이 공대지 및 지대지 미사일로 응사하면서 리비아 측 4척의 전함과 미사일 기지를 격침하였다 (Dutton 2009, 701).
탈냉전기에는 러시아 전투기·정찰기가 타국 EEZ 상공에서 활발한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안보적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2007년 7월, 노르웨이 영공에 매우 인접한 EEZ 상공에서 러시아 전폭기·정찰기 출격의 빈도 증가가 관찰되었고, 노르웨이 공군편대가 출격, 이를 저지하여 긴장이 형성된 적이 있었다. 러시아 측은 이것이 통상적 훈련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하였는데, 노르웨이는 미국-영국 등과 함께 EEZ 상공에서 군사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자유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러시아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영국 영공에 접한 EEZ 상공에서 같은 방식의 비행이 관측되었고, 영국 공군이 대응하며 긴장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단순히 안전 및 편의를 위한 국제관습 혹은 일국의 선언의 의미를 넘어 유엔해양법 체결 시 노정된 연안 국가군-해양 국가군 사이의 근본적 갈등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또한, 세계 여러 지역에 군사적 힘을 자유롭게 투사(military projection)하기 위해 EEZ 및 공해상에서 자유로운 군사활동 원칙을 고수함과 동시에 이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방공식별구역을 본토방위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은 결코 법적문제만으로 치환될 수 없으며, 이를 힘의 행사 수단의 한 수단으로 접근하는 전략적·정치적 시각과 연동하여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방공식별 선포의 확장 및 쟁점
아래 <그림 1>과 같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 주요국은 각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운용하고 있으며, 상당지역이 중첩하여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방공식별구역의 기원은 6·25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 태평양 공군은 1951년 3월 22일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동맹국들을 혹시 있을지 모를 소련·중국 등의 영공 침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였으나, 6·25 전쟁 휴전 이후 그 설정 및 운용에 관한 권한을 각 국가에 이양한 바 있다.
<그림 1. 동아시아 각국의 방공식별구역 현황>
출처: Mercedes Trent, "Over the Line: The Implications of China’s ADIZ Intrusions in Northeast Asia,"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2020. p. 9.
동아시아 국가 간 방공식별구역과 관련한 뚜렷한 갈등은 2010년 이전에는 관측되지 않다가 2013년 11월 23일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언 및 주변국들의 대응에 따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일본과 영유권 분쟁상황에 있는 센카쿠-다오위다오와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있는 이어도 해양과학 기지를 포함하는 것이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이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50년대부터 일종의 군사경제수역, 군사항행수역, 군사작전수역 및 그 상공에서 비행제한을 실시하고는 있었으나, 이러한 영역은 대외적으로 명확히 공표된 것은 아니었다. 동중국해·남중국해 여러 도서를 둘러싸고 중국과 주변국 간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그 동기에 관한 여러 해석을 낳았다. 우선 주변국, 특히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 직후 중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중국이 취한 대일 억제책(deterrence)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이보다 중국의 공세성을 더 강조하는 견해는 센카쿠/다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의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보거나 '반(反)접근 · 지역거부 전략(A2/AD: Anti-access/Area Denial)’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기하였듯이 방공식별구역의 법적 성격은 영토 및 영해 영유권과 관련이 없다는 점, 방공식별구역 획정·선언 과정에서 인민 해방군과 외무성 간 뚜렷한 공조가 없었으며 방공식별구역의 집행 계획과 관련하여 비일관성을 보였다는 점, 시진핑 주석은 방공식별구역 선언 직후 오히려 주변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였다는 점 등을 고러하면 이러한 해석이 전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Hsu and Hsu, 2017).
중국 내부 의사결정과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확정할 수는 없으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상기한 요인들과 더불어 미국이 전개하는 정찰활동이 야기하는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동기가 복잡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타당해 보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연안국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타국의 군사활동에 일정 정도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상기한 미국이 견지한 자유항행의 원칙 및 작전과 충돌하며, 상당한 갈등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갈등이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미국의 EP-3 정찰기와 중국의 F-8 전투기가 2001년 4월 중국의 하이난섬 상공에서 충돌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미국은 배타적경제수역 상공에서 정찰기에 의한 정보수집활동은 합법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고, 중국은 그러한 정찰활동은 유엔 해양법협약에 의해 인정되는 상공비행의 자유의 한계를 넘는 것이라며 미국을 비난하였다.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대립은 2001년 3월 황해에서 발생한 미군 해양조사건 바우디치(USNS Bowditch)호의 군사정보수집에 대한 갈등과 2009년 3월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미군의 해양조사선 임페커블(USNSImpeccable)호의 군사정보수집에 대한 대립에서 반복되었다(이창위 2014).
이러한 반복된 충돌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만으로는 배타적 경제수역내 미국의 정찰 활동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자성론으로 이어졌고, 방공식별구역의 선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그 선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시, 해당 구역 진입 이전 반드시 자국 기관에 비행정보를 제공하게 하고, 항공기의 기종과 목적지를 통보함으로써 민감정보의 수집 시도 및 이에 따른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시각은 실제 여러 중국 문헌에서도 확인되는 점이다 (신창훈 2014). 이처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단순히 한·중·일 세 국가 간 항공교통 관리를 둘러싼 단순 분쟁을 넘어,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원칙의 해석에 관한 갈등으로 해석될 여지도 존재한다.
그 의도에 관한 해석 여부는 차치하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안보 이슈 중 하나로 전화(轉化)한 것은 주변국인 한국과 일본의 위협 인식 및 대응이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약 2주 후인 2013년 12월 8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조정안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제정·개정된 현행 ‘대한민국 군용항공기 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3항은 방공식별구역을 “국가안전보장 목적상 항공기의 용이한 식별, 위치 확인 및 통제가 요구되는 지상 및 해상의 일정 공역(空域)”으로 정의하며, 그 범위는 위의 <그림-1>과 같이 독도, 이어도 상공 지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51년 임의로 설정해 놓은 한국방공식별구역의 경우, 이어도는 물론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이 설정된 홍도와 마라도 남방 영공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오랫동안 그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어도 탐사가 미국의 KADIZ 설정 이듬해인 52년에 이루어지고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과의 조업 문제로 이어도를 포함하는 평화선을 선포하면서, KADIZ 재획정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복된 협상거부 및 한일관계 악화 우려로 인해 관련 논의는 수면 아래에 있다가 중국의 일방적 선언을 하나의 기회의 창으로 삼아 확장된 KADIZ를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권혁철 2015).
일본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한바, 2013년 11월 28일 외무성 성명은 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상유지를 일방적으로 깨는 매우 위험한 행위(profoundly dangerous acts that unilaterally change the status quo in the East China Sea)”라고 비난하였다 (Mission of Japan to ASEAN, 2013). 사실, 일본의 경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이 설정한 일본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한 상황이었다. 첫 번째 확장 결정은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직후 동 지역을 포함시키기 위한 1972년의 결정이었으며, 두 번째 확장 결정은 일본 서남단에 위치한 요나구니섬(与那国島)을 포함시키기 위한 2010년의 결정이었다. 요나구니가 대만으로부터 약10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일본의 확장 결정으로 대만의 방공식별 구역과 중첩되는 영역이 발생하였으나 대만이 이에 대해 뚜렷한 반발을 한 것은 아니다 (Trent 2020).
이처럼 방공식별구역은 냉전기 미국이 본토방위의 특수 목적을 위해 스스로 형성한 제도이자 한국과 일본에 이식한 국제관행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자체를 비난할 만한 국제법적 근거는 없으며, 타국의 방공식별구역 및 센카쿠-다오위다오를 포함한 분쟁영토를 포함한 ‘확장성’ 및 이를 명확한 사전 협의 없이 선포한 외교적 소통 부족만을 정치적 견지에서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어도 해상기지를 포함한 중국 방공식별구역의 확장성 및 중국 대외정책의 공세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갈등에는 매우 오랜 기간동안 전개된 공해 및 배타적경제수역에서 군사활동의 허용여부에 관한 법적 논쟁 및 미-중 간 견해 불일치의 문제가 기저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타국 방공식별구역 진입 증가에 따른 갈등
상기한 방공식별구역의 경쟁적 선포·확장이 단순히 외교적 갈등을 넘어 군사·안보적 분쟁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성은 그 집행과정에 있다.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국가들은 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자국의 군용항공기를 긴급발진(scramble)시켜, 사전 공지 없이 진입한 타국 항공기에 대한 감시(surveillance)·식별(identification)·요격(intercept)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영공과 구별되는 방공식별구역의 성격상 타국 군용기의 진입 에 대해 곧바로 격추를 위한 공격이 허용되지는 않으므로 곧바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전통고 없는 방공식별구역 진입 건수가 너무나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이를 일종의 ‘전략적 신호발송(strategic signaling)’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정황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아래 <표 1>은 중국 항공기가 사전 허가 없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건수의 연간 추이를 나타낸 것인데, 특히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진입 건수가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 격화와 자국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있었던 2010년-2016 기간에 약 9배가량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대해서는 확장선언 직후인 2014년, 2015년에는 뚜렷한 진입 상황이 관찰되지 않다가 사드배치 관련 갈등이 본격화된 2016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대해서도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중국과의 분리정책 강화 및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가입 등 하나의 중국원칙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자 사전통고 없는 진입 건수의 증가가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하면,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이슈에 반하는 주변국의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경고의 의미로 전략적 진입을 시도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표 1. 중국 항공기가 사전 허가 없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연간 건수>
연도 일본 한국 대만 201096--2011156--2012306--2013415--2014464--2015571--201685150-201750080-2018638140-201967525>>20
<출처: Mercedes Trent, “Over the Line: The Implications of China’s ADIZ Intrusions in Northeast Asia,”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2020. p. 15.>
또 다른 각도에서 미국이 감행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미국은 공해상 및 그 상공에서 무해통항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냉전기부터 세계 각지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때로 일부 연안국과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미국은 남중국해·동중국해 지역에서도 이러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왔으며, 이러한 활동은 분쟁상태에 있는 여러 도서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여 영유권 주장을 약화 시키기 위한 것으로 중국은 인식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미 전함 커티스호가 남중국해 트리톤 섬(Triton Island, 中建岛)에서 단행한 항행의 자유 작전은 베트남의 영유권 주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측은 인식하였다 (You 2016, 642). 또한,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직후,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투기를 발진·진입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분쟁지역에서 자국의 영유권 주장 및 방공식별구역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우리 역시 존중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중국이 보내는 전략적 메시지일 수 있다. 즉,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미 군용항공기를 저지하여 감당하기 힘든 갈등 상황을 야기하기보다는 한·일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일 수 있다. 필자가 인터뷰한 복수의 중국 전문가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단행하는 대규모 군사훈련과 중국의 KADIZ 진입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해 주기도 하였다. 이는 상대방이 하는 대로 되갚아 주되 그 강도와 대상을 다소 달리하는 일종의 ‘확장된 팃-포-탯(tit-for-tat)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러시아가 원칙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국제관행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국 영공 주변에 이를 설정하지 않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는 반면, 중국의 경우 이를 설정하면서 카디즈에 반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은 국제법의 관점에서 모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사국 간 협의를 위한 외교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한국·중국·일본·대만 간 항공교통 안전을 위한 규칙 설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유엔해양법체제의 등장 이후 다소 축소된 공해의 범위 및 무해통항의 권리와 배타적경제수역에서 군사활동의 허용여부와 같은 법률해석을 둘러싼 세계적 차원의 규칙설정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 분쟁지역에 대한 접근확보를 시도하는 중국과 항행의 자유 작전을 통해 이를 무력화 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중갈등의 주요 이슈이기도 하다.
현재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작전 이상으로 미국과 중국의 실제 군사전력이 물리적 충돌에 다가가 있는 상황을 찾기 쉽지 않다. 이 갈등의 연장 선상에서 한국 카디즈에 대한 반복적 진입이 일종의 전략적 신호발송으로 기능하는 현 상황은 미중경쟁에의 연루를 최대한 회피해야 하는 한국에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진입’은 영공에 대한 침범과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지만, 중국·러시아의 군용항공기에 대응하여 우리 군용항공기가 긴급발진하는 상황의 반복은 국민들에게 안보 불안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는 관련 당사국이 방공식별구역 조정 및 조화로운 운영을 위한 규칙 마련을 위한 외교적 플랫폼 구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국 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플랫폼은 정부 간 공식 협의체보다는 1.5트랙 등의 형식으로 발족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특히, 제주도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근접해 있다는 점과 제주포럼 등의 개최를 통해 구축된 ‘평화의 섬’으로서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플랫폼의 물리적 공간으로서 최적의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플랫폼 구축 노력에 제주도의 역할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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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유철은 2016년 12월 뉴욕 주립대학교(올버니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외교부 국립외교원 전문경력관 등을 거쳤다. 전공분야는 국제정치이며 다자조약, 미국외교정책, 미중관계등이 주요 연구분야이다. 주요논문으로는 "Is China Spoiling the Rules-Based Liberal International Order? Examining China’s Rising Institutional Power in a Multiplex World Through Competing Theories," Issues&Studies Vol. 56, No. 1 외 15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