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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에서 상생으로: 한반도 평화 관리를 위한 다층적 안보 패러다임(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통일뉴스]
날짜
2026-06-22
조회수
16
1953년 정전체제 이래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전략 통제소는 단 한 차례도 구조적 휴지기를 누리지 못했다. 올해 연말 발간을 앞둔 ‘2026 국방백서’ 초안을 둘러싸고 분출된 부처 간의 격렬한 인식 차이는, 이 고질적인 안보 딜레마가 전술적 수면 위로 부상한 가장 최근의 현상적 단면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외교안보 전선의 치명적인 균열이자 난맥상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과연 이를 국가 위기의 징후로만 단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획일화된 합의보다 격렬한 내부 갈등이 오히려 전략적 경직성을 탈피하려는 안보 생태계의 복원력을 증명하는 반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파열음의 진짜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법률의 뿌리인 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선언한 헌법 제3조,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라는 제4조가 한 장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한, 국가 안보 거버넌스의 태생적 딜레마는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쪽은 당장 오늘 밤 휴전선 너머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군사적 화력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물리적 책무를 졌고, 다른 한쪽은 미래의 불확실한 통일 가치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북한과 실낱 같은 대화 채널을 이어가야 하는 정무적 과제를 부여 받았다.

결국 지금의 소란은 안보의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생존을 책임진 두 축이 각자에게 주어진 헌법적 소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필연적이고 건강한 긴장이다. 대외 전략의 다층성을 정교하게 시험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단견(短見)으로 재단하기엔, 우리가 짊어진 안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북한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외무성을 필두로 대남 적대 기구를 본격 가동하는 엄중한 정세다. 이러한 시점에 내부 메시지의 불협화음이 표출되는 것을 두고 대외 전략의 명확성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휴전선 너머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될수록 일체화된 목소리로 강력한 억제력을 투사하는 것이 안보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충돌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안보 개념의 분화와 논쟁은 취약성의 증거가 아니라, 도리어 유연한 전략적 다층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국가 안보를 오직 단선적인 군사적 적대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경직성은 스스로 외교적 퇴로를 차단하고 국가의 선택지를 좁히는 자해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억제와 정무적 공간의 분리는 모순이 아닌 병행 가능한 현실이다.

글로벌 안보 프레임을 주도하는 미국의 전략 문서 작성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 등에서 특정 대상을 평면적인 주적으로 규정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대신 ‘지속적인 도전(pacing challenge)’이나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 같은 고도의 정무적 수사를 사용하며 외교적 운신의 폭을 의도적으로 넓힌다. 군사적 대비태세를 철저히 다지면서도 외교적 판을 완전히 깨지 않으려는 고도의 복선(複線) 전술이다. 군이 명확한 주적 개념을 확립하여 장병의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과제는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국가 전체의 대외 전략 문서에는 유연성을 가미하는 이원화 구조는 이미 강대국들이 보편적으로 구사하는 안보 방정식이다. 단호함과 유연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억제력의 원천이다.

명칭을 둘러싼 소모적인 개념 논쟁에 국력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지금 시급한 의제는 안보 문서의 자구 수정이 아니라, 최상위 국가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NSC) 주도의 정교한 '매트릭스형 전략 조율' 체계의 확립이다. 군사적 영역의 ‘당면한 핵심 위협’이라는 현실주의적 진단과 정치·외교적 영역의 ‘현상 관리 및 미래적 대화 상대’라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정교하게 분리하되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국가 표준 안보 프레임워크를 제도화해야 한다.

국가 안보실은 국방부의 억제력을 최고조로 유지하여 안보 공백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외교·통일 부처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 운신의 공간을 열어주는 통합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부처 간 조율되지 않은 각자도생 식 다원주의는 정책적 혼선을 초래할 뿐이지만, 철저히 통제된 다층적 접근(multi-layered approach)은 흔들림 없는 강력한 전략 자산이 된다.

본질적으로 수사의 다층성은 압도적인 물리적 억제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전략적 위력을 발휘한다. 굳건한 군사적 태세 위에 부드럽고 세련된 외교적 외피를 두를 때, 비로소 대북 억제와 평화 관리라는 양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힘이 결여된 수사는 무력한 독백에 불과함으로 한반도 평화관리를 위한 다층적 안보프레임을 설계할 때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