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작성일, 조회수, 내용, 항목으로 구성된 표입니다.
호르무즈의 안보 장사, 미·이란 이면 합의의 실체와 아시아의 생존 공식(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통일뉴스]
날짜
2026-06-19
조회수
11
2026년 6월, 무려 106일 동안 전 세계의 에너지 수송로를 틀어쥐었던 미국과 이란의 총성이 마침내 멈췄다. 종전 양해각서(MOU)라는 전격적인 타결 소식에 국제사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전장(戰場)의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

드론과 미사일의 굉음이 멈춘 그 자리에,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조준하는 치열하고도 무거운 ‘흥정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호르무즈 해협 재 개방을 둘러싼 실무적 논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했다. 바다 속에 흩어진 기뢰를 제거하고 마비된 선박 체증을 풀기 위한 기술적 난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뇌관은 따로 있었다.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선박에 통행료를 징수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한 미국의 강경한 대립이 정면으로 충돌한 까닭이다. 실질적인 물류 정상화와 영구적 안정을 향한 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발단은 합의문 한구석에 숨어 있던 이른바 ‘해상 서비스 요금(Maritime Services Fee)’이라는 낯선 명목이었다. 단순한 행정 비용이나 지엽적인 갈등처럼 보이는 이 문구 한 줄이 문제였다. 과연 이 사소해 보이는 단어가 거대한 국제 정치의 판도를 흔들 수 있을까? 간신히 봉인해 둔 글로벌 에너지 안보 체계라는 화약고에, 이 조용한 문구 한 줄이 다시금 거대한 불씨를 당기고 있다.

합의서에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미국과 이란 양국은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으며 정면충돌했다. 이란 국영 매체들은 최종안에 명시된 '해상 서비스' 조항을 근거로 삼아, 미국이 마침내 자국의 해협 통항 수수료 징수권을 공식 승인한 것이라며 승전보를 울렸다. 이란 정부는 이미 60일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전방위적인 과세를 단행해 고갈된 국가 재정을 메우겠다는 계산을 끝마친 모양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그는 이번 합의가 호르무즈 해협의 영구적인 통행료 면제를 확약 받은 외교적 승리라 자평하며, 즉각적인 해군 봉쇄 해제를 선언했다. 한쪽은 합법적인 세금이라 부르고, 다른 한쪽은 통행료 면제라 믿는 이 기묘한 동상이몽은 결국 전례 없는 외교적 파국과 무역로 상의 마찰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하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이 밀려드는 초지정학적 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 이권 다툼은 단순한 '돈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해상 통제권을 쥐려는 해양 패권과 연안국의 영토 주권을 주장하는 봉쇄 패권의 본질적 충돌이다. 본고는 협정서 이면에 숨겨진 '해상 서비스 조항'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해체하고, 이것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체제 하의 국제 해양 질서와 아시아 에너지 공급망의 생존 구조에 어떠한 격변을 몰고 올 것인지 그 파급효과와 현실적 대안을 분석하고자 한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공방전은 오는 6월 19일 제네바 서명식을 기점으로 일단락될 예정이다. 핵심 골자는 적대 행위의 중단과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다. 하지만 협상 막바지에 기습적으로 삽입된 ‘호르무즈 해협 해상 서비스 요금’ 조항이 새로운 갈등의 뇌관이 되었다.

이란은 해당 요금을 영해 내 안전 확보, 항법 보조, 환경 보전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규정하며 페르시아만 해협청(PGSA)이라는 행정 기구를 신설해 사전 심사와 징수 체계를 공고히 했다. 이란 관영 파르스(Fars) 통신 등 현지 매체들은 이를 두고 "미국이 이란의 통행 권한을 묵인한 사실상의 외교적 승리"라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다. 물론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통행료 없는 영구적 개방"을 천명하며 이러한 해석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으나, 이란의 법리적 공세는 대단히 치밀하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반발을 피하기 위해 공식 명칭을 '통행세(Toll)'가 아닌 '서비스 요금'으로 우회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워싱턴은 이란의 이러한 조치를 공식적으로는 "체계적 갈취"라 맹비난하면서도, 간신히 도출한 종전 MOU의 파기를 피하기 위해 고도의 실용주의적 타협책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미 재무부가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페르시아만 해협청(PGSA, Persian Gulf Strait Authority)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인접국인 오만을 압박하는 강경책을 구사하는 한편, 이면에서는 이른바 '오프셋(Offset) 정책'이라는 해법을 들고나온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오프셋 정책의 핵심은 동결된 이란의 해외 자산을 일시적으로 활용해, 자국 및 동맹국 선사들이 이란에 지불할 위험이 있는 서비스 요금을 상쇄·보전해 주겠다는 시나리오다. 물리적 충돌의 위험을 회피하면서 자국 선박의 단기적 재정 부담을 완화하려는 계산된 포석이다. 하지만 이 미봉책은 이란의 현장 강제 징수 행위를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법적 분쟁과 자산 소유권 소송만을 양산할 소지가 다분하다. 나아가 미국 최우선주의에 기반한 이러한 파편적 대응은 국제 해양 규범의 수호를 가치로 내건 서방 동맹 전반에 심각한 견해 차이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타협적 노선에 대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법 학계는 극도의 우려를 표명하며 명확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유럽이 이처럼 원칙론적 배수진을 친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체제의 규범적 정당성 수호다. 이란의 이번 공세가 무서운 이유는 국제 해협에서의 무조건적인 통행료 징수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대신, UNCLOS 제26조 제2항("영해를 통과하는 선박에 대하여는 제공된 특정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서의 요금만을 징수할 수 있다")의 회색지대를 정교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항법 유도와 오염 방지 조치가 이 '특정한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강변한다. 미국과 이란 모두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미비준국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은 이미 그 어떤 자의적인 비용 청구나 일방적 압박으로도 흔들 수 없는 확고부동한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굳혔다는 것이 EU의 일관된 입장이다. 명문화된 조약의 틀 바깥에 있는 국가들조차 결국 이 거대한 법적 관성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깔려 있는 셈이다.

둘째는 경제적 생존권의 결부다. 최근 106일간의 무력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물동량이 일시적으로 최대 95%까지 급감했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상회하는 충격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의 요금 부과가 상시화 및 제도화된다면 해상 물류비용의 폭등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 점화는 불가피하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이번 사태를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불법적 규범 훼손 행위"로 규정하며 독자적인 외교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워싱턴의 가변적인 대외 정책에 자국의 사활이 걸린 해상 교통로를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과거 호르무즈 해운 안보 유럽 주도 임무(EMASoH, European Maritime Awareness in the Strait of Hormuz)인 아제노르 작전 체계를 확장하거나 기존 아스피데스 작전의 역량을 단계적으로 고도화(예: 전후 기뢰 제거를 위한 소해 자산 검토 등)하여 유럽 고유의 외교·안보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외교 구경거리가 아닌 생존과 직결된 엄중한 경고다. 미·이란 간의 단기적 편의주의에 기반한 합의가 이란의 서비스 요금 징수를 기정사실화해 줄 경우,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비용 상승은 아시아 제조업 전반에 치명적인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지정학적 마찰 속에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취해야 할 현실적인 대안은 명확하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단기 처방에만 의존하거나, 혹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유럽 주도의 독자적 군사 전선에 무리하게 연계하는 양극단의 선택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UNCLOS(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의 규범적 원칙을 지지하면서도 국제해사기구(IMO)와 같은 다자주의 기구를 관통하는 실리적 안보 협력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단계적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첫째, 'IMO 표준 실비 정산 메커니즘'의 발의다. 이란이 UNCLOS 제26조 제2항을 명분으로 내세운 만큼, 이란 PGSA가 요구하는 자의적이고 과도한 요금을 거부하고, 국제해사기구가 공인하는 '실제 제공된 서비스의 비용(영해 내 환경 부담금 및 항법 유도 비용)' 수준으로 요금을 전면 하향 조정하도록 국제사회의 중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는 1970년대 다뉴브강 통항 수수료 갈등 당시 국제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실비 정산 체계를 도입했던 현실적 전례와 궤를 같이한다. 이 통항 서비스 요금문제는 향후 상당 기간 호르무즈 해협의 원활한 물류 흐름을 가로막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연안국 오만을 활용한 간접 다자 중재 여로 확보 체계 구축이다. 동북아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국제해상안보컨소시엄(IMSC) 틀 내에서 청해 부대 등의 실무적 해상 순찰 능력을 유지하되, 이란과의 전술적 대화 통로를 지닌 오만을 신뢰성 있는 중재자로 활용하여 현장에서의 선박 나포나 강제 징수 리스크를 외교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셋째, 공급망 복원력의 전면적인 재구조화다. 원유 도입선의 다변화와 더불어 다자간 비축유 공동 활용(Oil Sharing) 메커니즘을 강화하여, 호르무즈 해협의 일시적 마비나 비용 쇼크가 국내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시차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제도적 안전판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단순한 사용료 징수 분쟁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다극화 체제 하에서 국제 규범의 무력화와 강대국 이기주의가 결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의 단면이다. 가짜 평화의 임시 수립을 위해 국제 해양법의 원칙이라는 핵심 가치가 훼손된다면, 인류 공동의 자산인 글로벌 무역로의 자유는 상시적인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원칙을 고수하는 유럽의 외교적 스탠스와 법리적 맹점을 파고드는 이란의 치밀한 전략은, 그 동안 동맹의 변덕이나 가변성에 취약성을 노출해 온 아시아 국가들에게 '동맹 안보의 한계 인정'과 '다자 기구를 활용한 실리적 안보 역량 구축'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치열한 법리적 대치 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대결의 기술이 아닌, 평화적 공존을 향한 제도적 기반의 마련이다. 아시아 국가들 역시 단순히 각자도생의 전략을 짜는 것을 넘어, 서로의 안보적 불신을 누그러뜨리고 다자간 신뢰를 쌓아 올리는 보다 포용적이고 평화적인 연대의 틀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